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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Jul 05. 2023

감출 수 없는 감동,
백두산 천지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백두산이 열렸다. 
지난 3년간 많은 것이 변했다지만,
백두산만큼은 그대로라는 소식이 반가웠다.
울창한 원시림으로 뒤덮여 있다는 것도,
삼대가 복을 쌓아야 천지를 볼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안개가 잔뜩 끼어도 그 위엄을 느낄 수 있었던 백두산 천지


천지 괴물, 너 이 녀석


아침, 백두산에 오를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상부에 휘몰아치는 악천후 탓에 문이 닫혔단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하룻밤을 묵은 이도백하(二道白河) 시내의 날씨와 백두산 천지의 날씨가 말 그대로 ‘천지’ 차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 비판은 사양이다. 그래도 내가 천지 하나를 보려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창춘(장춘, 長春)으로, 다시 버스로 이도백하까지 온종일 달려왔거늘. 그나마 한 줄기 희망은 오후에는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방법이 없잖은가. 산책이나 하는 거지. 마침 근처에 공원 하나가 있었다. 


압록강, 강 건너는 북한이다


점심, 하릴없이 비빔밥이나 비비고 있는데 백두산 천지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릇을 싹싹 비우고는 북경구유객중심(, North Visitor Center)으로 향했다. 백두산의 북파 코스를 연결하는 셔틀버스 탑승장이자, 관문이다. 오전 내내 닫혔던 백두산 천지가 갑자기 열렸다는 소식이 미처 알려지지 않았는지, 다른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평상시였다면 줄이 길게 늘어져서 한 시간쯤은 기다려야 했을 거라는 가이드의 말에 괜히 기분이 더 좋아졌다. 

큼지막한 버스는 승객을 꽉 채우고서야 출발했다. 셔틀버스를 탄다니 천지가 가까워진 것만 같았지만, 아니었다. 버스는 무려 50분이나 쉬지도 않고 달렸다. 그래도 지루하지만은 않았다. 백두산에 가까워질수록 주변이 점점 짙어지고, 선명해졌다. 백두산에서만 자란다는 소나무, 미인송이 방문객을 위해 도열하듯 끝없이 펼쳐진 모습이 장관이었다. 사방이 탁 트인 버스 안에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도 천지는커녕 그 비슷한 능선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 완벽한 풍경이었다. 진짜, 천지는 어디에 있지?



천지개벽


버스가 멈춰 섰다. 아직 천지는 아니었다. 셔틀을 한 번 갈아타야 북파 정상부까지 오를 수 있다고 했다. 맞다. 그 명성이 자자한 승합차다. SUV를 사용해 북파를 오르내릴 때는 수십 대의 차량이 아슬아슬한 절벽 길을 내달렸다고 하니, 승합차로 바뀐 지금은 사정이 조금 나아졌을 터. 여기까지 와서 발걸음을 되돌릴 수도 없으니 안전하다는 말을 믿을 수밖에. 안전벨트를 꽉 조이고는 손잡이를 있는 힘껏 잡은 채 태연한 척 헛웃음을 지었다. 


정상부에는 추위와 눈보라를 피할 수 있는 대피소가 마련되어 있다


승객을 가득 태운 승합차는 전속력으로 비탈을 올랐다. 나름대로 안전하게 운전하는 느낌이기는 했으나, 안락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방문객이 몰렸던 때, 5인승 SUV 차량으로 산을 오르내렸던 시절에 한 팀이라도 더 천지에 데려다주려는 운전기사들의 배려가 관성적으로 남아 있는 듯했다. 그래, 그 운전 솜씨는 아마 배려의 일종이었을 거다. 

