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데이에서 드러난 네이버의 커머스 전략
쿠팡이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이후 한때 기업가치가 100조 원 가까이 치솟자, 쿠팡 못지않게 화제의 중심으로 올라선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네이버인데요. 쿠팡과 함께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겠죠. 그래서 쿠팡의 기업가치가 고평가 받으면 받을수록 네이버의 주가도 올라가는 재밌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쿠팡만큼이나 네이버의 향후 커머스 전략과 성장 가능성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요. 정말 때마침 네이버는 애널리스트데이를 진행하며, 베일에 쌓여 있던 커머스 실적과 향후 전략 방향을 공개하였습니다. 과연 네이버 쇼핑의 미래는 정말 밝을까요?
우선 이번에 다시 한번 공개된 네이버의 커머스 실적은 정말 역대급입니다. 우선 연간 거래액이 전년대비 무려 40% 성장한 28조 원으로, 전체 온라인 쇼핑 시장의 17.4%로 점유했다고 하는데요. 경쟁자 쿠팡이 21조 원 규모로 점유율 13%를 기록한 것에 비해서 확실히 압도적인 실적입니다. 더욱이 네이버 쇼핑은 거래액뿐 아니라 순매출액도 1조 897억 원을 달성하며, 드디어 조 단위를 돌파하였는데요. 이커머스 기업으로써, 조 단위의 매출은 쿠팡, 이베이코리아에 이어 3번째 기록입니다. 여기에 더해 정확하게 공개되진 않았지만, 쇼핑 부문에서 상당한 영업이익을 만들었을 걸로 추정되기까지 하니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실적이라 평가할만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보통 기사들은 이중에서도 특히 네이버 쇼핑의 거래액 실적을 강조하며, 네이버 커머스의 장밋빛 미래를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물론 네이버 쇼핑의 내일이 어둡다는 건 아닙니다만, 우리는 네이버 쇼핑 거래액의 허와 실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네이버 쇼핑은 크게 입점한 쇼핑몰과 스마트스토어로 나뉩니다. 무엇이 다르냐고요? 우선 입점 쇼핑몰은 네이버 내 검색 노출을 목적으로 들어온 곳입니다. 여기에는 일반 소호몰은 물론이고, 브랜드몰, 심지어 쿠팡과 같은 플랫폼들의 상품들도 들어와 있습니다. 이와 같은 플랫폼 모델을 우리는 메타 쇼핑이라고 부르는데요. 대표적인 곳이 지그재그입니다. 이러한 메타 쇼핑의 경우, 플랫폼 지배력이 오픈마켓 형태보다 약할 수밖에 없는데요. 트래픽이 줄어들면 입점한 셀러들이 언제든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스마트스토어는 네이버 쇼핑이라는 오픈마켓에 직입점한 케이스라고 보시면 됩니다. 따라서 네이버에서 쉽게 이탈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네이버는 브랜드스토어를 론칭하는 등, 지속적으로 네이버 플랫폼 내에서 만든 쇼핑몰들의 수와 비중을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작년 네이버의 성장을 이끈 건 둘 중 어느 파트였을까요?
위의 그래프에서 보시다시피 작년 한 해 스마트스토어의 거래액은 무려 70%나 늘어났을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그 덕택에 네이버 쇼핑도 역대급 실적을 기록할 수 있었던 거죠. 잠깐 그렇다면, 스마트스토어를 제외한 거래액은 어떻게 변했단 거죠? 업계에서 추정하는 네이버의 19년 대비 20년 거래액 성장 규모는 8조 원. 근데 스마트스토어에서만 7조 원이 늘어났으니, 그 외 부분에서는 1조 원 성장에 그쳤다는 뜻이겠죠? 이는 성장률로는 10%에 불과한데요. 작년 온라인 쇼핑 전체 성장률이 18.4%였으니 시장 성장보다도 못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즉, 작년 네이버는 스마트스토어 부분에선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두었지만, 그 외 부분에서는 실질적인 역성장한 한 해였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선 검색 시장에서 네이버의 지배력이 점차 약화되어가고 있고요. 구글이나 유튜브에 빼앗기고 있습니다. 또한 온라인 쇼핑을 할 때 가장 먼저 네이버를 거치는 비중이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쿠팡은 물론, 버티컬 커머스 플랫폼들이 인기를 끌면서 이들의 앱에서 쇼핑을 시작하는 고객 수가 점차 늘면서 네이버 쇼핑의 지배력은 약화되고 있습니다.
