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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민 Mar 29. 2017

청첩은 참으로 어렵다

인생을 돌아보게되는 종이 한 장

청첩장을 만들다


딸의 이야기


결혼 준비 과정 중 청첩이 가장 힘들었다. 예비남편 역시 그렇다고 말했다. 청첩을 조금만 하면 연락을 받지못한 이들이 서운해하고, 청첩을 또 너무 많이하면 그 의도에 의문을 표하는 이들도 있기에 더더욱 조심스럽다. 어쩌면 우리 둘다 큰 일을 앞두고 어느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 듣고싶지 않았기 때문에 더 어려웠던 것 같다.

요즘 결혼식이 참 많다. 결혼적령기라는 나이여서인가 매주 직접 혹은 모바일로 받는 청첩장도 있고 뒤늦게 페이스북으로 알게되는 결혼소식도 있다. 대부분 온라인에서 알게되는 결혼소식에 빠지지 않는 말은 "한 분씩 직접 연락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이라는 부분이다.

이미 주변에 가까운 지인들은 연락하고 모임도 가진 후 혹여나 소식을 전해야하지만 빠트렸을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에게 공지하듯 올리는 것이다. 예전에는 나중에서야 지인의 이런 글을 보는게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직접 청첩을 해야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서운함보다는 글을 올리기까지 당사자가 겪었을 고민과 어려움에 공감이 간다.


"그냥 이제는 소식 직접 못 들어도 서운한 것보다는 마음으로 축하해주게되더라. 연락하면 괜히 부담주는 걸까봐. 내가 그런 마음이면 남들도 그럴 것 같아서 너무 알리지는 않게 되더라구."


대학 동기가 결혼 소식을 알리며 청첩장을 준다고 만났을 때 다른 동기들도 초대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 역시 같은 마음이다. 이미 연락은 안 한 지 오래지만 페이스북을 통해 근황은 세세히 알고있는 친구들. 매일같이 그들의 일상을 보고있음에도 선뜻 결혼한다는 소식을 알리기가 쉽지않고, 그들의 결혼 소식을 페이스북으로 접하게 된다한들 딱히 서운한 마음보다는 축하하는 마음이 먼저 든다. 초대를 받지못하거나 나중에 봤더라도 축하한다며 댓글을 남길 때는 고작 한 줄일지라도 정말 진심을 담는다.

청첩을 하면서 특별한 결혼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귀중한 일생의 한 시간을 나를 축하하기 위해 와주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떠한 결혼식을 보여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청첩을 시작하기 전에는 내가 행복한 결혼식만을 꿈꿨었다. 시간이 길든 짧든, 밥이 맛있든 없든 그건 두번째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식을 전해야할지 말지 한 명씩 내 인생에서 알게된 사람들을 돌이켜보고 기나긴 고민 끝에 소식을 전하다보니 그들의 귀중한 시간을 더 의미있게 만드는 결혼식을 해야할 것 같았다. 그래서 최대한 짧더라도 하객들의 기억에 남을, 그리고 하객들도 증인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결혼식을 고민하게 되었다. 물론 그들을 대접할 식사도 더욱 신경써서 준비하게 되었다.

요즘의 결혼식은 축하의 의미가 너무 금전적으로만 표현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축의금을 얼마 했는지, 나에게 따로 청첩장을 주며 밥을 샀는지 안 샀는지, 내가 낸 돈 만큼의 밥값을 하는 결혼식장인지 아닌지. 막상 축하를 받는 당사자가 되어보니 물질적인 축하도 당연히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내가 다시 갚아야하는 마음의 빚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진심이 담긴 말 한 마디, 봉투에 남겨진 손글씨 몇 자, 약소하더라도 나를 생각해준 특별한 선물. 내게도 이런 것들이 결국 마음에 가장 오래남는 축하가 될 것 같다. 그걸 알면서도 누군가를 축하할 때는 나 역시 실천으로 옮기기엔 어려운 부분이라 참 속상하다. 그래도 매 순간 진심을 눌러담아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찰나일지라도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결론은 청첩은 참 어렵다.



아빠의 이야기


환갑에 가까운 인생을 살다 보면 엄청난 부고와 청첩을 받는다.

부고는 갑작스럽게 날아든다. 장례절차 역시 3일을 넘기 어렵다. 부고의 경우 해외에 있거나 지방 출장일 경우가 아닌 이상 최대한 참석하여 조의를 표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청첩은 좀 다르다.


"결혼식 딱 2주 전에 돌려야 하는데 미리 돌려서 미안하다."


얼마전 딸을 결혼시킨 대학동기가 동기모임에서 청첩장을 돌리며 이런 말을 하길래 무슨 소리인가 했다. 딱 2주 전에 돌려야 선약을 핑계로 결혼식 불참에 대하여 면피할 수 있단다. 청첩 받는 사람을 배려해서 딱 2주 전에 해야 한단다. 그럴듯 했다. 축하를 하는데 면피를 생각한다는 것은 내 감정의 표현보다 상부상조라는 사회적 책임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편으로 청첩장을 받거나 면전에서 받는 경우 고민하게 된다. 가장 황금시간인 토요일 점심을 전후하여 벌어지는 결혼식을 직접 참석할 것인가? 확실히 참석할 하객에게 축의금만 부탁할 것인가? 나중에 뭐라고 핑계댈 것인가? 아예 무시할 수 있을까? 얼마를 축의금 봉투에 넣을 것인가? 등등... 종이 한 장 앞에 놓고, 많은 생각과 고민에 빠진다.

진부한 결혼식에 참석하여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 덕담과 축의금 봉투를 건네고, 영 어색한 자리에 앉아 별 맛 없는 스테이크를 썰거나 복잡한 부페식 피로연장에서 접시를 들고 돌아다니는 일에 내 인생의 귀중한 한 조각을 사용할까? 남은 인생이 점점 짧아질수록 솔직히 말해, 하고 싶지않다. 신랑과 신부에게는 약간 미안하지만 말이다.

요즘 대세인 모바일 청첩장이 편하기는 하나 집안 어른들에게 그렇게 할 수 없어 청첩장을 인쇄했단다. 진정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모바일로 쉽게 청첩할 수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진정 가까운 것일까? 그것이 문제다. 같은 직장에 다닌다고 다 동료가 아니다. 사회적인 활동 중에 만난 지인들이 가장 어렵다. 차별을 두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남발하는 청첩을 나도 많이 받아봤다. 받고난 기분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청첩을 하려니 더욱 어렵다.

얼마 전 아들을 결혼시킨 지인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결혼식에 참석해준 하객들에게 인사글을 올린 것이다. 인생의 큰 숙제를 하고 난 홀가분한 기분이라는 말에 나도 큰 공감이 가서 좋아요를 누르며 진심으로 축하했다.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딸을 결혼시키는 것만이 나의 숙제가 아니라 그간 나름의 긴 세월을 살아오며 내가 만났던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 또한 내 인생의 큰 과제인 것 같다.

청첩이 어렵다. 인생은 물 흐르듯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이 악물고 힘들게 살아내야 하는 것이라는 글귀가 생각날 정도다.




+ 지난 네팔 여행에 이어 그 이후의 이야기를 조금씩 적어보려고 합니다. 처음 결혼을 고민하기 시작하며 아빠와 여행을 다녀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저는 결혼식을 마치고 유부녀가 되었네요. 그동안 저희의 글을 좋아해주신 분들을 위해 여행에서 돌아온 후 결혼까지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볼게요!

여행에서와는 또 다른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얼마나 많은 에피소드로 풀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도 기대가 됩니다. 여러분도 기대와 응원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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