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낯선 야생의 창문을 열다 : 규슈 아프리카의 숨결

[규슈여행]

경계의 상실,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둔 두 세계의 조우


일본 규슈의 오이타현, 벳푸의 온천가에서 피어오르는 몽환적인 수증기를 뒤로하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다 보면, 우리는 예기치 못한 시공간의 뒤틀림을 마주하게 됩니다. 일본 특유의 정갈한 삼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그곳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아프리카’라는 이질적인 이름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규슈 자연 동물 공원(아프리카 사파리)’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지리적 경계를 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구축해 놓은 문명과 야생이라는 근원적인 경계 앞에 서게 됩니다.

차에서 바라본 아프리카 사파리, 문득 이 공간이 왜 생겼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한 시점

도슨트로서 나는 장소를 마주할 때 항상 질문을 던집니다. “왜 이곳에 이런 공간이 존재해야만 했을까?”라는 물음이죠. 렌터카의 운전대를 잡고 사파리의 철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동안, 내 시선은 차창 밖의 풍경을 너머 이 장소가 품고 있는 보이지 않는 서사로 향합니다. 1976년, 그 옛날 누군가가 꿈꾸었던 ‘가장 안전한 야생’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에게 어떤 영감을 주고 있을까요?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맹수와 눈이 마주치는 그 찰나의 순간, 우리는 비로소 ‘관찰자’가 아닌 ‘생태계의 일부’로 돌아가는 기묘한 경험을 시작하게 됩니다.


1970년대의 욕망과 칼 하겔벡의 철학이 빚어낸 ‘일본의 아프리카’


이 사파리가 문을 연 1976년은 일본 현대사에서 매우 상징적인 시기입니다. 고도 경제성장이 정점에 달하며 물질적 풍요가 넘쳐나던 시절, 일본인들에게 ‘해외여행’과 ‘아프리카’는 동경과 갈증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과 비용으로 아프리카로 떠나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자 특권층의 전유물이었죠. 일본은 이 대중적인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오이타의 광활한 산악 지형을 깎아 ‘일본 속의 아프리카’를 통째로 옮겨오는 과감한 프로젝트를 실행합니다.

KakaoTalk_20260225_093836681_04.jpg 사람을 차에 가두고, 동물을 밖에 풀어놓은 '관람의역작'

여기서 우리는 ‘현대 동물원의 아버지’라 불리는 칼 하겐벡(Carl Hagenbeck)의 철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동물을 좁고 차가운 철창에 가두는 대신, 도랑이나 자연 지형을 이용해 경계를 만드는 ‘철창 없는 동물원(Bar-less Zoo)’ 개념을 창시했습니다. 규슈 아프리칸 사파리는 이 철학을 한 단계 더 비틀어 확장했습니다. 동물을 가두는 대신 인간을 차라는 금속 상자에 가두고, 동물들은 광활한 초원을 활보하게 만드는 ‘관람의 역전’을 시도한 것입니다.

렌터카를 타고 이동하며 마주하는 풍경은 영락없는 규슈의 짙푸른 산세이지만, 그 위를 유유히 걷는 것은 사자와 치타 무리입니다. 이 비현실적인 ‘꼴라주’는 마치 초현실주의 화가의 캔버스를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배경과 주체가 서로 어긋나면서 발생하는 이 미묘한 이질감이야말로, 이곳을 단순한 동물원이 아닌 ‘인간의 상상력이 자연과 타협하여 만들어낸 독특한 무대’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현장의 호흡: 렌터카로 진입한 사자의 영토, 그리고 생존의 감각

대부분의 관광객은 사파리 하면 으레 철망이 둘러쳐진 ‘정글 버스’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도슨트의 시선으로 본 진정한 사파리의 백미는 ‘렌터카 자차 진입’에 있습니다. 12월의 어느 토요일 오전, 나는 가족과 함께 렌터카를 몰고 사파리 입구로 향했습니다. 성수기 주말이라 톨게이트까지 약 30분의 웨이팅이 필요했지만, 그 기다림은 오히려 야생의 영토로 들어가기 전 마음을 가다듬는 ‘정화의 시간’이 되어주었습니다.

KakaoTalk_20260225_093836681_01.jpg 마침 아프리카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사자 무리들

사파리 게이트의 거대한 철문이 열리고 진입하는 순간, 차 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긴장감으로 채워집니다. 정글 버스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요함, 오직 내가 선택한 음악만이 흐르는 이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맹수의 숨결을 느낀다는 것은 경이로운 공포입니다. 사자 구역을 지나 곰 구역에 접어들었을 때, 육중한 곰 한 마리가 우리 차 문 바로 옆을 스치듯 지나갔습니다. 매끄러운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곰의 눈동자는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의 주인은 너희가 아니라 나다.”라고 말이죠.


여기서 여행자들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 즉 ‘생존 꿀팁’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사파리 존은 총 6km에 달하며, 정체가 심할 경우 1시간 이상 소요되기도 합니다. 맹수 구역에서는 절대 문을 열거나 하차할 수 없기에, 매표소 직후 우측에 있는 ‘마지막 화장실’을 사수하는 것은 인문학적 성찰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또한,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은 이유는 ‘당일 무제한 재입장’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오전에 전체적인 동선을 파악했다면, 오후 해가 기울 무렵(Golden Hour) 다시 한번 진입해 보길 권합니다. 낮은 각도로 비치는 태양 광선 아래 사자의 갈기가 황금빛으로 산화되는 그 숭고한 찰나를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결제 단계에서는 트래블 카드(Travel Card)를 활용하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3인 가족 기준의 결제액은 적지 않지만, 수수료 면제 혜택을 챙기면 여행 중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작은 보상이 뒤따릅니다. 이런 사소한 팁들은 우리가 여행지에서 느끼는 심리적 여유를 지탱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됩니다.


야생이 우리에게 남긴 질문

사파리 투어를 마치고 다시 문명 세계로 돌아오는 길, 차 안은 아까와는 다른 고요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단순히 신기한 동물의 구경을 넘어, 우리는 어쩌면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잊고 살았던 ‘생명의 야성’과 마주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1976년에 설계된 이 인공적인 아프리카는,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인들에게 가장 본질적인 생명의 가치를 역설하고 있었습니다.


규슈 아프리칸 사파리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공간이자, 동시에 동물을 존중하기 위해 스스로를 가둔 인간들의 성찰이 담긴 장소입니다. 벳푸의 온천욕이 몸의 피로를 풀어준다면, 이곳 사파리에서의 시간은 박제된 일상에 길든 우리의 영혼을 일깨우는 자극제가 됩니다.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사자의 위엄을 떠올려 봅니다. 삶이라는 사파리 속에서 우리는 때로 관찰자가 되고 때로 누군가에게 관찰당하는 존재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유리창 너머의 세계를 향한 ‘경외심’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규슈의 산악지대에서 만난 그 낯선 아프리카의 기억은, 이제 나의 여행 노트 속에 단순한 기록이 아닌 ‘생명의 서사’로 깊게 새겨졌습니다.


다음 여행지에서는 또 어떤 역사가 말을 걸어올까요. 도슨트의 여정은 멈추지 않습니다. 길 위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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