과거 네이버 쇼핑은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큰 파워를 가지고 있었는데요. 당시 시장 1, 2위 사업자였던 이베이코리아와 11번가 모두 탈 네이버 쇼핑을 선언했다가, 떨어지는 트래픽과 거래액을 감당하지 못하고 돌아왔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앱 비중이 높은 플랫폼은 비교적 여기서 자유로운데요. 대표적으로 쿠팡은 필요할 때만 네이버 쇼핑에 입점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년 실적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시장 지배력도 이제 점차 한계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듯합니다. 소비자의 쇼핑 트렌드가 PC에서 모바일로, 그리고 모바일에서도 앱 중심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 네이버의 좋은 시절이 끝났다는 얘기일까요?
물론 당연히 아닙니다. 네이버 입장에서 스마트스토어는 내 새끼이기 때문에, 타 부문의 성장 정체는 아쉽지만, 스마트스토어가 지금처럼만 성장한다면 충분히 감당할만한 부분입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네이버 쇼핑의 거래액은 물론, 스마트스토어의 거래액 추이를 함께 살펴보셔야 합니다. 특히 브랜드스토어처럼 대형 사업자의 입점 수 및 거래액 규모가 관건입니다. 작년의 무서운 성장세는 솔직히 코로나로 인한 셀러 열풍이 불면서 일어난 특수 상황이기 때문에, 향후 성장성은 결국 빅브랜드들이 얼마나 네이버에 입점하느냐가 결정지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네이버는 D2C의 길로 브랜드가 방향을 틀지 않도록 적절한 유인을 계속 만들어 줘야 합니다.
그러면 네이버의 향후 커머스 전략은 어떠할까요? 우선 네이버의 목표는 2025년까지 국내 시장 점유율 30% 이상으로 성장하는 겁니다. 결국 한국의 아마존, 알리바바가 될 거라는 말인데, 쿠팡도 동일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둘은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네이버는 아래와 같은 5가지 전략을 통해 커머스 패권을 노릴 계획이라 합니다.
커머스 솔루션: 스마트스토어와 브랜드스토어를 늘려 광고 매출 성장으로 이끎
머천트 솔루션: 개별 판매자의 성장을 위해 AI 기반의 다양한 지원 인프라 마련
다양한 구매방식 : 라이브 커머스, 구독형 커머스, 렌탈 등 다양한 판매 방식 인프라 제공
멤버십 생태계: 네이버 플러스 중심으로 고객 락인 강화
물류 솔루션: 메가 물류센터 구축(with CJ대한통운), 콜드체인 배송 역량 확충(with 이마트)
이와 같은 네이버의 전략은 솔직히 너무 강력해 보입니다. 우선 네이버가 가진 고유의 강점이 너무 뚜렷하고, 이러한 역량이 잘 녹여져 있는 청사진이기 때문인데요. 아시다시피 네이버는 태생이 IT기업입니다. 따라서 탁월한 기술역량을 보유했는데요. 이러한 여러 기술 강점들을 활용하여 커머스, 머천트, 물류 영역에서 솔루션을 제공하겠다고 하는 건 타사가 쉽게 따라 할 수 없죠.
더욱이 네이버가 국내 최대 포털 사업자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날이 갈수록 영향력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나, 동시에 여전히 1위인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 라이브 커머스, 구독형 커머스, 렌탈 등 다양한 판매방식 제공 자체가 어렵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성공하려면 당연히 트래픽이 기반이 되어야 하죠. 그리고 그러한 트래픽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네이버입니다.