승합차까지 경험한 뒤에야 비로소 백두산 천지를 밟았다. 사방에 안개가 자욱했다. 5월 말에도 귓불을 사정없이 때리는 눈보라가 휘몰아치기까지 했다. 그래도 그게 다 무어란 말인가. 내가 지금 백두산 천지를 밟았는데. 이쯤은 참을 수 있다며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5분만 더 올라가면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백두산 북파에서는 기묘하게 생긴 화산암의 자태를 감상할 수 있다


천지 방향으로부터 매서운 칼바람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양의 구름과 안개가 사방을 뒤덮었다. 천지 괴물, 너 이 녀석.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던 거니. 천지에 다가갈수록 조금이라도 보이지 않을까 싶었던 희망은 아쉬움으로 바뀌어만 갔다. 


북파 정상에는 덩샤오핑이 쓴 '천지'라는 글자가 있다


‘천지’라는 한자 글귀가 새겨진 바위 앞에 섰다. 1983년, 백두산을 관광지로 개발했던 ‘덩샤오핑(鄧小平)’이 쓴 글자다. 그러나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봄을 지나 여름으로 향하는 계절에 서 있건만, 여전히 눈보라와 얼음, 황량한 탐방로만이 전부였다. 아쉬웠다. 쉽게 떠날 수는 없었다. 비록 차를 타고 여기까지 올라오기는 했어도 쉽지 않은 여정이었던 것은 확실하니까.

짙은 한숨을 내뱉으며 안갯속을 두리번거리고 있던 그때, 갑자기 등 뒤에서 탄성이 들렸다. 천지가 열렸다는 의미였다. 정말이었다. 찰나의 순간에 안개가 걷혔다. 마치 누가 바람이라도 후, 하고 분 것처럼. 그러니까 아주 잠시뿐이었다는 이야기다. 카메라를 들자 천지는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다시 기다려 보기로 했다. 일행을 다 내려 보내고 난 후에도 한참이나 서서 천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매정한 천지 괴물은 두 번 다시 얼굴을 보여 주지 않았지만.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이대로 떠날 수는 없었다. 북파보다는 서파 쪽에서 보는 백두산 천지가 더 아름답다고 하지 않던가.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서파로 향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방문자센터에서 버스로 갈아탄 뒤 백두산 중산간까지 오르고, 승합차로 등산로 입구까지 이동했다. 어제와는 다르게 느낌이 좋았다. 천지 주변의 능선이 선명하게 보였으니까. 승합차 안에서 앞유리창 너머로 펼쳐지는 그림에 감탄, 또 감탄했다. 이번에는 정말 얼굴을 보여 주는 걸까. 


하늘이 열렸다. 그러나 언제까지?


서파는 걸어서 올라가는 구간이 존재했다. 1,000여 개의 계단으로 등산로를 만들었다가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로 다시 조성했다. 새롭게 놓인 계단의 개수가 1,442개가 된 이유다. 백두산 정상까지 오르는 데 1,442개의 계단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문제는 여기가 해발고도 2,500m쯤이라는 것. 고산병 증세가 발목을 잡을 수도 있었다. 천천히 오르기로 했다. 어차피 천지는 맑게 갠 상태로 우리를 맞이해 줄 테니까. 걱정은 없었다. 


백두산 서파는 해발고도 2,470m에 달한다


가이드가 말했다. “오르는 동안에는 뒤를 돌아보지 마세요. 끝까지 올라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예술이거든요.” 그 말을 듣고 어떻게 참을 수 있을까. 수시로 뒤를 돌아보며 이 거대한 화산이 품은 대자연에 찬사를 보내고, 또 보냈다. 능선을 타고 흘렀을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기암절벽은 정말이지 기묘했다. 높이에 비해 유난히 부드럽게 펼쳐진 고원은 인간 세계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은은하게 깔리기 시작한 안개는 현실 세계를 벗어나고 있음을 의미하는 듯했다. 


