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oto Sep 18. 2023

결혼 4년 차, 우린 아직도 너무 몰라

불안한 공황장애 아내와 지독한 회피형 남편의 성장통

대략 3년 전, 나는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아직까지 항불안제, 항우울제를 아침, 점심, 자기 전 먹으며 치료 중이다.

결혼 한지, 4년 차. 같이 산지는 만 4년을 채웠다.

같이 살고 1년 정도 지나 공황이 신체화된 것이다.


나는 언제나 서론이 긴 편이지만, 오늘은 이 정도 배경 설명으로 끝내고 본론으로 바로 시작해보고 싶다.

그동안 쓰지 않은 나의 마음들이 가득 쌓여서 폭발할 거 같으니까.

그리고 구구절절 쓰기엔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오늘 아침, 남편과 사소하고 작은 싸움의 시작에서 우습게 표현하자면, 남북전쟁 정도로 번졌다.

우리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가족, 둘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나는 정말, 결혼 이후 가장 아팠다.

지금도 너무 아파 눈물이 나온다.


내가 너무 아팠던 이유는,

첫 번째, 너는 아직도 나를 모른다.

두 번째, 나는 너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강하다고 생각했던 너의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전투력 200퍼센트의 내가 가진 온갖 무기들이 모조리 흔적도 없이 날아갔다. 머릿속이 텅텅 비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약을 1년 정도 먹었다.

그 후 많이 좋아져서 약을 먹지 않은 기간이 1년.

최근에 재발하여 약을 먹은 지 두 달 정도 되었다.

사실 공황이라는 게,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큰 병에 걸렸냐'라고 또 어떤 사람들은 '금방 이겨낼 거야. 너라면.' 이처럼 받아들이는 차이가 크다.


남편은 후자였다. 너는 밝고 외향적이고 강하니까 약 먹다 보면 금방 나을 거야.

원래 모든 문제를 그렇게 크게 받아들이지 않는 면이 나랑 많이 다르기도 하다.

알고는 있지만, 너무 신경을 안 쓰고 배려를 안 해줘서 속상해서 운 적도 많았다.


어느 날 어떤 계기로 인하여, 남편이 갑자기 체감될 정도로 변했다고 느꼈다.(내가 예민해서 체감했을지도)

최근에는 내가 하는 이야기, 대부분의 걱정, 불안,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모두 다 경청해 주고 받아들여 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너무 방심해 버린 것이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의지해버린 나머지.

내 안의 모든 불안과 부정적인 감정들을 남편에게 함께 나누자고 해버렸나 보다..


...

모든 공황장애, 우울증 환자들은 알아두어야 할 게 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낫는 병이 아니다. 의지하면 의존하게 되고 그럼 나을 수 없다.

내 안에서 시작된 병이니까 나 스스로 치료해 나가야 한다. (의학적 도움은 받고)

불행은 나누는 게 아니다.

불행은 나눌수록 더 커져 모든 이들을 삼켜버린다.


사람은 누구나 본인의 무게만큼은 스스로 버텨내고 올곳이 바르게 일어서 내야 한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편하고 행복하고 삶이 쉽다면 경계해야 한다.

그만큼의 내 삶의 무게를 누군가가 힘겹게 떠안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남편은 너무 힘들어서 출근길 운전하는 차 안에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 힘든 이유가 차라리 내가 맨날 부정적인 얘기만 해서 그런 거라고 말하면 마음이 덜 아팠을 텐데..

내가 지금 이렇게 상태가 안 좋은 데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자기 능력이 없어서 출근하지 말라고 말해주지 못하는 게 너무 속상하다고.

자기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

너는 나의 가장 큰 산이고 집이고 쉼이었는 데.

내가 너에게 나의 불행의 무게를 얹었다는 것을.

정말 몰랐다. 내 온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맨날 맛있는 거 먹자고 오늘 뭐 먹을까 하는 말이,

그게 애써 나를 위하고자 찾은 말이었다는 걸.

평소처럼 그대로 행동하는 모든 일상이, 나를 배려해 평소와 똑같은 하루를 만들어 주는 거였다는 걸.

내가 너를 이렇게나 몰랐다.


사랑하는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게,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의 다른 사람은 줄 수 없는 깊은 상처가 난다.

나 스스로 나를 자책하며 내는 마음의 상처.


앞으로 몇 번이나 남았을 까.

너를 알아가는 마음 아픈 순간들.

이제 그만 깨달았으면,

이런 순간들이 오기까지 그 시간들이 너무 길고 그 순간의 상처가 너무 깊다.


나도 너도.






두 사람이 한 가족을 이루면,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제법 공통점이 많고 잘 맞는 두 사람이었더라도.

그 가족 안에서는 완전히 정반대의 사람이 된다.


남편은 지독한 회피형, 그만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본인의 감정은 꾸역꾸역 삼켜내고 있었다.

나는 지독한 직면형이다. 나는 언제나 표현하는 쪽이니까 그게 문제 해결이라고 착각했다.

남편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까지 힘들지 몰랐다.

지독한 회피형은 정말 지독히도 피한다, 자신의 마음을.


감정을 잘 숨기는 사람이 아니고 연기도 가식도 못 떠는 사람인데.. 거기에 방심했을까.



우리는 대화를 하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맞추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인데, 남편은 너무 모른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지,

아니 나는 왜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생각했을까.

왜 그런 오만한 생각에 빠졌을 까.


왜 내가 너를 잘 안다고 생각했을까.

왜 너는 나를 아직도 모를까. 무한 반복.

우린 둘 다, 아직도 너무 모른다. 서로를.

같이 산지 4년, 연애 기간까지 7년 차 지만 시간이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얼마나 밀도 높은 ‘함께’를 살아내었는 가. 그게 중요하다.



오늘도 나는 다시 마음 깊이 나만의 진심 하나를 꺼내 마음에 세긴다.

사랑이라는 건,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이 행복한 방향으로, 그대로 살아가도록 해주는 것이다.

자꾸 까먹지만, 잊지 말자.






'너'라서 가족이 되는 데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너는 뿌리 깊은 단단한 나무 같았다. 그리고 나에게 그런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나는 결혼하고 내내 한 번도 너라는 선택을 후회한 적 없었다.

너는 나에게 그런 사람이었는 데,

나는 너에게 큰 고민과 무기력, 불행을 주는 사람이었을까. (그것만은 결코 아니겠지만)


우리 가족의 행복을 공격하는 건 다름 아닌

나의 불안과 걱정, 공황에 대한 두려움, 그 밖에 모든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이었다.

나부터 안정을 찾아야 한다. 건강하고 행복한 나를 만들어야 우리 가족의 안정, 행복이 온다.


다시는 단 1g의 무게도 너에게 실지 않겠다.

다짐하고 다짐한다.

나 온전히 스스로 내 삶의 무게를 지고 일어서겠다.


아픈 마음도 오늘까지만.

이 글을 발행하는 순간 모두 버리겠다.

오늘의 성장통, 꽤 많이 아팠지만.

다시 한번 너여서 다행이다, 너니까 함께 살아간다고 확인하는, 우리 다시 더 견고하고 깊은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우리 행복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하면 결혼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