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가 꺾일동안 나는 무엇을 했던가
이제 곧 25살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흘러가는 걸 보면 (형님 누님들이 보면 어이가 없으시겠지만) 나도 늙은 건가 싶다. 이번 해는 특히 이래저래 느낀 바가 많았던 해였기에 회고를 해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부끄럽지만 앞으로 발전하고 싶기에 나의 20대 전반전이 어땠었는지 공개된 곳에 남겨본다.
10대를 마무리하던 즈음 내 20대 동안의 목표는 전문성 향상이었다. 고등학생 때 운 좋게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라는 과정을 통해 뛰어난 형님 누님들, 친구들을 만나면서 정말 내가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많이 느끼다 보니 자연스레 내 가장 큰 목표는 개발자로서 뛰어난 역량을 갖추는 것이 됐다. 고3 때는 수능이니 고졸 취업이니 이런저런 이유로 코딩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는 못했으니 20대에는 반드시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개발자로서의 공부, 또 고등학생으로서의 공부를 교차하면서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었기 때문에 또다시 두 마리, 아니 n 마리의 토끼를 잡느라 다 놓치는 실수를 또다시 반복하지는 않겠다고 결심했다. 무엇을 선택하고 집중할까. 당연히 컴퓨터였다. 20대는 다 버리고 앞으로 30년 넘게 부족함이 없을 만큼 컴퓨터를 잘 공부하자고 다짐했다.
수능 공부를 하면서 대학 입학을 하려다가 생각처럼 잘 되지 않자 보험 삼아 공기업에서 고졸들을 채용하는 전형에도 지원해뒀다. 수능 성적을 가채점해봤으나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대학을 포기하고 고졸로서 개발자의 삶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때의 인연을 통해 게임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회사 대표님의 조언을 받아 대학에도 지원은 해둔 상태에서 공기업에 최종 합격했다.
공기업의 신입 사원 연수는 대전에서 진행됐는데, 연수 기간 도중 지원한 대학교의 서류 합격 사실을 알게 됐다. 더불어 면접을 보기 위해서는 공기업은 포기해야 한다는 것도. 인사 담당자한테 중도 하차하겠다고 전달한 뒤 연수원을 빠져나왔다. 그때 대전에 계시던 형님들을 오밤중에 만나서 밥을 얻어먹은 기억이 난다. (아직 연락하고 지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그 형님들 중 한 분의 결혼식에 갔었다.) 며칠 뒤, 면접을 봤다. 다행히 최종 결과는 합격이었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결국 또 흔들리고 있었다. 둘러둘러 대학교 진학이라는 선택을 했으니 집중을 해야 했다. 어떻게 집중할 것인가. 주변의 분들께서 해주신 조언을 받아들여 학부생 동안은 넓게, 그리고 기초에 충실하게 공부하는 시간을 가진 뒤, 대학원에서 더 깊게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단 다양하게 공부는 해보겠지만 결국 나는 게임 개발자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일단 학교 공부에는 최대한 충실했다. 다른 것을 포기하고 선택한 것이니만큼 의미 없는 공부를 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름대로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 삼아 강의에서 배우는 것들이 실제로 어떻게 쓰일만한 지식들인지 고민하면서 공부하기 위해 노력했다. 매번 좋은 성적을 받고 싶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그렇다고 성적만을 위한 공부를 하는 것은 도저히 성미에 맞지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매번 욕하면서 공부했는데(아마 나랑 같이 공부했던 분들은 내가 얼마나 시도 때도 없이 욕하면서 공부했는지 알 것이다 ^^;) 다행히도 다른 더 뛰어난 분들만큼은 아니지만 학교에 돈은 덜 바치고 다녔다.
