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화 4점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66화

by 오래된 타자기



15장-21
(1879-1880)



마네 역시 다시 붓을 쥐고는 미루기만 하던 인물화들을 제작해 나갔다. 그 와중에 프루스트를 새로이 그리기도 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답게 서있는 모습으로 포즈를 취한 인물화였다. 마네는 그림 제목을 「프루스트의 요즘 모습」이라 정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온 친구의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뜻하기 위함이었다.


1877, Antonin Proust (Journaliste et Ministre des Art).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앙토냉 프루스트(Antonin Proust)」 인물화, 1880.


항상 서로 떨어져 있을 수 없으리만치 너무도 절친한 동료이자 속내의 이야기까지 다 털어놓고 이야기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건만, 마네가 그린 그림을 보면 공허하면서도 그저 예의 바르면서도 고상한 체하는 한 인간을 묘사한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기에 충분하다. 말 그대로 자신보다 25살이나 어린 여배우를 꼬셔보려고 안달이 난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마네는 프루스트가 빠져있는 여배우를 ‘남자나 꼬시려고 별의별 짓을 다하는 여자’란 뜻을 지닌 ‘공화국의 알키비아데스’란 별명으로 불렀다! 하지만 되는 대로 막 그린 탓으로 프루스트 맘에 들기까지 도합 일곱 차례나 그림을 다시 그려야만 했다. 그가 마침내 수긍한 그림을 보면 장갑에다가 지팡이, 실크해트 모자, 프록코트, 단추의 꽃 장식 등 한눈에 봐도 사회적 지위가 대단한 신사임을 여실히 입증해 주는 듯하다.


1880, Portrait d'Antonin Proust.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앙토냉 프루스트(Antonin Proust)」 인물화, 1881. [1]


마네는 이 그림을 여러 번에 걸쳐서 고쳐 그렸다. 실크해트 모자야말로 인물 묘사에 있어서 가장 민감한 부분이었다! 어느 날 마침내 마네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 맘에 들었다. 프루스트 또한 맘에 들어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죽을 둥 살 둥 싸운 탓에 두 사람 다 만족하는 그림을 끝까지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젠 끝난 것인가? 그 둘은 서로 부둥켜안고 승리를 자축한다는 듯이 춤까지 춰댔다.


마침내 세간에 널리 알려진 인물인 로슈포흐도 모습을 나타냈다. 1874년 로슈포흐의 망명 사건은 온 신문지상을 뜨겁게 달구었으며, 공화주의자들을 극도로 흥분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보불전쟁에 관한 기사는 마네 역시도 감정을 뜨겁게 달구었다. 1880년 대 사면과 함께 프랑스로 돌아온 로슈포흐가 그를 환영하는 자리에 기꺼이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1881, Henri Rochefort.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앙리 로슈포흐(Henri Rochefort)」, 1881.


피곤하고 금방 지칠 수밖에 없는 모임이 늘어가면서 마네 또한 점점 기력이 쇠잔해져만 갔다. 아주 오래전부터 마네는 친구들의 아내나 또는 그들이 동반한 멋쟁이 여인네들이나 상류층 여자들을 화폭에 담는 걸 좋아했다. 그들이 아틀리에에 나타날 때마다 마네는 그 향기로운 순간들에 흠뻑 젖어 들어갔다.


이로써 탄생한 것이 「봄」과 「자두」 같은 작품들이다.


20-1 Printemps, Jeanne de Marsy, 1881.jpg
20-2 La Prune (Ellen Andrée), 1878.jpg
마네가 그린 오른쪽 그림은 「봄, 잔느 드 마흐시」(1881)이고, 왼쪽 그림은 엘렌 앙드레를 모델로 하여 그린 「자두」(1878)다. [2]






[1] 마네는 기자 출신인 데다 예술부 장관이 된 친구 앙토냉 프루스트(Antonin Proust)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담았다.


[2] 그림 제목이 ‘자두’인 것은 아마도 모델 엘렌 앙드레(Ellen Andrée) 본인이 정체를 숨기고 싶었던 요청에 따라 마네가 그림 제목을 ‘자두’라는 과일 명으로 바꾼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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