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의 예수" 연재글 일부 삭제 조치에 대한 입장
연재했던 글들의 일부가 삭제 조치 되었습니다.
내용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삭제조치의 법적인 내용의 검토와 확인을 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그리고 이 연재의 마무리 역시 의도와 달리 미뤄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사실상 연재는 마무리되었고
두 개의 글은 삭제조치 되었습니다.(결과적으로)
내용을 파악하고 보니 이러한 행태는
자기 검열을 강화시키고 임시조치를 악용하여
공론을 위축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보입니다.
이에 따라 명확한 입장과 내용을 올리고 삭제된 글의 원문도 함께 공개하고자 합니다.
즉, 권리침해로 해당글이 신고되고
브런치는 이에 따라 임지조치(임시삭제)를 진행하고
30일간 저작권자의 이의 제기가 없으면 영구 삭제 합니다.
이 는 권리 침해의 내용의 다툼이 없이
신고 만으로 조치된다는 뜻입니다.
"금관의 예수"라는 제목으로 연재되던 글 중 9회, 10회 두 개의 연재물이, 어느 날 확인해 보니 돌연 삭제 조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며칠 후 관련 서비스 제공업체(브런치)로부터 도착한 이메일들을 열어보고서야, '명예훼손'을 주장하는 특정 신고자에 의해 임시조치(Temporary Injunction)되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메일 수신 시점에서는 이미 게시물 복구를 위한 '재게시 요청 기간(30일)'이 도과되어 정당한 공익적 비평을 복구할 기회조차 원천적으로 박탈당했다는 것입니다.
공론을 위한 비판이 은밀하게 차단되고, 복구할 기회마저 놓치게 만드는 이 부당한 '침묵 압박'의 메커니즘이야말로 이 글을 다시 쓰는 가장 강력한 이유입니다.
이에 필자는 해당 비평 글의 핵심 주제인 '기독교 내 세습이라는 구조적 악행'을 전면에 재기술하고, 동시에 '임시조치 제도 악용'이라는 또 하나의 악행을 고발하며 법적 안전성을 극대화한 버전으로 이 보고서를 공개합니다.
[법적 안전성 확보를 위한 명시]
이 글은 특정 교회, 특정 교단, 또는 특정 개인을 지목하는 비판이 아님을 명확히 합니다. 본 글은 한국 교회가 공통으로 직면한 '세습' 현상과 '공공성 결여'라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공익적 성찰을 담고 있으며, 특히 정당한 비평을 침묵시키려는 임시조치 제도의 남용 행위에 대한 비판에 중점을 둡니다.
필자는 대학교에서 강의하는 학자이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에 소속된 교회에서 안수집사로 섬기는 신앙인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한국 사회와 교회 공동체의 건강성 회복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한국 기독교 내 '권력과 자산이 집중된 초대형 조직'에서 발생하는 '세습' 현상에 대한 비평적 글을 작성했습니다.
이 비평은 성서적 가치와 사회적 공공성의 관점에서 세습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는, 명백히 공익적 목적을 가진 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정당한 비판은 특정 신고자에 의해 '명예훼손'을 이유로 임시조치(Temporary Injunction)되었고, 대중의 시야에서 강제적으로 차단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글 삭제를 넘어, 불편한 진실을 덮으려는 권력의 의도적 행동에 플랫폼의 제도적 허점이 이용당한 사례이며, 이는 곧 표현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위협을 의미합니다.
세습은 단순히 목회직의 대물림을 넘어, 교회의 공적 자산과 영적 권위를 특정 가문에게 영구적으로 귀속시키려는 구조적 악행입니다.
성서적 가치의 위반: 목회 소명은 개인의 가업이 될 수 없습니다. 세습은 복음의 핵심인 '섬김'과 '소명'의 가치를 훼손하고, 지도력을 사유화하여 교회를 세속적 권력 구조로 전락시키는 행위입니다.
사회적 공신력 추락: 대형 교회는 막대한 자산과 영향력을 보유한 공적 조직입니다. 세습을 통해 투명성이 상실되고 '특정 가문의 탐욕'이라는 의혹에 휩싸일 때, 기독교 전체의 사회적 신뢰와 공신력은 심각하게 훼손됩니다.
필자의 비평은 바로 이러한 구조적 모순과 사회적 해악을 지적하며 한국 교회의 자발적 회복과 자정을 촉구하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명백히 공익 목적에 부합합니다.
필자의 글은 특정 주체를 지목하지 않았으므로 명예훼손이 성립될 법적 요건이 매우 낮습니다. 그럼에도 글이 삭제될 수 있었던 이유는 임시조치 제도라는 법적 장치가 비판 세력을 **'침묵시키기 위한 도구'**로 악용되기 때문입니다.
