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코리아 (7) 프라이스디코딩
‘여러분이 어느 카페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곳 아메리카노의 가격은 6000원이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대부분의 소비자들에게서 첫 번째로 ‘비싸다’는 반응이 나온다. 아메리카노에 대한 일반적인 가격 적정선이 머릿속에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많은 소비자들이 그냥 ‘비싸다’ 하고 가게를 나와버리지 않는다. 실제로 어떤 소비자들은 “스페셜티 원두를 썼나보죠” “역세권이라 매장 임차료가 비쌀 것 같네요”라 말하며 가격의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이러한 ‘가격 해석’ 끝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는 판단이 들면 6000원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값을 지불한다.
소비자들은 가격을 단순하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만 판단하지 않는다. ‘로고값’ ‘자리값’ ‘기분값’ 등 가격이 합당한가에 대해 여러 이유를 붙인다. 특히 소비에 대한 문해력이 높아지면서 가격을 해석하는 안목도 진화하고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26』에서는 이러한 소비자들의 구매행동을 가리켜 ‘프라이스 디코딩(price decoding)’이라 명명했다. '암호를 해독한다'는 의미의 디코딩이라는 단어가 보여주듯 요즘 소비자들은 능동적으로 가격을 해독한다는 의미이다. 즉 가격의 구성 요소를 다차원적으로 따져보는 것뿐만 아니라, 각자의 상황이나 성향 혹은 가치관에 따라 무엇이 적정 가격인지 유연하게 판단할 줄 아는 초합리적 소비자로 거듭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요즘 소비자들의 프라이스 디코딩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하나씩 살펴보자.
첫 번째로 상품의 가격 대비 성능을 가늠하는 데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동원한다. 예를 들어, 다운패딩을 구매할 때 과거에는 오리털인지, 거위털인지, 충전재가 몇 퍼센트가 들었는지, 나아가 깃털과 솜털의 비율을 구분했다면 요즘에는 ‘필파워(Fill Power·충전재가 공기를 얼마나 많이 머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보온성과 관련됨)’라는 용어를 대중적으로 접할 수 있다.
심지어 기업의 손익계산서를 통해 브랜드의 가성비를 따져보는 콘텐츠가 인기를 끌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금융뉴스레터 어피티의 칼럼에서는 SPA 브랜드의 손익계산서에서 매출액과 매출원가를 확인해 어떤 브랜드가 마진을 적게 책정하고 가격 대비 좋은 품질의 옷을 제공하는지를 보여준다. 매출원가율(매출액에서 매출원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모든 제품의 가성비를 대변하지는 않지만 이왕이면 높은 원가율을 가진 브랜드 제품을 택하는 것이 좋은 원단과 고가의 가공이 들어간 제품을 택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보는 것이다. 즉,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하나의 지표로 작용한다.
‘듀프’ 브랜드의 인기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것도 프라이스 디코딩과 관련돼 있다. 듀프는 이전에도 소개한 바 있는 것처럼 복제품(duplication)을 줄여 부르는 말로, 고가품이나 유명 제품과 유사한 스타일이나 성능을 가졌지만 가격은 훨씬 저렴한 대체품을 의미한다. 프라이스 디코딩의 관점에서 듀프는 흔히 말하는 ‘짝퉁’과는 엄연히 다른 의미이다. 어떤 상품의 가치를 기능적 가치와 브랜드 가치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면, 듀프는 기능적 가치는 높지만 브랜드 가치는 낮은 것이며, 모조품(짝퉁)은 브랜드 가치가 높지만(정확히는 높은 것을 '추구'하지만) 상품 가치는 낮은 상품에 해당한다.
소비자들이 듀프를 찾는다고 해서 무조건 값싼 제품만 찾는다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 가치가 확실하다면 기꺼이 지갑을 열고자 한다. 예를 들어, 구찌와 같은 브랜드를 보유한 케링(Kering) 그룹은 2025년 매출이 전년 대비 13% 감소, 영업이익은 33% 감소해 어려움에 직면한 반면, 에르메스는 매출 9% 성장, 영업이익률은 40%대를 유지했다. 마찬가지로 까르띠에와 같은 브랜드를 보유한 리치몬트(Richemont) 그룹도 실적이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브랜드 제품의 가격에 단순 ‘로고값’을 넘어서서, 자산적 가치 혹은 희소성과 같은 사회적 가치가 포함돼 있는지가 이러한 럭셔리 브랜드의 명암을 가르는 기준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희소성은 오늘날 소비자들이 기능적 가치를 넘어서 가격의 프리미엄을 인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하이엔드 럭셔리처럼 높은 가격이 희소성의 기준일 필요도 없다. 지난해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던 라부부는 물량이 제한돼 있어 희소성 가치가 올라간 바 있고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스타벅스의 텀블러는 시즌 한정 제품으로 구매 시기가 제한돼 희소성이 부각된다.
소비자들이 프라이스 디코딩을 하게 된 것은 공급자 중심의 제한된 정보 제공에서 벗어나 소비자 및 전문가 중심으로 정보의 질과 양이 향상됐기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의 시각에서 리뷰를 제공하는 콘텐츠가 대표적이다. 유튜브 ‘호텔사장 기먼성’은 강릉 세인트존스호텔의 김헌성 대표가 직접 운영하고 출연도 하는 채널로 인기를 얻고 있다. 호텔을 운영하는 내부자의 시각에서 각 호텔의 객실, 음식, 서비스, 가성비 등 세세하게 평가를 내려주는 콘텐츠로 소비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준다.
프라이스 디코딩 트렌드는 시장 경쟁이 갈수록 격화될 것을 의미한다. 단적으로, 거대한 브랜드 간의 싸움이 아니라 개별 제품들 간 각개전투가 심해진다. 과거에는 저품질 상품도 많았고 소비자 정보가 충분치 않아 브랜드가 기능적 가치에 대한 보증마크의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화장품을 하나 사더라도 당시 소비자들은 성분에 대한 지식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먼저 유명 브랜드를 택해서 해당 브랜드의 매장에 가서 제품을 골랐다. 반면 지금은 올리브영과 같은 플랫폼이 있고 성분에 대한 정보도 많아지면서 브랜드와 상관없이 나에게 잘 맞는 것을 고른다. 즉 브랜드를 뗀 상품 자체의 경쟁력만으로도 시장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시대이다.
이러한 변화는 작은 브랜드에게 기회가 열려있다는 긍정적인 소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브랜딩의 또다른 가치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브랜드는 상품력에 대한 보증을 넘어서 소비자에게 감성적인 가치를 더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단기적으로 소구하는 '이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들이 똑똑해진 시대일수록 장기적으로 관계를 쌓을 수 있는 브랜드가 귀해진다. 소비자들을 붙잡아둘 수 있을까? 브랜딩의 과제가 더욱 어려워졌다.
* 본 글은 필자가 국방일보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 에 연재하는 내용을 수정/보완하여 업로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