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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민 Mar 22. 2017

아직까지는 책가방을 챙기는 게 어색하다

대학원생 2주차의 일기

간만에 일주일이 참 길게 느껴졌다. 학교가 시작하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두뇌가 깨어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가. 지난 일주일은 참 길었다.

이번 주는 3박4일 출장이 잡혀있어 과제하고 수업준비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생각해서인지 특히나 여유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과제를 못해가서 교수님 앞에서 쩔쩔매며 당황하는 꿈을 꿨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보면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한 건 아닐텐데 정신적인 여유가 없어진 게 더 큰 고민이다.

그동안 나름대로 여행, 그리고 관광에 대해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고민했다 생각했는데 그 생각 자체가 부끄러울 정도로 고작 지난 이주일간 마주한 학문의 영역은 너무나 방대했다. 박사과정은 파리 발톱의 때를 연구하는 거라더니 역시 인간의 능력은 참으로 부족하고 제한적이구나라는 생각에 '자괴감'이 든다.

학문적으로도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실감하지만, 내가 일상의 변화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깨닫는다. 혼자 일만 할 때는 아무리 바빠도 내가 스스로 정한 타임라인에 맞춰 움직이니 별로 복잡하고 어려울 게 없었는데, 새로운 타임라인이 하나 추가되었다고 정신이 없다. 학생이었던 시절이 아직 내 인생의 반 이상인데 그간 어떻게 공부했는지 방법을 다 잃어버린 것 같다. 집에 필통도 없고 변변한 노트 한 권 없었으니 학생의 일상에서 이미 떠난 지 오래된 느낌이라 아침에 가방을 챙길때마다 낯설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여행하며 혼밥을 많이 했건만 학생식당이 뻘쭘하고 도서관이 어색하며 과제를 하기 위해 어디부터 시작해야할지 막막할 따름이다. 그저 하루하루 새로운 세상을 갓 만난 아기마냥 헤매면서 생존을 위해 적응할 뿐.

그래도 그간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인생을 살며 경험한 것이 있다면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싶었던 두렵고 막막한 순간에 나의 성장곡선은 급격한 오르막 커브를 그린다는 것. 그래서 이번 학기도 그럴거라 믿고 이렇게나마 주변인들에게 하소연을 늘어놓고 얻는 응원 덕분에 견디며 이겨내는 수밖에.

고작 2주차면서 엄청 힘든 것처럼 써놨지만 꽤나 설레는 면도 있다. 내 뇌의 용량이 늘어나는 것 같은 느낌도 신선하고 새로운 자극들에 지식의 지평이 넓어진다는 생소한 느낌도 점차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쏟아지는 과제는 괴롭다. 지금은 찡찡거리는 중이라 좋은 말이 잘 안 나오네.

평생 나를 짓누르는 부담감은 내게 주어진 모든 역할을 다 "잘" 해내야 한다는 것. 학교도, 가정도, 일도 너무나 잘해내고싶고 그래야만 한다는 부담감에 괴로웠는데 어제 밤 나를 제일 잘 아는 우리 남편의 한 마디가 가장 큰 위로가 되었다.

'박사하고 성적 잘 받아서 어디 제출하고 취업할 것도 아니면서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마.'

맞는 말이네. 결국 이 모든 건 나와의 싸움인데 조금 더 마음 편하게 가지면 될텐데. 뭐 그렇다고 공부를 설렁설렁한다는 건 아니지만 그 말이 지금의 나에게는 제일 위로가 되었다. 박사과정이라는 기나긴 시간동안 소중한 사람들의 위로와 응원으로 버텨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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