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스카겐, 말뫼
by이윤실4분전
아나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발음하는지도 몰랐던 아나 안셰르라는 북유럽 화가. 1859년 덴마크 최북단인 스카겐에서 태어나 1935년 그곳에서 사망한 그는 일상을 그린 화가로 유명했다. 동료였던 미하엘과 결혼한 뒤 스카겐 예술가 집단들의 중심인물이 되기도 했다.
아나의 원래 이름은 아나 키르스틴 브뢴둠. 여관을 경영하던 어머니의 지지와 도움으로 당시 여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코펜하겐 덴마크 왕립미술원에서 미술 교육을 받았다. 이후 그의 그림 소재에는 어머니가 ‘책 읽는 어머니’ ‘이야기하는 어머니’ ‘병석에 누운 어머니’ 등으로 수없이 등장한다.
그는 일상을 그렸다. 일상을 그린 그의 그림은 따뜻하다. 빛을 잘 포착했기 때문이다. 자연을 잘 표현했으며 사람에 대한 섬세한 관찰도 그림에 담겨 있다.
아나가 묘사한 스카겐의 일상과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넝쿨처럼 딸려 나오는 스카겐 화가들에게도 관심이 생겼다. 특히 빌헬름 하메르스회의의 회색을 경험하고 싶었다.
고흐와 고갱의 작품전이 열리는 네덜란드에 가기 위해 불가능에 가까웠던 휴가를 고집해 당시 부장에게 지청구를 들은 이력(?)을 가진 나는 무리해서라도 이 화가와 스카겐의 평범한 세월을 그린 비범한 화가들을 만나고 싶었다.
이제 그들을 보러 간다.
20230601 흐림.
격렬했던 야근을 마치고 1일 15시30분 씻고 17:00께 집에서 나오다. 저상버스를 탈까 했으나 버스에 사람도 많고, 생각보다 민망해 그냥 하던 대로 하기로. 공항버스 타는 정류장은 택시로 5300원.
그동안 겁나게 오른(17000원) 공항버스 타고 19시 인천 1터미널 공항 도착. 시내와 자유로는 꽤 막힌다. 버스에는 언제나 붐볐던 평소와 다르게 두 사람만 타 있다. 이것 또한 착잡하군.
인천공항은 많이 변했다. 리모델링을 거쳐 좀 고급스러워졌다고 할까? 그러나 이전에는 잡화 파는 공간이 꽤 있었는데 좀 줄어들었다. 김치 종류도 아주 제한적이고. 심지어 종가집은 없다. 비비고 김치 구입. 14900원. 질문 많은 아주머니에게 잡혀 있는 점원은 손님을 제대로 맞지 못한다.
카타르항공 데스크는 j. 지상직원이 나와 있어 벌써? 했지만 지금은 콴타스 데스크다.
4층 푸드코트 북촌만두에서 랭면 9500원. 만두는 메뉴에 없다. 카페 구르메디저트에 들어가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4500원. 요즘 전기 인심이 박한데 이곳에서는 콘센트를 이용할 수 있다. 좀 한적하기도 하고. 공항 와이파이 잡아 노트북 몰두. 21시 30분까지 영업하는 카페에서 나오니 카타르항공 데스크 열려 있다. 온라인체크인해 짐만 부치고 10분 대기. 면세구역에 들어왔으나 컴컴하다. 46번 게이트. 차징포인트에서 아까 끝내지 못한 드라마를 보다. 내 옆에는 중동 여인들. 동영상 보며 신나게 웃던 이 여인들은 결국 코펜하겐까지 동행하게 된다.
여행은 긴장의 연속이다. 특히 혼자 하는 여행은. 자유롭고 신나지만 극한 상황에 처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갑자기 신청하지도 않은 채식 기내식을 먹겠다고 하지 않나, 로컬타임 헷갈리는 것도 항공사 탓을 했던 흑역사가 떠오른다. 이후 많은 경험치가 쌓이고 어느 부분은 익숙해져 심드렁하지만 아직도 여행을 시작할 때는 가슴이 마구 뛴다.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0시 30분에도 탑승하지 못한다. 결국 이륙이 늦었다.
먼저 지정한 좌석 옆자리는 중동 청년 둘. 뭔가 좀 부산스럽다. 그 중 키 큰 청년은 취침 시간에 테이블 꺼내놓고 베개 놓고 매우 구겨진 상태로 잔다. 불편할 텐데.
도하 시간으로 20시 30분쯤 기내식 나온다. 콤팩트해진 느낌? 김치, 고추장 같은 거 없다. 심지어는 소금, 후추도 보이지 않는다. 갈비찜과 밥과 볶은 흰 김치가 단출한 한 세트. 마카로니 샐러드 하나, 후식으로 우유맛이 많이 나는 푸딩이 나오는군. 도구들은 쇠로 바뀌어 있다. 9.11 테러 이후 한참 동안은 플라스틱을 줬던 것 같은데 이제는 괜찮은가 보다. 화이트와인 1잔 마시다.
엔터테인먼트에는 해리포터 시리즈가 다 있다. ‘마법사의 돌’ 선택, 착륙 순간까지 보다. 아침 기내식은 오믈렛과 감자. 예상 가능한 맛. 과일이 좋았다. 수박 2, 멜론 2, 파인애플 2, 포도 1알. 버터로 오해한 딸기잼을 챙기다. 눈 나쁜 자의 여행은 열악하다. 이번에도 no salt, no pepper. 커피 마시다. 나쁘지 않은데?
착륙 후 발견한 동전. 옆 총각들에게 너희 거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소액인지 반응도 시큰둥하다. 좌석 앞주머니에 넣어버린다.
도하 하마드공항 도착. 어마어마하다. 인천공항 분발해야겠어. 식물을 엄청 들여놓고 그곳을 거닐 수 있는 다리까지 만들어놓았다. 좀 천천히 보고 싶었으나 보딩 시간 때문에 빨리 걷기. 공항은 코로나 19 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커졌다. 그곳이 c, d구역. 코펜하겐행 핀에어는 b8 게이트, 즉 확장 전의 지역이다. 2층에는 셔틀도 다닌다. 노란 인형이 있는 익숙한 곳이 b게이트다. 체크인하고 출국 대기실에 들어가야 한다.
딜레이 없이 보딩.
아무 생각 없이 지정한 자리가 프리미엄 이코노미. 어매니티, 헤드셋도 제대로다. 립밤, 크림은 물론 담요도 훌륭하고 목베개도 있다.
기내식은 오믈렛. 카타르항공 오믈렛과 비교되는 맛이다. 과일도 좋다. 공동운항이라 어떨까 했던 우려가 한 번에 날아간다. 디자인의 나라답게 냅킨까지 쿨하다. 갑자기 냅킨을 아끼기 시작했다. 굳이 흠을 잡자면 진저에일이나 탄산수가 없다는 것? 할 수 없이 커피 마시다.
머릿속 시뮬레이션 시작. 혼자 여행이 좋지만 피곤한 것은 대충 할 수 없다는 것? 공항에서 atm 찾아 환전하고 코펜하겐카드 실물로 바꾸기. 코펜하겐카드 바꾸는 곳을 다운받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내리기 전에 유심 교체해야겠다.
계속되는 터뷸런스. 게다가 스마트폰이 제대로 종료되지 않는다. 일단 유심을 끼워본다. 머릿속이 하얗다. 어차피 코펜하겐카드는 공항 인포메이션에서 실물로 바꿀 거니까 됐고. 길찾기와 저장해놓은 정보는 어쩌나?
코펜하겐 카스트럽공항 도착. 나무바닥이 깔린 공항은 처음이라 감탄한 것도 잠시, eu라인만 많이 열려 있어 all passport는 사람이 줄어들지 않는다. 세관도 드문드문 비어 있다. 점심 식사 시간인가? 물론 휘게의 나라고 eu 국가 우대 원칙도 알겠는데, 좀 심한 거 아님? 사람이 이렇게 많으면 안내하는 사람이라도 나와 정리하는 것이 한국인의 마인드인데, 이들의 문화와는 한참 먼가 보다. 결국 한 시간 넘게 기다려 입국심사를 통과하다. 이미 지쳤다.
제2탄은 공항 인포메이션. 코펜하겐 실물카드는 이제 발행되지 않고 온라인으로만 가능하단다. 내 스마트폰은 이지경인데? 안내하는 분은 비행모드를 활성화하라는데 불가능하다. 코펜하겐카드 날아가는 소리. 작전을 어떻게 다시 짜야 하나?
멘붕 상태로 트레인 타고 몇 분 되지 않아 도착한 중앙역. 길찾기가 불가능해진 여행자는 피곤하다. 한 아기 엄마와 총각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에스콧호텔에 다다를 수 있었다. 구글맵의 쓸모와 고마움이 사무치는 순간이었다.
이 호텔은 꽤 우아하지만 낡았다. 일단 체크인, 계단을 올라가야 한단다. 리셉션에 있던 분이 짐을 올려준다. 아침식사는 당일 신청하고 결제하면 된다.
작전을 다시 짜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다.
오늘은 불금. 모두 나와 즐기는 바람에 시내는 분주하다.
일단 뉘하운으로 간다. 내비게이션 없는 목적 찾기는 낭비를 부른다. 25분 이상을 허비했다. 가까스로 도착한 뉘하운은 아수라장이다. 쉴 곳이 아니네. 안데르센이 살았다는 18, 20, 67번지를 언저리에서 살펴보다. 그래도 67번지는 비교적(?) 한적해 사진 찍기가 쉬웠다.
다시 걸어서 티볼리파크로. 이곳에도 사람이 많아. 가드에게 물어봤더니 코펜하겐카드는 인포메이션에서 활성화할 수 있단다. 물론 이 시간에 인포메이션은 문을 닫았고, 바코드로 활성화하려 했지만 내가 쓰는 쓰리심은 통화 기능이 없어 불가능하다. 여행사의 잘못된 정보로 힘든 상황이 계속된다. 온라인으로만 코펜하겐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면 다른 방법을 썼겠지.
오늘은 일단 쉬다. 이르마에서 간식 찾고 세븐일레븐에서 머핀도 하나 산다. 30크로네.
호텔 방에 콘센트가 부족한 것은 치명적이다. 하나 빼고 하나 꽂으며 뭐지? 하는 느낌이었다. 침대도 크고 심지어 유럽에서는 드문 욕조도 있지만, 침대 옆 콘센트는 필수라고 본다.
20230603(토) 맑음.
히르슈프롱컬렉션은 한시적으로 문을 닫았다. 또다시 계획 변경.
오늘은 루이지애나미술관에 갔다가 smk까지 돌아보기로. 가능하려나?
9시쯤 나오다. 짐을 들고 중앙역으로 향하는 커플 있어 그 뒤를 따라가기. 첫날 헤맨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금방 도착한다.
일단 dsb에 가서 프레드릭스버그행 기차 좌석을 예약한다. 안내하는 분들이 줄이 조금만 길어지면 물어본 뒤 쉬운 일은 기계로 안내한다. 30크로네에 좌석 예약하다. dsb 앞쪽으로 핸드폰 수리하는 곳도 발견. 거의 오후 7시까지는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문이 열려 있지 않다.
