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거리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녹아 있었다.
그들의 숨결이 대구 곳곳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대구 인물기행
대구 인물기행은 색다른 대구여행을 위해 대구관광재단이 기획했다.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된 네 인물의 역사를 만나볼 수 있는 도보여행이다. 골목 곳곳에 숨은 근대 문화재와 그들에 관련된 장소를 탐닉한다. 기간은 6월12일까지, 그들의 삶 깊숙한 곳을 탐방하며 대구의 매력에 흠뻑 취해보자.
미술투어 : 화가 이인성을 발견하는 시간
숨겨진 한국 근대미술의 거장, 이인성을 찾아서
화가 이인성의 흔적들을 찾아보는 대구 인물기행 코스다. 대구 곳곳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화가 이인성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투어코스: 남산교회 - ABL 생명빌딩 - 대구미술사 터 – 무영당 – 대구근대골목단팥빵 - 계산성당
소요시간: 도보 2시간30분
두 개의 뾰족집
계산성당
작년 큰 화제를 모았던 이건희 컬렉션이 대구를 찾았다. 그가 모은 2만여 점의 작품 중 8명의 작가, 21개 작품을 대구에서 만날 수 있다. 선정된 8인의 작가 모두 대구가 고향이다. 한국 근대미술의 거장 이인성도 포함됐다.
이인성 화가는 천재 화가라고 불렸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미술전람회에서 18살 어린 나이에 입상할 정도로 뛰어났다. 이인성 화가는 일본에서 대구 남산병원장의 딸을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된다. 사위의 재능을 알아본 장인어른은 자신의 병원 3층을 내어주고 작품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후원자가 되어줬다. 이인성은 그곳에서 창문 너머로 보이던 대구 계산성당을 그리게 된다.
반월당역에서 도보로 10분 남짓 떨어진 계산성당은 대구가 품고있는 근대건축물 중 하나다. 대구에서 최초로 외국인이 만든 건축물로 뾰족한 두 개의 탑이 있어 ‘뾰족집’이라고도 불렸단다. 계산성당은 19세기 초반 많은 화가의 풍경화 모델이 됐던 장소다. 낮은 평지에 지어진 붉은 색의 성당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평온해지는 기분이다.
계산성당
주소: 대구 중구 서성로 10
음악투어 : 선율을 따라 걷다
오빠생각 동무생각, 태준생각
음악과 사랑에 빠졌던 작곡가 박태준을 만났다. 그에게 서양음악의 아름다움을 알려주었던 장소들 방문해 음악창의도시 대구의 낭만을 느꼈다.
투어코스: 청라언덕역 9번 출구 – 청라언덕 - (구)제일교회(대구 제일교회 기독교 역사관) - 무영당 – 향촌문화관 & 녹향 - 대구 콘서트하우스 - 모루
소요시간: 도보 3시간
음악의 역사를 품은 곳
청라언덕
좁은 돌계단을 따라 청라언덕에 올라섰다. 작은 공터 한쪽엔 적색 가옥 3채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수줍음이 가득한 한 소년을 만났다. 계성학교에 다녔던 소년은 언덕을 넘어 다니며 첫사랑을 만나게 되지만, 수줍음이 많아 말도 못 걸고 떠나보낸다. 소년과 친구(이은상)는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동무생각>이라는 가곡을 만들게 된다. 이 청년은 우리에게 친숙히 알려진 동요 <오빠생각>을 작곡한 박태준이다.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의료박물관
대구광역시 중구 달구벌대로 2029 동산기독병원사택지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이 청라언덕을 무대 삼아 5월 주말 내내 공연된다. <동무생각> 가사에 등장하는 청라언덕은 음악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장소다. 청라언덕의 적색 가옥 중 한 채인 ‘챔니스 주택’은 선교사들을 위해 지어진 집인데, 현재 의료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주택에는 근대음악의 싹을 틔우게 해준 피아노가 전시됐다. 1900년대 대구 사문진을 통해 대한민국에 피아노가 처음으로 들어오면서 서양음악을 뜻하는 ‘양악’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의료선교박물관선교사챔니스주택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
청라언덕
주소: 대구 중구 달구벌대로 2029
태준과 태원의 음악 사랑
대구 제일교회 기독교 역사관
약전골목을 걷다 보면 높게 뻗은 첨탑을 가진 붉은 벽돌의 교회를 만난다. 내부에 들어가면 피아노 한 대를 마주하게 된다. 대구 제일교회 기독교 역사관으로 변모한 옛 제일교회에는 박태준, 박태원 형제와 얽힌 이야기가 서려있다. 작곡가 박태준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은 그의 형 박태원이다. 박태원은 우리에게 익숙한 동요 <클레멘타인> 가사를 번안한 사람으로 그 시대의 지식인이었다. 번안은 원작의 내용이나 줄거리를 유지하고, 풍속이나 인명, 지명 같은 부분을 시대나 풍토에 맞게 바꾸어 고치는 작업을 뜻한다.
그는 동생과 함께 제일교회를 다니며 반주와 지휘 등 서양음악의 기초를 배웠다. 1917년은 교회 안에서도 남성과 여성이 따로 앉아야 할 정도로 유교 사상이 심했던 시기다. 하지만 박태준과 박태원 형제에 의하여 대구 최초로 혼성합창단이 만들어졌다. 그들은 함께 합창도 참여하고 지휘도 했다고 한다. 박태준에게 있어 제일교회는 음악에 대한 사랑을 싹트게 해준 장소라고 볼 수 있다.
대구 제일교회 기독교 역사관
주소: 대구 중구 남성로 23
운영시간: 매일 10:00~17:00, 일~월요일 휴관
문학투어 : 빼앗긴 들에서 봄을 찾아 나서다
상화와 고월
- 시를 잊은 그대에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구절로 잘 알려진 저항시인 이상화를 만났다. 시를 잊은 우리의 감수성을 깨우는 시간이었다.
