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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Sep 28. 2024

<나의 트랜지션 일기> 71장: 혐오와 차별에 맞서다

[71장: 혐오와 차별에 맞서다]



내가 아무리 나를 유사여자라고 생각한다지만 그건 내가 나를 생각하는 것일 뿐이고, 우리 사회에는 이미 수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존재하고 있고 모두가 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 따라서 나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트랜스젠더들이 혐오와 차별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세상, 트랜스젠더들이 자유롭게 자신을 발견하고 확립해나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싸워나갈 것이다. 

소수자혐오는 사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공적인 사건이다. 무슨말이냐 하면, 혐오표현은 개인을 공격하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실은 그 개인이 속한 소수자 집단 전체를 공격하고 있는거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유럽 축구리그에서 뛰고있는 손흥민 선수에 대해 누군가가 축구실력을 비하한다면 그건 선수 개인에 대한 공격이다. 하지만 “옐로몽키” 라고 하거나 ‘눈 찢기’ 제스쳐를 보인다면 손 선수를 포함한 한국인과 동양인 모두를 모욕하는 것이다. 여성혐오든 장애인혐오든 성소수자혐오든 다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나에게 직접적으로 트랜스젠더 혐오표현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겪었다. 내 눈앞에서 내 존재를 부정하고 내 정체성을 모욕하는 말을 들을 때는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발이 벌벌 떨린다. 너무나도 무섭고 아프고 화가 난다. 예전에는 부당한 일을 겪으면 그저 혼자 조용히 웅크려서 울기만 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경험이 적었기도 했고, 내가 괜히 화를 내거나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면 트랜스젠더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더욱 강화시킬까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 크다. 하지만 이제는 원하지 않았지만 그때보단 내성이 생겼고, 어차피 내가 어떻게 하든 욕할 사람은 욕할 것임을 알기에 울거나 숨기보단 싸우는 것을 택하게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남자냐 여자냐” 라는 질문을 하면 이제는 그대로 똑같이 돌려준다. 그럼 "당신은 남자세요 여자세요?" 그러면 본인도 당황하고 머쓱해서 사과한다. 이 단계에서도 잘못을 모른다면 더 나아가서 남의 가랑이가 왜 궁금하냐, 당신 가랑이엔 뭐가 달렸냐고 해줄 수도 있다.   

질문받지 않는다는 것도 권력이므로 그 권력에 균열을 내주는 것이다. 자기가 당해봐야 그 질문이 얼마나 무례했는지를 안다.

커밍아웃을 했더니 나를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평소에 트랜스젠더에 대해 궁금했던 것을 이것저것 물어보던 사람도 있었다. 불편했지만 기껏 친절하게 다 설명을 해줬더니 그 직후에 나를 남자로 지칭하는 말을 했다. 그때는 울긴 했지만 그래도 조목조목 할 말 다하고 꽤나 성의있는 사과와 반성을 받아냈다. “나는 당신과 인간 대 인간으로 관계를 맺고 싶어서 나를 드러낸 것이지, 당신의 얕은 호기심을 풀어주기 위한 존재가 아니다, 궁금한건 당신이 따로 공부해야 될 일이고, 그걸 나한테 다 직접 물어보는건 굉장히 무례한 일이다. 그리고 어차피 내가 당신한테 남자새끼인거면 내가 뭐하러 당신한테 친절하게 이런걸 알려주고 당신과의 관계에 에너지를 쓰냐. 말 한 마디에도 사람이 죽을 수 있다. 본인이 진보적이고 열려있다고 착각하는거 같은데 건방떨지 말고 부끄러운줄 아시라” 뭐 이런식의 말을 했던 것 같다. 상처는 받았지만 그래도 할 말은 다 해서 그나마 속은 시원했다.      


그런가하면 트랜지션 전에 잠깐 알고지냈던 어떤 남자지인으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 내 근황을 물으면서, 내 카톡프사와 페북프사에 있는 여자는 누구냐고, 혹시 여자친구냐고 했다. 그래서 나는 굳이 숨기거나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서 그거 나라고 하면서 내 변화를 설명했다. 그랬더니 그는 대뜸 나보고 여자로 바뀐 내 모습을 실제로도 보고싶다고 했다. 기분이 이상했지만 거기까진 그러려니 했는데, 그 다음에 이어진 말. “남자친구 없으시면 제가 첫 남친이 되어드릴 수 있는데. 첫 섹스상대가 되어드릴 수 있는데.” ??? 너무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워서 어버버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일반적인 시스여성에게도 이런말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을까? 트랜스젠더니까 더 만만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나 스스로의 (성적인)가치가 너무 낮은것처럼 느껴져서 자존감도 너무 떨어지고 힘들었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되니까, 생각을 정리하고 그 남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왜 내가 트랜스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신한테 그딴 소리를 들어야 하냐, 당신은 얼굴도 못생겼고 남자로서의 매력도 전혀 없어서 줘도 안먹는다, 앞으로는 어디가서 다른 여성들이나 성소수자들한테 그딴 소리하고 다니지 마라” 는 식으로 보내고 바로 차단을 했다. 남친 해준다, 섹스 해준다 하면 내가 고마워할줄 알았나보지? 정신차리고 주제파악하고 이제는 어디가서 다시는 그런짓 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떤 인권단체 활동가 워크숍을 갔다가도 불쾌한 일을 겪었다. 1박2일 행사였는데 분명 숙소가 있을텐데도 불구하고 참가신청서에 성별을 적는 항목이 없었다. 성중립숙소나 1인숙소는 아닐텐데 의아했다. 참가해보니 숙소는 역시 남녀로 분리되어있는게 맞았고, 운영진 측에서 참가자들 성별을 멋대로 추정하고 판단해서 숙소배정을 해놨던 상태였다. 그것부터가 황당했는데 더욱 어이가 없었던건 내 성별이 남자로 적혀있던 것이었다. 도대체 누가 무슨 기준으로 타인의 성별을 감히 멋대로, 심지어 틀리기까지 하는 판단을 했단 말인가. 그것도 인권운동을 한다는 곳에서 말이다. “누군가의 성별을 함부로 판단할 권리는 당신들에게 없으며, 트랜스젠더에게 있어서는 생존권의 문제인데 왜 이딴식으로 일처리를 했냐, 당신들이 외치는 인권에 트랜스젠더는 없는거냐, 부끄러운줄 아시라” 라고 책임자를 불러 강하게 문제제기를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사과받은 이후 남은 일정을 보이콧 했으며, 후에 재발방지대책을 약속하는 문서를 공문으로 받았다.      


숙소라는건 성별이분법이 가장 강하게 작동하는 장소 중 하나다. 언제는 서울에 있는 모 호텔에서 여성인 친구 2명과 숙소를 예약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예약 화면에 ‘3인이상 혼숙금지’ 라고 쓰여있는걸 발견했다. 전화해서 물어보니 호텔에서는 ‘사고방지를 위해’ 혼숙이 금지이며 투숙객들의 성별은 신분증을 통해 확인한다고 하였다. 당시는 성별정정하기 전이었어서, 나는 신분증상으로는 남자로 되어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내 사정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호텔측에서는 “사정은 알겠으나 어쨌든 신분증상 남자로 되어있으면 우리는 남자로 볼 수 밖에 없다” 라며 나를 거부하였다. 나는 이것이 너무나 부당하고 명백한 차별이라고 판단하여 곧바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했고, 인권위의 중재로 호텔측으로부터 사과문을 받을 수 있었다. 인권위가 하는건 권고 수준이라 딱히 법적 강제력이 없기에 별 기대는 안했는데,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는 문서를 받으니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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