훔레베크 가는 기차표를 기계에서 사다. 일단 영문으로 바꾸고 humlebaek 검색한 뒤 사람 수, 요금 터치하면 결제창이 뜬다. 74크로네. 아직도 어리버리한 나는 1등석 쪽으로 잘못 타다. 같이 탄 사람들이 “너 아냐? 여기 1등석인 거?” 뭐 이런 식으로 알려준다. 황급히 내렸다가 2등석 확인하고 탑승. 2층으로 올라가보니 사람이 없어 널럴하다. 40분쯤 갔나? ‘훔레베크 루이지애나’라고 방송한다. 서는 역마다 어디인지 알려줘 헷갈릴 염려는 없다.
역에 내리면 카페. 아기자기한 동네. 잔디밭에 벼룩시장 열렸다. 무겁지만 않다면 사고픈 그릇들이 꽤 있다. 그러나 나는 여행자라고 자각한다. 388번 버스도 있다. 그러나 자주 오지는 않는 듯.
표지판 따라 15분쯤 걸었을까? 도착했으나 아직 오픈 전. 피로스마니, 다나 슈츠의 전시회가 열린다는 표지판이 있다. 모르는 예술가들. 만나보면 알겠지. 그리고 이곳의 시그니처인 자코메티의 조각 그림도 걸려 있다. 한국인 단체 꽤 여러 팀 마주치다. 잠시 기다렸다가 들어가기로 한다. 마당에서 눈에 띄는 헨리 무어의 작품. 그 벤치에 앉아 있다가 만난 커플 같은 할아버지들. 귀여우시다.
50분쯤 줄 서다. 표도 오프라인에서 사야 하는 등 코펜하겐카드로 인한 불편이 계속 따라다닌다. 입장료 145크로네. 거의 3만 원이다.
인상적인 건물과 다양한 수집품을 만나다. 덴마크 사업가 쿤드 옌센(Knud W. Jensen)이 설립해 1958년에 공개된 미술관. 외레순 해협에 자리 잡아 미술관 자체가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 건물이 자연의 일부인 이곳에서는 예술과 주변의 나무, 풀, 물을 함께 만끽할 수 있어 행복하다. 건물도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건축가의 철학이 표현됐단다. 우리나라에서는 bts rm 때문에 유명해져 단체관광에도 포함돼 있는 듯하다.
박물관 건물은 덴마크 건축가 빌헬름 월러트와 외르겐 보가 설계했지만 수년간의 확장, 보수 작업을 거쳤다. 본관에 이어진 분관 세 곳이 있으며 주로 근현대 작품을 전시한다.
파블로 피카소, 앤디 워홀, 알베르토 자코메티, 구사마 야요이 등 유명 작가의 작품도 전시됐고 우리에게는 생소한 회화, 조각, 사진, 비디오아트와 설치미술 작가 등의 전시회도 개최된다.
실외의 조각 작품들도 풍부해 하나하나 찾는 재미가 있다. 이곳은 매년 문학 축제도 개최하고 예술가들과의 인터뷰가 실리는 온라인 플랫폼 루이지애나채널(Louisiana Channel)도 제작한다.
천국 같은 곳. 비디오를 틀어놓은 곳이 흥미로웠다. ‘between us’라는 특별전은 내 스탈이 아니었으나 고전과 접목해 흥미로운 부분이 꽤 있었다. 좀 그로테스크하고 색이 두드러진 스케일 큰 그림들.
레이크가든 쪽도 둘러보다. 이곳은 인상파 그림의 모델이 될 듯한 자연 환경. 부속건물을 걷다 느닷없이 나타난 바다, 그리고 모두의 촬영 스폿인 자코메티 작품.
점심 먹자. 혼자니까 테이블 하나 차지하기가 좀 그렇지만 여기는 덴마크. 스뫼레브뢰드와 카페라테, 탄산수 1잔. 194크로네. 웨이터들 들고 다니는 단말기 위에 카드 대니 갑자기 결제됨. 스뫼레브뢰드는 무척 맛있다. 비스킷 같은 딱딱한 빵 위에 감자 올리고 아보카도 소스와 발사믹으로 맛을 낸 오픈 샌드위치. 채소도 적절하다. 후딱 먹었다.
혼자 거의 다 먹어가는 틈을 타 미국인으로 보이는 할머니들이 합석하잖다. 떨떠름하게 그러자고 했지만, 뭐 괜찮았다. 나중에 일어나면서 ‘즐기시라’고 하자 ‘좋은 여행 하라’고 화답해주신다.
조지아 작가인 니코 피로스마니(niko pirosmani)가 눈에 들어온다. ‘black light’라는 타이틀의 전시. 니코 피로스마나시빌리라고도 알려진 그의 작품은 일단 강렬하다. primitivism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스러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 이 단어가 납득되는 독특한 화풍의 화가. 자수성가형 화가로 사후에 인정을 받았다. 1862년생인 그의 작품은 단순하고 직설적이다. 독학으로 화가가 된 만큼 형식적인 훈련을 받은 화풍은 아닌 듯하다. 원근법이 도무지 나타나지 않는 이콘화 같은 느낌의 기교가 대담한 색과 선과 어울려 강한 느낌을 준다.
풍경이나 도시의 모습, 시장과 음식, 동물과 사람 등 조지아의 일상을 그렸다. 여러 직업을 전전했던 경험이 그림의 주제에 영향을 미친 듯하다. 정규 교육 없이 19세기 후반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조지아에서 관심을 받았고 이후 독특한 화풍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늘 빈곤했던 그를 살아생전에 성공한 화가라고 할 수는 없다.
사후 주목되기 시작한 그의 그림은 조지아 미술을 다시 한 번 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단순명료함, 굵은 선, 조지아 문화에 대한 애정 등이 그의 그림의 매력이다. 그는 배경을 검은색으로 즐겨 그려 교회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대상을 도드라지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그림은 인물, 동물, 정물 등으로 분류돼 있다.
앤디 워홀, 구사마 야요이까지 야무지게 보고 숍에서 피로스마니의 도록을 사다. 198크로네. 트래블로그로 결제되지 않아 신용카드를 쓰다. 아름다운 담요를 발견했으나 폭력적인(?) 가격으로 포기. 이곳은 모든 것이 비싸구나.
역에 도착하자마자 기차는 떠나고 20분쯤 기다리다. 코펜하겐으로 돌아가는 기차에는 사람이 많다. smk로 간다. 구글 지도의 지시대로 뇌레포르트에서 내려 7분 걷기. 어리버리하다가 외레스포르트에서 내렸다가 화들짝 놀라 다시 타다. 왜 방송을 안 해주지? 뇌레포르트는 다음 정거장이다.
smk는 18시까지 연다. 지금은 16시가 넘은 시간. 다른 때 같으면 이런 시간이면 미술관을 포기하지만 오늘은 하메르스회이에게만 집중할 것이라 괜찮지 않을까? 120크로네. 들어오기를 잘했다. 하메르스회이에게 빠지다. 인상파에서 색깔을 뺀 작가라고 한 말이 실감난다. 감탄, 또 감탄하다;; 평소 미술관에만 오면 ‘모든 것을 다 봐버리겠어’라며 투지를 불태우던 버릇을 못 버려 바로크부터 보다가 경보로 덴마크로 넘어가다. 하필 덴마크가 마지막 섹션일 게 뭐람;;
엽서(모딜리아니가 좋다)&자석 22.30. 여기서는 계산하는 자나 사는 자나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아 결국 크로네가 아닌 원화로 결제. 아주 조금 손해인데?
smk에서 나와 자연사박물관 끼고 뇌레포르트 지나 직진하면 숙소다. 시청 앞 네토에서 알자스 리즐링 한 병을 사다. 어제 먹은 캘리포니아 와인은 좀 달았다. 채소, 하몽, 납작복숭아, 오디도 바구니에 넣는다. 물도 2리터. 몸이 부서질 것 같은 무게다. 150.01크로네. 어제부터 눈여겨본 jagger burger에서 버거 95크로네. 거의 2만 원일세;; 그러나 아주 맛있다.
내일은 ordrupgaard로 간다. 가는 길이 복잡하고 멀고 뭐 그렇다. 느긋하게 가서 핀하우스도 보고 놀기로 한다.
6월4일(일) 쾌청. 해도 엄청 일찍 뜬다. 6시쯤 일어나다.
오늘 가는 ordrupgaard 미술관이 4존인지 5존인지 헷갈린다. 일단 매표소에서 물어봐야겠다. 시티패스를 사는 게 나은 거 아닌가? 1~4존까지 쓸 수 있는 스몰패스가 80크로네. 어마어마한 교통비다. 시티패스는 사는 순간 카운트된다. 즉 미리 사놓지 말아야 한다는 말.
갑자기 드는 생각. 이 나라는 좀 묘하다. 자유로운 것 같으면서도 엄격하고, 점잖은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과시? 충동? 뭐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약간 헐렁하기도 하다. 심심찮게 눈에 띄는 올드카 시끄럽게 몰고 다니거나 음악 크게 틀고 질주하거나 음주버스(?) 같은 거 타고 춤추고 노는 것을 보면 이들의 에너지는 꽤 강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뭘 물어보면 정말 티 안 내고 친절하게 조용히 최선을 다해 대답해주고 유머를 쓱 구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물론 여행자의 경험은 너무 협소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지만, 여행 내내 만난 이 나라 사람들은 아주 따스했다.
조금 투박한 듯하면서도 it 분야에서는 엄청 앞선 것 같고, 아주 오래된 나무 등이 자연스럽게 도처에 있어 인간과 공존한다. 물론 경솔하고 거친 젊은이도 꽤 눈에 띄는 걸 보면 어디에나 같은 비율로 여러 유형의 사람이 존재하는 보편적 사회라고 이해해야 할 듯도 하다.
이곳은 일요일에 문을 거의 닫아 미술관(오르드럽가르드와 핀율하우스) 이후 시내에서 놀기로 한다. 토르브할렌 시장에 갈까? 아님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헤이하우스로?
9시20분쯤 나오다. 뇌레포르트역 안 세븐일레븐에서 물어보다. 점원 말이 5존일 거란다. 라지패스 구입. 140크로네. 헤맴의 연속. 당최 뭘 타야 하는지 모르겠다. 현지인 찬스가 답인 듯. 어느 여인은 Hellerup으로 가서 버스를 타는 게 가장 빠르다는데, 현재 가장 먼저 오는 메트로는 외레스포르트행. 그걸 타고 외레스포르트에서 내리면 Hellerup으로 가는 기차가 많다는 이야기 같다. 그건 여행자에게 버거운 고급 스킬. 패스하고 구글에서 알려준 대로 메트로를 타다.
내려 보니 점입가경. 이때까지는 버스를 타야 하는지도 몰랐다. 전혀 학습이 돼 있지 않은 상태였던 것. 다시 현지인에게 묻다. 나가서 버스를 타란다. 172번이나 171번 버스가 간다. 기사 아저씨에게 지명을 말하고 알려달라고 하다. ‘no problem’이라고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분. 그래도 조바심 많은 여행자는 역을 하나하나 꼽아가며 실수 없이 Hovmarksvej에서 하차하다. 그곳에서 약 17분 걷는다. 이곳에는 사람도, 차도 드물다. 주민들이 개를 산책시키는 정도? 게다가 땅은 왜 이리 다 파헤쳐졌는지, 아주 심란하다.