마지막으로 네이버가 진정 무서운 것은 이 모든 것들을 혼자 하려 욕심내지 않는다는 겁니다. 네이버는 작년 CJ와, 그리고 올해는 신세계-이마트와 지분교환을 하며 우군으로 끌어들였고, 많은 스타트업들에 투자하며 거대한 연합군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쿠팡과 달리 제조사 브랜드들과도 사이가 좋은 편입니다.(대표적으로 LG생활건강은 쿠팡을 공정위에 제소할 정도로 사이가 나쁘지만, 네이버에는 오히려 브랜드스토어에 직입점할 정도입니다.) 특히 CJ는 물류를, 신세계-이마트는 신선식품과 명품이라는, 네이버에게 빠져 있던 마지막 조각을 채워준 만큼 더욱더 파급력이 클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여기서도 틈은 있습니다. 일단 직접 하는 것보다 다른 기업과 제휴를 맺는 것이 속도도 빠르고 비용도 적게 들지만 아무래도 반응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상호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부분도 존재하기에, 조율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독불장군 쿠팡의 미친듯한 속도가 어떤 변수를 만들어낼지 모릅니다. 더욱이 결국 물류 경쟁을 벌이게 된다면 아무래도 후발주자인 네이버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더욱이 이미 쿠팡은 전국 물류배송망에 쿠팡이츠 기반에 근거리 배송망까지 확실하게 기반을 다진 상황이라, 쿠팡에게 이미 기울어진 전장에서 싸운다면 승부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카카오의 존재도 변수입니다. 특히 카카오는 라이브 커머스나 구독 커머스에 이미 진출해서 기반을 다지고 있는 상황인데요. 쿠팡과의 커머스 전쟁에서 카카오마저 적군이 된다면, 네이버에게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네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이버 쇼핑의 미래는 밝은 것 같습니다. 솔직히 아직은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최종 승자는 누가 될지 모르겠어요. 쿠팡과 네이버 둘 중 하나가 한국의 아마존으로 우뚝 설 수도 있고요. 둘 혹은 셋이 시장을 과점하는 형태로 결론 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네이버에게 주어진 기회의 땅은 한국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제 네이버에게는 일본이라는 새로운 선택지도 주어졌습니다. 야후 재팬과 라인이 합병해서 탄생한 Z홀딩스를 통해 네이버도 본격적으로 일본 내 이커머스 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잠깐 여기서 Z홀딩스라는 기업에 대해 조금 알고 넘어가셔야 하는데요. 한국으로 치자면, 네이버와 카카오가 합병했을 때를 상상하시며 됩니다. 포털 1위 사업자인 야후 재팬과 모바일 메신저 1위인 라인이 결합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또한 엄청난 자회사들을 거느리고 있는데요. 배달 앱 1위인 데마에칸을 라인이 가지고 있고요. 2위인 우버이츠는 야후 재팬의 모회사인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받은 곳입니다. 여기에 원조 무신사라 할 수 있는 일본 1위 패션 쇼핑몰 조조타운도 야후 재팬의 자회사입니다.
즉 약간 과장하자면, Z홀딩스는 네이버 + 카카오 + 배달의민족 + 무신사와 같은 기업이랄까요? 정말 무시무시하지 않나요? 이러한 Z홀딩스가 스마트스토어 플랫폼을 일본 시장에서도 선보이고요, 라인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모델도 올해 6월에 오픈할 예정이라 합니다. 그리고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나온 건 아니지만, 이러한 모델을 라인이 이미 진출해 있는 태국 등으로도 확산시킬 계획이라 하니, 정말 대단합니다.
지금까지 네이버가 진행한 2021 애널리스트 데이에서 나온 내용을 중심으로 네이버 쇼핑의 미래를 한번 전망해보았습니다. 포인트를 요약해 드리자면, 앞으로 네이버 거래액의 성장세는 스마트스토어와 브랜드스토어를 분리해서 체크할 필요가 있으며, CJ, 신세계-이마트와의 협력이 얼마나 매끄럽게 잘 진행되느냐에 따라 쿠팡과의 경쟁 양상이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국내도 중요하지만, 일본 시장에서의 성과를 무엇보다 중점적으로 지켜보실 필요가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