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와 다우(茶友)

by 심지훈

어제 새벽 28년 된 보이주차(생차)를 우렸다. 이런 차는 진귀하다. 귀한 손님에게만 내놓을 법한 차다. 탕색이 뛰어나고 맛은 깊은 중에 맑다. 흡사 발렌타인 30년산을 마시는 것과 같다. 작년 한 해는 우연히 맛좋은 홍차를 만나 간간 녹차와 함께 진탕 즐겼다. 그러다 보이차가 생각난 것이다.


나는 보이차 우린 아침 짧은 감상을 남겼다.


‘차 마시는 일은 주변을 수놓는 일이 수반된다는 점에서 행위예술과도 같다. 일면 종합예술이다.’


차를 행위예술로 보는 행위, 종합예술로 느끼는 감각 등은 차를 오랫동안 혼자서 조용하게 진지하게 마셔본 사람만이 갖는 체현의 결과이다.


나는 여럿이 모여 차를 마시는 것보다 나 홀로 마시는 것을 그중 즐긴다. 시간은 새벽대를 좋아한다. 고요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정적. 그 시간, 상태에서 마시는 차야지만이 차의 모든 것을 온전히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적. 그 사이를 파고드는 찻물 끓는 소리, 다기 맞닿는 소리, 옷깃 스치는 소리, 주홍색의 등불. 이런 것들이 한데 어우려져야만 차의 진가가 비로소 드러난다.


차는 좋은 차를 우림로써 차 행위의 절반은 너끈히 마친 것이지만, 일단 좋은 차를 소장한 이상 그 차 행위의 절반은 다른 절반에 신경을 빼앗긴다.


찻잎을 떨 때 쓰는 차칙(茶則), 찻잎을 넣을 때 쓰는 차시(茶匙), 차호에 낀 찻잎을 뺄 때 쓰는 차침(茶針), 찻잔 또는 차호 뚜껑를 잡을 때 쓰는 차협(茶夾), 차호에 얹는 차두(茶斗). 이것들은 다판(茶板), 다탁, 자사호, 찻잔, 차칼, 차붓, 숙우(공도배)와 함께 차의 기본 도구들이다.


이것들의 생김과 종류도 한없이 많아 자기만의 고유의 것을 갖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차는 마시는 행위가 목적이라면 다탁과 차판 주변으로 수놓는 일은 그 과정이다. 공부할 때, 책 읽을 때 분위기를 짚듯 차를 마실 때도 분위기가 중요하다.


차의 기본 도구들 중 사람들이 등한시하는 게 차총(茶銃)이라 불리는 다우(茶友)다. 차 자랑하기 위해 차를 즐기는 사람들 말고, 정말 차를 애호하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차 분위기를 잘 연출한다. 다우 차총은 차판 주변을 수놓는 장식물이다.


불상, 거북, 토끼, 원숭이, 개구리 등 아기 주먹만한 다우의 종류도 무수히 많다. 이건 시중에 ‘다우 차총’이라고 파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차 행위를 남들 따라가는 경지를 넘어서 자신이 차 행위를 주도하게 되면 돌, 난(蘭)을 비롯해 다양한 것들을 다우로 삼게 된다.


그야말로 자신만의 차 행위를 연출하는 것이다. 때문에 차를 즐긴다는 것은 그 자체로 행위예술이요, 종합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차는 어울려 마시는 게 아니라 홀로 마시는 것이다. 그래야 예술 행위로써 차의 진가를 체득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 차 문화를 부흥시킨 초의선사는 추사 김정희의 부친 김노경과 나눈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사는 차를 마시는 궁극의 목적은 무엇으로 삼는가?”


“차는 홀로 마시는 것을 으뜸으로 칩니다. 홀로 마시고 있노라면 만감이 교차하고 이윽고 교차하는 만감이 차차 줄어듭니다. 그러면 맨 나중에 남는 것은 공허뿐입니다. 그 공허를 조이면 성찰이 생깁니다. 그것은 모든 명상의 과정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차를 명상문화의 일종이라고 하고 선(禪)의 발판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다인들이 차를 즐기는 궁극의 뜻이라 하겠습니다.”


초의선사는 ‘차 한잔의 깨달음’이라는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을 찻물처럼 누대로 흘러내리게 한 한국차의 선구자다.


그는 생전 “늘 모든 법이 서로 다르지 않다. 평상심이 바로 도다. 선과 교를 가르지 말라” 했다고 전한다. 해서 다선일미를 달리 불이선(不二禪)이라고 한다. 다와 선이 한 가지 맛이듯 선과 교는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사철 초의선사를 졸라 차를 거저 얻어먹었던 추사는 그 답례로 ‘명선(茗禪)’ 두 글자를 써주었다고 한다. ‘차를 마시며 삼매에 든다’는 뜻이다.


삼매(三昧). 잡념을 버리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경지를 가리키는 불가의 용어다. 차는 오랫동안 불교 전유물로 간주되어 왔고 또 있지만, 크리스천이어도 차를 홀로 마시면 묘한 지경으로 빠져든다.


나는 이번 긴 설에 차와 다구를 챙겨 고향으로, 처가로 내려간다. 이 명선, 이 삼매를 독식할 순 없는 노릇이다.


어제 새로 산 다우(茶友) ‘중동 사자’는 막둥이 바론이가 챙기기로 했다. 바론이는 사자는 “아흥”하고 운다며 ‘아흥’이라고 이름 붙였다.


여섯 살 바론이는 아마도 ‘다우 차총’을 들어본 대한민국 최연소 어린이일 것이다.

이전 08화다판(茶板) 제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