그러나 미술관은 훌륭함을 넘어선다. 설립자는 빌헬름과 헤니 한센. 프랑스 컬렉션이 이곳의 핵심이다. 마네, 모네, 르누아르, 고갱 등과 초기 사실주의, 바르비종파 그리고 인상주의의 작품들이 있다.
미술관에서도 길을 잃기는 마찬가지. 라커에 짐을 맡겨야 한다고 해서 배낭을 넣다. 암호 걸고. 거의 모든 것을 자율에 맡기는 이들의 문화는 좋기도 하나, 입구는 가르쳐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들어가는 곳이 헷갈려 일단 카페 쪽으로 가서 아이들이 뛰노는 야외미술관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나가본다.
따뜻한 햇볕, 나무로 만든 탐스러운 조형물. 그리고 작은 나무집, 녹색 의자. 햇볕 아래 앉아서 정신을 수습해본다. 처음 의도는 수습이었지만 점점 즐기게 된다. 애들 올라가 있는 조형물은 위험해 보이나 부모들은 태평하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에서 잔디 언덕을 굴러 내려오던 아이들이 떠오른다. 이곳의 부모들은 대담하고 유쾌하다.
얼떨결에 현지인 따라 핀율하우스로. 이번 여행은 참 대책 없이 다닌다. 안 되면 현지인 찬스로 뭉갠다. 예상은 했으나, 코펜하겐카드 때문에 일정이 처음부터 꼬이는 바람에 더욱 뒤죽박죽이 된 듯. 그러나 이 또한 즐겁다. 문제해결 능력이 마구 솟구치는 상황? 될 대로 되라지.
핀 율은 덴마크 건축가이자 모더니즘 가구 디자이너. 핀율하우스는 그의 거주지이자 작업 공간으로 가족을 위해 디자인한 집이다.
핀율하우스의 공간 구성은 재미있다. 책상과 주방이 공존하고, 군더더기 없는 가구와 훌륭한 의자들도 눈을 사로잡는다. 공간이 구분돼 있다기보다는 필요에 따라 식탁도 서재 한귀퉁이에, 침실도 중간에 배치된 구조다. 단순한 선과 군데군데 열린 공간으로 보이는 자연, 기능성을 중시한 공간 배치 등이 흥미롭다.
이 순간 다음 목적지인 말뫼 에어비앤비 주인에게 왓츠앱이 있냐는 톡이 오다. 왓츠앱 깔지 않았고 현재로서는 다운로드도 불가능한데;; 결국 면대면으로 보기로 하다. 도착하면 연락하란다. 또다시 통화도 가능한 유심을 사용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순간이다.
미술관 본관으로 들어가본다. 처음에 눈치를 보다 문이 열리지 않아 포기한 곳이 입구였다. 바코드를 대야 열린다. 맨 아래층 특별전시와 프랑스 그림부터 찬찬히 보다. 특별전은 내 타입이 아닌 것 같고, 프랑스 그림은 훌륭하고 짭짤하다. 조르주 상드의 초상화가 눈에 확 들어온다.
외젠 들라크루아가 그린 몇 안 되는 초상화 중 하나. 들라크루아가 당시 연인이었던 프레데리크 쇼팽과 상드를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둘의 그림이 왜 분리됐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쇼팽의 초상화는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루브르 박물관에 있단다. 조르주 상드는 알다시피 오레 뒤팽의 가명.
장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호메로스에게 작품을 바치는 단테’는 두란테 델리 알리기에리, 줄여서 단테 알리기에리, 더 줄여서 단테로 불리는 이탈리아 시인을 그린 그림. 얼굴과 손은 앵그르의 1827년작 '호메로스의 약식'에 나오는 단테의 스케치에서 잘라낸 것으로 추정된단다. 매우 고전적이면서도 동시에 복합적인 그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베르트 모리조는 예전부터 눈여겨본 화가. 마네의 초상화 중 모리조를 그린 그림 몇 점을 파리 오르세미술관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이곳에 있는 ‘풀밭 위의 어린 소녀’의 모델은 이사벨 랑베르. 모리조는 종종 딸 줄리를 모델로 삼았다.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의 ‘라굴뤼(La Goulue)’ 발견. 한때 로트레크의 그림에 정신이 팔려 그의 출생지인 툴루즈 방문 의사를 강하게 피력하다 여행 메이트에게 까인 적이 있다. 라굴뤼의 본명은 루이즈 베버. 인상파 화가들이 활동했던 몽마르트 물랭루즈의 캉캉 댄서다. 잔 아브릴, 쉬잔 발라동과 함께 당대 최고의 무용수로 불렸다. 발라동은 모리스 위트릴로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로트레크가 더욱 사랑한 댄서는 아브릴이라지만, 라굴뤼를 표현한 작품도 꽤 있다. 한참 전 파리에서 그의 무덤을 찾아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라굴뤼는 프랑스어로 ‘게걸스러운’ ‘대식가’라는 의미. 탐욕스러움을 뜻하기도 한다. 이 별명은 명성에 대한 탐욕 때문일까, 아님 단지 식욕이 왕성했던 점을 빗댄 것일까 궁금해진다. 로트레크가 제작한 라굴뤼 포스터는 그녀의 인기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 전성기가 지난 라굴뤼는 말년에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다 1929년 사망했다. 그러나 아직도 라굴뤼는 파리 카바레 역사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남아 있다.
오노레 다미에의 ‘레슬러’는 그 시대에 가장 인기를 얻었던 레슬링 경기를 다룬 작품. 그러나 이 그림의 주제는 싸우는 현장이 아니라 경기장을 주시하는 레슬러다. 경기장과 그곳을 쳐다보는 두 장면의 대조가 흥미롭다. 레슬러의 원초적인 불안과 관조를 느낀 것은 나뿐일까.
폴 고갱의 ‘젊은 여성의 초상’은 타히티에서 그렸단다. 모델은 변호사 오귀스트 구필의 딸 잔이다.
이제 덴마크 컬렉션으로 간다. 이 컬렉션의 소유주는 빌헬름과 헤니 한센. 이들은 프랑스 컬렉션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덴마크 작품들을 다수 가지고 있었다. 이곳에는 빌헬름 하메르스회이와 L. A. 링 같은 당대 최고 화가들이 주도한 황금기부터 부부의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19세기 전반의 덴마크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하메르스회이에게 다시 한 번 매료되다. 인상주의 그림이 색의 향연을 보여준다면 그의 그림은 차갑고 차분하다. 그러나 금속성을 가진 차가움이 아니라 온기가 묻어 있다. 하메르스회이는 파리에서 유학했다는데 왜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됐을까? 고흐가 파리에서 색을 찾은 것과 달리 이 사람은 파리에서 색을 버린 듯하다. 인상파 화가들의 넘쳐나는 색에 질려서? 아님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그는 1864년생으로 코펜하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저명한 문화계 인사였고 형도 예술가였다. 덴마크 왕립미술아카데미에서 공부한 그는 사실과 상징을 아우르는 그림을 그렸다. 특징 중 하나는 실내 묘사. 고독해 보이는 고집스러운 사람과 등을 돌린 여성이 등장하는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그의 그림에서 자주 보이는 모델은 부인 이다(Ida). 화가 Peter Ilsted의 여동생이다.
또한 그는 빈 방이나 가구들이 드문드문한 공간을 그려 차가운 고요를 보여준다. 빛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포착한 그에게 여행자는 경탄할 뿐. 회색을 비롯한 몇몇 무채색에 천착했던 화가다. 색이 단조로웠던 그의 팔레트는 모 아니면 도 아니냐는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과 기회를 주는 듯하다. 이 그림이 그려진 곳은 이다와 함께 산 Strandgade 30번지. 지금은 다른 사람 소유란다. 그도 인물화와 풍경화를 그린 시절이 있었지만 이 집은 그를 실내를 그리는 화가로 만드는 계기가 됐다. 세상과 경계를 이루는 벽과 창문은 그의 그림의 단골 배경이다. 그 또한 사후에 재평가된 인물이다.
바느질하는 여인을 그린 그림은 베르메르의 '레이스 짜는 소녀'와 비교돼 흥미로웠고, 소품들도 훌륭했다. 그리고 보고야 만 ‘햇살 혹은 햇빛’의 먼지. 도록에서도 눈에 띄지 않던 먼지를 실물에서 확인하고 여행자는 감격한다.
’실내. 피아노와 우먼 인 블랙 스트랜드게이트 30‘도 실내를 묘사한 작품. 우리에게 등을 돌린 여인은 기둥처럼 서서 자신의 생각에만 몰두한 것처럼 보인다. 가구도 여자도 어떤 의미를 보여주거나 전달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의미가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바느질하는 젊은 여인’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베르메르의 그림과 꽤 닮아 있다. 이것보다 훨씬 작은 베르메르의 그림은 시간이 맞는다면 루브르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다른 전시회에 자주 불려가기(?) 때문이다.
전시실을 돌아다니다 발견한 미카엘 안셰르의 작품. 그는 아나 안셰르의 남편이다. ‘Young Woman Crocheting. Tine, Skagen’과 ‘Kitchen Interior’를 볼 수 있다.
라우리츠 안데르센 링(LAURITS ANDERSEN RING, 1854~1933)은 덴마크 사실주의 미술의 대표 중 한 명. 장인의 아들이었던 그는 덴마크 왕립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할 때까지 실내 도장장이 훈련을 받았단다. 그는 평생 자신의 뿌리를 작품에 표현해 농촌 풍경을 반복적으로 그렸다. 원초적 사실주의를 고수한 화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취객’은 주정뱅이를 그린 작품. 일탈자에 대한 거부가 적나라하게 표현돼 있어 섬찟했다. 인간에 대한 비관적 관점이 잘 담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약간 흔들리는 취객의 시선을 보면 이 말이 실감날 것 같다.
어라! 낯익은 그림이 눈에 띈다. 페테르 브뤼겔의 ‘장님들’ 아냐? 그런데 왜? 이는 링이 브뤼겔의 작품을 모사한 것. 길을 잘못 든 장님 여섯 명. 앞에 있던 사람은 벌써 함정에 빠졌고 그 바로 뒤의 사람은 위험을 약간 감지한 표정이지만, 줄줄이 늘어선 사람들은 각각 다른 단계별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을 구해줄 것 같은 막대기를 잡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이 조금씩 다른 것이 흥미로웠다. 불안한 시대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인간들을 그린 우화 같은 작품. 내게는 인간의 맹목성과 함께 방향성을 잃은 자들의 운명을 직감하게 해주는, 정신이 번쩍 드는 작품이었다.