서파 정상까지는 1,442개의 계단이 이어진다


가이드의 말을 어겼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백두산 천지는 다시 안개를 머금기 시작했다. 서파에서 보는 천지는 훨씬 아름답다는 귀띔을 들은 터였다. 기대가 더 컸다는 뜻이다. 뒤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더라면 더욱더 아름다운 천지를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니다. 혹시 또 모른다. 이번에는 볼 수 있을지도. 마주치는 사람마다 저 위에 아름다운 천지가 기다리고 있다며 응원을 해주지 않았던가. 1,442번째 계단을 밟자, 드넓은 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탁 트인 천지 풍경을 보고 싶다면 서파를 추천한다


둘레만 해도 14km에 달한다는 어마어마한 호수. 이렇게 높은 곳에 자리한 호수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깊고, 풍부한 물을 머금고 있는 호수. 애국가 1절 첫 번째 소절에 등장할 정도로 한민족의 영산을 비로소 올랐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렇게나 감동이라니. 희한했다. 사진 몇 장 찍은 후에 본격적으로 천지를 감상했다. 어찌나 넓은지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았다. 고개를 몇 번이나 이리저리 돌렸는지. 3대가 덕을 쌓아야 온전한 천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지금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나, 정말 천지를 보고 있구나.



백두산에 천지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천지의 여운은 길었다. 그러나 백두산에 천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북파와 서파를 찾는 방문객에게 개방된 몇몇 명승지도 있었다. 그중에서 북파의 장백폭포, 서파의 금강대협곡을 찾았다. 화산이 만든 지형은 언제나 다채롭고 예측 불가능하며 황홀한 순간을 선보이는데, 그들이 그랬다. 


천지의 물은 장백폭포로 빠져나와 송화강으로 향한다


장백폭포는 천지의 물이 쏟아져 내리는 곳이다. 천지가 머금은 물은 ‘달문’을 통해 빠져나와 송화강의 시작이 된다. 달문을 지난 물줄기는 용암이 빚어낸 협곡으로 쏟아지는데, 장백폭포다. 68m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는 주변 온천 지대와 만나 신선계를 연상케 할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약 1,960km의 여정에 나서는 물줄기가 장대한 서막을 알리는 방식이다. 


차창 너머로 흐르는 풍경 또한 아름답다


금강대협곡은 용암이 흐르며 생겨난 지형이다. 화산 폭발 당시 용암이 흐르며 깊게 팬 땅에 흙이 쌓이거나, 바람에 깎이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침엽수림 사이로 이어지는 탐방로를 따라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비밀스러운 협곡답게, 사람들의 눈에 띈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고. 금강대협곡을 감상하기 위해 오가는 숲길은 백두산 서파 여행 중 원시림을 가장 잘 누릴 수 있는 탐방로이기도 하다. 


압록강철교를 건너면 1번 국도의 종점인 신의주다


긴 이동, 지루하지 않은 풍경


백두산을 향한 여정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창춘에서 백두산까지, 단둥을 지나 다롄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서였다. 그 기나긴 이동 거리를 보상해 주는 것은 풍경이었다. 백두산에 가까워질수록 사방을 빼곡하게 메워 주는 원시림은 물론이고, 북한과의 경계가 맞닿아 있는 압록강도 예술이었다. 북한 땅을 지척에서 바라보는 기분 또한 오묘했다. 정해진 일정만 아니었다면 로드트립이라도 떠나고 싶을 정도로 절경이 끝없이 이어졌다. 5시간이 넘는 이동 시간에도 쉽게 잠들 수 없었던 것은 순전히 풍경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광개토대왕릉, 다소 외롭게 느껴진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곳은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지들이다. 광개토대왕릉과 장군총(장수왕릉으로 추정), 그리고 발해를 주제로 한 공원 등에 잠시 멈추어 서서 둘러보았다. 타지에서 우리의 위인을 만나자니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였는데, 생각해 보니 원래 그들이 호령했던 땅이 이곳이기는 했구나. 복잡미묘한 감정이 머릿속을 헝클었던 순간이다.  


글·사진 김정흠  에디터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아시아나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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