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리퍼 Nov 14. 2023

내가 낯설어지는 시간

<피델리오>

by. tripper yes, kevin


지난 주말, 생에 처음 해보는 경험(게임)을 하고 왔다. 망원역에 위치한 소셜 다이닝 <피델리오>에 다녀온 것. 이곳은 프레임 없는 대화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우리는 흔히 '남'과 만나면 이름,나이,직업 그 외의 것들을 묻기 시작한다. 그게 아니면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다소 어려운 점이 있다. 그 대화속에서 공통점을 찾고 어떤건 맞고 어떤건 다르고 틀리고, 내 안의 기준대로 상대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곳은 위의 모든것을 숨기고 오로지 주제안에서만 이야기를 한다. 셰프님이자 호스트님이 코스 요리를 내어주면서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시스템이다. 그곳에 다녀온 트리퍼 음죽음살 yes에디터 그리고 이에 맞서는 감성 빼면 시체인 부캐 작가인 에디터 kevin이 함께 다녀온 이야기. 성별이 다르니 쉽게 여자A 남자A 라고 명칭해서 얘기하려고 한다.


<part1. 소셜다이닝의 첫인상>


여자A: 소셜 다이닝? 나에겐 생소한 주제였다. mbti로 얘기해보자면 '넌 누가봐도 엔프피야' 라는 말을 들으면 '아니야 E중에서도 I유형으로 자발적 아싸라고!' 라며 외향인임을 숨기는 어찌됐든 enfp 인간 되시겠다. 외향인이든 내향인이든 소셜 다이닝은 관심밖의 주제였다. 사람을 만나는데에는 크게 나눠 자만추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 인만추 (인위적인 만남 추구)가 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사람을 만나는게 일이기도 하고 사람을 어려워하지 않는 나에게는 일이 아닌 이상은 굳이 내가 스스로 인위적인 만남을 하지 않았다. *단어 '인위적'이라는 어감 자체가 부정적으로도 들릴 수 있겠다. 그렇지만 어감일뿐이다. 그렇게 나는 에디터로써 취재를 하기 위해 많은 기대감 없이 에디터 kevin과 함께 피델리오로 나섰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은근한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과연 몇명이나 올까? 정말 혹시나 아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지?여자만 신청했을까?' 

여러 생각들로 긴장반 설렘반이였다.


남자A : 오랜만에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러 간다. 배낭을 메고 세계여행을 하던 시절, 길 위에서 자연스럽게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를 소개하고, 어디를 여행하는가 등을 이야기한다. 새로운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과 대화하지만, 비슷한 대화의 흐름과 패턴의 대화가 실증 난 적도 있었다.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 등 어떤 주제를 가지고 모임을 해본 적은 있다. 그때마다 적어도 이름과 나이는 이야기했었는데, 오늘은 나를 숨기며 대화해야 한다. ‘나는 타인을 얼마나 잘 파악할까? 여행을 다닐 때와는 나이도 직업도 달라진 상태에서 나의 첫인상은 과연 어떻게 비추어질까?’ 나의 어떤 정보도 공개하지 않은 채, 첫인상과 잠깐의 대화만으로 직업을 맞추는 게임이라니? 제법 흥미로웠지만, 취재가 아니었다면 참여했을까? 등의 생각을 하며 피델리오에 들어갔다. 찰랑