덴마크 컬렉션을 다 돌았지만 결국 아나 안셰르의 작품은 볼 수 없었다. 안내 데스크에 물어보니 코펜하겐에서 그의 작품이 걸린 곳은 smk뿐이란다. 동료와 더블체크해 알려주는 데스크 여인의 섬세함이 참 고마웠다. 9월이면 특별전이 열린다고도 귀띔해준다. 그 전시는 볼 수 없겠지? 여행자는 언제나 시간이 적이다. 스카겐에 가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리고 점심식사. 미술관 카페에서 스뫼르브뢰드와 카페라테를 먹다. 애매하면 미술관이나 박물관 레스토랑, 카페를 이용하는 것도 홀로 여행자의 한 선택지. 그런데 변수는 언제나 발생한다. 예쁜 종업원이 결국 나의 메뉴를 바꿔버린 것. 아스파라거스가 포함된 담백한 스뫼르브뢰드를 번호까지 짚어가며 주문했음에도 닭고기와 마요네즈가 발린 느끼한 것을 가져다줬다. 난감했지만 긍정 회로를 돌린다. 그래도 뒤끝은 있어 관찰해보니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작업 스킬이 조금 떨어지는 사람인 듯. 계산 후 해맑게 ‘have a nice evening’이라고 인사한다. 점심식사 후면 이브닝으로 치는 건가? 하긴 거의 모든 이곳의 박물관이 17시 혹은 18시면 닫고, 주말에는 더 빠르니까 그럴 만도 하다.
이제 시내로 가자. 무려 3만 원짜리 시티패스를 마구 써야지. 구글 지도가 가리키는 대로 아까와 다른 길로 걸어간다. 오솔길 따라 가다가 차도 끼고 17분? 조바심이 난 순간 어린이 무리 발견하다. 버스정류장이 어디냐고 물으니 너무나 진지하게 ‘두 블록 가다가 우회전’이란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정보. 바로 그 자리에서 오른쪽을 보니 정류장 표시가 있다. ㅋㅋㅋㅋ 너무 진지하게 잘못 가르쳐준 초딩들에게도 감사(?)^^
버스 타고 한참 가다 보이는 뇌레스포르트. 여기서 메트로로 한 정거장이면 번화가인 콩겐스다. 여러 교통수단을 다 이용해보기로 한다. 하버버스도 타볼까? 정보는 전혀 없지만 물가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아 스트뢰스 거리에서 놀다가 도모해보기로 하다. 헤이는 닫았다. 공사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일룸 생활관에서 티셔츠도 하나 건졌고, 로열코펜하겐 접시도 하나 샀다(택스프리-여권 필요 없고 서울에서 사용하는 전화번호만 적으란다). 어디서 왔냐고 묻더니 ‘안녕하세요’ 하던 점원이 정답다. ‘수고하세요’는 못 알아듣는 듯. 오버한 것 같아 벌쭘했다. 마음에 드는 앞치마도 두 개 사다, 시청 쪽으로 갔다가(바로 근처가 호텔이지만) 티볼리 앞 정류장에서 26번 버스 타고 뉘하운에 가기로.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떠나는 26번. 그런데 정류장이 두 방향이라 어느 쪽이 맞는지 모르겠다. 다시 현지인에게 묻자 거꾸로라고 생각한 현재 위치가 맞단다. 여행자가 아주 제한적으로 경험한 이들은 헐렁함과 엄격함이 혼재한 것 같다. 절정은 올보르그 가는 좌석 지정. 어쩐지 기차 번호가 다르더라. 이것 또한 혼란의 한 원인이었다. 요일 지정이 잘못된 것. 확인을 철저히 하지 않은 잘못으로 치부하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이 나라 언어를 모르는 나로서는 6월 3일이 발행일인 줄 알았다. 여행자는 언제나 두 번, 세 번 확인해야 한다.
뉘하운 도착 전 하버버스 표지판이 보이기에 내리다. 종점까지 가보기로 하다. 코스를 모르니 현지인이 많이 타는 버스에 올라타다. 오페라 지나 풍력발전 지역, 먹거리 장터도 지나치자 종점이다. 여기서 되돌아간다.
되짚어 타고 뉘하운 하차. 불금만큼은 아니지만 20시를 넘겼음에도 사람이 많다. 26번 버스 타고 중앙역 앞에서 내리다. 숙소까지 걸어서 한 10분? 이제 이 길은 어렵지 않다. 21시 넘은 듯.
내일은 스카겐이다. 기차를 두 번 갈아타야 하고 한 번은 7분 안에 성공해야 한다. 성공 기원 각오 다지는 중.
6월5일 쾌청하고 기온도 22도까지 올라간단다. 이 동네 사람들은 저녁에 다 뛰어나와 햇볕을 쬘 것 같다. 잔디와 공원이 군데군데 있으므로.
긴장했는지 눈을 떠보니 4시, 5시 뭐 그랬다. 그만 자자. 컵라면 하나 야무지게 먹은 뒤 짐 싸고 나오다. 8시 20분 체크아웃. 앞서 체크인하던 가족은 냉장고에서 맥주 하나 먹었다고 했지만 계산이 불가능한지 그냥 두란다. 서비스?
뭔 일이 생길지 몰라 역에 일찍 도착하다. 그런데 뭔 일은 이미 생겨 있었다. 기차 번호가 달라 뭐지? 했지만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번호라 열차가 바뀌었고만 했다.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5번 플랫폼. 1등석은 c쪽. 역시 연세 많은 분이나 아기를 데리고 여행하는 가족들뿐이다. 캐리지 71번 타고 31번 좌석에 가니 앞에 한 남자가 노트북을 크게 펴놓고 있다. 어쩌나 하는 와중에 한 언니가 출현하다. 자기 좌석이란다. 멘붕을 수습하고 확인해보니 내 예약 티켓은 토요일, 즉 3일자 좌석이다. 그럼 나는 예약할 때 바우처까지 보여주며 왜 설명했던 거지? 여행자는 항상 확인해야 한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되뇌인다. “여기 자리 있어” 하는 사람들의 말을 따라 옆 좌석으로 이동하다. 이곳에는 노트북 쓰는 사람이 없어 쾌적하다. 뭐 그렇게 나쁜 것 같지는 않네. 돈 좀 날리고 잠시 쪽팔렸던 것 빼고는 괜찮다. 앞에 앉은 여인은 햇빛 차단기 내려주고, 옆의 남자 분은 내 짐을 올려주기까지 한다. 거기에 덧붙여 어디까지 가냐고 묻는다. 자기는 블라블라(지명 못 알아들음)에서 내린단다. 나는 올보르그까지 가는데 내리실 때 내 짐 내려줄 수 있느냐고 물어본다. 흔쾌히 그렇게 하잖다. 감사하다. 당시에는 무거운 짐을 내리는 것도 공포였다.
1등석이 엄청 쾌적한 것은 아니지만 물, 차, 커피, 쿠키 같은 것이 구비돼 있다.
인생은 참 공교롭다고 느낀다. 이를테면 창 쪽 좌석이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할 때 어찌어찌해서 잠시 양해를 구한 뒤 비치된 더운물을 가지고 와 차를 다 마시자 바로 뻑뻑한 샌드위치나 쿠키를 주거나 할 때 말이다. 누가 어쩐 것은 아니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아 다시 나가기도 좀 면구스럽다. 이런 상황이 거듭되면 요령, 소위 말하는 짬밥이 생기는 게 아닐까.
아까 차양 올려준 스윗한 여인은 오덴사에서 내린다. 이곳에서는 10분쯤 정차한다.
오르후스에서는 기차 방향을 바꾼다. 이제 이 칸에는 나밖에 없는 듯. 자유롭기도 하고 좀 무섭기도 하다. 그래도 계속 먹을거리와 마실거리, 뜨거운 물을 채워주는 승무원들이 있어 괜찮겠지?
이 여행에서 가장 잘한 일은 1등석을 끊은 것. 일단 안전하다. 그러다 보니 쾌적하고. 작전이 맞아떨어졌음을 즐거워하다. 애매할 때는 돈을 써야 한다.
옆자리 분은 내릴 때 잊지 않고 내 짐을 선반에서 들어 내려준다. 감사, 감사. 이 나라 사람들한테 고마워할 일이 너무 많다.
아직 덴마크의 나뭇잎은 연한 녹색. 조국에서는 이미 연한 녹색이 변해 짙어졌는데 이곳에서 보게 되니 좋다.
올보르그 1번 플랫폼에서 내려 3번으로 질주(는 못하고. 일단 짐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하고 싶지만 짐 들고 계단 내려가 플랫폼 올라갈 일이 까마득하다. 그때 눈에 띈 3번 플랫폼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한 노인 부부와 같이 타다. 할아버지는 공부 많이 한 사람의 눈을 가졌다. 열차는 이미 와 있고, 다시 한 번 확인하려 현지의 한 아주머니에게 물었지만 지명을 못 알아듣는다. 이때 아까 그 할아버지가 나타나 맞다고, 앞에 써 있다고 확인해주신다. 일련의 어긋나던 사건(?) 때문에 현지인한테 한 번 물어보고 싶었을 뿐이지만 감사하다.
지루한 로컬열차. 끝없이 풀, 나무, 얼룩소, 말, 조랑말이 이어진다. 학생들이 탔다가 노인이 탔다가 체격 큰 아저씨가 탔다가 한다. 그 중 최악은 한 애기와 애기 엄마. 애는 자꾸 엄마를 부르며 소리를 지르고, 그 엄마는 아이를 달래지도 않고 자꾸 침을 뱉는가 하면 열이 나는지 옷을 입었다 벗었다, 스카프를 맸다 풀었다 한다. 혹 코로나 환자?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계속 찜찜했다.
프레데릭슨에서 이 모녀가 내리고 기차는 다시 방향을 바꾼다. 이 동네는 엄청 추운 듯 창문이 작고 아주 견고한 재료로 집을 지었다. 아기 돼지 삼형제 중 막내의 집 같다. 심심하니 별 생각을 다 하는 듯.
이곳에서는 aa를 a 동그라미로 쓴다. 두 글자를 간략하게 만든 것 같기도 하고.
갑자기 스카겐역이 나타났다. 여기가 스카켄 중앙역이 맞냐고 물어봤더니 스카겐에는 역이 하나밖에 없다며 잘난체하는 아저씨. 그래도 감사하다.
작은 동네. 집들도 다 같은 색깔인 듯. 내가 묵을 호텔만 하얗다. 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리셉션이 비어 있어 벨을 누르다. 호탕한 여인이 나와 체크인. 조식은 7시부터 가능하며 커피는 아래층 코너에서 마실 수 있다고 알려준다. 방 번호는 나의 마음처럼 108번(뇌)? ㅋ 계단을 올라가는 게 공포였다. 결국 그분이 도와주다. 여인은 웃으며 말한다. “네 몸집은 작은데 짐은 크구나.”
미술관은 걸어서 5분 거리. 큰길 따라 가면 나타난다. 거기서 길 건너 3분쯤 걸으면 아나 안셰르의 집. 미술관은 9시~17시. 안셰르 집은 10시 오픈이다. 어차피 17시 폐관이라 오늘은 틀렸다. 잠시 일별하는 걸로 마무리. 역 옆에는 네토, 그 옆에는 알디 있다. 오늘은 알디에서 쇼핑(126.25크로네-하나카드 결제 가능). 중심가로 보이는 쪽은 레스토랑 빼고 다 닫힌 것 같다. 알고 보니 이날이 기념일이었다.
방으로 돌아왔지만 창문이 열리지 않는다;; 여인에게 물어봤더니 자기가 열어준단다. 그러나 이분도 역부족. 아마 페인트 칠을 할 때 막힌 듯하다.
