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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Jan 05. 2020

'힘든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영화 <파바로티>를 본 일요일 오후

아트 하우스를 찾은 건 오랜만이었다.
예전엔 주말에 새벽에 일찍 눈이 떠지면 혼자 조조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요즘엔 그렇게 ‘일찍 일어나 뭘 해야 하나’ 방황하는 시간이 사라지기도 했고(걱정과 예민함이 줄었나 보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게 되면서 마지막으로 혼자 영화관을 찾은 게 언제였나 싶었다.

꽤 여러 편의 영화 예고가 상영되는 사이 관객들이 하나 둘 자리를 채웠고 거의 모든 좌석이 알차게 빼곡해졌다.
영화 <파바로티>를 보러 온 관객의 연령대가 상당히 높아 보였다. 일요일 늦은 오후, 각자의 이유로 우리는 작은 영화관에 함께 모여 앉아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영화를 보며 자주 졸았다.
어제도 썼지만 새해가 된 이후로 수시로 잠이 쏟아진다.
중반 정도 지났을 때 쯤 정신을 차리고 영화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세가지 장면을 영화가 끝나고 메모장에 옮겨 적었다.(스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은 스킵 해 주세요)

1. 니콜레타에게 건네는 파바로티의 위로.
-‘힘들고 아픈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모든 걸 즐길 수 있게 될 거야.’


어린 시절 전쟁 중 파상풍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던 파바로티는 그 시간이 자신의 낙관적인 성격과 강인한 정신을 갖게 만들었다고 했다. 생의 기로를 겪은 이후엔 햇볕도, 바람도, 모든 것들이 새롭게 다가오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며 아픈 연인 니콜레타에게 힘든 시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보자 위로한다. 실제로 니콜레타는 병마를 이겨낸 이후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다.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면서.

별 백개. 온갖 종류의 시련은 결과적으로 인생을 낙관적으로 대하게 하고 또 자유롭게 했다. 약간의 치통 생리통만 지나가도 이후에 아프지 않은 내 몸이 얼마나 감사해지는지. 엄마가 목숨을 건 수술을 이겨낸 후 싸우더라도 이렇게 끌어안고 살 수 있는 지금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지금의 상황들이 인생의 바닥처럼 느껴져 도망치듯 여행을 떠났을 때마다 내가 그간 얼마나 좁은 세상을 아등바등 끌어안고 살았었나 느꼈는지. 없으면 죽을 것 같은 건 인생에 몇 개 되지 않았다. 건강, 가족...이외에는 그래, 연연하지 않고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는 마음으로 지금을 담대하게 살아갈 것. 그리고 온갖 걱정과 오지랖을 끌어 안고 사는 사람과는 멀리할 것.

2. 파바로티의 실력이 예전같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보노가.
-‘노래 안에 담을 수 있는 건 그 사람의 인생이야’


그는 파바로티의 노래가 변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고 했다. 이미 다 아는 노래에 담을 수 있는 건 그 사람의 인생이고 희망이고 욕망이고...지나온 삶인데.

3. 죽음을 앞둔 파바로티의 모습을 본 딸이
-‘아픈 아빠를 보고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생각했어요’


스캔들과 이혼 이후 아빠와 갈등의 시간을 겪었지만 죽음 앞에서는 그런 것들이 모두 무의미해지는 순간이었다.

파바로티의 성격과 삶에 영향을 준 어린 시절, 성장기, 전성기, 그리고 죽음과 이후의 시간까지 영화 안에 차례로 스쳐 지나가며 한 사람의 인생을 강렬하게 지켜 본 느낌이었다. 파바로티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았던 환한 웃음과 풍부한 표현력 안에는 그의 삶에 대한 긍정과 포용력 때문 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대중의 비난을 감수하고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삶을 살았던 그의 인생을 보며, 완벽한 삶보다 인생은 짧기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내 방식대로 살아가자 하고 생각한다.

“내가 노래를 참 잘 했구나.”

죽음을 앞둔 그가 자신의 노래를 들으며 했다는 이 말이, 누구라도 가질 수 밖에 없는 삶의 유한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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