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성을 추구하는 대신 힙함은 조금 내려놓았습니다
이 글은 패션 산업의 디지털 혁신을 위한 컨퍼런스&미디어 플랫폼 [디토앤디토]에 기고한 글입니다
코로나 팬데믹과 일본 제품 불매 운동으로 큰 타격을 입었던 유니클로가 최근 다시 반등하고 있습니다. 2020년 회계연도(전년도 9월 ~ 당해 8월)에 매출이 전년 대비 무려 -54.3% 급감하며 큰 위기를 겪었고요. 이후 2021년에는 연매출이 5,800억 원으로 떨어지면서 사실상 바닥을 쳤습니다. 전성기 때 연매출이 1조 3천억 원을 넘었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었죠.
하지만 2022년부터 유니클로는 다시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2023년에는 연매출이 9,000억 원을 돌파하며 반등에 성공했고요. 아직 2024년 회계연도 실적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여러 지표를 종합해 보면 매출 1조 원을 다시 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 수년간 유니클로의 부진은 주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의 영향으로 설명되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성장 정체의 징후가 보이긴 했습니다. 유니클로가 매출 1조 원을 처음 돌파할 당시까지는 빠르게 성장했지만, 이후 성장률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면서 기존 전략이 한계에 부딪힌 것으로 보였거든요. 불매 운동이 결정적인 타격을 주긴 했지만, 이미 그전부터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었던 것이죠.
특히 최근 유니클로의 회복은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전략을 통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한 결과로 보이는데요. 오늘은 외부 데이터와 유니클로의 최근 행보를 통해, 유니클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이번 분석은 데이터와 정황을 토대로 한 추정이기 때문에, 다른 의견이나 시각이 있으시다면 함께 나눠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유니클로의 최근 2~3년간 성장은 엄밀히 말하면 실적 회복에 가깝습니다. 과거 잃어버린 매출을 다시 회복하는 과정이었죠.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매출 외형은 상당히 회복됐지만 고객 구성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바일인덱스 Insight 결제 데이터에 따르면, 2021년 유니클로의 결제 금액 중 20대 이하의 비중은 16.0%, 30대는 30.1%, 40대는 26.1%, 50대 이상은 27.9%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2024년 9월까지의 누적 데이터를 보면, 20대 이하의 비중은 11.7%로 줄어든 반면, 30대 30.9%, 40대 27.5%, 50대 이상은 30.0%로 증가했습니다. 특히 50대 이상의 성장 폭이 두드러졌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유니클로의 전략적 특성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 있습니다. 유니클로는 특정 세대가 아닌 전 연령대를 아우르는 '라이프웨어'를 지향해 왔죠. 자라와 H&M이 다품종 소량 생산을 고수하는 반면, 유니클로는 소품종 대량 생산을 통해 연령과 성별을 막론하고 누구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캐주얼웨어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유니클로의 성공을 상징하는 플리스는 2000년 일본에서만 2,600만 장이 팔렸습니다. 당시 일본 인구가 1억 2천만 명이었던 걸 고려하면 다섯 명 중 한 명이 구입한 셈인데, 이는 특정 세대만 공략하는 브랜드로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성과였습니다. 이후로 유니클로는 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시작한 후, 점차 가족 단위 고객과 시니어 세대까지 포괄하며 성장하는 전략을 택해 왔습니다.
유니클로가 한국에서 SPA 브랜드 최초로 매출 1조 원을 돌파한 것도 이러한 고객층의 다양성을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불매 운동 이전에도 유니클로의 성장세가 정체된 모습을 보였던 점을 감안하면, 기대했던 만큼 고객 외연 확장이 충분히 이루어지진 않았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근의 성장은 어떤 특징을 보이고 있을까요? 최근 결제 데이터를 보면 유니클로의 결제자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인당 결제 건수나 객단가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물가 상승을 고려할 때, 개별 고객의 충성도가 높아졌다기보다는 기존에 한정적이었던 고객층이 다시 확대된 것이 매출 회복의 주요 요인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유니클로의 출점 전략이 아닌가 싶고요.
2021년 1월 31일, 유니클로 명동중앙점이 문을 닫았습니다. 명동 중심에 위치했던 이 매장은 유니클로의 한국 진출을 상징하는 곳이었지만, 일본 불매 운동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명동 상권의 침체를 이겨내지 못했죠. 이러한 폐점은 전국적으로 일어났습니다. 2019년 말, 190개에 달하던 유니클로 매장은 2022년 기준 127개까지 줄어들었습니다. 명동과 더불어 SPA 브랜드들이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던 강남대로에 위치해 있던 강남점, 대구·경북 지역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동성로 중앙점도 문을 닫았습니다. 모두 유니클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던 상징적인 곳들이었습니다.