118번으로 방 바꿔준다. 트윈룸. 싱글룸은 냉장고가 없어 심란했는데, 여기는 냉장고도 있다. 오늘은 좀 덥다. 창문을 확 열고 씻다. 상쾌하다. 내일은 9시에 미술관 갔다가 그로넨. 리셉션 여인은 걷는 게 속 편하다고 한다. 그러지 않고 자전거를 빌리면 모랫길에서 끌고 가야 한단다. 이곳에서 자전거 탈 일로 심란했는데 그냥 걷기로 한다. 모랫길에는 트랙터버스 있다니까 걸어가서 그거 타고 갔다 오면 될 듯하다. 저녁에는 정말 할 일이 없다. 그만큼 고요하고 조용한 휘게 그 자체인 동네다.
그런데 욕실 물이 왜 이러지? 배수에 문제가 있는 듯. 그래도 콘센트는 여기저기 많아 흡족하다. 코펜하겐 호텔의 콘센트 부족이 여행자에게는 큰 골칫거리였나 보다. 그런데 이곳의 첫 인상은 좀 부실해 보이는 호텔이라는 것. 그러나 다음 날 조식 때 이 생각은 완전히 뒤집어진다. 역시 경솔해.
21시 30분인데도 해가 지지 않는다. 완전 신세계. 주차장 차 중 올드카 손 본 것 있어 감타하며 찍어보다.
여기 사람들의 올드카 사랑도 꽤 눈에 띈다. 대부분 할아버지들 소유인 듯도 하고. 멋진 노년이다. 심심할까 봐 담아온 ‘앙’이라는 일본 영화는 내 얘기 같기도. 어차피 없어질, 가치도 없어질 언어를 다루는 자들과 공장에서 받아 파는 앙꼬는 동격 아닌가? 요즘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자존감 하락의 한 원인이 된 감정을 곱씹어본다.
6월6일(화) 찢어지게 맑음. 날씨가 미침.
스카겐미술관, 안셰르 집에 갔다가 그레넨으로! 걷기로 한다. 그런데 체크아웃하는 날 짐을 어떻게 들고 내려가지? 가파른 계단을 보니 심란해진다. 한참을 배회하다 발견한 리프트. 유레카! 짐이 크거나 문제가 있으면 스태프한테 이야기하라는 내용이 붙어 있다. 내일 부탁해봐야겠다. 그렇지 않다면 정말 짐을 들고 추락할 것 같다. 리프트가 작동하지 않으면 짐 들고 계단 내려가는 것을 거들어달라고라도 부탁해야겠다. 여하튼 방법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아 갑자기 즐거워진다.
어제 들어올 때의 호텔 분위기는 그저 그랬다. 별로일 것 같은 느낌?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니 일단 규모도 크고 밥도 훌륭하다. 밥에 약한 편! 조식으로 계란 완숙, 반숙 하나씩, 물과 오렌지주스, 빵에 버터와 햄, 소시지 넣고 씨가 좀 씹히는 콩피 발라 스뫼레브레드풍으로 먹다. 비스킷, 방울토마토, 좋아하지만 처음 입에 넣을 때는 강해서 새삼 잠시 놀라는 블루치즈, 참외, 오이, 파인애플까지 야무지게 먹다. 조식을 마무리하다 눈에 띈 청어절임도 약간 달큰하면서 맛났다. 내일 다시 먹겠어. 혹시 몰라 양해를 구하고 반숙계란 하나 챙기다. 그로넨 사막에서 갑자기 당이 떨어질 수도 있잖아.
빵도 여러 종류고 음료도 태블릿에서 선택할 수 있다. 어제 창문 때문에 약간 무시했던 나의 경솔함을 반성한다. 이것 또한 여행의 묘미가 아니겠냐고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식당에서 자꾸 노려보던 한 분 때문에 마음 상할 뻔했지만 내가 타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미안해졌다. 그분은 연로한 다른 분이 내려오자 그동안 자기가 파악한 식당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며 노인을 케어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경솔은 죄악이다.
9시에에 문 여는 스카겐미술관. 두 번째로 들어가다. 스태프가 “너도 크루즈 중 하나니?” 한다. “아닌데. 나 혼잔데”라고 대답하고 들어서자 곧이어 단체가 들이닥친다. 이들이 예정된 크루즈 여행객인가 보다.
미술관은 단촐하다. 2층이지만 1층에 거의 모든 그림이 다 있다. 페테르 세베린 크뢰이어와 미카엘 안셰르를 비교하면 확실히 선이 약한 안셰르가 밀리는 것 같다. 강한 성격을 가졌으니 같은 화가였던 자기 부인을 재능이 없다며 가스라이팅하면서 모델로만 썼지. 인간적으로는 약간 비호감이지만 그림의 생동감이나 색감을 보면 훌륭한 화가라고 인정하게 된다.
스카겐 화가들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덴마크 유틀란드의 북쪽 끝에 위치한 스카겐에 모여 살았던 스칸디나비아 예술가들의 집단. 스카겐은 독특한 빛을 가진 그림 같은 풍경에다 북해와 발트해가 만나는 이색적인 조건 때문에 예술가들의 흥미를 끌었다. 이들은 이곳에서 자연과 빛을 그렸고 삶을 영위했다.
스카겐 화가들은 일상의 장면과 풍경을 묘사했고 이곳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초상화를 사실적으로 그렸다. 그 중 아나와 미카엘 안셰르는 이곳의 생활과 스카겐 사람들을 가감 없이 묘사한 화가로 스카겐 그룹의 중심인물이었다.
아까 언급한 크뢰이어는 독보적인 화가. 생동감이 느껴지는 빛과 색으로 가득한 그림들로 유명했다. 노르웨이 스타방에르에서 태어난 그는 코펜하겐으로 덴마크 왕립미술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자연주의적인 화풍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프랑스 인상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풍경, 일상의 장면, 초상화를 그렸다. 특히 빛의 효과를 포착하는 데 능숙했던 그의 그림은 독특한 분위기과 색채를 띤다. 그의 그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Summer evening on Skagen Sønderstrand’.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스카겐그룹의 친밀함이 우아하게 묘사된 그림이다.
홀거 드라흐만은 스카겐 그룹과 관련이 깊은 시인이자 화가. 그는 이 지역에서 영감을 받은 그림과 바다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특별전시는 크뢰이어의 부인인 마리 크뢰이어전. 이 여인도 실력 있는 화가였지만 남편의 그늘이 깊어 그의 모델로만 살다가 결국 남편과 헤어지고 다른 남자랑 결혼한 여인이다. 이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마리 크뢰이어’라는 영화도 있다. 마리는 크뢰이어의 두 번째 부인으로 코펜하겐과 파리에서 공부했다. 크뢰이어와 결혼했고 딸도 낳았으나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남편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크뢰이어와 이혼한 마리는 스웨덴 작곡가 휴고 알펜과 1912년에 결혼했다. 물론 그전에 휴고와는 불륜 관계였다. 이후 휴고와도 평탄치 않은 결혼 생활을 유지했지만 그녀는 예술가의 삶을 놓지 않았다.
이 전시회에서는 마리가 그린 풍경화와 초상화를 볼 수 있었다. 종종 아나 안셰르의 삶과 비교되는 마리는 이후에도 자기의 작품을 계속 만들었으니 다른 의미로 강한 여성이지 않을까.
특별전을 본 뒤 미술관숍에 들렀다가 안셰르 엄마 찾아가기. 이 과정은 안셰르의 집까지 이어진다. 정말 엄마를 많이도 그렸다.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게 많은 모습을 남겨놓을 수 있을까 싶다.
안셰르의 집은 덧신을 신고 들어가야 한다. 멀티티켓을 사 그냥 쑥 들어가면 되는 줄 알았지만 제지당하다. 라커에 짐 놓고, 덧신 신고 티켓을 펀칭해야 한다. 그냥 그 당시의 집인데, 이곳이 여관이었다지? 그림에도 등장하는 하늘색 커튼이 인상적이다. 아나 엄마 찾기는 성공적이었다. 아나의 그림이 남편보다 나은 것 같다. 아나는 다른 화가들이 그린 그림에 종종 등장해 정면이 아닌 뒷모습이나 작은 모습만 보여준다. 아나 찾아보기도 잔재미가 있다. 2층에는 그녀의 조각이 있다.
스카겐 화가들은 동네 사람들의 표정을 이렇게 잘 표현할 수가 없다. 지난번 남프랑스 여행 때 무리해서 들렀던 몽펠리에 파브르미술관의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가 생각났다. 이는 사실주의의 대가로 불리는 귀스타브 쿠르베가 자신의 후원자인 알프레드 브뤼야스를 만나는 순간을 그린 그림. 일설에 의하면 쿠르베는 이 그림에서 돈 많은 후원자를 만나도 쫄지 않는 자신을 그림으로써 ‘천재에게 경의를 표하는 돈’을 보여줬다고 한다. 앞서 이야기한 브뤼겔의 ‘이카루스의 추락’도 나의 쇼크를 일으켰던 작품이다. 이카루스가 떨어지건 말건 밭을 가는 농부에게는 일상의 한순간일 뿐이라는 무서우리만큼 리얼한 그의 생각 때문에 오래전부터 팬이었던 나는 스카겐 화가들에게 비슷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한참을 왔다갔다 하다 아쉬워하면서 미술관을 나오다. 그레넨만 없다면 좀 더 머물렀을 텐데. 여행자에게는 언제나 시간이 촉박하다. 여행 전부터 가장 골치가 아팠던 곳은 그레넨이었다. 코펜하겐에서 갈아타가며 6시간 넘게 기차를 이용하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야 하며. 트랙터버스로 최종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 계획은 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열망이 강한 여행자는 결국 이곳을 목적지에서 삭제하지 못했다.
일단 걷는다. 초입의 안내문을 보니 코스는 선택할 수 있고, 길게는 몇 시간 동안 가는 코스도 있다. 가장 짧은 길은 찻길 따라가기. 나쁘지는 않은데 뭔가 성이 좀 차지 않는다? 그냥 슝하고 가자니 아쉽기도 하고. 다른 길로 좀 샜다가 맞닥뜨린 캠핑장. 오. 이런 여행도 좋겠다. 다음은 바닷가 모래밭. 이곳에서는 난관에 부딪친다. 유격 훈련하는 줄;; 정말 힘들었다. 가까스로 오솔길을 찾다다. 그레넨까지 가는 길은 여행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갈래갈래 많은 선택지가 있기 때문이. 인생사와 비슷하다고 하면 좀 진부한가? 언제나 혼자 선택해온 삶. 아직 남은 중요한 두 길에 대해 어떻게 결론을 낼지 모르겠다. 담담해지자.
생각보다 그리 많이 걸리지는 않는다. 게다가 지금은 해 좋은 6월.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로 도보로 휙휙 지나간다. 어느 블로거가 써놓았듯이 걷는 길이 무섭지는 않다. 계절이 계절인 만큼 가족이나 부부가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겨울에는 좀 분위기가 다르려나?
그레넨 입구에서 탄 트랙터버스는 왕복 35크로네. 기계에서 표를 끊으면 된다.
정말 좋은 곳. 사람들도 참 즐거워 보인다. 여기서도 튀는 사람들은 미국인들. 그들만 나타나면 유쾌해지고 시끄러워진다. 그들의 에너지에 감탄해본다. 이곳에서는 발트해와 북해가 섞인다. 그러고 보니 물 색깔이 다른 듯하다. 드론이라도 띄워야 확실히 볼 수 있겠지?
