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부모의 장례식에 참석한 적이 없다. 내가 태어났을 때 조부모 중에 남은 분은 친할머니밖에 없었고,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는 하필 코로나에 걸려 격리되어 있었다. 친한 친구의 할머니 장례식에 간 적은 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친구의 부탁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그분을 친구의 핸드폰 속 사진으로만 봤고, 서울에 있는 장례식장에 갔을 때 당연히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에 외삼촌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암이 곳곳으로 전이되어 진작에 수술은 하지 못하는 상황이셨는데, 최근 욕실에서 넘어지신 뒤 폐렴이 오신 모양이었다. 외삼촌이 사는 곳은 그야말로 남한 끝자락, 도로 표지판에 임진각이 쓰여 있는 걸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어떻게든 꼼수를 쓰지 않으면 너무나 먼 거리였고 아빠와 따로 살게 된 이후 엄마와 나에겐 자가용이 없다. 그래서 나는 기차 탑승을 한 번 낀 경로를 짜서 엄마와 이모를 데리고 장례식장에 가기로 했다. (하필 이모부가 다른 일이 있어 데려다주지 못한다고 하셨다.) 어떻게 보면 이번이야말로 내 인생 첫 장례식이라 할 만한 경우였다.
엄마는 열차 안에서 조금씩, 가만히 눈물을 흘렸다. 이모는 먼 곳만 응시하셨다. 나도 별 이유 없이 잠을 이루지 못해 우리 셋은 매우 피곤하고 다소 힘이 없는 상태였다. 비가 지나가는 흐린 날씨의 경기 북부는 상당히 추웠다. 나는 지도 앱을 보면서 간간이 등 뒤를 확인했다.
그렇게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길을 잘 따라오던 엄마는 큰오빠의 영정 사진이 보이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아주 크게 울었다. 먼저 절을 하지도 못하고 쓰러져 온몸으로 오열했다. 엄마가 그렇게 우는 모습은 처음 봤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엄마가 우는 모습이 슬퍼서 나도 울었다. 다른 외숙모와 이모가 겨우 엄마를 다독여서 함께 절을 올렸다.
그 순간 내게는 외삼촌의 죽음보다 엄마의 슬픔이 더 슬펐다.
정오가 조금 넘어서 도착한 장례식장에 밤 7시 30분까지 머물면서 엄마보다 더 크게 슬퍼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 사실을 곱씹으니 엄마는 생각보다 마음이 훨씬 부드럽고 풍부한 사람이었나 보다. 본인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하면서 타인의 죽음에는 목 놓아 울 줄 아는 아름다운 사람. 그렇다고 엄마의 슬픔이 헤픈 건 절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가 슬퍼할 때마다 나도 울게 되는 것이다.
하필 발인 다음 날 회사의 연말 회식이 잡혀 있어서 나는 잠들기 전까지 진지하게 회식에 불참석할까 고민했다. 본래 술을 마시지도 않지만 조사를 겪고 나서 곧바로 건배사에 동참하는 게 맞나 싶기도 했고, 오랫동안 집에 혼자 있을 엄마가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홀로 가만히 있으면 온갖 생각이 드는 법 아니겠는가. 하지만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계속 울면 죽은 사람이 구천에 가지 못한다면서. 그래놓고 엄마는 관은 무거워서 남자가 들어야 하는데, 큰오빠는 아들 친구들이 와서 도와줬지만 본인은 아들이 없으니 걱정이라고 말했다. 여자 여럿이 붙으면 되지! 내가 들게!
적어도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어떻게든 해보려고 노력하는, 그런 딸이 될게. 그러니 엄마가 슬퍼하는 일이 많이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