투어코스: 대구 근대역사관–이장희 생가–라일락뜨락1956–무영당–문성당-향촌문화관
소요시간: 도보 2시간30분
생가의 변신
라일락뜨락1956
시인 이상화를 만나려면 우선 생가터를 방문해보는 것이 좋다. 이상화는 가세가 기울기 전까지 생가에서 지냈다고 한다. 사랑채에는 그의 친구들로 늘 북적거렸다. 현재 이상화 시인의 생가터는 부지가 쪼개져서 어떤 곳은 빌라로, 어떤 곳은 카페로 변신했다.
라일락뜨락1956은 이상화 시인 생가터에 위치한 한옥 카페다. 도시재생의 좋은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곳에는 200년 된 라일락 나무가 있어 봄이 오면 강렬한 라일락 향기를 내뿜는다. 라일락 향기와 이상화 시인을 모티브로 네이밍한 ‘상화커피’를 추천한다. 이토록 고즈넉한 카페에 앉아 이상화 시인이 넋놓고 바라봤던 풍경을 마주 본다. 그때 그 기분을 어렴풋이나마 상상해본다.
라일락뜨락1956
주소: 대구 중구 서성로13길 7-20
운영시간: 매일 11:00~20:00, 월요일 휴무
예술인들의 사랑방
무영당
대구의 미술, 음악, 문학을 찾아다니다 보면 꼭 만나게 되는 지점이 있다. 그 시절 예술인들의 사랑방, ‘무영당’이다. 무영당은 대구 최초의 민족 자본 근대백화점으로 (구)제일교회에서 10분쯤 걸어가다 보면 도착한다. 오래된 빌딩이 현대 건축물과 한데 어우러져 있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느낌이 든다. 무영당은 박태준 작곡가, 이상화 시인과 친분이 있었던 이근무가 개점했다. 이근무는 개성에서 대구로 내려와 문구 등을 팔아 돈을 번 거상이었다고 한다.
최초의 무영당은 1923년 ‘무영당서점’으로 시작했다. 취급 물품을 늘려가며, 백화점으로서 성장 기틀을 마련해 1937년 신축 개점했다. 박태준 작곡가는 이곳 2층에 ‘음악연구소’를 개설해 개인 지도를 시작했고, 이상화 시인은 무영당의 단골손님이었다고 한다. 무영당은 그 당시 문화의 장이자 교류의 장이었다. 이인성 화가는 두 사람과 나이 차이가 있어 직접적인 교류가 없었지만, 무영당을 이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쓰이며 예전의 무영당이 그랬던 것처럼 젊은 예술인들이 서로 교류하고, 기회의 장소가 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무영당
주소: 대구 중구 경상감영길 8 무영당
기업가투어 : 대구의 산업발전 엿보기
만족을 모르는 남자, 이병철
- 의식주(酒)는 내가 책임져
삼성의 시작, 이병철 회장을 되짚다 보면 전반적인 대구가 보인다. 대구가 어떻게 산업발전의 요람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투어코스: 서문시장역 – 호암 이병철 고택 - 삼성상회 터 – 수창청춘맨숀, 대구 예술발전소, KT&G – 대구 시민운동장 - 대구 오페라하우스, 삼성 창조캠퍼스
소요시간: 도보 3시간
대구를 발판 삼은 삼성
호암 이병철 고택
이병철 회장은 경상남도 의령 출신으로 천석꾼 집안의 아들이었다. 첫 사업으로 마산에서 정미소를 운영했고, 자동차 회사를 인수해 운수업도 시작했다. 그동안 벌어들인 돈과 대출을 받아 김해평야를 사들였는데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면서 파산하게 된다. 그는 다시 일어서기 위해 아버지의 지원 아래 세상을 여행하며 사업 지식을 쌓았다고 한다. 중국에서 엄청난 규모로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본 후 대구에 터를 잡고 상업을 시작했다.
이병철 회장이 재기의 장소로 대구를 선택한 이유는 1905년 개통한 경부선 철도 때문이다. 경부선 철도는 대구에도 정차했는데 대구에서 생산한 청과물과 포항에서 오는 건어물을 기차에 실어 만주나 중국으로 수출하기 적합했다. 이병철 회장은 1938년부터 1948년까지 10년 동안 이 고택에서 머물렀다. 이곳에서 이건희 회장이 태어났다.
호암 이병철 고택
주소: 대구 중구 서성로15길 61
삼성의 모태
삼성상회 터
삼성은 대구에서 터를 잡고 몸집을 불려 나갔다. 삼성상회는 붕괴 위험으로 1997년에 철거돼 현재 그 터만 남아있다. 삼성상회 터에는 250분의 1로 삼성상회를 축소해놓은 모형이 있어 그 모습을 보며 옛 삼성상회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당시 이 앞은 도소매상들이 끌고 온 짐 자전거와 소달구지 등으로 언제나 북적거렸다고 한다. 터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꼭 한 번씩 만지고 가는 곳이 있는데 바로 금고 자리다. 삼성상회의 금고가 있었던 곳에 모형을 설치해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이 모형을 꼭 한 번씩은 쓰다듬고 간다고 한다. 삼성의 전신인 삼성상회는 무엇을 팔았을까? 건어물과 청과물 판매뿐만 아니라 대구의 명물 국수를 제조해 팔았다. 대구는 예로부터 국수의 본고장으로 불렸는데, 삼성상회는 제분기와 제면기를 들여놓은 후 ‘별표국수’를 출시했다.
삼성상회 터
주소:대구 중구 인교동 59-3
글·사진 김다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