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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정윤 Jan 07. 2024

'더 재미있는 거 없나'라고 생각하시나요

트렌드 코리아 2024 (5) 도파밍

‘뭐 재미있는 거 없나’ 하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하지 않는가? 

혹은 반대로 끊임없이 재미있는 것을 찾다 보니 ‘심심하다’는 기분을 느껴본 지 오래되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더 재미있게 사는 법(how to have more fun in life)’에 대한 검색량이 최근 몇 년 사이 급증하고 있다는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다.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많은 에너지를 써가면서도 재미에 탐닉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트렌드코리아 2024』에서는 이러한 재미 중독 현상을 ‘도파밍(도파민+파밍)’이라 명명했다. 새로운 자극이나 어떤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분비되는 것이라 알려진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이라는 단어와, 게임에서 능력 향상을 위해 아이템을 많이 모으는 것을 일컫는 ‘파밍’을 더한 말이다. 다시 말해 도파민이 분출되는 자극거리들을 파밍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도파밍을 하고 있을까?




첫 번째 도파밍의 유형은 ‘예측불허 즐기기’다. 요즘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자동차에 탄 채로 주문하고 음식을 받아가는 형태)’ 음식점을 중심으로 독특한 주문법이 유행이다. 바로 “앞사람과 같은 거 주세요”라고 하는 것이다. 드라이브 스루의 특성상 앞차에서 주문한 내역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양이 얼마나 될지, 취향이 나와 같을지 등등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을 즐기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옷을 입는 법에도 ‘랜덤 뽑기(무작위 추출)’가 나타난다. 이른바 ‘랜덤 코디 챌린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이 나의 옷장에서 무작위로 상의, 하의, 신발, 가방 등을 두 개씩 고르도록 한다. 그 후에 눈을 감고 각 두 개 중에 아무거나 하나씩 고른 상의, 하의, 신발, 가방의 조합으로 입고 외출하는 것이다. 무작위로 뽑은 만큼 그 조합이 어울릴 확률이 매우 낮지만 우연이 만들어낸 엉뚱함을 즐기는 놀이다.



두 번째 유형은 ‘무모한 도전 즐기기’다. 에너지드링크로 알려진 ‘레드불(Red Bull)’은 ‘무모한 도전’을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브랜드다. 익스트림 스포츠나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프로젝트를 오래전부터 후원해왔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양화대교에서 ‘클리프(절벽) 다이빙’ 행사를 최초로 진행했다. 이처럼 굳이 큰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하는 사람들이 인기를 끌고 혹은 그러한 장면을 담은 콘텐츠에 몰입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아슬아슬한 위험에서 분출되는 도파민을 찾는 것이다.



마지막 유형의 도파밍은 ‘가학적인 자극에 중독되기’다. 사실 도파민은 기분 좋은 자극뿐만 아니라 무섭고 두려운 자극에도 분비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공포영화나 귀신의 집을 경험하고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과 유사한 원리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도파민을 활용한 ‘자율감각 쾌락반응(ASMR)’이 등장해 인기다. ASMR은 보통 종이에 사각사각 펜으로 쓰는 소리나 낙엽 밟는 소리처럼 감성적인 일상의 소리가 많다. 하지만 요즘 등장한 ASMR은 ‘여드름 짜기, 잔털 뽑기, 편도결석 치료 영상 등 그다지 유쾌하지 않을 법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자극에서 오는 도파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처럼 다양한 도파밍의 핵심은 ‘재미가 무엇보다 중요해졌다’는 것에 있다. 과거에는 의미가 담긴 일 속에서 재미를 발견해내거나, 재미를 즐길 때도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그런데 요즘 도파밍을 보면 딱히 의미가 내포돼 있지 않다. 물론 재미 있는 것을 굳이 마다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요즘 사람들은 ‘이왕이면 재미있는 것이 좋다’라는 수준을 넘어선다. 재미가 필수이며 오히려 의미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일부러 큰 힘을 들여 재미를 추구할 만큼 우리 사회에서 재미가 가진 위상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재미가 이처럼 중요해지는 이유는 삶이 각박하고, 사람들이 스트레스 해소를 필요로 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환경적 영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포함해 변화한 미디어 환경이 부지불식간에 사람들을 도파민 중독으로 이끌고 있다. 수많은 전자기기, 애플리케이션 등은 이용자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화려한 색감과 자극적인 숏폼 콘텐츠로 경쟁한다. 책 『도둑맞은 집중력』에 따르면 흔히 웹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무한 스크롤’ 기능(페이지의 스크롤을 내려도 끝없이 새로운 페이지가 나타나는 것)과 같이 사소해 보이는 기술이 우리의 주의 집중력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고 한다.
무한 스크롤이 있을 경우, 그렇지 않은 것보다 거의 두 배 정도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주의(attention)를 잡아두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는 시장 환경, 즉 ‘주목 경제’가 됐다. 
도파밍은 젊은 사람들에게서 시작됐지만 동일한 IT환경에 노출되는 누구나 도파밍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숏폼 중심의 매체 환경이 전 세계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면서 요즘 미국에서는 ‘릴숏’이라고 하는 숏폼 콘텐츠 플랫폼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다는 소식이 들린다. 해당 플랫폼은 드라마 콘텐츠를 제공하는데 한 회차당 90초에서 120초 정도로 매우 짧게 제작된 드라마를 보여준다. 특히 드라마 내용은 자극적이면서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한마디로 소위 ‘막장 드라마’의 특성을 갖고 있다. 마치 웹툰이나 웹소설 플랫폼이 그러하듯, 초반 내용은 무료로 공개하지만 뒷부분은 유료로 열람해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유료임에도 불구하고 한 회차당 비용이 크지 않은 만큼 기꺼이 유료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도파밍' 트렌드가 강해질수록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도파민을 얻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 큰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파민은 ‘중독 호르몬’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제 우리에게는 도파민의 단기적인 쾌락을 넘어서, 장기적인 행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균형을 찾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본 내용은 필자가 국방일보에서 연재하는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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