결국 모래밭에 주저앉다. 정말 고운 모래가 신발에 다 들어가버렸다. 파우더 같은 가루라 거슬리지는 않는다.
되짚어 나오려는데 트랙터버스 줄이 길다. 아마 한꺼번에 두 대가 왔던 듯. 여기서도 시간 안 지키기가 있구나. 한참 기다리던 사람들은 저 멀리 버스가 보이자 박수를 친다.
버스 안에서 티켓을 사도 된다. 내 앞에 있던 두 가족도 현장에서 결제한다.
돌아가는 길은 자전거 길을 따라 간다. 아까 아찔한 경험을 한 모랫길은 패스. 유격훈련은 한 번으로 족하다. 이곳 부모들은 아기 태우는 카트를 연결한 자전거를 탄다. 다리 근육이 장난 아니다. 코펜하겐 시내에서는 한 아빠가 부인과 아디 둘을 태우고 다니는 것도 봤다.
코펜하겐도 비교적 정갈하고 위험하지 않은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스카겐에 오니 그곳에서 어떻게 사흘이나 머물렀나 몰라 하는 느낌?
갈 때부터 신경쓰였던 조형물 있는 곳을 가? 말아? 평소 애매할 때는 가봐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여행자는 그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결론은? 가보기를 잘했다. 전망대 같기도 하고, 방어 포인트 같기도 한 곳. 바다가 확 온다. 벤치에 앉아 한참을 그냥 바라본다. 그래도 좋으네. 한 부부가 나타나 의자에서 좀 비켜 앉는다. 감사한다는 인사와 미소. 이곳에서 참 익숙한 풍경이다. 이걸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사람이 사람한테 웃고 양보하고 고마워하는 것.
다시 스카겐 시내로. 솔트카라멜 아이스크림 먹다. 아침에 땡땡 포스터 있던 곳은 갤러리라 물건들이 너무 크다. 살 수가 없어. 미술관숍에서 눈에 아련했던 물고기접시를 사다. 아쉽지만 작은 것으로 만족해야지. 멀리 갈 거냐고 해서 아주 멀리 간다고 했더니 크루즈 아니냐고 물어보신다. 아니라고 했더니 두꺼운 종이에 꼼꼼히 싸주신다. 또다시 감사!
멀티패스 중 하나 남은 누구네 집은 안 가기로. 아니 못 가기(?)로 하다. 16시에 닫는다고 해서 포기.
역에 들러 시간표를 확인하려고 했더니 역사는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 사람도 없고 카페만 있네. journeyplanner.dk에서 타임테이블 확인하라는 고지만 남아 있다. 쿨한데? 슈퍼 들르다. 어제는 닫혔던 곳. 맥주 하나, 블루베리 하나 사고 나오다. 버거집이 있는 듯했는데 가보니 그냥 그래서 숙소로 돌아가기로 하다.
그레넨으로 오가는 길은 여행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수월했다. 뭐든지 먼저 겁먹는 건 의미가 없다는 교훈을 얻는다.
아까 봐둔 초입의 핫도그트럭에서 큰 핫도그 하나 사다. 말뫼 비앤비 주인의 메시지가 와 있다. 도착 2시간 전에 연락하란다. 참 꼼꼼한 분이다. 멀리서 일을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갑자기 미안해진다. 반전은 여인일 거라고 짐작한 내가 틀렸다는 것.
내일은 아침 먹고 리프트를 이용할 수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짐 때문에 가파른 계단은 못 내려가겠어. 스태프한테 말하라는 고지가 붙어 있었으니까 물어봐야지. 아니면 도움을 요청하든지. 가파른 계단을 다시 보니 머리가 아파지고 다칠 것 공포가 밀려온다.
bbc는 연일 애플의 헤드셋 기사가 메인. 뭔 일이래?
6월7일 흐림. 처음 보는 잔뜩 흐린 날씨. 스카겐을 떠나는 날이다.
리셉션이 8시에 여는 줄은 몰랐다. 여행자는 언제나 모든 것을 확인해야 하는데...여하튼 6시 반쯤 내려와 확인한 결과 리셉션은 8시에 시작한단다. 식당은 7시이므로 문을 열면 여기서라도 물어봐야지. 출근하는 듯한 여인 발견. 혹시 리프트를 이용할 수 있냐고 묻자 곤란한 얼굴로 ‘너무 일찍인데’ 하고 나가버린다. 딱 부러지는 대답을 듣지 못해 겸사겸사 그녀를 기다린다. 덩치 좋은 남자분도 조식을 먹기 위해 기다리나 보다. 정 안 되면 이분께 부탁해볼까? 근데 아까 그분의 정체는 뭐지? 그런데 그분도 손님이었다는 사실;; 성급해진 여행자의 또 다른 실수다. 7시에 조식. 그때 출근한 조식 담당에게 물어봤더니 7시 반에 직원이 온단다. 힐끔거리며 밥을 먹는데 나의 라이벌인 듯한 두 분 등장. 이들도 리셉션에 용건이 있나 보다. 혹시 오래 걸리는 거면 곤란한데?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것이 몸에 밴 여행자는 또다시 걱정이 한 가득이다. 다행히 그들의 용건은 그리 길지 않았고, 리프트를 이용할 수 있냐고 물었더더니 체크아웃할 때 이야기하란다. 한 고비를 넘다.
양치하고 가방 리프트 앞에 갖다 놓고 리셉션으로 간다. 직원이 동행해준다. 계단이 너무 가파르다고 했더니 그래서 가끔 리프트를 쓰는 사람 있는데 잘못하면 지하로 내려가 손으로 동력을 돌려야 한단다. 그래서 같이 타는 거라는 설명.
무사히 가방 내리고 이제는 가차 타러 역으로 향한다. 8;20 skorping행은 올보르그로 가는 기차. 2시간여가 걸린다. 열차는 사람도 별로 없고 쾌적하다. 심지어 옆자리 한 여자분은 신발 벗고 뜨개질을 한다. 갑자기 현타 오다. 나만 동동거리고 사나? 좀 느긋해지자.
올보르그 도착 후 10시 50분 코펜하겐 카스트럽공항행 열차로 갈아탄다. 그 전에 티켓 발매기에서 좌석을 지정한다. 기계가 시키는 대로 하니 그리 어렵지 않다. 1등석이고 12번. 문제는 2량짜리 열차라 좌석번호는 12번인데 2등석과 1등석이 같은 기차에 함께 있다는 것. 내 좌석 번호를 찾을 수 없어 일단 아무 자리에 앉아 옆의 여인에게 묻는다. 그분도 이해를 못하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몰라. 승무원이 오면 물어보다. 여인은 내가 앉은 자리가 모두 예약된 것 같다며 다른 곳으로 가서 기다리라고 이야기해준다. 내가 앉았던 곳은 확고한 예약석. 장황한 글이 지나가는 곳은 구글 번역기를 돌려보니 ‘예약석일 가능성이 있음’이다.
결국 표 검사하러 온 역무원에게 묻다. 끝자리까지 가야 한단다. 이해가 안 되는 게, 보통 1등, 2등 열차는 분리돼 있는 게 아닌가? 또다시 멘붕이다. 이 열차는 1량에 1, 2등석이 함께 있다. 아직도 이해가 안 된 여행객은 마지막 입구에서 왜 안 열리냐며 마구 몸 개그를 했다. 이걸 본 역무원이 출동해 여기가 맞다고 한다. 이제야 눈을 크게 뜨고 보니 first calss quiet area 12번 좌석이 있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약간 쪽팔리는 순간이었다. 나의 몸부림을 승객들이 봤겠지? 지난번 좌석 예약은 날짜가 틀렸고, 이번에는 이들의 문화를 몰라 결국 1등석 좌석을 날릴 뻔하다.
이제는 진정하고 내 자리에 앉아 편하게 가는 중. 비앤비 주인에게 문자를 했지만 답이 없다.
이 나라에서는 현지인 찬스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했을 듯하다. 친절한 그들에게 감사, 또 감사하다. 15시 34분 코펜하겐 중앙역 도착. 이후 말뫼로 간다.
fredericia역에서 열차를 더 잇거나 분리하는 것 같다. 드디어 아까 치열하게 몸개그를 했던 그 문이 열렸다. 갑자기 좋아진 콰이어트룸. 정말 콰이어트하게 정신을 수습하고 평화로운 상태로 목적지까지 달려간다.
말뫼 비앤비 주인과는 17시쯤 숙소 앞에서 만나기로 하다. 쉬엄쉬엄 가자.
또다시 결심한 통화 가능한 심카드 구입. 홀로 여행에는 뭔 일이 있을지 모르므로.
쉬엄쉬엄은 나의소망이었을 뿐;; 코펜하겐 센트럴에 내려 또다시 헤매고 있다. 이때 나타난 역무원은 구세주였다. 6번 플랫폼이라고 설명해준다. 종점이 다 달라서 전광판 보기가 좀 어렵다. 6번 플랫폼은 아수라장이다. 계속 기차 도착 시간이 늘어진다. 한 대는 도저히 탈 수가 없어 보내고, 다음 기차도 원래는 15시 57분에 도착해야 하는데 현재 59분...계속 딜레이되고 있다. 타고 나서도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말뫼에 괜히 숙소를 잡았나 싶은 순간이다. 코펜하겐공항에서 많이 내렸지만 내린 만큼의 승객이 탄다. 계속 지연되는 기차에 지치고 열 받은 승객들을 의식한 듯 “미안하지만, 이는 덴마크 시스템 때문”이라는 방송이 나온다. 모두 실소하다. 그나마 한 자리를 차지해 앉았으니 망정이지 정말 힘든 길이 될 뻔하다. 스웨덴 넘어가니 방송도 하지 않는다. 다시 현지인 찬스로 다리 건너 두 번째 정거장인 triangeln역에서 내리다. 집주인은 지쳐서 연락이 두절된 상태. 17시를 훌쩍 넘긴 20분께에 도착하다. 1시간 20분이나 걸린 거 실화냐? 공항 갈 때 참고해야 할 듯하다.
쇼핑센터 쪽으로 가다가 쇼핑센터 끼고 우회전. 정확한 주소는 못 찾겠다. 결국 second hand 앞에서 집주인의 연락을 받고 드디어 만나다. 사과를 했지만 부족한 듯싶다. 여인이라고 생각했던 집주인은 남자분이었다.
집과 낯가리는 중. 왠지 수상쩍고, 결정적인 불편함은 옆에 있는 복합주택의 놀이공간이 있다는 것. 시끄러워 돌아버림. 저녁에는 그래도 괜찮아질까?
아파트 4층이고 엘리베이터도 있다. 불길한 종이쪽지 발견해 번역기를 돌려보니 가끔 고장이 나므로 조심히 다뤄달라는, 별로 듣고 싶지 않은 경고다.
쇼핑센터에 갔지만 그리 흥미롭지는 않았다. 이 동네의 첫인상은 그리 괜찮은 곳은 아니라는 것. 너무 ‘부자’스러운 곳에 있다가 생활이 있는 동네로 온 느낌이다. 대신 큰 슈퍼가 두 개나 있는 등 생활은 편리하겠다.
