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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피 May 12. 2023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아이를 키운다는 것


자식 고민은 엄마의 팔자인가 보다. 

잘해도 걱정, 못해도 걱정.


첫째가 고작 2학년이지만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는 크나큰 고민이다. 어떻게 키울 것인가는, 어떤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냐의 또 다른 질문이다. 


공부는 잘하지 않아도 좋다 건강하기만 해라,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학교를 시작하자 다 잘했으면 좋겠다,라는 것이 좀 더 솔직한 마음이다. 이왕이면 '스스로' 잘했으면 좋겠다. 


아니, 행복하면서, 건강하면서, 가족 관계, 교우 관계 모두 원만하며, 운동도, 음악도, 공부도 잘하면 좋겠다.

요즘 아이로 살아가기 정말 힘들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어떤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라는 질문에 단 한 가지의 답변만 할 수 있다면 나는 무어라 대답할까?


자립심.

Independence.

주도성을 갖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나에게도, 친구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휘둘리지 않고 삶을 자신만의 이야기로 채워가면 좋겠다.


자립심이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진정한 자립심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존감도 높아야 하고 회복탄력성도 좋아야 한다. 오롯이 홀로서기를 한다는 것은 어른인 나도 힘든 일이다. 어떠한 이상향을 향해 나아갈 때에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주도권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자신을 믿는 것. 그것이 바로 자립심의 참 의미이다.


좀 더 마음속을 들여다보니 어쩌면 나에게 부족한 것을 아이에게 바라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스스로 하는 것에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삶의 갈림길에서 항상 방향을 잃곤 했다. 선택을 해야 함에 있어서는 자신감보다는 망설임이 앞섰다. 지나고 나니 남는 것은 후회이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믿고 싶을 뿐이지, 후회가 없는 것이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대학 시절 나는 치대에 합격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결국 원치도 않는 과에 지원해서 입학을 했다. 그때 나의 핑계는, '시드니에는 치대가 없으니까' 다른 도시로 '유학'을 떠나기는 힘들다는 것이였다.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나의 차선책에 의문을 품었다. 치대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뿐더러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다른 학생들의 '열의'와 '열성'에 질려버렸다. 절실한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하나도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도망쳤다. 다시는 뒤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한 달을 하고 그만두자니 적당한 핑곗거리가 필요했다. 원래 가고 싶던 치대에 도전하기 위함이라고 하면 그럴싸할 것 같았다. 내 선택이 정당화되기에 그보다 좋은 핑계는 없었다. 


그렇다, 내가 무언가를 그만둘 때에는 항상 '핑계'를 대곤 했지만 사실은 끝까지 해낼 자신이 없던 것이다. 


일 년 동안 길고 긴 자신과의 싸움이 이어졌다. 해내지 못하면 이도저도 아닌 패배자가 될 것만 같아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보기 좋게 망신만 당할 것 같아서. 원하는 것을 하고 싶다는 간절함 보다는, 내가 포기하고 온 길을 의미 없게 만들고 싶지 않은 오기로 버텼다. 주체성이 내 안에 있기보다는, 주변에서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라는 걱정이 동기를 부여한 것이다. 


동기가 무엇이든 결과적으론 해냈고, 결과적으론 나의 모든 선택들이 정당화되었고, 인정을 받았다. 그래서 그대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모로 가도 도착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 생각으로 다시 한번 내 삶 자체를 정당방위했다. 




그런 나의 바람이 아이가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며, 주체적인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데에 모순이 있다. 내가 살지 못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엄마의 욕심. 내가 한 선택이 최선은 아니었을지라도, 책임을 다 한 것에 대해서는 칭찬해주고 싶다. 내가 삶을 사는 방식이 아이들에게 기준점이 된다면, 어떤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보다는, 내가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숨겨진 이야기의 뒤엔 깨달음이 있다.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을 해주는 것과,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는 것 사이의 얇은 선을 지키는 것이 엄마의 몫임을 느끼며, 나부터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연습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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