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 / 자오팅양
※ 2010년 <천하체계>의 내용을 추가 및 보완하여 출간된 자오팅양의 책 <천하>입니다. 세계에 대한 중국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입니다.
정치 제도는 단지 좋은 세계, 즉 안전하고 평화롭고 협력이 가능한 세계를 보장할 뿐이다. 하지만 좋은 세계가 반드시 좋은 생활, 즉 생활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생활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좋은 세계는 좋은 생활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이 책에서는 천하체계가 더 좋은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만 논했고, 이 세상에서 어떻게 더 좋은 생활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 자오팅양(저자)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연구원. 사회과학원 학부위원, 장성학자, 국무원 특별지원학자. 중국의 북경대, 청화대, 인민대, 절강대 등 유수 대학에서 객원교수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으며, 유럽, 미국 등 세계각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형이상학, 정치철학, 윤리학이다. 현재 중국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특히 21세기 이후 '천하체계'를 제기하여 '천하'담론의 대표학자로 주목받았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메타버스 등 첨단기술이 인간의 존재에 미치는 영향을 주로 사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그가 저술한 <천하체계>가 번역 및 출판되었으며, 2022년 내용을 추가 및 보완한 저서인 <천하>가 출판되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 모두 이긴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그런데 사실 손무의 손자병법에 따르면 정확하게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가 옳다. 갑작스레 지식자랑이나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건 그저 내가 자오팅양의 책 <천하>를 읽게 된 가장 큰 이유였기 때문이다. 나는 왜 중국의 철학이 궁금했을까? 그리고 왜 그것을 꼭 알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혔던 것일까?
시간을 거슬러 대학시절. 언젠가부터 나는 반드시 중국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학교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이유나 특별한 수단 같은 것이 아니었다. 순전히 내 육감에 따른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두 학기 동안 중국의 역사 강의를 수강했고, 거의 만점에 가까운 학점을 이수했다. 굳이 이유를 꼽자면, G2라 불릴 정도로 세계 최정상 국가가 되어버린 중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 하는 학구적 욕심과 그들을 알아야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공존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의 감정이 여즉 내게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지금으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 나는 다시 한번 같은 이유로 중국을 알고자 책 <천하>를 읽게 되었다.
사실 중국에 대한 관심은 늘 있었다. 어떤 뉴스를 보더라도 중국과 관련된 기사가 한 가지 이상은 반드시 등장할 정도로 중국의 영향력은 이미 우리의 일상 속에 깊이 침투해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앞으로의 세계질서 개편에 관심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중국에 대한 관심은 일상적이었다. 그러던 와중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읽다가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여태껏 세계질서에 관해 읽었던 책들은 모조리 서양에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굳이 서양도서만을 찾아 읽은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련 책 대부분이 그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존재를 알고 나자 더욱 관심이 끌렸다. 일반적으로 흔히 피해자와 가해자 쌍방의 말 모두를 들어봐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서양세력과 중국을 피해자와 가해자로 구분 지으려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양측의 의견을 모두 들어봐야 하겠다는 모종의 필요를 느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둘 중 한 국가가 또는 한 문명이 세계 패권을 차지하게 될 것은 확실하니 말이다. 비록 한 개인이 두 국가의 세계관을 알아간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겠지만, 스스로는 나름대로 정립된 생각을 가질 수 있겠다는 학구적 욕심도 역시 있었다.
천하. 삼국지나 무협 장르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너무나도 친숙한 단어다. 그런데 자오팅양이 주장하는 천하체계라는 말은 익숙지 않을 것이다. 천하체계가 과연 무엇일까? 말 그대로 세계를 상대로 세계를 다스리는 '천하제도'라는 의미다. 그는 이 천하체계라는 제도가 글로벌화된 세계에 반드시 필요한 제도이며, 그 근원을 중국의 역사 왕조 중 하나인 주나라에서 찾는다. 하-상나라의 중원 지배가 끝나고 주나라가 중원을 지배할 때, 주나라는 새로운 정치체계를 필요로 했다. 이유인즉슨, 중국 대륙의 수많은 국가들을 통치하기에 주나라는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그리 강력한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는 지배국으로써 매우 특수한 상황이었다. 보통 힘이 센 국가가 약소국들을 지배하기 마련인데 반면 주나라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주나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상식에서는 조금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정치체제를 수립한다. 그것이 바로 천하체계다.
주나라에게 가장 복잡했던 일은 부족한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지배국으로써 주변 국가와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각 국가들과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여기서 등장한 그들의 첫 번째 아이디어가 바로 '내부화'다. 주변 국가들과 발생하는 외부적인 성격의 문제들을 내부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를 위해 주나라는 국가라는 개념보다 상위에 있는 개념인 '천하'를 만들어냈고 모든 국가들을 천하에 포함된 것으로 인식해 내부로 만들었다. 또한 이 내부화를 유지하기 위해 천하에 속한 국가들과 공동의 이익을 공유함으로써 지배국의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이는 사실 매우 상상하기 어려운 제도다. 만약 공동의 이익이 각 국가의 이익보다 못하다면 결코 유지될 수 없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자오팅양 역시 천하체계의 현실적인 실현방안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을 피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찾아내지 못한 듯하다. 어쨌든, 이처럼 특수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주나라는 모든 국가에게 보편적으로 의미가 있는 정치 체제를 만들어냈다.