타월이 회색이라 좀 찝찝하네. 하나 사야겠다. 키친타월도 안 보여 이것도 사야 하나 했더니 있다. 근데 수세미에 너무 기름이 많이 묻어 사용하기 힘들다. 그런데 수세미도 새것이 있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여행자의 단견. 조금씩 마음이 풀어진다. 그리 위험해 보이지도 않고, 괜찮은 동네인데?
슈퍼에서 장보다. 이곳 슈퍼에서는 id를 요구한다. 여권 제출. 왜 그러냐고 했더니 캐셔는 시키는 대로 하는 거란다. 연어필레를 하나 사서 회로 먹으려고 했으나 상태가 별로라 내일 구워먹기로 하고 마리네이드. 고기는 너무 많이 산 것 같고, 그렇게까지 맛난 것 같지도 않다. 누룽지 끓여 김과 멸치와 함께 먹다. 상추, 고추, 아스파라거스도 사다. 여기 역시 맥주의 알코올 도수는 3.5도. 술을 사려면 리커숍에 가야 한다는데 뭐 그렇게 적극적이고 싶지는 않고, 맥주나 좀 마시기로.
집주인도 정신이 없어 와이파이 번호를 주지 않았다. 문자로 받고 연결하다.
내일은 말뫼도서관과 말뫼성. 새 소리가 계속 들린다. 바다와 가까운 듯 비릿한 바다냄새도 난다. 야밤에는 불꽃놀이. 낮에는 폭주족. 왜 그러냐고 집주인에게 물어봤더니 이곳 학교의 마지막 시험이었단다.
이곳은 복합주택이 많아 창문 열기도 좀 그렇고, 나로 인한 냄새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으로 조금 불편하다. 이는 이곳만이 아니라 비앤비나 아파트형 숙소에 가면 언제나 드는 생각이다. 김치 냄새나 라면 냄새 등을 이들이 이물감 없이 허용할 수 있는가 하는 괜한(?) 조바심이 언제나 있다.
그래도 드라이어는 스카겐에 비하면 짱이다. 일단 슈퍼가 많아 필요한 물건을 넘치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창문에 방충망이 왜 없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냄새를 내보내기 위해 과감하게 열었더니 벌레가 쑥 들어온다. ㅋㅋㅋㅋ
6월 8일(목) 화창하다. 낮에는 좀 더울지도 몰라.
여기 온도에 적응됐나? 24도 정도 될 거라는데 벌써 더위 걱정이다. 모국에서 24도면 쾌적한데 말이다. 도서관과 성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다. 바닷가에 가서 좀 널브러질까 생각 중. 끈적한 수세미 때문에 슈퍼에 가야 할 것 같아. 오늘은 과감하게 김치를 먹어보자. 음식물찌꺼기는 냉동실을 이용하고. 어제 잠깐 스친 반미식당에 한번 가볼까?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시간이 갈수록 생경함은 사라지고 좀 정이 붙는 건지도 몰라. 일단 유튜브가 있어 k드라마 짤이나 음악을 들을 수 있어 좋다. 언제나 재미있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doctor specialist’가 제목이다. ‘맛있는 녀석들’은 ‘tasty guys’. ‘delicious guy’로 검색해도 나온다.
내일은 쇼핑하러 코펜하겐으로 간다. 캐리어 들고 가서 맡겨놓고 글립토텍 갔다가 중심지로 간다. 뱅앤올룹슨 사려고. 앞치마도, 무민 가위도, 딸 장갑도 사려 한다.
오늘은 말뫼도서관과 말뫼성. 걸어서 갈 수 있다. 가는 길은 아주 쾌적하다. 처음에 정신없는 가운데 이곳을 폄훼한 것을 후회하고 사죄한다. 중간중간 보이는 녹지들. 너무나 거대한 공원이 군데군데 있다.
도서관은 압권이다. 심지어 의자도 환상적이다. 잠시 앉아 있다. 차마 양심상 공부하는 자리는 좀 그렇고,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으니 긴장이 확 풀린다. 군데군데 걸린 에코백은 책을 빌리는 패키지인 듯. 작가가 다른 책들이 들어 있다. 역사 쪽에서 한국을 찾아봤으나 완전 옛날 책이 두어 권 있을 뿐이다. 우리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다는 의미겠지?
게임하는 학생, 널브러진 학생, 열심히 하는 학생들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리네 사정과 다르지 않구나, 이곳도.
도서관을 충분히 즐긴 뒤 성으로 간다. 공원을 따라 걷다가 공원 안으로 들어간다. 커다란 공원 안에 자리 잡은 성. 해자가 눈에 띄고, 2차 세계대전 때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는 하얀 버스가 성 앞에 전시돼 있다. 성에 들어가니 모형도 있다. 꽤 큰 자랑거리인가 보다.
르네상스 양식인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심 안의 고성이다.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3세의 명으로 확장된 요새 목적의 성. 스웨덴 독립 이후 왕궁, 요새, 감옥으로 사용되다가 약 9년간의 재건 공사를 통해 현재에 이르렀다. 1937년 이후 다양한 박물관이 있는 '박물관의 성'으로 개방됐다.
이 나라 역사를 잘 몰라 성안 투어는 그닥이었다. 모던패션전은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전시. 그림도 그다지 강렬하지는 않다. 하메르스회이의 작품이 하나 있다. 이때만 눈이 반짝 뜨인. 한 무리의 여인들도 이 그림 앞에 멈춰 선다. 현지인 발음을 들어보자. ‘하머쇠이’에 가까운 듯?
공원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조금 쉬고, 아가들 보고 SALUHALL까지 간다. 육아에 진심인(?) 아빠들이 눈에 많이 띈다. 심지어 남남 커플이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확실히 다른 정서. 이곳에는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거의 없나? 자전거길이 안쪽, 도보가 찻길과 가까운 곳에 있다. 심지어 애매하게 걷는 길이 없는 경우도 있다. 외국인으로서는 좀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이스크림 2스쿱으로 솔트카라멜과 피스타치오. 맛나다. 특히 피스타치오는 늘 먹던 맛과 다르다. 적당한 기름 맛이 도는 그냥 피스타치오다.
찻길 따라 아래로 내려오면 숙소 쪽이다. 이곳의 가게들은 반지하에 있는 경우가 많다. 들어가보고 싶은 예쁜 가게도 꽤 많다. 특히 빵집이나 꽃가게. 그런데 빵집에서 시나몬롤은 팔지 않는 것 같아.
TRIANGELN쇼핑센터에 도착해 커피숍에서 시나몬롤 하나 사고, LYKO에서 마스크팩 하나 사다. 꽤 비싸다. 이곳은 normal보다 좀 더 연령대 높은 분들이 이용하는 것 같다.
슈퍼도 어제 간 hemköp 말고 앞쪽에 있는 ICA nära가 좀 더 고급이다. 김치도 있다. 그런데 수세미는 없네;; 못 찾은 걸까?
결국 주스 하나, 종이그릇, 계란 하나 사다. 물은 숙소 앞에서 사야지. 무거우니까.
단골슈퍼에서 물(이번에는 스틸), 부직포 행주, wasa 크래커 하나 사다. 곡물 비스킷 같은 이 크래커는 이곳에 있는 동안 나의 최애템이 된다.
귀가. 3층을 눌러 같이 탄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다.
20시부터 기절하다. 엄청 피곤했나 보다.
6월9일(금) 맑음. 코펜하겐으로 건너가 글립토텍과 쇼핑. 캐리어를 가져간다.
글립토텍은 10시 오픈. 바운스에 짐을 맡겨보자. 아침은 햇반과 새우탕 컵라면, 어제 먹은 구운 쇠고기에 김치 한 봉을 넣어 볶는다. 맛난걸? 김도 꺼내고 멸치 통조림도 뜯다.
숙소의 유튜브는 신의 한수. 계속 ‘맛있는 녀석들’ 짤을 보면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을 정도다. 안심이 되는 듯.
카타르항공 좌석 예약이 열려 접속했으나 선호하는 좌석은 벌써 다 나갔고, 겨우 잡은 통로 자리. 그래도 돈 주고 좌석 사기는 싫다.
코페하겐 중앙역으로 출발. 8시 반쯤 코펜하겐 중앙역 1일권 구입. 이걸로 교통은 됐다. 이번에는 순조롭다. 40분도 안 걸려 중앙역에 도착하다. 바운스를 찾아보려 했으나 앱 예약을 해야 정확한 주소가 뜬단다. 그냥 중앙역 폴리스 아래 지하 짐 보관소에 맡기다. 꽤 비싸구나;; 거의 2만 원 하는 듯. 24시간이지만 새벽 1시 넘으면 문을 닫는단다. 내 캐리어는 요즘 나온 뚱뚱이. 옛날 캐리어를 가져왔으면 라커에도 넣을 수 있을 텐데 이건 안 된다. 유인보관소에 맡기다.
1일권 덕에 약간의 실수도 만회할 수 있다면서, 두 번이나 잘못 타다. 글립토텍 정류장이 공사로 이전했기 때문이라고 그들 탓을 한다. 다른 정류장에 내려 걸어오려면 중앙역에서 그냥 걷는 게 나았을 뻔했다. 글립토텍 한참 못 미쳐 티볼리가든 와가마마 앞이 임시 정류장이다.
소장품들은 미술관 건립자이자 칼스버그 2대 사장이었던 카를 야콥슨의 개인 컬렉션. 조각들이 많다. 고대 이집트, 로마, 그리스뿐 아니라 로댕의 작품도 여럿 눈에 띈다. 덴마크 회화의 황금기를 연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과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도 전시돼 있다.
이곳의 로댕 컬렉션은 프랑스 이외 지역에서 좋은 작품이 가장 많다는 평. 빈센트 반고흐, 앙리 마티스, 클로드 모네, 베르트 모리조, 오귀스트 르누아르 등의 작품도 있다. 이 중 폴 고갱의 채색목판화가 흥미롭다. 에드가 드가의 발레리나 조각은 상당히 보안이 철저하다. 오르세 거랑 다른 건가?
gerald henning의 ‘dancing stand on one leg’라는 굽지 않은 진흙으로 만든 발레리나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염료 팔레트도 인상적이었다. 덴마크계 노르웨이 조각가인 스테판 신딩의 작품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눈에 띄기도 하고.
그러나 내게는 건물과 정원이 다한 곳, 작품은 쏘쏘한 곳이었다. 하메르스회이 그림과 아나 안셰르답지 않은 그림도 하나 보다.
미술관 카페에서 카페오레를 마시다. 미술관숍의 에코백도 별로, 굿즈들도 그냥 그렇다. 프랑스 미술이 덴마크에 미친 영향이 꽤 큰 듯하다. 크뢰이어나 하메르스회이의 그림에서도 이 같은 영향을 볼 수 있다.
나오다. 백화점인 마가신 뒤 노르로 가려고 버스를 탔으나 결국 어리버리하다 내리지 못해 두세 정거장 지나다. 내려서 다시 긍정회로를 돌려본 결과 다행인 점은 이곳에서 메트로를 타면 콩겐스로 간다는 것. 마가신 지하에서 회사 사람들에게 줄 초콜릿을 하나 사다. 꽤 비싸다.
50% 할인하는 팔찌도 하나 겟.