그러나 2023년부터 유니클로는 다시 출점에 나섰습니다. 매장 수는 132개로 반등했고, 현재 134개까지 늘어났습니다. 일부 매장이 계약 만료로 폐점되었지만, 유니클로는 공격적으로 신규 매장을 열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9월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롯데월드몰점과 동대문점이 문을 열었고, 10월에는 4개의 새로운 매장이 추가로 오픈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과거 유니클로의 상징적인 대형 도심 매장들이 다시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유니클로가 도심 중심부에 매장을 두고 브랜드를 알리며 고객을 끌어들였다면, 이제는 쇼핑몰, 대형마트, 백화점 등 대형 유통시설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선회한 건데요. 실제 올해 9월과 10월에 오픈한 6개 점포 중 5개가 롯데백화점 잠실점(롯데월드몰), 동대문점(구 롯데 피트인), 롯데몰 광교점, 스타필드마켓 죽전점, 홈플러스 상봉점 등 대형 유통시설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러한 출점 전략의 변화는 앞서 언급한 연령대별 고객 구성 변화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유니클로는 중장년층과 가족 고객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이들이 자주 방문하는 쇼핑몰과 대형마트에 매장을 늘리고 있습니다. 물론 과거에도 유니클로는 에프알엘코리아의 49% 지분을 보유한 롯데쇼핑과의 협업으로 롯데 계열 유통시설에 매장을 주로 열었지만, 최근에는 그 비중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서울의 경우, 29개 매장 중 유통시설에 입점하지 않은 곳은 광화문 D-TOWER점, 신사점, 은평점 단 세 군데에 불과합니다. 그중에서도 플래그십 스토어 역할을 할 만한 곳은 가로수길 인근 신사점 하나에 불과하고요.
그러나 기존 젊은 고객층의 이탈을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온라인 구매 비중이 크게 늘었고, 유니클로의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로드샵 없이도 젊은 세대를 충분히 공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여러 플래그십 스토어를 운영할 필요도 없어진 거죠.
유럽 시장에서의 전략과 비교해 보면, 차이가 더욱 두드러집니다. 유니클로는 최근 '파리 오페라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는 등 유럽 시장에서는 여전히 대형 매장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럽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를 강화하기 위한 접근법입니다. 반면, 한국 시장에서는 이미 충분한 브랜드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효율적인 출점 전략으로 전환한 것이죠.
시간이 지나면 한국에서도 유니클로는 일본 시장에서처럼 유통점 중심의 대형 매장을 줄이고, 지역 상권에 맞춘 소규모 매장을 확대할 가능성이 큽니다. 부족한 제품 구색은 온라인 채널을 통해 보완하며 옴니채널 전략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를 통해 유니클로는 고객 접점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추가적인 성장을 꾀하며, 경쟁사와의 격차를 더욱 벌리려 할 것입니다.
이처럼 유니클로가 최근 출점 전략을 변화시키며 재기를 노리고 있지만, 과거와 같은 매출 성장으로 손쉽게 SPA 브랜드의 왕좌를 차지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당시에는 유니클로를 견제할 강력한 경쟁자가 없었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노리는 두 강력한 라이벌, 탑텐과 무신사 스탠다드가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일본 불매 운동의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것으로 알려진 탑텐이 있습니다. 탑텐은 유니클로의 대표 모델이었던 이나영을 기용해 자신들을 알리는 등, 유니클로의 대체재로 자리 잡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죠. 비록 유니클로의 모든 고객층을 흡수하지는 못했지만, 탑텐은 올해 매출 1조 원 돌파가 예상될 정도로 외형 성장을 이루어냈습니다.
이러한 성과를 만들어낸 탑텐의 비결은 유니클로보다 더 세밀한 다점포 전략입니다. 2023년 말 기준 탑텐의 점포 수는 무려 690개에 달할 정도로 빠르게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니클로가 일본에서 전개하는 중소형 매장을 통한 지역 밀착 공략 방식과 유사한데요. 탑텐이 이미 상당수의 수요를 선점한 상황에서, 유니클로가 여전히 브랜드와 품질 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더라도 얼마나 이를 뺏어올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무신사 스탠다드 역시 유니클로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무신사 스탠다드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유니클로를 추격 중인데요. 흥미로운 점은 무신사 스탠다드가 유니클로의 과거와 현재 출점 전략을 모두 모방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초창기 유니클로처럼 대규모 오프라인 플래그십 스토어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홍대점, 강남점에 이어 명동점까지 오픈하며 SPA 브랜드들이 경쟁하던 주요 상권에 진입했고, 대구 동성로에 유니클로가 있던 자리에 무신사 스탠다드 매장을 열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유통점 중심으로 빠르게 확장하고 있기도 한데요. 백화점, 쇼핑몰, 아웃렛 등을 통해 공격적으로 매장 수를 늘리고 있는데, 주요 유통사들 역시 무신사 스탠다드의 힙한 브랜드 이미지 덕분에 입점을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얼마 전 롯데백화점 동탄점에 갔을 때, 무신사 스탠다드 매장이 유니클로와 비슷한 규모로 들어설 예정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이런 식으로 양 브랜드는 곳곳에서 직접적으로 격돌하고 있으며, 아직은 유니클로가 앞서 있지만 무신사 스탠다드의 추격도 결코 가볍게 볼 수는 없을 겁니다.
물론 유니클로의 강력한 입지를 단기간에 흔드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유니클로가 오랜 시간 쌓아온 품질, 노하우, 그리고 고객 신뢰는 쉽게 따라잡기 어려운 것들이니까요. 그러나 탑텐과 무신사 스탠다드와 같은 국내 브랜드들의 반격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과거처럼 유니클로가 압도적인 위치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앞으로 SPA 브랜드들 간의 경쟁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계속해서 지켜볼 만한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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