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알게 된 아버지의 병명 : 중추신경계 림프종
2023. 3. 7. 00 병원 혈액종양내과
드디어 아버지의 병명이 나왔다. “중추신경계 림프종”이라고 처음 들어보는 병이다. 그 증세가 아버지에게는 3개의 뇌종양으로 나타났단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3월 8일, 아버지는 다시 전신 PET-CT검사를 받고 있다(검사라도 받아보자고 간신히 설득해서 얻은 결과다). 혹시라도 몸 안에 전이가 되어 암세포가 자라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가 사는 곳과 350km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기에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가는 모든 일은 막내와 누나 그리고 매형의 몫이었다. 정말 미안했다.
(보호자로서 아버지를 돌보고 있던 누나에게 들었던 내용을 다시 재구성해서 씁니다) 원래는 3월 6일 월요일 진료과였던 신경외과에서 진단명을 알려주기로 했으나 월요일 아침 9시에 의사(아마도 주치의라고 생각됨, 교수인지 레지던트인지는 정확하지 않음)가 누나에게 “림프종이니 우리 과에선 진료할 수 없다, 진료가능한 혈액종양내과로 다시 예약을 잡을 테니 그리 알라”고 전화했다고 한다. 아마 의사는 그 전화를 하고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잊어버리겠지만 막상 누나와 매형은 다음날인 화요일에 다시 아버지를 병원에 모셔가기 위해 또 휴가를 신청해야 했고 지난주에 신청했던 월요일의 휴가는 쓸모없이 버려진 셈이 되었다. 하루만 빨리 알려줬어도 다시 화요일에 휴가를 내기 위해 직장 상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을,,,, 여러모로 아쉬움의 여운이 남았던 의사의 전화였다.
암튼 다시 예약을 잡아 다음 날인 3월 7일 화요일, 혈액종양내과에서 정확한 병명을 들을 수 있었다. “중추신경계 림프종”이라는 병이었다. 혈액암의 종류 중에 림프종이 있고 그중에서도 예후가 나쁜 병이라고 했다. 수술은 하지 않을 것이며 완치를 목표로 5차에 걸친 항암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목표란 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완치면 완치지, 완치를 목표로 한다는 말이 뭘까? 누나는 그 말이 몹시 궁금했다고 한다. 진료를 받기 위해 걸어 들어온 아버지를 본 의사는 지금은 정말 상태가 양호하지만 언제든지 급변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서둘러 입원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00 병원의 입원실은 이미 포화상태였고 입원실이 생기는 대로 연락할테니 전화받는대로 입원해서 치료를 시작하자고 했다. 가족들이 궁금했던 것에 대한 답은 없었다. 마치 녹음했던 멘트를 되살리는 스피커처럼 별 감정 없는 진료였다. 가족에겐 청천벽력같은 순간인데 그 말을 전하는 의사는 아주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아버지의 남은 삶은 얼마나 되는지? 치료하면 완치 가능성은 있는 것인지? 환자나 보호자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말은 아무것도 없었고 오직 의사는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그러나 정확하지 않고 뭉뚱그려 한데 버무려둔 정보만 단순히 읊어줬다. 의사에게서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한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고 환우카페에서 어느 정도의 정보를 얻게 되었다.
항암치료는 보통 1차를 시작하면 2주 입원 후 2주 퇴원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4~5차 단계별로 치료를 마치고 난 후 마지막 과정인 조혈모세포 이식을 하면 모든 과정이 끝이 난다. 그런데 환자마다 항암제 투여 후 겪게 되는 부작용 증상이 워낙 다양하고 힘들어하는 정도도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치료를 위해 입원할 때마다 보호자가 24시간 환자 옆에 붙어 있어야 하는데 형제들 모두 맞벌이를 하는 우리 가족은 어쩔 수 없이 간병인을 써야 한다. 간병비는 하루에 15만 원이며 간병인을 구하는 것도 또 하나의 일이 될 예정이었다. 또한 암환자의 경우 산정특례(국민건강보험에서 지원하는 제도로서 중증질환, 희귀질환, 치매 등에 걸린 환자를 대상으로 본인이 부담하는 의료비를 경감해주는 제도)를 받아도 매번 치료 때마다 2백만 원 이상이 들어간다는 글을 읽었다. 치료비도 만만치 않지만 가장 큰 문제는 아버지가 항암치료를 받아도 완치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환우카페에서도 항암치료가 잘 되어 완치 판정을 받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오히려 부작용이 너무 심해 항암치료를 도중에 중단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또 병원에 입원하면 90% 이상의 확률로 아버지의 섬망 증세가 나타날텐데(그런데 신기하게도 퇴원 후 누나네 집에서 지내는 동안엔 아무런 증세가 없었다. 오히려 거의 정상인처럼 생활하셨다. 다만 대화할 때 특정 장소나 중요한 단어를 내뱉지 못할 뿐이었다. 병원이라는 특수성과 수액 주사를 맞는 본인의 모습이 뭔가 기폭작용을 해서 섬망 증세가 나타나지 않을까 추정할 뿐이다). 그랬을 경우 병원에서는 또다시 2인실로 입원할 것을 강권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병실 사용료만 하루에 10만 원이어서 간병비에 2인 병실료까지 병원비가 곱절로 들게 뻔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돈 계산이 아주 빨랐던 아버지는 혈액종양내과에서의 첫 진료가 끝난 후 그냥 치료를 안 받겠다고 말씀하셨다. “아, 돈 때문에 그렇구나.” 이유를 묻지 않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실비 보험이 없으며 새어머니와는 10년 전쯤 이혼한 상태였다. 모아놓은 돈은 한 푼도 없고 사업을 한다며 남에게 진 빚은 가족들이 아는 것만 수억원인 상태다. 아버지는 그동안 누나, 나, 남동생과 같이 살다가 한 명씩 결혼을 해서 분가하고 형제들 중 누나가 마지막으로 결혼한 2015년 이후로는 혼자 지내오셨다. 아버지의 보호자로는 자식들뿐이었다. 우리들이 온전히 아버지를 책임져야 하는데 그나마 돈 나올 곳은 우리들이 아버지를 피보험자로 2년 전 들었던 보험이었다. 그것도 암과 치매 보장 중심이어서 암 진단금 1000만 원만 나올 예정이었다. 나머진 형제들이 나눠 고통 분담을 해야 했다. 아버진 그것이 싫으셨던 거다.
아버지를 보살피는 누나와 매일 전화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나와 남동생은 아버지의 뜻에 어느 정도는 동의한 상태였다. 남동생은 직장 동료로부터 들은 얘기를 꺼냈다. 동료의 어머니께서 울 아버지와 같은 병으로 1년 정도 투병 후 돌아가셨는데 항암치료 부작용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셨고 별 차도 없이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것 같아 동료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차라리 항암치료 없이 어머니의 남은 시간을 가족들과 좋은 추억으로 채울 걸 하고 후회의 말을 했다고 한다. 나 역시 같은 의견이었다. 완치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병원 침대에 누워 죽을 날만 기다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구급대원으로 5년을 생활하면서 봐왔던 환자들의 모습에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치료가 된다는 보장이 없다면 차라리 마지막까지 최대한 병원 침대에서 지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누나와 막내(아버지와 새어머니가 낳은 아이)의 의견을 아직은 모르겠다. 아들이라서 이렇게 냉정한 판단을 하는 것일까? 복권에 당첨이 되든지, 길 가다 몇 억을 줍든지 어디서 치료비만큼 돈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번 주 주말에 형제들과 모여 아버지 치료에 관해 얘기를 나누려고 한다. 어떤 결정이 나던지 아무도 맘 상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