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소설 <삼대>

6화. 내로라하는 장교들의 회의

by 막시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어둑한 상황실에는 대대의 내로라하는 장교들이 모두 모였다. 오늘의 회의 안건은 대대 자체적으로 실시할 중대 전술훈련 계획이다. 추석 끝나고 있을 대대전술훈련 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는 중대 전술훈련을 내실 있게 해야 한다. 대대전술훈련 평가는 계속해서 진급이 누락되는 대대장에겐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과제다. 이번에도 진급이 누락되면 동기 중에서 꼴찌는 떼어놓은 당상이고 학군단 출신보다 늦을지 모른다. 몇 번 더 승진이 누락되면 불명예 전역을 해야 할 판이다. 마누라 얼굴 보기도 걱정이다. 대대장보다 더 대대장 같은 아내는 지난해 진급이 누락됐을 때 밥을 해주지 않은 건 물론이고 옷을 갈아입을 자격도 없다고 했다. 술을 마시고 나면 어김없이 싸다구를 날렸다.


대대전술훈련 평가를 잘 받으면 승진에 유리하지만, 그가 승진 못한 이유가 딱히 그것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육사 시절부터 무엇이든 꼴찌를 도맡는 사람이었다. 꼴찌로 중령을 단 것도 새삼스럽지 않았지만, 승진 때마다 그는 늘 이번만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머리 모양은 사람이지만 실제로는 눈을 깜빡깜빡하며 왼쪽 오른쪽으로 머리를 돌리는 닭대가리와 다름없다.


소란하던 상황실은 대대장이 등장하면서 조용해졌다. 군인이면 누구보다 날렵해야 할 것 같지만, 상황실의 가운데를 차지한 대대장의 배는 툭 튀어나왔다. 그가 서서 아래로 보면 가운데 물건은 물론이고 양 발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대대장이 지휘봉을 탁자 위에 올리며 말했다.

"자, 시작하지"

대대장의 시작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으나, 곧이어 시작된 영관급 다섯과 위관급 다섯의 이야기는 얼마 전 있었던 박정희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부터 시작해 다음 달에 있을 박정희 대통령과 닉슨 대통령의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정보장교가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 각하만이 저 빨갱이들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가난한 나라를 부자 나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닉슨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대통령도 박정희 각하밖에 없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박정희 각하를 향한 그들의 충정은 끝날 줄을 몰랐다.


소란하던 상황실이 조금씩 조용해지자 대대장이 말을 이었다. 그의 시선은 얼마 전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5중대장을 향했다.

"5중대장, 신혼여행은 좋았나?"

이어진 건 5중대장의 대답이 아니라 내로라하는 장교들의 웃음이었다. 모두들 즐겁고 유쾌한 모습이었다. 평소에 여자를 밝히기로 유별난 작전장교가 말했다. "대대장님, 요즘 중대장 다리가 떨리는 거로 봐서는 밤에 잠도 못 자나 봅니다. 5중대장 부인이 미인이기도 하지만 밤 힘은 5중 대장보다 세다고 합니다." 그는 말을 하면서도 싱글벙글했다. 작전 장교의 대답에 장교들의 웃음소리는 더 커졌다.

가운데 있는 5중대장도 같이 키득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50년 뒤에 일어날, 위계에 의한 성희롱으로 높으신 양반들이 불명예 퇴직을 하거나 자살하는 일을 상상도 못 했다. 음담패설이 죄가 되거나 누군가의 마음을 후벼 판다는 사실도 몰랐다. 정작 당사자도 몰랐으니 죄를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모르겠다.


걸쭉한 이야기가 한참 오간 다음, 이번에는 대대의 선임 중대장인 1 중대장이 나섰다.

