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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May 08. 2024

4. 할까 말까 망설였던  산업안전기사 필기시험

17년에 이어 두 번째 시도

성격상 준비했던 시험은 웬만해서는 포기하지 않고 자격증을 땄습니다. 아직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지기 전인 2017년, 오랫동안 준비해 온 시험(어떤 시험인지는 나중에 쓸 수도 있어요, 가산점을 끝까지 채우지 않고 시험을 치르다 결국엔 아쉽게 2번이나 떨어진 시험입니다)에서 장렬하게 떨어진 후 몇 달간 일하는 날 빼고는 그냥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6개월 이상을 아무 생각 없이 놀다 보니 이렇게 시간을 버리지 말고 차라리 자격증 시험이라도 보자, 그게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자격증이 좋을지 알아보던 중 산업안전기사라는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시만 해도 위험물산업기사 시험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네이버 카페를 통해 산업안전기사 기출문제도 쉽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해마다 출제된 기출문제를 카페 회원들의 도움으로 복원해서 깔끔한 해설까지 추가된 PDF 파일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내려받아 외우기만 하면 되는 훌륭한 시험자료였습니다(하지만 지금은 저작권 문제로 인해 자료를 만들지 않습니다. 아쉽습니다). “그래, 이게 어려워봤자 얼마나 어렵겠어, 금방 합격해 주마”라는 생각을 가지고 덤벼들었지만 막상 공부하다 보니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산업안전기사 필기시험 6과목


친숙한 건 오직 화학설비 쪽에 잠깐 나오는 위험물 부분일 뿐 나머지는 나와는 상관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인간공학이란 무엇인가, 평소에 이 분야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건설 쪽은 막노동한 경험이 전부입니다. 낯설고 또 어려웠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공부하며 힘들 때마다 나름 바꾼 시를 읊조렸습니다. 기분이 조금 나아지더군요. 잠시 웃자고 써 봅니다. 양사언의 시를 변형했습니다(절대 고전문학을 폄하하는 게 아니니 흥분하지는 마세요, 그냥 가사 바꿔 부르기 정도로 이해 바랍니다)    

     

바꾼 시 - 거칠마루


공부량이 많다 하되 그래봤자 만 페이지

보고 또 보면 못 외울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외우고 양만 많다 하더라     


그렇게 시를 읊어가며 필기시험 기간에 맞춰 공부를 했지만 아직 6개월 놀았던 것 가지고는 부족했나 봅니다. 전 시험의 충격이 그리도 컸나 봅니다. 결국 20일쯤 공부한다고 도서관만 다니고는 산업안전기사 필기시험을 때려치웠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2024년이 됐습니다. 7년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두 아이는 어느덧 중1, 초5가 되었고요, 아직 부모의 손길이 필요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젠 제 나이도 40대 후반이 되어 슬슬 은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할 시기가 됐습니다. 재테크 재주가 없는 저로서는 정년 후에도 5~6년 정도는 돈을 벌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방 관련 업무로 정년 이후의 삶을 살기는 싫었습니다. 제 직업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이젠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본 퇴직한 선배님들의 삶은 이렇습니다. 교수(소방이나 복지, 응급구조 분야 0.5% 미만), 택시 또는 화물 배달(6~70%), 기타 잡일(나머지 29.5%는 귀농, 학교 보안관, 자발적인 실직상태) 등입니다. 저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기 싫었습니다.   

   

그러다 건물관리 쪽 일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어차피 미래에는 모든 게 자동화되겠지만 그래도 마지막은 사람의 손길을 거쳐야 한다. 이 분야가 그렇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럼 그 분야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가? 크게 몸 쓸 일은 없을 테니 체력은 지금 정도면 충분할 듯하고 나머지는 자격증? 돌고 돌아 또다시 자격증 수험세계에 발을 딛게 됐습니다. 여러 구인공고를 뒤져 보니 범용성이 높은 자격증으로 전기기사,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관심이 높아진 산업안전기사 두 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 이거다, 일단 이 두 자격증 먼저 따고 생각해 보자, 전기기사가 어렵다고 하니 예전에 포기했던 산업안전기사부터 시작이다!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예전처럼 공부하다 도중에 포기하는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어떤 교재를 고를지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요새는 블로그 후기에도 협찬받은 교재를 광고하는 글이 많아서 블로그보다는 네이버에서 직접 “산업안전기사 필기 기출”로 검색해 나오는 책을 모조리 뒤져봤습니다.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최근에 출시된 책(해마다 법령이 바뀌고 기출문제도 달라집니다. 무조건 새 책입니다)

2. 적당한 양(공부 스타일은 요약집 + 기출문제 반복이라 양이 많은 책은 걸렀습니다)

3. 디자인+편집 상태(책 미리 보기 기능을 활용해 책 내용까지 보고 맘에 드는 걸로 고르기)     


그러다 발견한 책이 이번에 필기시험 교재로 선택한 직8딴 산업안전기사 필기입니다. 여기서 직8딴은 “직접 8일 만에 딴”이라는 줄임말입니다. 책 저자가 기사 자격증만 12개를 갖고 있으며 10년 간의 기출문제를 추려 중복된 부분은 빼고 내용이 비슷한 것은 모두 묶어서 볼 수 있게 처리한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책이 기출문제집인데도 보통 800페이지가 넘는데 이 책은 기출문제 10년 치를 포함하고도 600페이지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양이 많으면 훑어보는 시간도 오래 걸리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소방설비기사(필기시험 4과목)와는 달리 시험과목도 6과목이나 되어 체감 공부량은 2배 정도 늘어난 것 같아 단기간에 승부를 보려면 이 책이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하지만 오로지 흑백으로만 인쇄된 건 그다지 마음에 안 들어요, 가독성이 떨어짐).      


공부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4월 16일~5월 1일은 매일 80페이지씩 총 2 회독(쉬는 날 2일 포함), 5월 2일~5월 8일은 2 회독 추가 총 4 회독(휴일 하루 포함, 어린이날이 있어 어쩔 수 없어요), 5월 9일~5월 10일 1 회독 추가 총 5 회독, 5월 11일 마지막 정리, 12일에 시험을 치르는 걸로 결정했습니다. 오늘까지 약 3주간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맨날 집에서 웹소설만 읽던 아빠가 웬일로 공부하자 둘째가 “아빠, 이 책 공부하는 거 재밌어요?”라고 물어봅니다.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 그냥 하는 거야, 재미없어”     


시험 때까지 며칠 안 남았습니다. 생소한 문제를 머릿속에 구겨 넣다 보니 잘 외워지지도 않았고 짜증도 났습니다. 오랜만에 앉아서 공부하려니 여기저기 좀이 쑤셔서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거 끝을 보자며 힘을 냈습니다. 앞으로 며칠만 더 참고 공부하면 됩니다. 작년인지 올해부터인지 시험방식이 CBT(시험지 대신 컴퓨터로 문제를 풉니다)로 바뀌어서 시험 끝나면 합격 여부도 바로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다음 주에는 즐거운 소식을 전할 수 있길 바라며 이만...     


이미지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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