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토키 씨, 이제는 혼자 짊어지지 마세요

by 진금미

애니메이션 <은혼>을 보며 여러 일본어를 배웠다. 대개 ‘네놈 자식’, ‘시끄러!’, ‘살려줘’ 같은 별 도움 안 되는 말이었지만 그중에도 쓸 만한 단어 하나가 있다.


まもる(마모루)


‘지키다’라는 뜻의 이 단어는 잊을 만하면 여러 인물의 입에서 나와 자연스럽게 뇌리에 각인됐다.


소라치 히데아키가 <소년 점프>에서 오랜 기간 연재했던 <은혼>은 에피소드 형식의 개그 만화로, 과거에 전쟁 영웅이었으나 이제는 당분과 도박에 중독된 한량인 ‘긴토키’를 중심으로 외계에서 온 괴력 소녀 ‘카구라’, 돌아가신 아버지의 도장을 재건하기 위해 애쓰는 소년 ‘신파치’가 돈만 받으면 어떤 의뢰든 해결하는 ‘해결사’를 결성하며 시작된다. 이 외에 무장 경찰 ‘진선조’와 막부(정부)에 반감을 가진 혁명군 등 여러 인물이 해결사와 엮이며 다양한 에피소드를 빚어낸다.


나름 일목요연하게 <은혼>을 정리해 봤지만, 사실 무의미한 일이다. 만화의 80%가 음담패설, 화장실 개그, 인물들의 황당한 바보짓, 패러디 등으로 구성된 어디 내놓아도 부끄러운 내용으로만 점철되었기 때문이다. 질 낮은 개그는 물론 사무라이(무사)를 미화하는 역사 왜곡, 스토킹이 개그 소재로 활용되는 등 문제적인 부분으로 가득한 이 만화를 이렇게나 좋아하다니 절로 탄식이 나왔다.


그렇지만 상식을 뛰어넘는 전개, 어떤 일이 벌어져도 다음 에피소드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단절되는 이야기 흐름에 심각한 고민 없이 편하게 볼 수 있어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수많은 개그 에피소드를 정복해 나갔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평소처럼 웃을 각오로 ‘금혼’ 편을 틀었다가 <은혼>을 보는 태도에 커다란 전환점을 맞았다.


<은혼>은 ‘은빛 영혼’이라는 뜻으로 은발의 천연 곱슬 긴(銀-‘은’의 일본어 발음)토키의 영혼이라는 의미다(일본어 원제는 ‘긴타마’로, 고환(...)을 뜻하는 ‘킨타마’와 발음이 비슷한 말장난이기도 하다). 오랜 외출을 마치고 해결사 사무실로 복귀한 긴토키 앞에 그가 원하던 직모를 지닌 금발 남성이 긴토키와 똑같은 얼굴로 자신이 해결사 사장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이름은 킨(金- ‘금’의 일본어 발음)토키. 은보다 나은 금으로 가득한 그는 <은혼>을 밀어내고 <금혼>의 주인공이 되어 긴토키의 자리를 대체한다.


킨토키의 조작으로 사람들은 원래 긴토키가 사람들과 쌓아왔던 모든 추억을 킨토키로 바꿔 기억한다. 킨토키는 모든 면에서 긴토키보다 낫다. 긴토키처럼 게으르지도 않고, 집세와 월급이 밀리지도 않고, 모든 이에게 상냥하다.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리고자 노력하던 긴토키도 자신의 시도가 연거푸 실패로 돌아가자 ‘이곳에 필요한 건 단점으로 가득한 자신이 아닌 완벽한 킨토키’라고 자책하며 쓸모없는 본인은 사라지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물론 소년 만화의 공식대로 이후 전개는 주인공 긴토키의 편을 들어준다. 마을 사람들은 가까스로 긴토키를 기억해 내고, 모두 힘을 합쳐 킨토키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상대인 킨토키는 어떻게든 본인이 새로운 주인공 자리를 꿰차는 방법을 만든다. 이에 긴토키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가장 큰 문젯거리와 함께 자폭하려 한다. 다행히 그의 시도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저지되었고, 악당도 무사히 처단되었지만 자폭의 순간에 그가 지었던 ‘차라리 내가 희생해서 다행’이라는 안도의 미소는 오랫동안 뇌리에 각인되었다.


<은혼>에서 실없는 개그로 구성된 80% 분량과 대비되는 20%의 진지한 에피소드를 ‘시리어스’라고 부른다. 장편 에피소드인 ‘시리어스’에는 바보짓만 일삼던 인물들의 가슴 아픈 과거가 설명되는데, 긴토키의 상처는 만화 전체의 후반부에야 알려진다.


주인공 긴토키는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고아로 성장하다가 한 스승에 의해 처음으로 학교에 들어가면서 안락한 공동체를 경험한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청년이 되어 외계인 침공에 맞서는 전쟁에서 활약했다가 패배한다. 전쟁 영웅에서 패잔병이 된 긴토키는 적군에 의해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소중한 사람을 잃고, 이후 삶의 의욕을 잃고 한심한 한량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전말을 알고 <은혼>을 처음부터 다시 보면 웃기기만 했던 개그 에피소드에서도 그의 상처가 군데군데 묻어나왔음을 알게 된다.


긴토키가 보통의 소년 만화 주인공과 다른 점은 확고한 목표는커녕 삶을 이어갈 의지조차 없다는 것이다. 큰 전투를 겪은 카구라와 신파치가 더 강해지고 싶다며 훈련을 요구해도 귀찮다고 등을 돌리고, 향상심 있는 사람만 걸리는 바이러스에도 유일하게 끄떡없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미래를 계획하지 않고, 도박과 당분에 탐닉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전쟁에서 패한 후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한 그 순간부터 그의 영혼은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영혼은 다른 소중한 사람을 지켜야 할 때 살아난다. 이는 단순히 이타심의 문제가 아니다. 주변 사람을 잃고 홀로 남겨진 자신이 두려운 것이다.


