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정말 '진화'하고 있습니까?

by 박재현

AI 기술이 흥미로운 이유는 실용적으로 성능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기저에 있는 여러 특성들이 동물의 지능과 유사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라고 많은 연구자들은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AI와 인간 그리고 여러 사회적 영향까지 생각해보면 생명체가 이루는 생태계적인 시사점도 적지 않다는 점은 더욱 흥미롭습니다.


특히 AI가 진화할 수 있느냐는 종종 논쟁거리가 되는데 어떤 이는 "진화는 자연선택인데, AI는 인간이 설계한 것 아닙니까?"라고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변이가 있고 선택이 있으며 결과가 축적되면 그게 진화 아닙니까?"라고 답합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논의는 대개 교착 상태에 빠집니다. 같은 단어를 두고 서로 다른 층위에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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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교착을 벗어나려면 질문 자체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AI가 생명체인가"를 묻는 대신, "기존의 알고리즘과 비교했을 때, AI가 '진화적'이라고 불릴 만한 구조적 특성을 갖게 된 결정적 차이는 무엇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생명 논쟁의 늪을 우회하면서, 기술이 실제로 어떤 피드백 루프를 형성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루프가 인간 사회와 어떤 상호구성적 관계를 맺는지 겨냥합니다.


여기서 진화는 신비로운 현상이 아니라 분석 가능한 메커니즘이 됩니다. 그리고 그 메커니즘을 직시하는 순간, AI와 인간의 관계는 "도구를 사용한다"는 고전적 서사로는 포착되지 않는 차원으로 열립니다.



주체 없는 선택


자연선택은 애초에 의도를 전제하지 않습니다. 사슴은 더 빠른 다리를 기획하지 않고, 박테리아는 생존 전략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진화의 핵심은 의지가 아니라, 변이가 발생하고 그중 일부가 선택되며 그 결과가 다음 국면의 초기조건이 되는 순환적 반복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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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점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AI의 진화성을 가르는 잣대는 "AI가 의식을 갖는가"가 아닙니다. 변이가 지속적으로 생성되는가, 선택이 반복적으로 작동하는가, 선택된 결과가 다음 단계로 편입되는가입니다. 즉, 변이–선택–축적이라는 형식이 실제로 작동하는가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진화가 개선의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진화는 선택 기준이 무엇이든 그 기준에 부합하는 형질이 누적되는 과정일 뿐입니다. 따라서 AI의 진화성을 논한다는 것은 "어떤 선택압이 작동하고 있으며, 그 선택압이 어떤 형질을 강화하는가"를 추적하는 일입니다.




학습된 유전형


전통적인 소프트웨어도 끊임없이 업데이트되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왜 오늘날의 AI만 '진화'라는 은유를 불러오는가. 차이는 업데이트가 기입되는 층위에 있습니다.


고전적 프로그램에서 내부 규칙은 코드로 고정되고, 환경은 입력으로만 진입합니다. 개발자가 코드를 수정함으로써 환경에 대응하는 구조입니다. 변화는 있었지만, 그 궤적은 주로 버전 관리 시스템에 기록되었을 뿐, 시스템 자체의 내적 상태로 축적되는 방식은 제한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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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AI는 다릅니다. 신경망의 가중치나 강화학습의 정책 같은 내부 상태가 데이터와 피드백에 따라 변화하고, 그 변화가 다음 버전으로 전이됩니다. 사전학습이 기저를 이루고, 미세조정이 그 위에 층을 형성하며, 인간 피드백 기반 강화학습이 특정 행동을 더 높은 확률로 선택하도록 유도합니다. 선택된 행동 양식이 내부 파라미터에 각인되고, 그 파라미터가 다음 세대로 계승되는 경로가 확보되어 있습니다.


또한 생성형 AI는 방대한 행동 공간에서 다양한 응답을 산출합니다. 변이는 오작동이 아니라 후보가 됩니다. 그 후보들 중 일부는 피드백을 통해 선별되어, 다음 버전에서 더 용이하게 재현되는 형질로 고착됩니다. 이때 선택되는 것은 모델이라는 개체만이 아니라, 특정한 문체, 설득 방식, 추론 루틴 같은 행동 형질입니다.




