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르노가 들려주는 노르망디 왕국 이야기 8화
[대문 사진] 폐허로 남은 생 방드리유 수도원 모습
몇 년간 유예의 세월이 흐른 후 851년 가을 바이킹들의 새로운 침입을 알리는 범선들의 돛이 세느 강에 나타났습니다. 「퐁트넬르 연대기」는 그때의 상황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10월 13일 오스리[1]가 이끄는 노르망디 선단이 센 강으로 침투했다. 이들은 몇 년 전에 루앙 도성을 침공하여 불 지르고 파괴했던 자들이었다.
11년간을 이 지역 저 지역을 떠돌며 약탈하면서 살던 바이킹의 무리들은 특히 수비가 견고했던 도성과 노르망디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주도(Novempopulanie) 같은 곳에 정주했다.
그들은 퐁트넬르 수도원을 공격했으며 모든 재물을 약탈했다. 세느 강으로 침입한 지 89일이 끝나갈 때쯤인 1월 9일 세느 강 연안을 모두 불 지르고 파괴했다. (…) 그들은 같은 시기에 보배의 도성과 흘리 수도원을 불 질렀다.
그들이 다시 침입했을 때 프랑크 군대는 바흐드라는 곳에서 그들과 맞닥뜨렸는데 많은 숫자가 죽음을 면하지 못했다. 또 다른 바이킹들의 무리는 숲 속에 숨어 이를 엿보다가 그들 가운데 얼마가 밤을 틈타 강가에 정박해 있는 배들로 퇴각했다. 바이킹들은 10월 13일부터 6월 5일까지 세느 강에 머물렀다.”
바이킹들은 세느 강 연안에 진지를 구축하고 동면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852년 10월 9일이 되자 ‘시드로크’와 ‘고트프리트’[2]가 이끄는 새로운 선단이 세느 강에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퐁트넬르 연대기」에 따르면, 이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방어진을 쳤다. 호싸 지발디라 불리는 센 강 지류사이 안전한 장소에 진지를 구축하고 겨울을 났다.”
이곳은 세느 강이 끼고 도는 베르농과 엪트 강 인근이라 짐작되는 죄호쓰가 아닌가 추정됩니다. 오늘날 죄호쓰(Jeufosse)란 커다란 섬을 가리키죠. 대머리 왕 샤를과 로태흐는 죄호쓰를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허탕을 치고 말았습니다. 구오흐리오르는 죄호쓰에서 떠나고 지그트리갸르만이 남아있어 샤를과 로태흐는 다음 해 여름까지 기다리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때 구오흐리오르는 브르타뉴로 이동하여 흐리즈를 점거했습니다.
[1] 오스리란 라틴어로 아스게르(Ásgeirr)란 이름을 번역한 것입니다.
[2] 지그트리갸르와 구오흐리오르라 불리기도 합니다. 후자는 덴마크 왕 하랄드 클라크의 아들로 추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