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Note

바르셀로나에서는 참견하지 않는다.

당신과 다른 내가 불편한가요?

by 마케터 아델

"나이가 많네, 결혼해야지."

"결혼 안 하고 뭐하고 있어요. 빨리 좋은 사람 만나요."


바르셀로나에서 가이드를 시작하면서 한국 어르신을 만날 때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였다. 바르셀로나에서 지낸 지 3년쯤 되었을 때 한국말을 하고 싶어 가이드를 시작하게 되었고 작은 소규모 투어를 혼자서 운영하다가 20~30명 그룹을 책임지는 패키지 가이드 일도 맡게 되었다.


패키지 투어의 고객이 대부분 우리 부모님 나이대 분들이다 보니 저런 참견을 받는 게 놀라울 일은 아니었다. 내가 딸이나 조카 같아서 건네는 그분들의 의도를 알기 때문에 친근함을 드러내는 한마디 정도로 생각하고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성인이 되어 이미 많이 겪어봤기에 아무렇지 않았다. 그러나 나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면서 내 인생에 대한 왈가왈부하는 평가와 진심이 전혀 담기지 않은 조언은 달갑지 않았고 참견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참견하지 않는다. 바르셀로나에서 생활하면서 만났던 어른들의 태도와 비교하게 되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카탈루냐 시골집에 모이는 친구 가족 행사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파우 Pau를 알게 되었다. 친구의 많은 사촌들 중 한 명이었는다. 파우는 뚜렷한 직업이 없었고 서른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결혼도 하지 않고 여자친구도 없었다. 친해도 나이를 궁금해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니 파우의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었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그가 나는 걱정되었다. 내가 한국 사람의 눈으로 무례하게 평가하고는 내 멋대로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가족의 생일과 크리스마스마다 모이는 친구의 친척들은 아무도 그를 걱정하지 않았다. 내가 그들의 속마음까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가족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그에게 훈수를 두지 않았다. 우리나라였다면 취업과 결혼을 하지 못한 파우는 콤보 패키지로 하루 종일 친척들의 질문과 훈수에 시달릴 각이었다고 생각했다. 걱정되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파우에게 가족들은 위로와 응원을 건넬 뿐이었다. 파우에게는 명절 증후군이 없었다.



친구에게 파우를 걱정하지 않는지 물었다. 친구는 파우가 좋은 직업이 있는 것도 행복하게 해주는 여자친구나 와이프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걱정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형제처럼 같이 자란 그가 그저 행복하기를 바란다고만 했다. 그의 인생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함부로 평가하고 걱정하며 조언할 수 없다고 내 친구가 덧붙였다. 가족이나 진정한 친구 한두 명이 파우에게 진심을 담아 조언을 할 수 있겠지만 웬만하면 그가 부탁하기 전에는 하지 않는 게 맞는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나에게 친구의 설명은 충격적이었다. 가족들은 파우의 인생을 옳고 그름으로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그를 걱정하거나 그의 인생에 참견하지 않았다. 파우를 존중하기 때문에 쉽게 끼어들어 훈수를 두지 않았다. 친구의 이야기와 가족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니 내가 얼마나 잘못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친구에게 파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들을 수 있었다. 모든 운동을 선수처럼 잘하는 파우는 그중에서도 사이클을 가장 좋아한다. 자전거가 너무 좋아 자전거 가게에서 일하는 그는 아는 게 너무 많아 손님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원이며 판매도 제일 많이 해서 인센티브를 많이 받는다. 가게에는 하루에 4시간만 일하면 되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이클을 타고 매일 2~3시간 탄다. 남는 시간은 아들처럼 아끼는 개 아젝스와 산책을 하며 마무리한다. 원하는 삶을 지내고 있는 파우는 항상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파우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아주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 내 멋대로 파우의 겉모습 한두 개를 이어 판단한 다음 진심은 전혀 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파우에게 내 의견을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그런 과정을 머릿속으로 거쳤다는 것만으로도 많이 미안했다. 아무리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에 대해 모두 알 수 없는데 내가 이런 식으로 상대를 대하는 건 잘못된 일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타인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여러 상상의 나래를 펼쳐대는 내 무의식을 컨트롤하는 게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보이는 사실 이외에 다른 내 생각을 더해서 평가하려 하지 않았다. 내 눈앞에 있는 것들만 보고 그 사람 자체를 존중하는데 집중했더니 섣부른 판단이나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내 나름의 방법을 터득하기는 했지만 한 번에 고쳐지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노력이 필요하다. 나만의 의견은 있을 수 있지만 쉽게 내뱉지 않는다. 올고 그름은 판단이 되어야 하지만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이 그의 삶을 좋다 나쁘다로 간단히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온전히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진심 한 방울도 없이 던지는 참견과 훈수는 이미 그 사람을 자기 기준에서 마음대로 평가했다는 뜻이다. 타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행동이다. 그 혹은 그녀를 아무런 평가 없이 그대로 존중한다면 쓸데없는 참견과 훈수는 튀어나오지 않을 것 같다.




부탁하지도 않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거 같다며 조언을 던졌다면 한번 생각해 보자.

어제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평가한 건 아닐까?











당신과 다른 내가 불편한가요?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은 쉽게 믿고 존중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잠시도 견디지 못하고 함부로 판단하고 무시한다. 남의 인생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인사말과 함께 훈수를 둔다. 아시아 어느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 하찮다고 생각하는 유럽 사람들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 읽었을 법한 선입견들로 농담을 던진다.


한국에서는 남들과 조금 다르게 산다는 이유로, 스페인에서는 남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마음을 여러 번 다쳤지만 여전히 대처법은 모르겠다.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게 애매하기도 하고 나 혼자 속상한 마음을 달래면 상황은 곧 종료되기 때문에 맞설 의욕을 잃었다. 사실 언젠가부터는 이런 대우를 받는 게 익숙해져 나에게 무례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 것도 같다.


그때는 아무 말 하지 못했던 내가 한참이 지난 뒤에야 블로그에 이야기하는 이유는 아팠던 마음을 이제는 정리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 글을 읽고 한 분이라도 그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단단하게 박혀있던 아픈 감정이 풀어질 것 같다. 그렇게 위로받고 싶어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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