여 운
결국, 하늘은 제 푸름을 이기지 못했나 봅니다. 무거운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서는 머리 위로
억지로 뚝뚝 몇 방울 비가 내렸지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나 본데, 끝내는 참는다는 것이
몇 방울 빗물로 내리나 봅니다. 짐짓, 모른 체했습니다. 건너 담장 너머 노랗게 익어 가는
모과 몇 개를 위안 삼아 아, 가을이구나, 낮게 소리 내보았지요. 말없이 멀어져 가는 것에
대해 내가 무어라 말하겠습니까. 내 사랑도 이런 건가 봅니다.
-2003년 늦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