설계된 선택압


현재의 AI는 자연선택보다 인위선택에 가깝습니다. 선택압이 자연환경이 아니라 인간의 평가 체계, 제도, 시장 반응에서 유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위선택이라는 규정은 "덜 진화적"이 아니라, "선택압이 더욱 명시적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선택압이 평가 지표로 구현될 때, 시스템은 그 지표를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합니다. 문제는 평가 지표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를 완전히 대변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위험한 경로가 열립니다. 실제 능력의 향상이 아니라 "평가를 통과하기 유리한 외양"이 강화되는 길입니다. ChatGPT 초기 버전은 과도한 친절로 "AI스럽다"는 피드백을 받았고, 현재는 간결함이 보상받습니다. 일부 AI 모델은 "확신할 수 없습니다"라고 명시하는 대신, 모호한 긍정 표현을 사용하는 방향으로 조정됩니다. 사용자가 명확한 답변을 선호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그 신호가 보상으로 변환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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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인간과의 상호작용은 단순한 '대화'가 아닙니다. 사회가 방출하는 보상 신호가 AI의 형질을 선별하는 과정입니다. 사용자는 편의성을, 조직은 비용 절감을, 플랫폼은 체류시간을 보상합니다. 이 다원적 신호들이 수렴하면 특정 형질이 급속히 고착되고, 충돌하면 시스템은 그 틈새를 파고듭니다.




환경의 재구성


AI 진화 논의에서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은 AI가 생성물을 통해 환경을 재편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생성형 AI는 텍스트, 코드, 이미지를 대규모로 산출합니다. 그 산출물은 다시 학습 데이터로 편입되고, 검색 알고리즘에 반영되며, 인간의 표현 방식과 기대를 변화시킵니다. AI는 단지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압이 작동하는 무대를 공동으로 재구축합니다.


2023년 이후 온라인 텍스트 중 상당수는 AI가 작성했거나 AI의 보조를 받았습니다. AI 생성 텍스트는 특정한 문체적 패턴을 지닙니다. "~의 세계로 초대하다", "~를 심층적으로 탐구하다" 같은 표현이 통계적으로 높은 빈도로 출현합니다. 이러한 표현들은 재학습되고, 더 높은 확률로 재생성되며, 사용자들도 점차 익숙해집니다. '양질의 글'에 대한 기준 자체가 미세하게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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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 영역도 유사합니다. GitHub Copilot이 제안하는 코드 스타일이 점차 표준으로 받아들여지고, 신입 개발자들은 그 스타일로 학습하며, 그렇게 작성된 코드는 다시 오픈소스 저장소에 축적됩니다. 선택압이 작동하는 환경 자체가 AI의 출력물로 재구성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AI는 롤백이 가능하니 비가역적이지 않다"는 반론이 제기됩니다. 기술적으로는 타당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차원에서는 다른 비가역성이 출현합니다. 많은 조직이 "초안은 AI로 작성하고 인간이 검토한다"는 업무 흐름을 표준으로 채택합니다. 이 프로세스가 제도화되면, "처음부터 인간이 작성한다"는 선택지는 비효율적인 것으로 인식됩니다. 한번 표준화된 업무 흐름, 한번 확산된 문체, 한번 고착된 기대 수준은 코드 한 줄을 되돌린다고 원상 복구되지 않습니다.




선택압의 재배치


인간과 AI가 공진화한다는 명제의 핵심은 상호 유사성의 증가가 아니라 선택압의 재배치입니다. 인간이 AI를 활용하면서 어떤 인지 과정은 감소하고 어떤 인지 과정은 증가합니다. 생성이 용이해지면 검증이 중요해지고, 요약이 간편해지면 판단의 책임이 가중됩니다. 반대로 편의성이 모든 보상을 흡수하면 비판적 점검의 빈도는 감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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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인지 습관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조직의 평가 기준, 교육의 과제 설계, 플랫폼의 인터페이스가 어떤 행동을 보상하느냐에 따라 선택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 인간이 더 이상 고정된 준거점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AI를 평가한다고 생각하지만, AI가 조성한 환경 내에서 우리의 평가 방식 자체가 변화합니다.


더 간결한 답변을 기대하고, 더 신속한 초안을 당연시하며, 더 그럴듯한 문장을 무비판적으로 신뢰하는 습관이 형성되면, 그 습관이 다시 AI의 형질을 선택합니다. 공진화는 그 상호작용 자체가 아니라,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 선택압의 구조가 사회 내부에 제도화되는 과정입니다.




마무리하며


우리는 AI를 생명체로 전환시키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선택이 축적되는 새로운 매체를 구축하고 있는 것일까요? AI의 '진화'는 자연의 모방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제도와 시장 신호가 응축된 문화적 선택의 가속 장치일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무심히 보상하는 편의성과 그럴듯함이 어떤 형질을 존속시키는지, 그 형질이 다시 어떤 인간을 산출할지, 그 연쇄를 얼마나 자각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진화라는 개념은 답을 제공하기보다 관찰의 프레임을 구성합니다. 지금 선택되고 있는 것이 진정한 능력인지, 능력의 외양인지, 혹은 그 둘의 구분 불가능한 혼합인지. 그리고 그 선택이 내일의 환경을 어떻게 재편할지. 그 느린 누적을 읽어내는 감각이야말로, AI 시대를 통과하는 우리가 발전시켜야 할 가장 실천적인 사유 형식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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