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삼다_소개

약 없이 우울증을 치료하는 노력의 과정

by 슈뢰딩어의 백수

2025년 8월부터 프로젝트 삼다를 시작한다. 이것은 그 기록이다.


프로젝트 삼다란?

삼다三多 - 다독 多作, 다작 多讀, 다상량 多商量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는 말의 유래는 간단한 검색으로도 많이 나오니 생략한다.


다독, 다작, 다상량은 일반적으로 작가들이 좋은 글을 쓰기 위해 해야 하는 세 가지 일이라고 알려져 있다.

많이 읽고 (다독), 많이 쓰고 (다작), 많이 생각 (다상량)하라는 거다.

하지만 나는 이 다독, 다작, 다상량의 과정을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하려 한다.

항우울제를 먹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심한 우울증의 증상을 견뎌보려는 목적이다.


프로젝트 삼다의 목적


항우울제를 먹지 않고 우울증을 개선하는 것으로 알려진 활동들이 여럿 있는데, 개중에는 환자가 스스로의 감정을 인식하고 행동을 변화시켜 보는 방법도 있다. 내가 하려는 것은 이 비약물적 치료와 가장 비슷한 형식이 아닐까 싶다.


나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반년 전까지는 정상적인 환경에서 항우울제를 먹으며 잘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건강 상의 문제로 항우울제를 먹지 못하게 되었다. 동시에 주변 환경으로부터 큰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우울증이 굉장히 심해졌다. 낮에는 무기력과 인지 능력의 저하로 힘들었고, 밤에는 공황 장애와 자살 충동이 강해져서 더 힘들었다. 그 시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묘사하는 것은 나의 부족한 어휘와 문장으로는 불가능하다. 아무튼 상당히 고통스럽다.


그런 상태가 좋아서 머무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다. 나도 그렇다.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다.


프로젝트 삼다의 시작


잠에 들지 못하고 자살충동을 외면하며 버티던 밤에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았다. 온라인에서. 유튜브의 댓글이나, SNS의 피드, 릴스 같은 것들을 계속 보면서 버텼다. 그것들은 웃기고 재미있기도 하지만, 지혜롭고 도움이 되며 마음에 새기면 나의 문제에 도움이 될만한 잠언과 같은 이야기들도 많았다. 몸이 지쳐 까무룩 잠들 때까지 눈알이 따갑도록 그런 것들을 보고 또 봤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매일 이렇게 좋은 이야기들을 이렇게나 많이 보는데, 왜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걸까. 뭐라도 봤으면 요만큼이라도 나아져야 하는 거 아닌가.'


AI 툴을 사용해서 만들어낸 양산형 영상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에 적힌 글귀들은 어느 성현들의 주옥같은 말씀이었고, 그것들은 분명 내 마음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에 충분했음에도 왜 나는 무엇 하나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가. 그토록 많이 노출되면서.


그때 불현듯 내 머릿속에 일전에 보았던 '다독, 다작, 다상량'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인스타에서 수도 없이 봤던 '1년에 책 1000권 읽으면 생기는 일' 이라든가 '한 달에 책 100권 읽고 바뀐 점' 따위의 영상을 보며 무척 한심해했던 기억이 났다. 독서란 정량이 아니라 정성이다.

내가 하는 질문이 한 달에 책을 100권 읽어서 스스로에게 대단한 변화가 일어났다며 강의를 팔던 그들이 하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독서뿐만이 아니라, '이야기'나 '콘텐츠'로 정량이 아니라 정성이다.


책으로 치면 다독의 단계였다. 하지만 그 다독에 이어 다상량의 과정이 없었다. 다독에서 끝났다. 하루에 수십 편의 릴스를 본들, 30초 동안 보면서 '와아, 맞지 맞지' 하고 영상이 끝나면 스크롤을 넘겨서 또 '참 옳으신 말씀이다' 그러는 사이에 앞의 영상에서 본 내용들은 해마에 잠시 머물렀다 휘발되고 말았던 거다. 남는 건 당연히 없고.


제 아무리 훌륭한 음식이라고 하더라도 소화도 못 시킬 양의 음식을 제대로 씹지도 않고 꿀떡꿀떡 삼켰다가 이내 토하거나 설사로 쏟아낸 거랑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다독'에도 다상량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상량을 위해서는 다작, 즉 손으로 적는 과정 또한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도.

내가 천재도 아니고 어떻게 머릿속으로만 생각을 해서 제대로 정리하고, 기억하고, 소화하겠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손으로 쓰는 과정이 나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결국은 '다상량과 다작'이 주가 되는 다독, 다작, 다상량, 즉, 삼다의 일을 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프로젝트 삼다의 방법


볼거리는 차고 넘친다. 그리고 내가 하루에만도 노출되는 좋은 이야기들은 수도 없이 많다.


