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라는 이름으로

몽생미셸 가는 길 234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노병, 티에리 우엘(Thierry-Houyel) 사진



난 전쟁과 자유에 대하여 잘 모른다. 직접적으로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행을 통하여 인류가 벌인 전쟁과 자유에 대해서 만큼은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우리는 자유라는 말보다는 해방이란 말을 더 자주 사용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우리는 일제 강점 하에 신음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의 독립군들은 오직 조국 해방만을 위해 애썼다. 이념적으로 우든 좌든 상관없이 조국 해방을 기리는 마음에는 어떠한 차이도 없었다. 그만큼 조국 해방은 긴요한 과제였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책무이기도 했다.


비록 남의 도움으로 해방을 맞이하였지만, 그 해방이 남달랐던 이유는 한일합방을 시작으로 36년이란 세월이 그다지 짧지 않았기 때문이다. 36년은 아이가 태어나 성년으로 살아갈 나이다. 만일 태어날 때 일본어만 쓰는 부모를 두었다면 평생 일본어만 쓰고 살아야 할 나이이기도 하다. 그러나 외세의 침략에 굴하지 않고 우리말을 잊지 않은 채 독립을 쟁취하여 찬란한 대한민국을 건설한 우리 민족은 이쯤에서 세계 인류 가운데 참 대단한 민족임이 돋보인다.


프랑스는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도저히 기억하기 싶지 않은 참상을 겪었다. 여기 일일이 다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막대한 재산적 피해는 물론이고 인명적 피해마저 겪었다. 대체 독일의 히틀러가 무얼 의도하고 프랑스를 침공했는지, 더해 인종 말살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고 유태인들을 학살하였는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 히틀러는 악귀 가운데서도 제일 악랄한 악귀였다. 이런 광기의 파시즘이 이탈리아에서 독일에서 일본에서 싹트고 발아하였다는 것은 인류 역사상 참담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들 프랑스인들에게 있어서 독일 치하에서의 자유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꼭 역사책만이 아니라 할지라도 르포르타주나 전쟁 영화들을 볼 때마다 자유가 실감 나는 것은 독일 강점 하에서의 프랑스인들의 억눌린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절절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숨죽여 듣는 자유를 열망하는 노랫가락은 프랑스의 저항 시인들의 단골 메뉴였다.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갈 유태인들을 탈출시켜 이스라엘이나 저 머나먼 미국 땅으로 도피시킨 레지스탕스 단원들의 활약상은 목숨을 건 엑소더스가 얼마나 참혹하고도 비극적인 지를 일깨워 준다.



자유!
리베르테(LIBERTÉ)!



나는 백사장에 그렇게 쓴다. 아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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