‘금혼’편으로 긴토키의 심연을 처음 마주한 나는 다른 시리어스 에피소드를 찾아보고, 그에게서 ‘지킨다’에 대한 강박과 자해의 욕망을 일관되게 확인했다. ‘사천왕’ 편 중 홀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뛰어들려는 긴토키에게 카구라와 신파치가 ‘당신이 없다면 살아도 즐겁지 않다’라고 말하자 그는 ‘즐거움 따위 없으면 어때. 그래도 난 너희가 살아있으면 좋겠어.’라고 답한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즐거움 없이 사는 건 지난 10년간 긴토키가 지나온 삶이다. 그 고통을 알기에 차라리 남겨진 쪽이 아닌 사라지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긴토키는 희생을 망설임 없이 선택한다. 오히려 기꺼워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금혼’ 편을 보기 직전 무척 심란한 상황을 겪었다. 새로 시작한 일에서 필요 이상으로 남 눈치를 많이 보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남의 눈에도 한눈에 보일 정도로 심각한 줄은 몰랐다. 그러다 눈치를 많이 본다는 건 위협적인 상황에 약자로서 노출된 적이 많았다는 뜻이라는 글을 보고 심란함은 배가 되었다.


나는 왜 눈치를 많이 볼까. 나는 왜 타인이 무서울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 근원이 되는 어린 시절 어두운 기억까지 소환되었다. 가정에서 방치되고, 학교에서 왕따당하며 늘 움츠러든 채 벌벌 떨던 어린 내가 떠올랐다. 시간이 흐르고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때의 나는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지켜진 적 없는 사람은 ‘지킴’을 학습할 모델이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만 선명한 세상에 살다 보니 누군가에게 공격받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다. 아무리 어른이 되어도 나는 아무런 무기 없이 사냥터에 내던져진 새끼 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면에 든든한 기반이 있는 사람은 공격성을 내보이지 않아도 스스로 방어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가 지나온 모든 시간이 가여웠다.


분명 이젠 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때의 안 좋은 상황은 다 지나갔는데 내 마음은 여전히 작은 자극 하나에도 심하게 요동쳤다. 이렇게 나약한 내면으로 혼자서 모든 시련을 감당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직도 나는 남에게 의지하는 일이 어렵다. 나만 진심인 관계면 어떡하지. 원치 않은 반응이 돌아오면 어떡하지. 의지하고 싶은 마음 자체가 민폐면 어떡하지. 이런 고민에 휩싸인 채 홀로 눈물 젖은 밤을 보내면 비교적 멀쩡한 아침이 찾아왔고, 이렇게 하루하루가 굴러갔다.


남을 지키는 일엔 맹목적이지만 자신은 손쉽게 내동댕이치는 긴토키가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았다. 나에겐 내가 너무 가치 없어서 얼마나 다치든 둔감한 것이다. 어차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인데 차라리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게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한 것이다. 그러나 카구라와 신파치는 그런 긴토키 곁을 악착같이 따라가며 모든 불행과 행복을 함께한다.


<은혼>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관계는 대안 가족의 형태를 띤다. 고아인 긴토키는 물론이고 <은혼>의 많은 인물이 안정적인 가족을 지니지 못한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불안한 시간을 보낸 그들은 불완전한 서로를 만나 유대감을 맺는다. 함께 모여서 대단한 목표를 이루기는커녕 바보짓만 일삼지만 그들만의 유대감은 엉망진창인 하루하루를 살아갈 힘이 된다. 숱한 역경을 겪으며 모든 일에 무기력한 긴토키가 가장 크게 절망한 순간은 킨토키에 의해 사람들에게 잊힐 때였다. 그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무의미한 반복뿐이었던 그의 삶을 지탱해 준 건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지킨 사람들에 의해 지켜지고 있었다.


결국 긴토키도 소년 만화의 주인공답게 성장한다. 작가가 직접 밝힌 대로 ‘나 혼자 구정물을 뒤집어 쓰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했던 그는 후반부에 가서는 자신을 향한 도움의 손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은혼>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지키는 것만큼이나 지켜지는 것도 숭고한 일이라고.


이제야 나를 향한 손길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내게도 유년 시절의 결핍을 대체할 만한 소중한 관계들이 많다. 몇 년 동안 지속한 영화 모임에서 최근에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으며 고민 상담과 조언을 나눴는데, 모임이 끝난 후 감동적인 메시지를 받았다.


‘우리는 어느새 서로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정말 ‘어느새’ 이뤄진 일이었다. 시작은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모임일 뿐이었는데, 함께한 시간이 쌓이면서 서로의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관계가 되었다. 우연히 만나 또 하나의 가족이 된 해결사 삼인방처럼 말이다.


어디에도 기댈 수 없었던 나는 어린 나이에도 씩씩하게 혼자 해내는 내가 독립적이고 강하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안다. 진정한 강함은 약함을 인정할 때 나타난다는 걸. 두려움을 극복하고 알에서 나와 타인에게 마음을 열어야만 그토록 원하는 강함에 다가갈 수 있다는 걸. 지켜진 사람이 지킬 수도 있다는 걸. 타인을 지키기 전에 나를 먼저 지켜야 한다는 걸. 이 모든 사실을 깨닫고 나니 세상이 한결 덜 무서워졌다. 긴토키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