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석가탑

암브로시우스 성당

by 손봉기

천년동안 지속되었던 신 중심의 중세시대를 끝내고 15세기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은 사람은 페트라르카였다.


그는 세속적 고민을 잊기 위해 몽방투 산에 올랐다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고 대 자연만큼 소중한 인간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얼굴을 붉히며 내려올 때까지 단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이후 시와 산문을 통해 신이 아니라 인간을 노래하며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페트라르카에게 감동을 주었던 <고백록>의 저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교도였으나 서기 380년 밀라노의 주교였던 암브로시우스와의 만남을 통해 훗날 초대 기독교의 교부이자 최고 성인 반열에 오른다.



바티칸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는 청동으로 만든 베드로의 성스러운 의자가 있다. 성좌를 바치고 있는 네 분의 성인은 암브로시우스, 아타나시우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아우구스티누스로 이 분들이 없었으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기독교의 존재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많은 희생과 오랜 박해를 이겨낸 기독교가 로마제국에서 공인된 지 27년의 세월이 지난 서기 340년 독일 틀린엘에서 태어난 암브로시우스는 어려서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으며 청년이 되어 변호사가 되었다.



뛰어난 언변과 학식을 가진 그에 대한 소문은 로마제국 곳곳으로 퍼져나갔으며 밀라노 총독이 되었다.


초기 기독교 시대로 교리가 정립이 안되어 이단이 속출하는 당시에 밀라노 주교가 갑자기 사망하였다. 후임 문제로 심각한 혼란이 일었는데 이단 측에서 자신들의 교리를 따르는 이를 밀라노 주교로 선임하고자 하였다.


이에 복잡한 교리에 관심이 없었던 수많은 신도들은 해박한 지식과 훌륭한 인품을 가진 암브로시우스를 밀라노주교로 추천했다.


암브로시우스가 손사래를 치며 한 달 이상을 몸을 숨기는 등 거절했지만 신자들의 열화가 같은 성원으로 서기 374년 12월 7일 34세의 나이에 밀라노 주교직에 오른다.


주교가 된 그는 신자들의 바람대로 순교자들을 공경하고 교리정립에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나누어주었다.


당시 이교도이자 수사학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를 만나 해박한 지식과 훌륭한 인품으로 그를 기독교로 입문하게 만들었다.


암브로시우스가 한 일 중 가장 위대한 일은 서기 390년 반란을 일으킨 데살로니카인 7천 명을 몰살한 로마의 황제 테오도시우스의 통렬한 반성과 회개를 끌어내었다는 점이다.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삼은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암브로시우스의 품에서 죽으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내게 진리를 말해 준 사람은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뿐으로 그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신의 일꾼이다.


서기 349년 4월 3일 암브로시우스는 57세의 나이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채 사망한다.


오! 세상을 떠날 날이 어찌 이리 많이 남았는지!

주여 어서 빨리 오소서. 저를 거절치 마소서.


불교 경전 <법화경>에서 석가모니가 설법을 할 때 땅속에서 다보여래의 탑이 솟아올라 석가모니의 설법이 진실함을 증명한다. 그래서 경주 불국사에 가면 진리를 상징하는 석가탑이 화려한 다보탑과 함께 나란히 서 있다.



서기 386년에 지어져 1천7백 년의 역사를 간직하며, 암브로시우스 성인의 유해를 모시고 있는 암브로시우스 성당은 밀라노 두우모 성당의 화려한 광채를 받으며 성스러우며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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