"대대장님 요즘 얼굴이 안 좋으십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보약이라도 한 첩 달여 드려야겠습니다. 여기 중대장들 다음 달 월급에서 3천 원씩 갹출하도록, 소대장들은 2천 원씩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장교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지만 대답은 우렁찼다. 2천 원, 3천 원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이등병의 월급이 500원이었으니까. 모두의 웃음기를 먹은 것처럼 대대장의 얼굴은 깜찍 발랄했다. 한층 높아진 목소리로 대대장이 말했다.

"자, 그럼 다음 달 있을 중대 전술훈련을 위해 좋은 방법이 뭐가 있는지 한 마디씩 하지. 작전장교 무슨 좋은 방안이 있나?

"..."


작전 장교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내로라하는 장교들의 시선은 모두 대대장을 피했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대대장 입안에 혀라고 불리는 본부 중대장이 한 마디 했다.

"포상을 술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마침 훈련이 끝나는 그다음 주 토요일이 추석입니다. 병사들 고향 생각에 마음이 뒤숭숭할 텐데, 마음 달래는 데는 술이 최고 아닙니까? 일단 훈련 전에 중대 전술훈련 1등 중대는 막걸리를 무제한으로 제공한다고 알리면 어떻겠습니까?"

조용하던 작전 장교가 발끈하며 나섰다.

"야, 본부중대장 그기 말이라고 하나? 그날 연대장 순시 나오는 거 모르나? 병사들한테 술을 준다고? 미쳤어?"

발랄하던 대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작년 초에 부임한 대대장은 명절 때 병사들이 막걸리 한 잔씩 하도록 했다. 그가 술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막걸리가 부대의 사기와 직결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작전 장교님, 연대장님은 아침에 와서 전 부대 한 바퀴 돌고 바로 돌아가십니다. 괜찮습니다. 술 살 돈이 문젠데..."

"작년 장교, 본부중대장, 알았어. 아까 그 뭐야, 돈 걷어서 보약 산다고 했지? 그거 그러지 말고 술을 사면 되겠네."


시종일관 바른 자세로 앉아 있던 2중대장이 말했다. "대대장님, 한 개 중대가 통으로 술에 취하면 경계 근무에 차질이 생깁니다. 특히 위병소와 민간이 다니는 외곽 초소에 술 취한 병사들이 나갔다가는 큰일 날 수도 있습니다."

본부중대장이 다시 나섰다. "그날은 꼴찌 중대가 책임지면 됩니다."

대대장의 표정은 다시 발랄해졌다.

"군수장교는 술을 사는데 문제없도록 하고 각 중대장은 병사들에게 조용히 알려라. 술 이야기가 바깥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고. 작전 장교는 내일까지 훈련 계획표 갖고 오도록.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다. 이상"

회의 시간 두 시간 동안 박정희 대통령 한 시간, 음담패설 50분, 훈련 계획을 이야기하는 데는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도 작전 계획은 작전 장교에게 맡겨졌다.


중대 전술훈련 기간은 추석 전 주인 9월 15일부터 19일까지로 정해졌다. 한 달 남은 기간 각 중대는 훈련에 매진했다. 대대의 훈련장은 구령 소리, 공포탄 소리, 고함치는 소리, 악에 받치는 소리, 기합 받는 소리, 발로 차는 소리, 맞는 소리가 어울려 한 편의 교향곡을 연출했다.

병사들의 팔꿈치와 무릎이 까지고 목이 쉴 때쯤 되자 중대 전술훈련 평가가 시작됐다. 춘삼이가 속한 3 중대의 전투력은 그다지 높지 않아 1등을 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승패가 결정되는 타 중대와의 전술훈련에서도 연패를 했고 개인별 화기 시험 성적도 신통치 않았다.


병사들이 볼 때 우승은 2중대가 우세해 보였다. ROTC 출신의 중대장은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무장했고 휘하 소대장들도 참 군인다운 지휘관이었다. 그들은 명장 밑에 약졸 없다는 말이 어울렸다. 일주일간 훈련에 모든 병사들은 파김치가 됐다. 마지막 평가는 급속 행군이었다. 감악산을 오를 때 병사들은 막걸리고 뭐고 빨리 훈련이 끝나길 바랐다. 그들의 관심사는 잠을 자는 것이지 우승이 아니었다.


