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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건 Aug 07. 2015

하늘과 맞닿은 위험한 수영장?

[유혹의 하룻밤 3편]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해외 여행은 '예산과의 싸움'이다. 최소 100만 원 이상 드는 큰 프로젝트다. 정해진 예산 안에서 효율적이면서도 내가 원하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항공이 비싸면 숙소 예산을 줄이고, 좋은 숙소 가고 싶으면 투어 예산이나 쇼핑 예산을 줄여야 한다.


숙박비는 매우 중요한 항목이다. 항공비와 함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좋은 호텔 찾아다니다 보면 천문학적으로 예산이 늘어난다.


20대 여행에서 숙박비는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동남아나 인도 여행할 때는 아예 예약도 안 했다. 오히려 숙소 예약이 자유로운 여행을 방해했다. 내 몸 닿는 대로 다녔다. 내가 마음에 드는 곳으로 향했다. 여러 곳의 숙소를 둘러보고 마음에 꼭 드는 곳으로 정했다. 그럴 시간이 충분했다.


30대 여행에서 숙박비는 중요한 부분이다. 간혹 항공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한다. 잠자리도 중요하지만, 여행지에서 숙소 알아보러 다닐 시간이 없다. 여기저기 둘러볼 체력도 없다.


요즘은 여행 전 카페나 블로그 서칭 할 때, 여행 코스보다는 호텔을 먼저 알아본다. 일단 호텔을 정하고, 호텔 중심으로 여행 코스 짠다.


'눕는 곳이 내 집인 여행'은 시간 많고 체력 충분한 20대 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나 보다. (기껏 30대가 중늙은이 같은  소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진리의 케바케'라고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미친 듯이 가고 싶었다


싱가포르 여행을 결정했을 때, 연일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이 뉴스를 장식했다. 오픈한지 얼마 안됐고, 한국의 쌍용건설이 지었다는 소식도 눈길을 끌었지만, 무엇보다도 화려한 비주얼은 포토 뉴스로서의 가치를 드높였다.


당시 뉴스 에디터라는 업무를 하고 있었다. 뉴스박스에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의 사진만 걸었다 하면 누리꾼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트래픽이 폭발했다. 두바이에 세워지고 있던 세계 최고층 빌딩 '부르즈 칼리파'보다 잘 팔렸다.  

출처 :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홈페이지

수영장 덕분이었다. 마치 낭떠러지 같은 '인피니티풀'의 비주얼이 상당히 압도적이었다. 누리꾼들은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저기서 수영하다 떨어지면 어떻게 되느냐'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수영장 정말 무섭다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대박'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 호텔을 가리라 상상도 못했다. 굉장히 비쌀 거 같아 아예 꿈도 꾸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격을 검색해봤다. 마치 벤츠 매장에서 사지도 않을(못할) E 클래스 시승하듯..


상상과 달랐다. '1박에 약 50만 원' 내 형편에도 조금만 무리하면 갈 수 있는 금액이었다. 욕심이 생겼다. 꼭 가보고 싶었다.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그곳에 가는 건, 뭐랄까 '뉴스 에디터의 숙명' 같았다.


급격한 예산 조정이 필요했다. 정해진 예산 안에 가려면 뒷 부분 숙소 비용을 대폭 삭감해야 했다. 1박에 20만원, 위치 좋고 평도 좋은 중급 호텔 3박하려던 일정을 포기했다.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1박 50만 원에, 1박에 5만 원짜리 차이나타운 창문 없는 방 2박으로 조정했다.


미친 듯이 가고 싶었다. 차이나타운이 위험하다거나 '장기가 안전할 수 있을까' 따위는 당시에 고려하지 않았다. 차이나타운에 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시티뷰 플리즈"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까지 무료 셔틀이 다녔다. 투숙객임을 증명하려고 예약 바우처를 꺼냈다. 문득 '귀티 나네'란 생각이 들었다.


바우처를 보여줬는데 기사가 안 쳐다본다. 그냥 버스에 앉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리나 베이 샌즈가 쇼핑몰도 있어, 관광객 아무나 탈 수 있는 버스란다. (근데 이 버스 요즘엔 없어졌다고 한다.)


웅장한 자태가 드러났다. 'ㅅ'자 모양의 건물 세 개가 '방주'를 받치고 있는 모양새. 가까이에서 보니 사진에서 본 것보다 더 크고 넓었다.


호텔 객실이 워낙 많다 보니,  체크인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30~40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체크인했다. 힘들 만도 했지만, 설렘이 더 커서 시간은 금방 갔다.


