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
아무도 모르지만 나만이 알고 있는 소동이 끝난 뒤 며칠 후 병원을 찾았다. 정기적 방문에 불과했지만 오늘 병원 로비의 모습은 내가 평소에 알던 모습과는 달라 보였다. 항우울제가 나의 뇌로 보내는 차가운 감정의 신호와 함께 전해지는 말라 비틀어져버린 생존감. 그렇다, 분명 살아는 있지만 좀비처럼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모두가 아파서 앉아있는 병원 대기실에서 마음이 아픈 나는 시간의 무익함을 느끼며 내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가난한 삶에 세끼 분의 식사비가 사라지는 치료비는 무엇을 위해 쓰는 것일까?’
30분 가량을 기다렸나? 내 이름이 호명되자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진료실로 향해갔다. 모두다 나와 같이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는 환자들 사이로 지나갈 때, 대체 너는 왜 살아있는가라고 무언의 질문을 남기며 나를 비난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죄의식과 철저한 실패감에 젖은 나는 조리돌림을 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진료실 문 앞에 다가섰다.
“안녕하세요”
언제나 항상 상냥하게 맞아주시는 전공의 선생님이 앉아계셨다. 그 동안의 안부를 묻고 약의 효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역시 따분한 이야기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지난 며칠 전의 일을 이야기 하였다. 아무도 모르지만 나만이 알고 있는 소동. 이제는 최소한 의사선생님은 알고 있는 작은 소동이 되었다.
“입원을 하시는 건 어떠세요?”
“입원은 부담이 됩니다. 그냥 통원치료 열심히 받을게요.”
“네, 대신에 2주에 한번 방문하세요. 그리고 승윤님, 우선은 자그마한 목표를 하나 두고 하나 하나씩 이루어 나가보세요. 그리고 때론 시내버스를 타고 아무데나 가보시면서 정서를 환기시키는 것이 좋아요.”
그 순간 나는 내가 그 동안 잊고 살았던 것들이 떠올랐다. 약 2년전, 축구 서포터즈에서 만난 형이 했던 그 말.
“일단 작은 목표부터 이루어라. 그러면 동기부여가 될 거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나는 형언할 수 없는 좌절감에 빠져있던 시절이기 때문에 잠깐 떠오른 뒤 다시 뇌에서 사라져갔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집으로 향해갔다. 끝 없는 어둠의 터널 속에서 나는 빠져나올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진 채 걸었다. 천천히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내가 그 동안 해왔던 것들을 천천히 복기해봤다. 태어나서부터 지금에 이르는 나의 삶에 대해서.
그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항상 쉽게 싫증 내고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 속에서 결과가 쉽게 나오지 않으면 쉽게 포기했던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노력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니다. 계획만 거창하게 세우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남들보다 결과가 부족하다고 자신을 자책하거나 ‘해서 뭐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중도 하차하는 일 뿐이었다. 이번 소동 역시 삶의 완결이라는 아주 긴 마라톤을 뛰면서 그러한 안일한 생각으로 중도 하차를 시도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날의 기억은 이국을 향한 노스텔지어가 피어나는 맹아가 되었다.
-4-
뜨거운 여름이 찾아왔다. 이 때 나는 가족들에게 돌아갈 것을 결심하고 죽음의 그림자가 남아 있던 자취방을 정리하였다. 사실 자취방에서 지내면서 가족들 전화도 잘 안받는 편이라 가족들이 걱정이 많았다. 그런 걱정도 불식 시킬 겸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쇠약해진 마음도 추스리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지에 대해 결정하기 위함이었다.
평소 내게 있어서 보통사람의 일상생활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학교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무서웠고 어둠이 서린 미래는 코스믹 호러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이러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혼자 나와 살면서 풋볼매니저 게임과 함께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탐닉하며 밤새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한편으로는 축구장을 오고 가며 거기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로 나의 생명을 연장시켰다. 사실 사람 많은 것을 두려워했지만 적어도 축구장은 내게 가시 돋힌 공간은 아니었기에 수 많은 군중이 있더라도 나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을 도피 한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를 정주행 하거나 축구를 보는 행위 등을 통해 얻는 것은 너무나도 난이도가 낮은 목표이다. 그렇다고 이를 통해 삶에 지혜를 얻거나 어려움을 겪으면서 내가 성숙해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도 아니었다.
세상에 보고 싶은 풍경들이 많았다. 내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통하지 않고, 문자를 보더라도 뜻을 바로 이해할 수 없던 곳들. 육중한 비행기에서 날아올랐을 때 보이는 이국의 육지와 구름 그리고 태양. 아직까지 차가운지 따뜻한지 알 수는 없지만 왠지 맛있을 것만 같은 기내식도 한번은 먹어보고 싶었다. 공항에서 여권에 스탬프를 찍고 이국으로 나간다는 그 설렘도 꼭 한번은 느끼고 싶었다. 그때 하나의 목표를 잡았다.
“그래 2009년엔, 나만의 작은 목표 하나를 이루자. 나의 힘으로 외국 한번 가보자.”
한번의 결심은 수 많은 그림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입국심사를 한번도 받아 본적이 없었지만 해외에 도착하여 입국심사를 받고 환영을 의미하는 스탬프가 여권에 찍히는 순간을 상상하자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비로소 생의 기운이 나를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 항상 수동적으로 남들이 시키는 일만 하거나 일상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내가 능동적으로 나서서 무언가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힘이 생겨났다.
그런데 어딜 가야할지가 관건이었다. 축구팬들의 성지 서유럽, 대국이자 모두가 선망하는 미국, 가깝고도 정서적으로도 약간은 비슷한 일본이 물망에 올랐다. 이 가운데 가장 가고 싶었던 것은 다름아닌 서유럽이었다. 한살이라도 젊을 때 더 먼 곳을 가고 내 삶의 절반이라 할 수 있는 축구의 발원지와 성지들을 순례하며 축구팬으로서 꿈을 이루고 싶었다. 거대한 콜로세움과 같은 누캄프, 아기자기하면서 전통이 살아 숨쉬는 하이버리, 영국 축구의 중심 웸블리, 당시 세계축구의 상징적인 경기장 올드트래포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축구장 산 시로에 이르기 까지 이 모든 것을 내 눈 안에 담고 사진에 담아 내 머리를 비롯한 다양한 저장장치에 저장해두고 싶었다. 그 순간이 온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축구팬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