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르 왕조의 여름궁전 헤네랄리페

언덕 위에 자리한 헤네랄리페는 어떻게 물의 정원이 되었을까?

헤네랄리페 Generalife 는 물과 나무가 한데 어우러진 나스르 왕조의 여름궁전이자 아름다운 정원입니다. 알람브라 궁전 Alhambra 북쪽에 위치한 이곳은 현재까지 보존된 가장 오래된 이슬람 정원 중 하나이며, 1984년 알람브라 궁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UNESCO World Heritage Site 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라나다에 자리를 잡은 나스르 왕조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 Sierra Nevada 의 한 줄기인 사비카 Sabika 언덕 서쪽 끝자락에 알카사바 Alcazaba 를 건설하며 역사에 첫 선을 보입니다. 이후 나스르 왕조가 크게 번영하며 궁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알람브라 궁전입니다. 스페인어 알카사바는 아랍어에서 유래된 말로 ‘이슬람의 요새, 성채’를 의미합니다.

알람브라 궁전과 연결된 왕실 수로 Acequia Real

방어를 목적으로 한 언덕 위 요새가 궁전으로 확장되면서 원활한 물 공급은 나스르 왕조의 핵심 과제로 떠오릅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알람브라 궁전에서 동쪽으로 약 6km 떨어진 다로 강 Río Darro 까지 왕실 수로 Acequia Real 라 불리는 수로가 건설되며 해결됩니다. 왕실 수로를 따라 흘러 들어온 물은 헤네랄리페를 거쳐 알람브라 궁전에 이르게 되는데, 놀라운 사실은 이 시설이 오늘날까지 대부분 보존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헤네랄리페는 크게 궁전과 정원으로 구성되며, 이중 수로의 안뜰 Patio de la Acequia 을 중심으로 북측 파빌리온 Pabellón Norte 과 남측 파빌리온 Pabellón Sur, 그리고 왕비의 안뜰 Patio de la Sultana 이 핵심 지역입니다.

북측 파빌리온 Pabellón Norte 과 수로의 안뜰 Patio de la Acequia

헤네랄리페의 중심인 수로의 안뜰 Patio de la Acequia 북쪽에는 북측 파빌리온 Pabellón Norte 이 자리합니다. 북측 파빌리온에는 왕의 홀 Salón Regio 을 비롯한 건물 내부에 화려한 치장 벽토 Stucco 와 무카르나스(무하르나스 / 모카라베) Muqarnas / Mocárabe 조각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언뜻 자연스러워 보이는 북측 파빌리온의 2층은 나스르 왕조가 멸망한 이후인 1494년 카스티야인들에 의해 추가된 것입니다.

북측 파빌리온의 미라도르 Mirador

북측 파빌리온의 북서쪽 면에는 전망대 역할을 위해 건물에서 돌출된 미라도르 Mirador 가 있습니다. 이곳에선 알람브라 궁전과 안달루시아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알바이신 Albaicín 지구를 조망할 수 있습니다.

남측 파빌리온 Pabellón Sur 과 수로의 안뜰

나스르 왕족의 주요 거주지였던 남측 파빌리온은 헤네랄리페 건축물 중 가장 크게 파손된 곳 중 하나입니다. 현재의 모습은 1524~26년 헤네랄리페를 방문한 베네치아 공화국 República de Venecia 의 역사가 안드레아 나바게로 Andrea Navagero 가 남긴 헤네랄리페에 대한 묘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수로의 안뜰 남서쪽 통로 중앙의 미라도르 Mirador

수로의 안뜰 남서쪽에는 알람브라 궁전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여러 개의 창으로 구성된 통로가 있습니다. 원래 이 통로는 창이 없는 벽이었으며, 대신 통로 중앙에 알람브라 궁전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돌출된 전망대 미라도르가 자리합니다.

왕비의 안뜰 Patio de la Sultana

카스티야-아라곤 연합왕국 Corona de Castilla 의 국토 회복 운동 Reconquista 이후인 16세기에 완전히 재설계된 왕비의 안뜰 Patio de la Sultana 은 북측 파빌리온 옆에 위치합니다. 이곳은 술탄 보압딜 Boabdil 의 아내인 왕비 조라이 Zorai 가 그녀의 연인인 하메트 Hamet 와 밀회를 나누던 곳으로, 술탄에게 발각된 그들은 멸문지화를 당하게 됩니다. 술탄은 이후에도 성이 풀리지 않았는지 밀회 장소에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마저 고사시켜 버리는데요. 나무의 죄목은 그들의 불륜을 목격한 죄입니다. 지금까지도 벌을 서는 듯 처량한 모습으로 서있는 말라 비틀어진 이 나무(사진 우측) 옆에는 ‘전설에 따르면 이 왕비의 사이프러스 나무는 보압딜의 왕비와 그녀의 정부의 정사를 목격했다. Cuenta la leyenda que este ciprés de la sultana fue testigo de la amoríos de un Caballero Abencerraje y la esposa de Boabdil.’ 라는 글이 쓰여 있는 명판이 붙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