훈련 기간 크게 다친 병사가 없는 건 다행이었다. 팔이 부러지고 무릎이 깨진 병사들은 각 소대별 한두 명, 전 부대원에서는 40명쯤 됐지만, 그건 부상 축에도 들지 않았다. 인근 부대에서는 지난 폭우에 떠내려온 지뢰에 발이 날아가거나 목숨을 잃은 병사가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훈련을 끝낸 병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막걸리와 우승을 입에 올렸다. 2중대장과 소속 소대장, 병사들은 우승을 직감했다. 진지 방어와 타격 훈련은 물론 급속 행군까지 우승했기 때문이다. 훈련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는 2중대 소속 장교와 병사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춤을 췄고 그들의 입은 어느 날보다 바빴다. 그날 오후 전 장병이 집결한 가운데 대대장이 결과를 발표됐다. 우승 팀은 춘삼이가 속한 3중대였다. 2중대는 2등 꼴찌는 1중대였다. 우승한 3중대 장교와 병사들은 의외의 결과에 흥분했지만, 마음 한편은 찝찝했다. 우승한 이유를 그들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가 결과에 이은 대대장의 총평이 이어졌다. 우승한 3중대부터 언급했다. "3중대는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모든 훈련을 성실하게 임했다. 몇 차례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결과가 모든 걸 말해주지 않는다. 훈련에 임하는 자세는 장교와 하사관, 병장과 이등병까지 모두가 최고였다. 전 대대원은 3중대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2중대도 잘했다. 하지만, 몇 가지 실수가 있었다. 2중대가 빠져나간 내무반에는 수통이 발견됐고, 야외 훈련장에서는 똥을 싸고 뒤처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다음에 이런 부분만 보완하면 1등을 할 수 있다. 꼴찌는 1중대다. 과정과 결과 모두 아쉽다. 본부중대와 5중대는 분발하도록. 1중대장 앞으로. 전원 군장 메고 1시간 연병장 뺑뺑이 한다. 알겠나?"

"예"

중대장 뒤로 한숨 섞인 중얼거림이 끊임없이 흘렀다. "씨발발발발발..."

하지만, 대대장의 한 마디에 이은 3중대의 함성은 그 중얼거림을 단번에 덮어버렸다.

"우승한 3중대에게는 이미 약속한 무제한 막걸리 외에 소대별 1명씩 휴가다. 또한 다음 달에 있을 대대전술훈련 평가에서 우리 대대가 1등을 하면 소대별 3명씩 포상 휴가를 실시하겠다. 모두들 대대전술훈련 평가에 매진하도록. 이상"


선임 중대장의 구령에 이은 경례가 이어졌다.

"부대 차렷, 대대장님께 받들어 총"

"단결"

3중대의 사기충천한 경례 소리에 연병장이 들썩였다.

3중대의 발걸음은 춤을 췄고 1중대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2중대의 발걸음은 열 받은 황소처럼 거칠었다. 모든 장교와 사병들이 막사로 들어갈 때 3중대장이 작전장교에게 다가갔다.

"작전 장교님, 감사합니다. 약속한 대로 내일 돈을 드리겠습니다. 퇴근 후 부대 앞 별다방에서 뵙겠습니다.


3중대장도 작년에 승진이 누락됐다. 올해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승진하고 싶다. 그는 대대장과 달리 빨리 진급하는 편이었다. 군인으로서 자질은 평범했으나 부모님이 물려준 돈이 많았다. 지난번 승진 심사 때도 돈을 꽤나 썼으나 배달사고가 났다. 다행히 이번 전술훈련에는 기대한 효과가 나왔다. 그는 돈을 미리 주지 않아서라고 여겼다.

매거진의 이전글<자작 소설 삼대> 4화. 주임 상사에게 얻어터진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