학교 공부만 하는 건 너무 불안했다. 필드에서는 매번 새로운 좋은 것들이 마구 쏟아지고 있는데 주변 친구들은 그런 것들을 이미 학습하고, 또 사용하고 있는데 나는 학교에서 기본적인 공부만 하다 보니 불안감이 더 했었다. 그런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학교 프로젝트 때, 혹은 개인적인 시간을 쪼개서 최신 기술을 써보기 위해 노력했다. 각종 백 엔드 개발을 위한 언어나 프레임워크와 DB, 안드로이드와 iOS 애플리케이션 개발, 웹 프론트엔드 개발, 심지어 웹 퍼블리싱까지 닥치는 대로 다 공부했다. 내 마음속의 벽이 있는 임베디드 프로그래밍과 당장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 인공 지능 분야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서비스 개발을 위한 기술 스택은 거의 다 섭렵했다. 감사하게도 나를 좋게 평가해준 분들 덕분에 실무 경험도 많이 해볼 수 있었다.
학교 공부도 하다 보면 재미있을 때가 있었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3학년 때는 정말 과제가 많았는데, 특히 1학기 때는 평일에 4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거의 없었다. 간략하게 요약하면 평일은 덜 자면서 과제하는 날, 주말에는 좀 더 많이 자고 과제하는 날이었다. 더군다나 문제 해결이라는 알고리즘 강의의 과제 제출을 못해 불안함을 많이 겪곤 했다.
문제 해결에서는 1주일에 2~3 문제를 풀어서 제출해야 하는데 나는 영 알고리즘에 소질이 없는지 문제가 잘 풀리질 않았다. 과제 제출 바로 전 날 자정이 다 될 때까지도 문제를 풀지 못해 컴퓨터와 씨름하고 있을 때는 스스로에게 너무 화가 많이 났다. 문제를 풀기 위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기 위해 학교 옆 커피베이라는 카페가 문을 닫을 때까지 앉아있곤 했다. 잠을 잘 못 자다 보니 머리도 잘 돌아가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앉아있다가 도저히 잠이 와서 버티기 어려울 땐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다가 다시 돌아와 앉기를 반복했었다. 그러다가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급하게 마구 코드를 짠 뒤, Wrong answer을 받으면 다시 멍하니 다음 아이디어가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학기가 끝나고 내가 모든 과제를 성공적으로 제출했으며 원하는 성적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했을 땐 그동안의 학교 생활 중 가장 기뻤었다.
3학년 1학기 시스템 프로그래밍이라는 강의에서는 SIC/XE 어셈블러를 개발하는 것이 과제다. 작년에 아는 선배가 그 어셈블러를 짜면서 욕하는 것을 보고는 그냥 코딩을 잘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약 올렸었는데 막상 내 차례가 되자 그 선배가 한 욕의 몇 배는 하면서 과제를 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왜 욕했는지 알겠지?" 하는 말을 들으며 같이 웃었다. 아주 간단한 기계를 가정한 어셈블러였지만 나의 반복문, 분기문 코드가 어떻게 어셈블리로 변환되어 실행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강의였다.
인공 지능이라는 수업도 들었다. 같이 빡세게 공부해보자 하고 모인 친구들과 함께 들었는데 정말 수업이 끝날 때마다 "우리는 머저리야"라는 식의 대화를 나누곤 했다. Soundness와 Completeness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다 같이 지하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공부했던 것과, 조교의 이상한 과제 처리를 욕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인공 지능 기말고사 전 날 함께 먹었던, 이름도 웃기는 고인돌 치킨은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종종 학교 앞 500ml 맥주가 2500원밖에 하지 않는 곳에 가서 웃으며 그 날의 고생을 날려 보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당장 세 가지만 꼽자면 이 정도가 기억난다. 웃기게도 힘든 와중 조금의 행복이 있었던 때가 가장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쓴맛 속의 단맛이 더 빛을 발하기 때문인 건지...
