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오늘
오늘 나는, 우울을 가방처럼 메고 다녔다.
아침부터 몇 가지 이유로 우울했다. 아이들은 일어나자마자 별 것 아닌 일로 크게 싸웠고, 오래된 친구로부터 많이 아프다는 연락이 와 있었다. 아이들을 보내놓고는 반갑지 않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화 속 누군가는 나에게 마구 화를 냈다. 화를 내지 않으면 일을 진행할 수 없다는 듯이. 전화를 끊은 나는 멍한 채로 부엌을 왔다갔다 하다가 아끼는 책 하나에 우유를 쏟고 말았다.
싸우고, 아프고, 엎질러진 그런 아침이었다. 그 사이, 나는 프라이팬 위에 굽고 있던 베이글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아이들을 내보내고, 친구에게 답장을 하고, 거실을 정리하고 나서 부엌에 돌아왔을 때에야 나는 그 베이글을 생각해 냈다. 베이글은 밑 면이 새까맣게 탄 채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다 타 버린 그 빵이 마치 내 마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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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우울에 빠져버릴 때가 있다. 평소의 나였으면 다시 기운낼 만 한 일들도 버겁게 느껴지고, 그래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싶은 날. 모든 것이 하늘 위에서 무겁게 떨어지는 것 같다.
사실 나의 삶이라는 건, 마냥 가볍지가 않다. 때때로 거친 파도가 되어 나의 몸을 덮친다. 나는 그 파도에 휩쓸린 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애쓴다. 있는 힘껏 버둥대다가, 한없이 밑으로 가라앉아 끝없는 고독과 외로움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삶은 쉽게 나를 죽이지 못 한다. 나를 죽이지 않는 삶과 나는 어느 정도 공존해야 한다. 어느 소설에 나온 것처럼 우리는 삶과 화해할 수 있는 만큼 화해하며 사는 것이다. 화해하지 못 해도 어쩔 수 없다. 그저 숨쉬며 계속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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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내내 우울한 나는 우울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싸우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싸우고, 아파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아파서 나는 우울하다. 서로 연결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타인을 단절시키고, 삶의 의미를 찾던 사람들은 결국 무의미를 찾게 되어서 또 우울하다.
삶은 모순투성이인데, 나에게는 이러한 모순을 바로잡을 만큼의 용기와 모순을 그대로 바라볼 줄 아는 무덤덤함이 없다. 모순을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모순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그러니 우울하다.
사실 사람이란 본래 겨울엔 여름을 그리워하고, 여름엔 겨울을 바라는 모순적인 존재다. 인간 자체가 모순이므로, 우리의 삶에도 곳곳에 모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같은 삶의 모순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야 덜 우울해지는 게 아닐까.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오래 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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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멀리서부터 발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의 발소리에는 아침의 우울함이 묻어 있지 않다.
“엄마아! 우리 왔어요!”
삶의 또다른 의미가 현관으로 들어온다. 우울함이 사라진다. 어쩌면 우리는 그저 발소리를 내기만 해도 괜찮은 존재들인지도 모르겠다.
“엄마, 배고파. 간식 없어요?”
다 타 버린 빵 같던 나의 마음이 조금 되살아난다. 타 버린 부분은 긁어내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우울하든, 그렇지 않든 그저 살아가면 그 뿐이라고, 그렇게 여기며 냉장고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