천하체계는 세 가지 기본 성질을 갖는다. 첫째, 천하체계는 각 나라가 천하체계에 가입하는 이득이 외부에 머무르는 이득보다 큰 것을 보증한다. 둘째, 천하체계는 각 나라가 이익면에서 상호 의존하고 호혜 관계를 형성한다. 따라서 세계의 보편적 안전과 영구적 평화 질서를 보장한다. 셋째, 천하체계는 각 나라의 이익에 도움을 주는 공공 이익, 공공사업 등을 실시하며 보편적이고 함께 누릴 수 있는 성질을 보장한다. 즉, 천하체계는 세계의 내부화를 실현해 모든 외부적인 문제를 내부적인 것으로 만든다. 저자는 이를 무외원칙이라 설명한다. 무외. 바깥이 없고 모두 내부인 상태다. 사실상 이 무외원칙이야 말로 천하체계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바깥의 의미는 기준이 되는 대상이 무엇인지에 따라 범위가 크게 달라진다. '나'를 기준으로 바깥은 타인이다. '가정'을 기준으로 바깥은 다른 가정 또는 다른 부족이 된다. '국가'를 기준으로 바깥은 타국이다. 이것은 흔히 우리가 세계적인 규모에서 사용하는 정체성의 단위에 해당한다. 그런데 무외는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른다. 바깥이 없다는 말은 모두 내부에 있다는 말이고, 쉽게 말해 적이 없는 공존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공존 상태가 바로 천하체계의 기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설명이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판단된다면 아주 정확한 지적이다. 이건 사실 철학적인 문제지 실무적 대응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우려를 남긴 채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간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천하체계의 공존이란 다양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원성을 의미한다. 다원성이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많은 근원을 가지고 있는 성질을 의미하는데, 존중의 유무와 관계없이 단순히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존중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중국식 말장난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로 지나친 비약이라고 느껴지면서도, 저자 입장에서는 중국식 철학이 서양세계가 추구하는 것과는 다르거나 최소한 더 낫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어쨌거나, 종합해 보면 이 천하체계란 지금 21세기를 풍미하고 있는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와는 완전히 딴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천하체계는 나름의 탄탄한 역사와 논리를 갖고 있는 제도 혹은 철학이 맞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상적인 세계제도를 주장하는 자오팅양의 나름의 근거들은 독자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근대의 시작부터 오늘날까지 정치 단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개인'과 '국가'다. 여기에 '천하'라는 개념은 없다. 그러므로 현대 정치 논리의 유효 범위는 국가에 한정되고 정치 단위로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발생하는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여러 국제문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실 국제문제란 말이 국제적인 규모의 문제지 각 국가들 사이의 이권문제와 같다. 국가라는 정치 범위를 초월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대 정치 체계는 세계 정치로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인데, 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국제문제, 국제정치란 국내정치의 연장선이라는 저자의 표현은 눈길을 끈다.
또 한 가지 현대 국제정치가 갖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있다. 바로 유엔(UN)이다. 유엔은 국가 간 충돌을 해결하고 세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계기구다. 그러나 사실 유엔의 등장은 세계적인 정치의 합의에 따라 나온 것이기는 하나 미국의 주도로 탄생하게 되었다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기에 세계기구라는 탈을 쓴 서양기구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통쾌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유엔은 결국 주권 국가 체계에 종속된 국제 협상 기구이고, 세계의 관리기구도 아니고, 세계 정치 제도는 더더욱 아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유엔은 아직도 국제성에 한정되어 있고, 세계성에 도달하지 못했다. 한편으로 태생부터 세계성을 가질 수 없기도 하다. 유엔은 결국 실권이 없는 조직이고 그 어떠한 권력도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제가 발생한다. 유엔은 결코 국가보다 높은 정치권력을 형성하지 못하므로 제국주의 집단의 행위와 세계에 대한 지배를 저지할 능력이 없다. 지금까지 유엔은 꽤 많은 분쟁을 성공적으로 해결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대한 사항에 대해서는 결코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대만문제와 중국 내 소수민족 문제. 중국만 하더라도 유엔은 중국에게 그 어떠한 조정이나 협상을 이끌 능력이 없고, 명분 또한 없다.