임시조치는 신고인의 주장만으로 게시물을 차단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비판을 받은 측은 소송이라는 번거로운 절차 없이도 비판의 목소리를 즉각적으로 제거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부당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전략적 위축: 작성자는 법적 분쟁의 부담과 심리적 압박을 느껴 재업로드를 주저하게 됩니다. 이는 '자기 검열'을 유도하여 건강한 비판 활동을 근본적으로 위축시킵니다.
공론의 봉쇄: 불편한 진실에 대한 사회적 논의 자체가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세습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은폐되고 공고화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결국, 임시조치 신고는 비판 글의 내용적 불법성을 입증하기보다, 비판 행위 자체를 막기 위한 '법적 압박'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필자는 신앙인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이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고 논의를 있어갈 것입니다. 법적 다툼의 소지를 최소화하고 공익적 비평의 가치를 명확히 하기 위해 다음 원칙을 준수하며 비판을 지속할 것입니다.
비특정성 이중 선언: 모든 비평은 한국 교회의 '구조적 경향성'을 다루며, 특정 교회, 특정 인물, 특정 사건을 지목하지 않음을 서두와 본문에서 명확히 선언합니다.
학문적/사회적 근거 제시: 세습 문제는 이미 다수의 신학 학회, 공신력 있는 언론, 사회학적 연구를 통해 논의된 '사회적 사실'임을 명시하고, 비판의 근거를 객관적인 공론의 영역에 둡니다.
학자로서의 중립적 톤 유지: 비판의 강도를 높이더라도, 표현을 구조적 분석에 집중하고 개인적인 비난이나 모욕적 표현을 배제하여 모욕죄 성립 가능성을 차단합니다.
정당한 공익적 비평이 단지 신고자의 주장만으로 플랫폼에서 삭제되고, 복구 기회마저 놓치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표현의 자유와 종교 권력에 대한 감시 기능이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줍니다.
필자는 학자이자 신앙인으로서 이 부당한 '침묵 압박'에 맞서 싸울 것이며, 임시조치 제도의 남용을 공론화하고, 세습과 사유화라는 비복음적 악행에 대한 사회적 성찰을 계속해서 촉구할 것입니다.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덮으려는 시도에 대해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말해야 합니다.
※ 이 글은 한국 교회의 구조적 현상에 대한 학문적·신앙적 견해를 다룬 의견 표명이며, 특정 단체나 개인에 대한 사실 적시가 아님을 다시 명확히 합니다.
또한, 삭제되었던 두 개의 연재문을 다시 게재합니다.
여러분들의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별첨 1
[삭제된 연재물: 제9 회 "성장의 특혜, 공공성의 상실, 그리고 세습" 원문]
I. 금관이 만든 특권의 논리
한국 교회가 금관(金冠)이라는 외형적 성공과 기념비적 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은 ‘특권의 논리’였습니다. 대형 교회는 눈부신 성장의 정점에서 자신을 '성스러운 경영체(Holy Management)'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제 규모와 영향력 덕분에 세상의 규칙이 자신들에게는 예외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특권 의식은 구체적인 형태로 발현되었습니다. 거대한 자산과 재정 운영의 투명성 부재, 그리고 세금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예외 요구는 교회를 세상의 '공적 영역'에서 스스로 분리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교회는 이웃을 섬기는 기관이 아닌, 자신만의 영역을 공고히 지켜야 하는 특혜의 성곽으로 변모했습니다. 성장이 곧 복음의 능력이라는 달콤한 착각 아래, 교회는 공공의 윤리와 책임감으로부터 면제받으려는 위험한 길을 걸었습니다.
II. 공공성의 상실: 닫힌 성곽 안의 왕국
금관의 논리가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부분은 교회의 '공공성'입니다. 교회가 마땅히 지녀야 할 공공성(Publicness)은 세상의 아픔을 끌어안고, 사회 정의와 화해를 위한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는 사명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외형적 성장과 재정적 안락함에 집중하면서, 교회는 스스로를 공동체가 아닌 사적 기업처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의 문은 닫히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적 약자, 정치적 소수자, 이념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교회의 '깨끗한 울타리'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교회의 의제는 세상의 고통(가난, 불평등, 환경 문제)이 아니라, 내부 결속과 조직 확장이라는 사적인 목표로 채워졌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를 포기하고, 그저 자신들만의 기득권과 안녕을 지키는 '멈춰버린 그들만의 교회'로 전락했습니다. 공공성의 상실은 곧 교회가 세상에 제공해야 할 희망과 치유의 메시지를 스스로 거세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III. 권력의 승계, 세습의 딜레마
금관이 가져온 정지성(停止性)과 특혜 의식의 궁극적인 비극은 '세습'이라는 형태로 절정에 달했습니다. 세습은 영적인 권위와 소명이 한 개인의 가문이나 혈통에 의해 계승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가장 비복음적인 행위입니다.