"시티뷰 플리즈"를 외쳤다.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은 '시티뷰'와 '하버뷰'가 있는데, 시티뷰가 싱가포르의 스카이라인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밤에 진행하는 레이저 쇼도 객실에서 볼 수 있어 시티뷰의 전망이 훨씬 좋다. 다행히 일찍  체크인해서인지, 시티뷰의 꽤 높은 층 객실을  배정받았다.



당시만 해도 특급 호텔은 처음이라, 룸 컨디션은 말할 것도 없이 좋았다. 호텔을 많이 다녀 본 사람은 '마리나 베이 샌즈는 가격에 비해 룸 컨디션이 별로'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너무 심플하다는 게 이유다.


객실은 스치듯 지나가고 마리나 베이 샌즈 존재의 이유, 수영장으로 향했다.


출처 :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홈페이지


하늘을 헤엄치다


우선 두 번 놀랐다. 끝에서 끝까지 250m 그 길이에 놀랐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에 놀랐다. 마치 캐리비안 베이 유스풀처럼  바글바글했다. 홈페이지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가격이 생각보다 저렴해 나 같은 평민까지 왔으니 사람이 많을 법도 하다.


'인피니티풀'은 확실히 압도적이었다. 끝까지 가봤다. 다행히 바로 낭떠러지는 아니었다. 아래 충분한 대피공간이 있었다. 떨어져도 목숨은 건질 수 있겠더라.


200m 높이에서 보는 싱가포르 마천루의 모습이 장관이었다. 수영 따위 하지 않아도 됐다. 적당히 편한 자세로 턱 괴고 누워서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조용히 '멍' 때렸다.

수영장의 매력은 밤에 나타난다. 저녁이면 지친 아이들이 숙소로 복귀하고, 관광객들은 야경을 보러 떠난다. 하지만 수영장이 오로지 목적이었던 나는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큰 수영장을 전세 낸 느낌이었고, 야경은 높은 곳에서 보니 더 화려하게 빛났다.


수영 실력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끝에서 끝까지 자유형을 시전 해보았다. 하늘을 헤엄치는 느낌이었다.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은 복합 쇼핑몰 + 카지노 센터이기도 하다. 모 기업인 샌즈 그룹은 굴지의 카지노 회사다. 호텔에만 있어도 그리 심심하지 않았다.


쇼핑몰에는 한국에 아직 없는 다양한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다. 애프터눈티도 유명하다. 따뜻한 홍차와 마카롱 등 각종 달달한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푸드 코드에는 한국 음식점도 있다. 수영으로 지친 허기를 순두부 찌개로 달랬다.


카지노에서 합법적인 도박을 즐겼고, 합법적으로 10만 원 정도를 잃었다. '이 돈이면 내일 차이나타운 안 가도 될 텐데'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잊고 있었던 '차이나타운 창문 없는 방'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약속된 시간이 왔다. 차이나타운 1박에 5만 원짜리 숙소는 생각보다 룸 컨디션이 심각했다. 더블베드룸이었는데, 방이 딱 더블베드 크기였다. 문만 간신히 열릴  정도였다. 방에서 걸어 다닐 땐 옆걸음질을 해야 했다.


문득 일요일 오전 11시 SBS '좋은 친구들'의 남희석이 떠올랐다. 잠을 잘 때는 배를 꼭 움켜쥐고 잤다. 내 장기는 소중하니까..


창문 없는 방에서 누웠는데, 갑자기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베갯잇을 적셨다. 바로 하루 전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에서의 하룻밤이 마치 꿈만 같았다.


어느 깊은 가을 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영화 '달콤한 인생' 중에서


그래도 '차이나타운 장기 조심 호텔'이 고맙다. 숙소가 너무 무서워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싱가포르를 구석구석 볼 수 있었다.


싱가포르 랜드마크 멀라이언상에는 두 번이나 갔고,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도 하루 종일 놀았다. 한국 사람은 다 간다는 점보 레스토랑에서 칠리 크랩도 먹었다. 위험해서 한국 사람은 잘 가지 않는다는 갤랑 지역까지 다녀왔다. 아무리 위험하다고 해도 내 방보단 안전해 보였다.


싱가로프는 도시 여행지 최적을 조건을 갖췄다. 화려한 어반 라이프 스타일이 그리운 여행자에게 좋은 추억을 선사해줄 것이다. 비싼 물가와 인공미가 너무 강하다는 건 흠이다.


무엇보다도 마리나 베이 샌즈에서의 평생 잊지 못할 하룻밤을 선물해 준 '차이나타운 장기 조심 호텔'이 고맙다. 평범한 중급 호텔 3박 대신..

나는 '달콤한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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