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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정말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

by 박재현

AI가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몇 달 걸리던 분석을 몇 초 만에 처리하고, 방대한 데이터를 스스로 요약하며, 전략적 판단까지 시도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체스와 바둑에서 인간을 이긴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이고, 이제는 의료 진단, 법률 자문, 창작 활동까지 AI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한 가지 의문이 떠오릅니다. "AI가 여기까지 왔다면, 언젠가는 인간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수년 전만 하더라도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여겨지던 판단 능력, 창의성, 공감 능력마저 더 이상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라는 것이 현실화되면서 그 고민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이 질문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무심코 전제하고 있는 것들이 보입니다.


- AI가 충분히 발전하면 실패 없는 정확한 판단을 하리라는 기대

- 지능이 높아질수록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믿음

- 지능이 더 뛰어난 존재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생각


이런 전제들을 걷어내고 본질을 바라본다면 좀 더 타당한 결론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요?



더 정확한 분석을 하는 AI, 더 복잡해지는 세상


2010년 5월 6일, 미국 금융시장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오후 2시 32분부터 단 36분 사이에 다우존스 지수가 1000포인트 가까이 급락했다가 다시 회복했습니다. 이른바 '플래시 크래시'로 불리는 이 사건은, 고도화된 알고리즘 트레이딩 시스템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가장 똑똑한 알고리즘들이 모인 시장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시스템이 붕괴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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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복잡계'로 설명합니다. 수많은 요소들이 얽히고설켜 상호작용하는 시스템에서는, 작은 변화 하나가 예측 불가능한 큰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누군가 아무리 정확하게 예측하고 행동하더라도 그 행동의 결과가 되먹임되며 원래 예측과는 다른 상황으로 전개됩니다.


AI가 아무리 뛰어나도 불확실한 세계를 완전히 통제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고 정답이 명확한 세상이라면 가장 정확한 계산기에 결정을 맡기면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데이터가 아무리 많아도, 연산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인공 지능이 인간 지능을 뛰어넘을지라도 아직 존재하지 않는 정보로부터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누가 그 불확실성을 떠안는가"가 핵심 질문이 되는 것입니다.




능력의 문제인가, 다른 무언가인가


우리는 중요한 결정을 맡길 때 "누군가를 지정"합니다. 기업에서는 CEO가, 국가에서는 지도자가, 병원에서는 의사가 최종 선택을 합니다. 흥미롭게도 가장 막대한 권한을 가진 국가 원수의 경우, 가장 지능이 높거나 지식이 많은 사람이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다수에 의해 선택받거나 세습됩니다. 그만큼 의사결정과 책임은 뛰어난 결정 능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약간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자율주행차의 사례를 생각해보면 흥미롭습니다.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내면 제조사가 사과합니다. 금융 AI가 잘못된 판단을 하면 인간 경영진이 법적으로 책임을 집니다. 의료 AI가 오진하면 의사가 환자에게 설명하고 보상 책임을 부담합니다. "누가 더 정확하게 결정했는가"보다 "누가 그 결과를 떠안는가"가 더 중요해 보이는 순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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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책임을 지는 존재"로 보았습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행위를 "세계에 흔적을 남기고 그 결과와 마주하는 과정"으로 설명했습니다. 선택의 결과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것을 감당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놓치고 있던 차원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에게 의사결정 권한이 부여된 것은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보장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구속할 신체, 제한할 욕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로봇 청소기가 가구 다리에 흠집을 내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로봇 청소기를 때리는 벌을 내렸다고 만족하지 않습니다. 내가 입은 피해만큼 다른 인격체의 감정, 자산, 욕구에 손해가 가해졌다는 확신을 얻었을 때 비로소 책임을 졌다고 인정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AI에게 책임을 부여할 수는 없을까?


"법인도 법적 주체가 될 수 있는데, AI에게도 법인격을 부여하면 되지 않을까?" 당연한 반론입니다. 실제로 일부 학자들은 자율적 AI 시스템에 '전자인격'을 부여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법인의 경우, 법인격은 하나의 법적 도구일 뿐 실제로는 그 뒤에 있는 인간들이 책임을 집니다. 주주들은 투자 손실을 감수하고, 이사진은 법적 처벌을 받으며,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습니다. 법인이라는 껍데기 뒤에는 항상 살과 피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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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처벌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프로그램을 삭제하는 것은 책임을 지는 것이라기보다는 고장 난 도구를 버리는 것에 가깝습니다. 더 근본적으로, AI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후회하지 않으며, 자신의 존재가 위협받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처벌이 의미를 갖는 것은 처벌받는 주체가 그것을 고통으로 경험하고, 그것이 미래의 행동을 바꾸는 동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AI에게 형식적 책임을 부여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우리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의미의 책임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책임은 단순히 법적 절차나 배상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무게를 실존적으로 떠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겨진 질문들


AI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했지만, 이제 우리는 조금 다른 지점에 서 있습니다. 인간의 지적 능력 중 기계가 정복하지 못할 영역이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실존하는 개체로서 가질 수 있는 더 본질적인 존재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AI가 더 많은 영역에서 인간보다 뛰어난 성능을 보이지만, 최종적인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인간에게 머물러 있습니다. 이것이 AI의 기술적 미성숙 때문인지, 아니면 책임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간의 실존적 조건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인지는 여전히 열린 질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책임의 본질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 똑똑해지거나, 더 많이 배우거나, 더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입니다. 책임은 불완전한 상황에서도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이 틀렸을 때 그 대가를 온전히 떠안는 것입니다. 실패할 위험을 떠안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선택도 없습니다. 책임을 회피하면, 자유도 함께 사라집니다.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가? 아직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의 역할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인공지능을 통해 인간 지능에 대한 통찰이 확대된 것처럼,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역할을 고민하면서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이해도 더욱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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