성공적으로 성장한 대형 교회에서 세습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교회가 영적인 공동체가 아닌 **'권력과 자산이 집중된 조직'**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금관을 쓴 지도자에게 교회는 더 이상 맡겨진 사명이 아니라, 자신이 개척하고 일군 재산이 되어버립니다. 따라서 세습은 단순한 인사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모든 공공성과 영성을 사유화하려는 시도입니다. 이는 교회의 공적 자산을 사적으로 소유하려는 탐욕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즉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는 섬김의 정신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세습은 교회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다음 세대에게 교회의 부패와 위선이라는 뼈아픈 유산을 물려주는 치명적인 독약입니다. 교회의 지도력은 오직 소명과 희생, 그리고 공정한 절차를 통해 세워져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파괴합니다.
IV. 금관을 벗고 가시관을 다시 쓸 때
우리는 이 뼈아픈 진단을 통해 명확히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는 성장 그 자체를 숭배하는 우상을 깨뜨려야 합니다. 특권의 논리를 버리고, 세상의 윤리와 공공의 책임 앞에 가장 먼저 겸손하게 서야 합니다. 영적인 권위를 세습하려는 탐욕을 회개하고, 교회를 사유화하려는 모든 시도를 단호히 중단해야 합니다.
금관을 벗고 가시관을 다시 쓴다는 것은, 교회가 다시 한번 세상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 가장 낮은 자리를 자처하는 **'동사(動詞)'**가 되겠다는 선언입니다. 공공성을 회복하고 투명성을 실천하며, 섬김을 통해 권위를 증명할 때, 비로소 교회는 멈춰버린 성곽에서 벗어나 세상을 치유하는 참된 공동체로 거듭날 것입니다.
별첨
[삭제된 연재물: 제10 회 "성장의 특혜, 공공성의 상실, 그리고 세습" 원문]
한국 기독교 내 '권력과 자산이 집중된 초대형 조직'에서 발생하는 '세습' 현상은 단순한 목회직의 대물림을 넘어, 교회의 공적 자산과 영적 권위를 특정 가문에게 영구적으로 귀속시키려는 구조적 악행입니다. 교회가 신앙 공동체이자 사회에 공익적 영향을 미치는 공적 조직임을 감안할 때, 이러한 행위는 본질적으로 기독교의 존재 이유와 맞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섬김'과 '소명'의 가치를 훼손하고, 지도력을 사유화하여 교회를 세속적 권력 구조로 전락시키는 세습은 그 자체로 비복음적입니다. 대형 교회는 수많은 신도들의 헌금으로 세워진 공적 자산을 관리함에도 불구하고, 세습을 통해 투명성이 상실되고 '특정 가문의 탐욕'이라는 의혹에 휩싸일 때, 이는 기독교 전체의 사회적 신뢰와 공신력을 심각하게 무너뜨립니다.
한국 교회는 세습을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물려주는 인간적인 도리'로 포장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공공재를 사유화하는 행위이며, 사회적 해악을 끼치는 구조적 모순입니다.
세습 논란의 중심에는 '소명(Calling)'의 변질이 있습니다. 목회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에게 주시는 특별한 사명이자 헌신이 요구되는 직분임에도 불구하고, 세습 과정을 거치며 가문의 영광과 세속적 성공의 지표로 둔갑합니다.
이러한 성공주의는 교회의 비대화를 부추기고, 규모의 성장이 곧 영적 성숙인 양 착각하게 만듭니다. 결국 목회자의 권력과 부가 대물림될 때, 교회 공동체의 중심은 말씀과 예배가 아닌 인간 지도자의 카리스마와 재산으로 이동합니다. 교회 안에서 정의를 외치고 사회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스스로 탐욕과 기득권을 옹호하는 성채가 되어 세상의 지탄을 받는 비극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한국 교회가 이러한 구조적 악행에 대해 자정 능력을 상실하고 침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수많은 신학자와 교계 언론이 세습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 교회의 영향력 앞에 대다수의 교단과 공동체는 눈을 감고 입을 닫습니다.
이러한 침묵은 교회 내부의 윤리 의식을 마비시키고, 비판적 사고를 가진 신자들을 소외시킵니다. 교회의 핵심적인 기능 중 하나인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역할'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세속적 권력과 탐욕의 어둠 속에 가두는 행위입니다.
한국 교회가 다시 사회적 신뢰를 얻고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세습이라는 악습을 단호하게 끊어내는 뼈아픈 성찰이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몇몇 교회의 목회자 교체 문제가 아니라, 모든 교회가 공공성을 회복하고,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소명과 헌신이라는 초심으로 돌아가는 근본적인 개혁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특정 가문'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며 '공동체의 것'임을 다시 선언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지, 탐욕과 세습의 그림자 속에서 어둠을 생산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