저자는 현대 정치가 갖는 한계점의 근원을 조금은 과감하게 짚어내고 있다. 바로 기독교다. 그는 기독교의 출현을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표현한다. 기독교가 갖는 특수한 문화 때문이다. 기독교는 하느님을 믿는 일신교다. 신이 오직 하나라는 믿음은 기독교에 두 가지 특징을 부여했다. 첫 번째는 독단론, 즉 자기 문화의 정신세계가 유일한 진실이고 다른 정신세계는 허구라는 신념이다. 두 번째는 유아독존의 권력 요구다. 자기 문화의 정신세계가 유일하게 올바르기 때문에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는 권력을 반드시 소유해야 하며, 다른 문화의 정신세계를 대체하거나 다른 정신세계를 개종시킬 수 있는 권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특성을 겸비한 기독교는 서양세계의 근본과도 같은데, 이런 특징이 근간인 문화가 서양 세계 전반에 침투해 있어 현재의 문화 대립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상대를 포용하지 못하고 반드시 포교해야 하는 대상이거나, 죽여 없애야 마땅한 악인으로 구별 짓는 기독교의 특수함은 나와 상대를 구분 짓는 강력한 외부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자신이 믿고 있던 대상이 악마화되고 본인은 이교도로 낙인찍혀버리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 논리에도 깊숙이 각인되어 있어, 오늘날 세계를 자신의 편과 적으로 구분 짓는 강력한 매개로 작용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현대의 정치 논리로써는 갈등과 전쟁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며, 일신교의 세계관과 반대로 천하체계는 모든 정신 세계관을 용납할 수 있고 각자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현대 세계 정치 시스템의 한계와 더불어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천하체계로의 변화를 더욱 강력히 촉구한다. 기술발전 때문이다. 인터넷을 매개로 한 인류의 공동 문명은 실제로 만들어지고 있다. 과거와 달리 인류는 단 몇 초만에 반대편 대륙에 있는 인류와 소통이 가능해졌다. 문제는 기술발전이 가져올 미래와 그것에 함유된 문제를 우리는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생물학,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 차세대 기술 혁명은 과연 인류의 진보를 가져올까 아니면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까? 그 누구도 명쾌하게 답할 수 없는 문제다. 상대성이론을 개발한 아인슈타인의 친인류적 노력은 결국 오늘날 인류 스스로를 타깃으로 하는 대량살상무기를 만들어놓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우리는 다가올 미래의 기술에 또 다른 위협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특히 저자는 인류가 '기술의 전방위적 서비스에 대해 벗어날 수 없는 의존상태에 빠질 수 있다'며 이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이미 인류는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기술이 만든 시스템에 의존하게 되는 국민들에 의해 권력이 기존 국가 권력에서 시스템 권력으로 이양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권력은 인류에게 필수적인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형성된다. 가까운 예시로 우리는 이미 카카오톡 먹통 사태가 어떤 형태로 우리의 삶에 불편함을 유발하는지 경험했다. 시스템이 없을 때의 불편함이 크면 클수록 시스템이 갖는 권력은 강력하다. 이로써 맞이하게 되는 결과는 국가와 개인의 중요성이 하락한다는 것이다. 인류 공동 문명의 탄생과 기술이 결합되자 국가 간의 실질적 경계는 땅의 경계를 제외하고는 무너져버렸다. 현대 미국이 갖고 있는 패권 질서의 영향력이 줄어든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더 이상 세계는 제국주의를 기반하는 정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글로벌화로 인해 세계의 게임 규칙이 변해버린 탓이다. 그러므로 천하체계가 필요한 것이다.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보편적인 질서를 만들어야만 새로이 만들어지는 권력에 대항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 세계는 기술 독재와 그로 인한 파멸적인 결과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가 설명하는 천하체계의 주요 골자다.
단순히 이상에 불과하다고 폄하하기에 천하체계가 갖고 있는 정치철학적 방향성은 현대 정치의 문제점을 너무나도 잘 지적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하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정치 철학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십분 공감한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는 생각은 굳이 이 천하체계의 근원을 중국에서 찾았다는 점과 이것이 결국에는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또 다른 당위성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다. 천하체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것을 주도하는 주도국은 존재해야 한다. 저자는 그 주도국이 결코 한 국가일 필요는 없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길고 긴 역사적 사실이나 결국 세계는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휩쓸릴 수밖에 없다는 소용돌이론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 천하체계를 주도해야 할 명분이 있는 국가는 아무래도 중국 밖에 없어 보인다. 천하체계의 한계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안타깝게도 결국 중국이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가 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한 천하체계는 세계질서라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천하>를 읽으며 더욱 확신을 갖게 된 건 결국 중국이 세계의 패권 자리를 노리고 있는게 맞고, 그 욕망은 과거 고대 중국 왕조인 주나라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깊은 염원이라는 점이다.
<천하>의 후반부를 읽으며 영화 신세계의 한 대사가 떠올랐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이 결코 한쪽이 무너지지 않은 이상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공존을 추구하지만 미국과는 공존할 수 없다는 것. 결국 중국이 주도권을 잡아야만이 미국과 공존을 할 수 있게 되는 천하체계의 역설은 과연 세계 질서 개편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게 될까? 만약 중국이 정말로 세계의 주도권을 갖는다면 그들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모순은 어떻게 해결하려는 것일까? 천하체계는 저자인 자오팅양이 만들어낸 정치 철학인데 과연 정말 중국인들은 그의 말에 동의할까? 풀리지 않은 많은 의문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던 훌륭한 책인 것은 분명하다. 자오팅양의 책 <천하>를 추천하며, 책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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