말하고 다니진 않았지만 이런저런 실패도 꾸준히 했다. 기본적으로 교양은 번번이 C를 받았고, 몇몇 전공에서도 원하는 만큼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해 쓰린 속을 달래기도 했다. 남들에게 말하고 다니진 않았지만 내심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았었다. 정말 자신 있게 중간고사를 마쳤는데 평균 이하의 점수가 나와 충격을 받고 머리가 아파왔던 때도 있었다.
다른 도전들도 몇몇 있었다. 모 기업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수 기회를 주는 교육(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탈락했다. 면접에서의 실수를 이미 감지하여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예상했지만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학교를 다니던 중 병역특례를 시도한 때도 있었다. 나는 원하는 수업을 수강 취소하고 멀쩡히 학교를 다니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는 분을 통해 어떤 수업에서 출석 때 내 이름을 자꾸 부른다는 것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그 교수님 출석부 좀 다시 뽑으라고 전해달라 말했다. 그리고 혹시 몰라 내 강의 시간표를 열어봤더니...
내 시간표에는 그 강의가 사라지지 않았었다. 2시 40분에 점심을 먹고 나오면서 이 사실을 깨달았고 3시에 수업이 있었으며, 그 수업의 성적은 출석 때문에 F, 잘 해봐야 C가 확정이었다. 10분 만에 휴학으로 결론을 내리고 3시 수업은 안 갔다.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했고 이렇게 된 김에 병역특례를 시도해보기로 결정했다.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서 몇몇 회사에 연락했고, 한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팩스를 넣는 당일,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고 편입에는 실패했다. 그때 팀장님께서 너무 미안해하셔서 오히려 내가 죄송했었다.
대학원 진학도 미뤄졌다. 면접에서 또다시 실수한 것, 영어 성적을 미리 잘 준비하지 않았던 것 등이 문제였다. 지도 교수님과 이 얘기를 나누니 무엇이든 준비를 더 철저히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은 것에 대한 결과이니 받아들이고 다음부터는 또다시 그런 일이 없도록 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정말 맞는 말씀이라 생각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를 다니기 시작할 때쯤만 해도 나의 꿈은 게임 개발자였다. 게임 개발을 하지 않게 될지언정 적어도 컴퓨터 그래픽스와 관련된 분야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디즈니의 겨울왕국 눈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미쳤다고 감탄하곤 했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니 컴퓨터 그래픽스 분야에 대한 나의 애정이 조금씩 식어갔다. 아니, 그보다 다른 분야에 더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는 것이 낫겠다. 결국, 이제는 게임을 직접 개발하는 것에는 큰 열망이 없어졌다. 취미로 가끔 간단한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건 괜찮겠다.
핫하다는 언어나 라이브러리, 프레임워크에 대한 사용 경험은 남들만큼 많진 않아졌다. 그 대신 기본기에 대해서는 과거의 나에 비해 지식이 풍부해진 것 같다. 최근 Spark를 다루면서 Join 전략에 대해 많이 고민해야만 했다. 그동안 다른 공부 많이 못 하고 학교에서 기본기를 공부하기 바쁜 나였지만 놀랍게도 Join 전략들에 대한 문서를 보는데 지장이 없었다. 아니, 거의 다 아는 내용이었다. 삽질은 다른 것 때문에 했지 지식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서는 아니었다. 말하자면 경험이 부족한 게 문제였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전공과 관련된 많은 다른 소식들을 접할 때 부담이 덜해졌다. 과거에는 접하는 모든 것이 새로운 지식이었고 그게 뭔지 깊이 우선 탐색적으로 찾아보다 보면 끝이 없었다. 이제는 생소한 용어일지라도 조금 찾아보면 기본 원리가 무엇인지 이해가 된다. 즉, 새로운 것을 공부하는 게 덜 힘들어졌다. 또한, 어떤 문제를 마주쳐도 내가 그동안 공부한 것을 활용하여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너무 뿌듯한 것 중 하나이다.