나는 그 이야기들 중 하나를 고른다. 숏츠든, 릴스든, 피드든, 유튜브 긴 영상이든, 책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하여튼 다 상관없다. 하나의 콘텐츠를 고른다. 이 하나의 콘텐츠를 고르기까지 나는 다독의 과정을 거칠 거다. 곱씹고 또 곱씹어서 내 것으로 체화하고 싶은, 그래서 나 자신을 바꾸는 데에 도움이 될 콘텐츠를 고르려면 많은 콘텐츠를 거쳐야 한다.


다음의 다상량과 다독이다.

우선은 그동안 읽었던 좋은 책들을 다시 꺼내보려고 한다. (내가 읽는 책은 대부분 소설이다.)


감사하게도 집 근처에 작은 도서관이 있어서 자주 갈 수 있다. 평소 추천받았던 책을 빌리거나, 추천받은 책이 인기가 있어서 이미 대여 중이면 그 자리에서 마음이 가는 책을 찾는다. 그리고 집에 와서 읽는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니 부담이 없다. 읽다가 취향이 아닌 것 같으면 다음 날 바로 반납하고 새로운 책을 빌려온다. 그러다가 마음이 가는 책을 만난다. 그러면 1 회독을 한다. 1 회독을 하면서 이 책을 사서 가질지, 아니면 반납할지를 정한다.


다상량의 단계로 넘어가고 싶은 책이 생기면 2 회독을 하기 전에 책을 산다. 책은 중고 매장에서 먼저 찾고 없으면 동네의 작은 서점에서 샀다. 2 회독을 하면서는 책에 표시를 한다. 챕터든 문장이든, 베껴 쓰고 싶은 부분이든 곱씹으며 더 이해하고 싶은 부분이든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표시용 스티커를 붙여둔다.


3 회독은 쓰는 과정이 더해진다. 표시된 부분들만 발췌하는 발췌독을 하며, 베껴 쓰고 싶은 문장들은 받아 적는다. 곱씹고 싶은 부분에 대해서는 별도로 글을 써본다. 기억에만 의존해서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을 써보기도 한다. 마음이 가던 등장인물이 있었다면 그에 대해서만 글을 쓰기도 한다. 어떤 사건이 나의 과거 경험을 떠오르게 했다면 그걸 써보기도 한다. 그렇게 한 권의 소설에 대해서 한 달 동안 쓰고 또 써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갈무리하는 글을 쓰고 마무리한다.


이것이 내가 프로젝트 삼다에서 하고자 하는 활동이다.


굳이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인 이유


최근에 아는 피디님과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나는 이 피디님이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일을 마무리해서 '결과물'을 반드시 만들어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좋은 아이디어라는 것은 많다. 정말 근사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겨서 처음에 계획했던 '결과물'까지 가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이 없다. 특히 혼자서 일하는 프리랜서의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n잡을 하는 그녀는 매번 그걸 해냈다. 그걸 보면서 왜 그동안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을 느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의 콘텐츠를 충분히 곱씹어서 내 것으로 체화하겠다는 아이디어는 괜찮은 아이디어다. 그 과정을 통해서 극심한 우울증으로 인한 고통을 덜어보겠다는 목적은 참으로 기특하다. 하지만 나는 주로 생각에서 멈추는 타입의 인간이다. 그럴싸한 아이디어는 많지만, 결과물에 이른 경우는 그닥 없는 인간.


그래서,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프로젝트'라고 정체성을 부여해 보았다. 나 혼자 참여하고, 나 혼자 평가하는 프로젝트지만 '그러면 좋을 거 같다'라고 생각하는 거랑, 프로젝트 삼다를 실행한다는 천지차이다.


프로젝트에는 KPI가 있고, 기한이 있다. (나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 정량적 평가의 설정이 필요하다.

기한은 2025년 12월 31일로 정했다.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결과물은 한 달간 읽은 책 (1권이다), 그리고 다상량의 과정을 기록한 다작의 결과물, 즉, 글이다.


그 글을 MS워드에 기록하려고 했는데, 또 제대로 안 할 거 같다.

그래서 오랫동안 접속하지 않았던 브런치스토리에 다시 들어왔다.


한 권의 책이나, 하나의 콘텐츠를 충분히 곱씹는 동안, 사이사이 자잘하게 즐길 거리에 대한 글도 써보려고 한다.


아마도, 프로젝트 삼다 #01 - 8월의 첫 번째 책은 한강 작가의 '흰'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그 처절한 슬픔을 과연 나의 일천한 어휘와 미천한 문장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벌써부터 아주 골치 아프다. 동시에, 며칠 전에 재미있게 읽은 책 '빛이 이끄는 곳으로'에 대한 짤막한 감상도 써보려고 한다.


이래놓고 또 1년이고 2년이고 이대로 끝날까 봐 무섭다. 나라는 인간이 그렇다.

뭐라도 하자 제발.


내 우울증의 가장 큰 원인은 내가 나를 너무 미워하는 까닭이다. 나는 그것을 안다.

내가 나를 덜 미워하기 위해, 나는 조금은 덜 못난 인간이 되어야 한다. 간절히 바란다.


(맞춤법 검사를 마쳤다. 띄어쓰기 외에는 틀린 것이 없다. 기분이 좋다. '그닥'은 그렇게 쓰려고 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