스트뢰에 거리에 있는 뱅앤올룹슨에서 베오사운드 블루투스 스피커 하나 사다. 다음은 hay. 이곳은 참 예쁘구나. 컵도 아름다웠고, 양초도 좋았지만 무게의 압박으로 사지는 못하다. 같은 색깔의 에코백 2개를 사다. 다른 색깔은 감당을 못하겠어. ㅋㅋㅋ
마가신에서 초콜릿, 리즐링 하나 산 뒤 지하철 타고 중앙역으로 가다. 캐리어 찾아 넣으니 15시 좀 넘은 시간. 조앤조 주스에서 픽미업? 하나 마시고, 이번에는 7번 플랫폼으로 내려가 helsingborg행 기차 타고 말뫼로 돌아오다. 이 기차는 두 파트로 나뉘어 götenborg행 쪽에서 타면 말뫼로 갈 수 없다. 조앤조 주스에서 어느 할머니가 자기 부르는 소리를 못 들어 한참 지나 주스를 가져가려 하자 다시 만들어준 종업원들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triangulm역에서도 반대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이곳이 아니네;; 다시 내려와 반대편으로 탈출하다. 그런데 이곳의 엘리베이터는 특이하다. 직선으로 올라가지 않고 산악열차처럼 비스듬하게 올라간다.
hemköp에서 적양파, 가스물, 돼지고기(기름 있는 부위는 너무 양이 많아 가장 작은 퍽퍽살로 구입) 사서 숙소 도착.
내일은 말뫼 바닷가에 가볼까?
6월10일(토) 째지게 좋은 날씨. 바람이 좀 부는 듯하다. 검색하니 ribersborgsstranden이라는 비치가 이곳에서 가장 가깝다. 가보기로. 타월을 챙기다. 역에서 7번 om행을 타면 된단다. 1일권 끊기 전에 여기도 세븐일레븐에서 파나 해서 물어본다. 안 판단다. 트레인과 버스를 커버한다는 정보를 현지인에게 듣다. 역에서 말뫼 24시간권 구입. 62SEK(스웨덴크로나, 8000원쯤). 그리 비싸지 않은데? 지하철역 들어가기 전 기계에서 사다.
이번에는 7번 버스 탐색. 어느 쪽에서 타는지 알 수가 없군. 현지인 찬스를 쓰려 했으나 이분은 모른단다. 다행히 버스 정류장 표지판에 om행이라고 써 있다. 약 8정거장. 중앙역을 지난다. 오는 길에 중앙역에도 들러보자.
바다! 가족들이 엄청 놀러 다닐 시즌. 게다가 토욜. 사람들은 벌써 수영하고 난리났다. 바다로 들어갈 수 있는 부두 같은 곳의 끝까지 가보다. 사우나가 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여행객에게는 무용지물. 다음에는 사우나를 해보자.
그러고는 해변에서 널브러짐. 평화롭다. 옆 가족의 아이 소리도 거슬리지 않는다. 한 시간쯤 잤을까? 바람 때문에 일어나다. 얼굴에 모래가 많이 붙어 있군.
되짚어 중앙역. 그리 크지 않지만 예쁜 곳. 식당가도 있다. 스뫼레브뢰드 하나 먹을까 했지만 그리 맛나 보이지는 않는다. 매점에서 지난번 기차에서 먹은 과자 하나 사다. 그러보 보니 슈퍼도 있다. 물하고 과자 하나 사고 둘러보니 무인계산기만 있다. 외국 카드라서 그런지 직원의 도움을 받으라는 문구가 뜬다. 직원 데려와 해결하다. 또다시 긴장해 콸콸 물 마시기.
다시 7번 버스 타고(이 버스밖에 모르니 의존이 심해지는군) 숙소 지나 더 멀리까지 가보기로 하다. 웬 쇼핑센터 있는는 곳에서 많이 내리길래 따라해본다. 그냥 쇼핑몰. 확실히 거주구역이라 쇼핑센터나 슈퍼가 우리 편의점만큼 많다. 조금 저렴한 물건 파는 곳 같던 잡화점에 들어가 테이블매트 6개(하나에 20크로나인데 6개면 100크로나라고 해서;; 사다., 여기서 결국 잠시 놓아뒀던 카메라를 잊고 나오다. 그래도 바로 생각해냈기에 들어가 이거 내 거라고 했더니 무뚝뚝했던 아줌마가 같이 걱정해준다. 그 옆의 아저씨도. 아까 가려다가 너무 남자들만 있어 용기를 내지 못했던 화장실에 가다. 아무래도 아직 낯선 풍경. 남녀 구분 없는 곳이 많아 화장실에 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가게에서 코펜하겐 백화점에서 봤던 스트라이프 도기 발견. 큰 거는 좀 그렇고 에그홀더 2개 산다. 그리고 무민 컵 2개. 사이즈가 어중간해 사지 않으려 했는데 네이버 뒤져보니 8만원이 넘는다는 정보에 갑자기 구매욕 폭발하다.
숙소로 돌아오다. 슈퍼에서 짜먹는 치즈 3개쯤 사고 저녁 반찬으로 훈제 연어와 채소 구입. 여권을 제시해야 하는 슈퍼가 번거롭다.
6월12일(일) 여전히 날씨는 좋다. 도대체 밤이 몇 시간인 거임?
남은 눌은밥은 결국 다 먹지 못하다. 연어샐러드와 장조림, 김, 계란프라이, 상추 등으로 배 찢어지게 먹다. 집에서 가져온 간장과 올리브유 조금 남은 것은 놓고 가기로 하다. 누군가 쓰겠지. 마구 찍어 먹은 쌈장은 버리기로. 홀랑 반한 이곳 상추. 어린 잎이라 보드랍고 싱싱하다. 뿌리까지 달려 있어 그런가? 꼼꼼히 이곳 물건들 살피고 사진 찍은 뒤 출발한다. 집주인에게는 10시 30분쯤 떠난다고 알린다. 프라이팬은 손잡이가 자꾸 돌아가 누군가는 덤터기를 쓸 것 같다. 쓰레기도 정리하다. 하느라고 했는데 이제는 모르겠다. 냉동고 아래쪽은 애초부터파손돼 있었다.
10시 30분쯤 출발. ‘맛있는 녀석들’이 나의 불안감 해소에 큰일을 했다. 오른쪽 길은 중간에 파헤쳐져 있어 길 건너 왼쪽 길로 캐리어를 끌고 가다. 코펜하겐공항 싱글티켓 끊고 내려가니 바로 차 온다. 굿!
노약자석 같은 곳이 비어 있다. 냉큼 앉다. ‘나는 짐을 많이 든 외국인’이라고 세뇌하면서. 웬일인지 표 검사를 하네. 한 나이 지긋한 커플이 걸렸다. 표 검사는 기차 빼고 처음이다. 외레순다리 건너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11시쯤? 일단 택스리펀 데스크를 찾다. departure 아래층, 도착한 곳 2터미널 쪽은 글로벌블루, 조금 더 3터미널 쪽으로 가면 planet. 먼저 planet으로 갔으나 이곳 담당자가 버벅거리기 시작한다, 나도 덩달아 당황하다. 결론은 “네가 제시한 한글 바우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였다. 담당자가 옆 사람에게 물어봐 내린 결론이다. 항공권이나 뭐 다른 걸 제시하라는데 정신이 없어 카타르항공 앱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아직 비행 시간이 뜨지 않았으므로 12시쯤 다시 오란다. 눈 부릅뜨고 12시가 맞냐고 했더니 그렇단다. 나중에 찾아보니 어떤 분은 3시간 전에 오라고 한 예도 있었다. 미숙한 일처리에 불쾌해졌다.
스태프에게 물어 글로벌블루도 찾았다. 번호표 뽑고 기다리다. 이곳은 별 문제 없이 바로 처리해준다. 일단 시간은 아꼈다.
12시. 줄 서다. 아까 그 담당자가 신경이 쓰이는 듯 쳐다본다. 새로운 다른 담당자 차례. 이분도 마찬가지다. 활성화한 앱을 들이댔더니 세 번을 다시 보여달라고 하지 않나, 물건을 꺼내라고 하지 않나,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더니 코리아를 못 알아듣는다. 아까 그 담당자가가 심지어 알려주기도 하다. 러프하게 한 달이 걸린단다. 두 번이나 이야기함. 알았다고. 또다시 불쾌해졌다.
그래도 일단 택스 문제를 해결하고 departure로 올라간다. 짐이 있어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웬 청소부가 어차피 올라가면 바로 트롤리를 놓고 다녀야 하니 짐을 들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란다. 이대로 올라갈 수는 없냐고 했더니 자기도 함께 타도 된다며 불쾌한 한숨을 쉰다. 먼저 올라가라고 했더니 다시 한숨을 쉬며 쳐다본다. 무시가 가장 현명한 답 같다. 뭐 청소부하고 싸울 일은 없지.
ay1985 도하 가는 핀에어의 게이트는 137~139. 수속하고 짐 부치고 면세구역으로 들어오다. 장고 끝에 매켈란(669dkk-12만 6521원) 하나 사다. 일본 위스키들 한 코너에 꽤 많다. 백화점에서 산 초콜릿도 무진장 많다. 선물용으로 괜찮은가 보다.
카타르항공 항공권에는 12일 1시 10분 도착이라고 적혀 있었었는데, 막상 다다르니니 2시 10분이다. 트랜짓해야 하는데 어차피 면세점 술은 걸릴 것으로 생각했지만, 앞의 한 승객은 물통을 큰 걸 든 채 타놓고는 자꾸 따진다. 이 때문에 시간이 지연된다. 트랜짓 시간이 별로 없는데;; 다른 관계자에게 시간 없다고 빨리 처리해달라고 부탁하다. 물통 들고 탄 승객은 결국 압수당하는 걸로 결론이 나다. 1시 10분으로 알고 긴장하며 경보로 걸었지만, 기계에 항공권 바코드를 대면 게이트를 알려주는 신박한 기계에 따르면 게이트는 c8, 시간은 2시 10분이란다.
물 하나 사다. 2.56달러(3343원-비싸다). 결제하려는데 카드 다시 보여달란다. 문제 있나 했더니 카드 디자인이 마음에 든단다.
카타르 항공은 full booking. 남은 자리가 한두 개 있을까? 대합실에서 봤던 모녀와 같은 자리다. 쾌적했던 핀에어에 완전 적응돼 카타르항공 좌석이 구리다고 생각하다. 모녀는 계속 잔다. 아이는 밥도 먹지 않고. 엄마는 한 번 먹고. 비행은 쏘쏘. q카드 작성하지 않아 yellow paper 받아 쓰다. 이제 세관신고는 없단다.
막판 비행기 지상에서 돌 때 옆자리 엄마와 급히 수다. 남편은 캐나다인이고, 현재는 사우디에 산단다. 엄마와 남매들을 만나러 왔단다. 엄마가 자신의 정신적 지주란다. 아이는 극소심 혹은 사춘기인 듯 아예 눈도 맞추지 않는다. 이제 중국은 끝났다며 중동 돈을 다 먹어야 한다는 아주머니와 맞장구치다가 사우디 과자를 하나 받다. 고맙습니다. 혹시 광화문에서 만나면 아는 체하자며 헤어지다.
c3출구. 딸에게 톡 보내고 먼저 나와 기다린다. 입구에서는 난리가 났다. 누군가의 아버지가 산티아고를 완주하고 돌아오셨나 보다. 플랭카드 든 식구들이 북적거린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