전공 말고 살아가는 자세에 있어서도 조금씩 달라졌다. 부끄럽지만 선택과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컴퓨터를 제외한 다른 많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살기로 했다. 세상의 많은 이슈들에 대해서는 고개를 돌렸다. 도저히 그 많은 이슈들에 대해 나의 가치관을 확립하고 살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을 들여야만 올바른 답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기엔 비겁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한계를 감안하여 결정내린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대신 다른 이들의 의견을 많이 경청하고 참고하기로 했다.
인간관계는 옛날처럼 넓히려 노력하지 못했다. 이 자리, 저 자리 다 찾아다니며 사람들과 관계를 쌓으면서도 공부를 잘할 자신이 없었다. 학교나 사는 곳 근처 외 다른 곳에는 정말 잘 찾아가질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찾아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매일매일 하기가 싫지만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이제 어느 정도는 습관 수준으로 올려놓은 것 같다. 이제 무려 4년 차라는 것에 나 스스로도 놀라곤 한다. 육체적으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할 때가 오기 전에 목표에 도달하고 싶지만 쉽지는 않다.
예전에 비해서 나는 많이 밝아진 것 같다. 날카롭고 쌀쌀한 인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는데 이제는 그런 말을 조금은 덜 듣는다. 항상 웃는 낯으로 있기 위해 평소에도 미소 짓고 있으려고 많이 노력한다. 입꼬리를 내리는 순간 화났냐는 말을 들을 때도 있지만.... 욕은 여전히 많이 한다. 아마 이건 죽을 때까지 못 고칠 것 같다. 욕을 참으면서까지 정신력을 소모하여 다른 것들에 정신력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싶진 않다. 내 정신력의 거의 모든 부분은 낭비없이 컴퓨터 공부에 바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혼잣말을 예전보다 조금 더 많이 하게 된 것은 앞으로 더 심해지기 전에 조심해야겠다.
전반전에 넓고 얕게 공부하느라 불안감이 컸다. 지금 와서는 그렇게 공부한 보람이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나는 왜 뭐 하나 진짜 잘하는 게 없다"하는 조급한 마음이 자주 들곤 했다. 이제는 진짜 깊게 공부할 테다. 5년을 마저 달려서 최고의 역량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다. 30대가 되면 공부를 안 하겠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때에는 지금보다 더 시간을 쏟으며 공부하기 어려울 테니 적어도 "공부를 더 쉽게 할 수 있는" 상태의 나를 만들어 놓고 싶다. 아마 이를 위해 전반전 때와 마찬가지로 다른 많은 것들을 포기한 채로 살겠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데이터베이스 강의를 들을 때였다. 정확한 질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궁금한게 있어서 교수님께 질문을 했는데 교수님의 답변이 압권이었다. "나도 궁금해서 그렇게 해보니까 오히려 더 느리더라고." 그 교수님은 상용 데이터베이스 개발에 실제로 참여하셨던 분이셨으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이해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나도 저렇게 당당히 경험을 말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또 한 번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나는 입만 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인성적으로도 지금보다 더 밝은 사람이 되고 싶다. 더 살갑게 사람들을 대하고, 더 많이 경청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다. 깃털보다 가벼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다니곤 하는데, 여전히 볼링공처럼 무겁다. 천천히 노력하다 보면 바뀌리라 믿는다. 운 좋게도 배울만한 분들이 주변에 많이 계시기 때문에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매년 연말에는 감사 인사만을 남겼지만 이번에는 자세한 회고록을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긴 글을 쓰게 됐다. 그러나 언제나 결론은 주변에 대한 감사함으로 끝나는 것 같다. 세상에는 그리도 이상한 사람이 많은데, 또 그런 사람들을 겪은 이야기들을 많이 접하는데도 내 주변에는 좋은 분들이 너무 많다. 혼자 살아가기도 바쁜 세상에 나를 기억해주고 챙겨주시는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당장 모든 분들을 찾아뵙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지만 물리적 한계로 인해 어렵습니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