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배우를 좋아하던 15살의 소녀, 세계 여행을 시작하다.
15살 무렵. 방학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무료하던 참에 티브이를 켠 후부터였다.
영화 채널에서는 이내 한 영화가 시작되었고, 상어에 쫓기는 딥블루 씨 (Deep Blue Sea)라는 스릴러 영화였다. 평소에도 영화를 즐겨 보았는데, 그날따라 유독 영화에 집중이 잘 되었다.
한편을 시청하고 이내 방영되는 영화는 귀여운 소녀가 주인공인 마틸다(Matilda). 너무 재밌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영화 두 편을 연달아 감상했다.
광고가 끝난 후, 곧이어 상영하는 또 다른 영화,
제목은 ‘해피 길모어 (Happy Gilmore)’ 정말 생소했던 제목이었으나, '할 것도 없는데 영화나 보자' 하며 아무런 생각 없이 시청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보게 된 이 영화가 훗날 내 인생을 바꾸게 될 줄 알았을까?
이상하게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기분이 묘했고, 뒤통수를 탁! 하고 맞은 기분이 들었다.
주인공이 저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가?
저 역을 연기하는 사람은 누구길래 저렇게 연기를 잘할까?
이유를 알 수 없는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고 단순히 사라질 의문이 아니었다.
그전까지는 나는 축구에 아주 미쳐 있었고, 집에서 유니폼을 입고 새벽마다 프리미어 리그를 시청하고 매주 연고팀의 경기를 보기위해 경기장으로 뛰어가는 평범한 중학생이였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1996년에 개봉한 ‘해피 길모어 (Happy Gilmore)' 였고, 내가 주의 깊게 보고 있었던 배우는 할리우드에서 유명한 코미디 배우 ‘아담 샌들러(Adam Sandler)’였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영화배우였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손꼽히는 코미디언, 배우, 연출 그리고 가수로까지 활동도 한다고 한다. 이 사람은 정말 누구일까? 브래드 피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처럼 조각미남도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나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사람.
그에게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통해 수집할 수 있는 정보를 모두 수집하고,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그의 영화는 전부 감상했다. 이때까지 어떤 배우를 보고도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듯 연기를 그렇게 능청스럽게 하는 사람은 못 보았다.
그 영화를 본 이후로, 내 일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한 사람에 대한 관심은 그 사람이 살고 있는 '미국'이란 나라까지 확대되었다.
인터넷으로 보는 미국이란 세상은 내가 십 년 조금 넘게 살았던 한국이란 나라와는 정 반대로 느껴졌고, 그것에 대한 관심은 서서히 내가 보지 못했던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보고 싶다는 꿈으로 번졌다.
영화에 대한 관심도 커져서 영화 공부를 하고 싶었고, 언젠가 그를 미국에서 만날 것이라는 버킷 리스트도 생겼다.
나의 열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졌지만, 15살의 학생이었고 여행을 가기 위해 부모님께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것도 내 자신이 원하지 않았다. 내가 당장 미국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해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15살은 미국이란 나라가 정말 다른 세상에 있는 곳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하면 내가 아담 샌들러에게 닿을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중 나는 그에게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지만 편지를 보낼 주소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소문 한끝에 할리우드 배우들의 주소를 찾아주던 한 블로거를 찾았고, 그분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정말 감사하게도 그분이 아담 샌들러의 주소를 알려 주셨고 본격적으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영어를 못했기 때문에 내가 한글로 전하고 싶은 말을 쓰고 당시 어렸을 때 캐나다로 유학을 갔다 왔던 친한 친구에게 번역을 부탁하여 그렇게 같이 편지를 완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편지를 보내기도 전에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티브이와 인터넷으로만 접하던 그에게 직접 편지를 쓰고 있다니, 답장을 받을 수 있다는 확률도 없었지만 그 자체만으로 즐거웠다.
난생처음으로 연예인에게 팬 레터를, 그것도 할리우드 배우에게 보낸다니!
공을 들여 쓴 편지를 잘 동봉하여 가지고 떨리는 마음을 안고 우체국으로 향했다.
편지를 보낸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답장을 받는다는 것조차 기대를 하지 않았다. 내 마음을 전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싶어 그렇게 잊고 지냈다.
집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퇴근하고 돌아오시는 아빠가 ‘가을아, 미국에서 편지 왔네?’ 하면서 커다랗고 노란 서류 봉투를 건네주셨다. ‘미국에서 왜 나한테 편지가 와?’ 하며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받았다.
From. Adam Sandler
정말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일어났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보낸 편지의 답장이 정확히 20일 만에 한국으로 도착한 것이었다.
그것도 할리우드 유명 배우에게서,
내가 보낸 포스터 3장에 자신의 사인을 각각 다 하고, 'Gaeul-Seo is the sweetest!’라고 쓴 귀여운 메세지도 함께 말이다!
15살, 나의 용기 있던 도전은 간절히 원하고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건 없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져다주었고, 이 일은 내 인생의 가장 큰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그런 영화 같은 일이 발생한 후에, 미국과 아담 샌들러에 대한 관심이 마음속에 더욱 커졌다.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는 싫었고 어떻게 하면 미국이란 나라에 가 볼 수 있을까 고민하며 유학의 길도 꿈꿨지만, 중학생의 어린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금액이었다. 학생 비자를 받는 것도 상당히 어렵고 유학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한 것 같았다.
그때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읽으며 미국에 대한 간접 경험을 하는 것 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년동안 인터넷으로 다른 세상 얘기를 접하다 보니 미국을 넘어 서양의 나라들이 궁금해졌다.
한국이 아닌 다른 세상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고민을 하던 내게 우연히 사촌 언니는 자신이 다녀온 '호주 워킹 홀리데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고, 1년동안 호주에서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여행도 할 수 솔깃한 얘기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드디어 나에게도 미국을 갈 수 있는 루트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바로 이거야!’를 외치며 15살의 나는 본격적으로 호주 워킹 홀리데이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20살이 되면 호주에서 1년 동안 여행 자금을 모아 미국으로 건너가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