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서비스 아파트(Service Apartment)를 렌트해서 살고 있다. 나는 부동산을 통해 계약을 맺고 거주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유닛들은 손님들이 예약을 해서 단기/장기로 머무는 호텔 같은 곳이다. 그렇기에 나처럼 렌트를 해서 사는 앞집을 제외하고, 내가 사는 층에서는 매일 다른 투숙객들을 만난다. 그래서 새롭기도 하고, 매번 마주칠 때마다 그동안 잘 지냈는지 안부를 묻지 않아도 돼서 편한 것도 있다.
여느 때처럼 집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로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사는 유닛이 제일 마지막에 위치하고 있어서 엘리베이터까지 가려면 좀 걸어가야 하는 구조이다. 엘리베이터에 도착하니 어떤 할아버지가 버튼을 누르고 계셨고 누르자마자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나는 할아버지를 뒤따라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기다리고 있던 상태도 아니고 심지어 할아버지는 등지고 계셔서 서로 얼굴을 본 적도 없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에 내가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할아버지가 나를 휙 보시더니 한마디 한다.
왜 굿모닝이라고 인사 안 하니?
여기에서는 굿모닝이라고 인사해야 하거든?
순간 말문이 막혔다. 서로 얼굴을 본 적도 없었고, 심지어 눈이 마주치지도 않은 상태였고 내가 엘리베이터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 순간에 그렇게 말씀하신 거다. 만약에 엘리베이터에 타고나서 시간이 좀 지난 상태였으면 모를까. 갑작스러운 물음에 너무 당황스러워서 가만히 쳐다보았는데 또 다른 질문이 온다.
내 말 이해했니?
너 영어 하니?
상쾌한 아침을 이렇게 시작해야 한다니. 사실 첫 질문만 들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두 번째 질문은 내가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영어를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기분 나빴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태도도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 아닌, 훈계를 하려는 말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대꾸했다.
ㅡ 그런데 여기서도 모든 사람이 굿모닝이라고 하지 않던데요? 그리고 먼저 굿모닝이라고 하셨어도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다 이해했고 영어도 하거든요. 왜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시는 거죠?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는 모르겠지만 해외 살면서 전투력이 상승했나 보다. 그 사이 엘리베이터는 로비에 도착했고 문이 열렸다. 할아버지는 후다닥 도망치듯 나가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쏘리쏘리쏘리..
할아버지의 억양으로 보아 호주에서 나고 자란 분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이 할아버지도 호주 시민권을 취득한 '호주 사람'일 수도 있고 늦게나마 호주로 이민 온 영주권자 혹은 여행객일 수도 있기 때문에 나도 억양만으로 추측하고 단정 짓긴 싫다. 할아버지도 옛날 사람이니 아시아인=영어를 못한다라고 생각해서 물어봤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제는 어떤 일이 있을 때 인종차별이라고 단정 짓기보다는 '무례함'과 '인종차별'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려고 한다. 이 날은 운 안 좋게 훈계하기 좋아하는 어느 할아버지에게 걸렸다고 생각한다.
호주에는 마트에 셀프 계산대가 있다. 장을 보고 그곳에서 계산을 하는데 양배추가 스캔이 잘 안 되는 것이었다. 연세가 좀 있고 억양이 센 아시안 아주머니가 오셨는데 내가 물건을 드리니 나에게 명령하듯 '여기다가 두세요!'라고 하시고 내가 물건을 드리자 손사래를 치면서 잡지 않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아주머니는 나와 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고 늘 무례하다고 생각했었다. 만약, 같은 상황에서 백인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예전의 나라면 '내가 아시안이라서 무례하게 대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아주머니가 무례했을 뿐 인종차별이 될 발언이나 행동을 하진 않았다.
한 번은 벤치에 앉아있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나와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면서 "워홀 하는 중이니? 여기서 공부하니? Do you like my city?"라고 물어보았다. 그 순간 나는 기분이 언짢아졌다. 나는 워홀을 하는 중도 아니고, 공부를 하고 있지도 않은데 왜 그렇게 단정 지어서 물어볼까. 인종차별인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사람은 정말 궁금해서 물어봤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도 한국에 가서 외국인들을 만난다면 질문을 할 때 한번 더 생각을 해봐야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분은 호주 사람도 아니었고 스코티쉬였지만 왜 my city라고 한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기억은 좋지 않았지만, 해외에서 무례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 인종차별을 한 것이라고 단정 짓고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디에나 이상한 사람은 있고 무례한 사람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