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신차를 더 많이 팔기 위한 큰 그림일지도요
국내 중고차 시장에 정말 무서운 메기가 등장했습니다. 국내는 물론 글로벌에서도 손꼽히는 완성차 업체, 현대자동차가 직접 중고차 시장에 진출했기 때문입니다. 그간 중고차 매매업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묶여 있어서, 대기업의 신규 진출 및 사업 확장이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한이 풀리자마자, 현대차는 2020년에 사업 진출을 공식화하였고요. 기존 중고차 업체들의 반발로 인해, 무려 2년 넘게 조율한 끝에 드디어 첫 시작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중고차 시장은 대표적인 레몬마켓입니다. 레몬마켓은 경제학 용어로,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시장에 불량품만 남고, 이에 따라 전반적인 거래량이 감소하는 걸 뜻합니다. 그리고 현대차라는 규격 외의 플레이어가 진입하면서, 시장에 부정 거래가 주는 긍정적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데요. 더욱이 현대차가 품질이 보증되는 상품만 판매하는 인증 중고차 형태로 시장에 진입하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국내 최대 규모인 양산 인증중고차 센터를 구축하기도 했는데요. 이처럼 오랜 시간에 거쳐, 막대한 투자를 할 정도로 현대차는 중고차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나 현대차가 중고차 사업에 진심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중고차 시장의 가능성이 크기에, 현대차 역시 진출을 결심했을 겁니다. 국내 중고차 시장은 이미 1998년부터 신차 시장을 추월하였고요. 최근 성장이 다소 정체된 것은 사실이나, 그래도 신차 시장 대비 2배 이상 규모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단지 매출 성장의 기회로 접근했던 건 아닌 걸로 보입니다. 우선 단시간 내 현대차에서 유의미한 매출을 만들기엔 시장이 지나치게 파편화되어 있고요. 무엇보다 상생 이슈로 인해, 내년 4월까지는 점유율 2.9%, 내후년 4월까지는 4.1%를 넘지 않아야 합니다.
따라서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는 더 복잡한 계산이 숨겨져 있습니다. 일단 첫 번째 노림수는 중고차 가격 방어를 통한 브랜드 가치 제고로 보이는데요. 일반적으로 중고차 감가는 수입차가 국산차보다 높은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엄밀히 말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수요가 많을수록 중고차의 가치는 높아지기에, 대중성이 높은 국산 차종이 감가가 낮은 것일 뿐, 고급 차종 기준으로 비교하면 역으로 높은 경우도 많은데요. 특히 벤츠 같은 경우, 인증 중고차를 통해 직접 품질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며,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감가가 높게 유지되면, 고객은 당연히 신차와 중고차를 비교할 때, 신차를 선택할 유인이 많아지고요. 동시에 중고로 판매하고, 신차로 교체하는 수요도 늘어나게 됩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현대차는 기존 차량을 반납하면 구매 시 혜택을 주는 형태로, 자연스럽게 재구매율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이미 많은 수입차 업체들이 진행하고 있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우린 단순히 중고차 시장 진출이 기존 신차 시장을 잠식할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처럼 역으로 이를 더 키울 수 있는 촉매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큽니다.
마지막으로 이를 계기로 현대차는 온라인 채널 경험을 쌓고, 아마 앞으로 이를 더 키울 생각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번 중고차 판매는 100% 온라인으로 진행되기 때문인데요. 자동차는 대표적인 고관여 제품이기 때문에, 이커머스 침투율이 특히 낮은 영역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비용 효율이 좋고, 고객 경험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온라인 D2C 채널에 대해 현대차 역시 그간 계속 관심을 표해 왔는데요. 이미 2021년부터 캐스퍼 비대면 판매를 통해 이를 테스트 중이기도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이를 분명히 확대해 나갈 텐데, 그 과정에서 이번 중고차 온라인 판매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 될 겁니다.
한편 이번에 공개된 현대차 인증중고차 가격은 일각의 우려와 달리, 예상보다는 저렴하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앞서 언급해 드린 것처럼, 중고차 가격 방어가 주목적 중 하나로 추정되기 때문에, 당연히 장기적으로는 전반적인 중고차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전반적인 신뢰도가 올라가며, 시장 전체도 활성화되는 영향도 일부 있을 거고요. 더욱이 현대차의 시장 점유율이 강제로 묶인 데다가, 이후에도 사회적 여론을 고려하여 공격적으로 이를 늘려갈 가능성은 적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중고차 업체들에게는 이러한 변화는 큰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앞으로는 디지털 전환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업체들이 각광받게 될 겁니다. 일단 2019년에 0.9%에 불과했던 중고차 온라인 판매 비중이 올해는 6.3% 수준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요. 온라인에서만 판매하는 현대차의 중고차 진출은 이를 더 가속화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증 중고차와 같이, 플랫폼이 상품 품질을 보장하는 형태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현대차의 인증 중고차와 경쟁하기 위해선, 이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 될 것이고요. 과거 오픈마켓 중심의 시장에서, 쿠팡이 주도하여 상품 및 서비스 품질을 보장하는 직매입 서비스가 시장을 장악했듯이, 비슷한 결의 변화가 중고차 시장에도 불어닥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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