<part2. 들어선 후>

여자A : 들어서자 주방과 함께 직사각형의 테이블이 놓여져있었다. 10분 일찍 도착해서인지 식탁에는 한 남성분만 앉아계셨다. 마치 소개팅에 나온 사람처럼 나는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생수 드링킹을 했다. 다행히도(?) 맞은편 분은 이전에 한번 친구와 와본적이 있다고 하셔서 매끄럽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빔프로젝트에는 음죽음살 에디터의 취향을 간파한듯 tiny desk 채널의 라이브 음악들이 흘러나오고 초의 불은 이 식탁의 분위기를 한껏 올려줬다. 뒤이어 사람들이 들어오고 셰프님이자 호스트님이 에피타이저로 무화과와 단호박이 곁들어진 샐러드와 함께 식전빵을 나눠주셨다. 그 이후로 나오는 코스 요리들이 호불호가 없는 대표적인 메뉴들이지만 그렇다고 특색 없는 요리들이 아니였다. 총 6가지의 음식이 나오는데 퓨전 이탈리안 요리로 문경 표고버섯 라구 파스타, 대구 스테이크 이런식으로 퓨전으로 섞이니 새로웠다. 참가비를 제외하고서 1인 1주류는 필수라 1잔당 20,000원 이상이 지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술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논알콜 음료도 있다.


남자 8명에 여자2명으로 성비가 다소 맞진 않았지만 소개팅이 아니므로 남자분들께 괜히 내가 미안한 마음은 가지지 않기로 했다(?) 평소에는 여성의 성비가 70%인데 오늘따라 유독 남성분들이 참석을 많이 해주셨다고 했다.  따로 성비를 일부러 맞추지 않기 때문에 성비가 맞춰진걸 원한다면 블라인드 다이닝이 있겠다. 여러 종류의 주제가 있으니 체험해보고 싶은 주제들로 자유롭게 살펴보면 되겠다. 이번 다이닝의 주제는 <첫인상으로 직업찾기>였다. 룰은 이중에 한명은 치과의사가 있다는 것! 누군지 맞춰야하는 게임이였다. 치과의사를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를 속여도 되고 진실을 말해도 된다. 그렇게 우리는 이 룰 안에서 서로의 대화속에서 유추해봤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 대신에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줬고 그 이름으로 이시간을 살아냈다.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얘기하고, 어떤 성을 원하는지도 이야기하며 나는 '반미'샌드위치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난 성이 반씨이길 어렸을때부터 바랬었다. 한층 더 예뻐보이는 성이랄까. (아버지 죄송합니다)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맞추기 위해서 '스케일링은 몇번 하시나요' '이- 해보세요'라며 처음 본 사람과는 하기 힘든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했다.


남자A : 찰랑. 피델리오의 문을 열고 들어온 지 20분 만에 내 이름은 무리뉴가, 그리고 옆자리 남성은 돈키호테가 되었다. 처음 본 사람과의 대화가 어색할 법하지만, 우리에겐 공통의 목표가 있다. 코스요리를 다 먹을 때까지 내 앞에 앉은 리시안, 옆에 앉은 돈키호테를 포함해 9명의 직업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앞서 에디터 yes가 룰을 설명한 대로 이 중에는 치과의사가 있다. 과연 누가 치과 의사일까?

“모니터를 많이 보고 출장이 잦아요!” 직업을 맞출 수 있도록 최소한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어떤 정보를 줄까 고민했다. 내가 영상 촬영을 하는 사람인지는 모를 만큼 아주 적당히, 어쩌면 나를 치과의사로 착각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 싶은 정도를 섞어서 떡밥을 던졌다. ‘무리뉴님 군의관이셨겠네요?’ 등등 입질이 오는가 싶었지만, 결국 아무도 낚이지 않았다.


<part3.이 시간을 마치며>

여자A : 마지막으로  내가 추리한 이들의 직업을 적어서 호스트에게 문자를 보낸다. 난 명탐정 코난으로써 치과의사를 맞췄다. 정말 이때가 가장 폭발적인 리액션들이 나온다. 상상도 못한 직업군들이 나오기 때문. 정말 놀랬던건 한 여성분이 ufc선수였던것. 그외에도 예상치 못한 직업군의 인물들이 많았다. 이들의 직업을 알고서 얘기를 나눴더라면 오늘의 대화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흠,선입견없이 바라봤을거 같은데..?'라고 해도 프레임이 씌워지는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대화의 주제도 그 한 우물 속에서만 맴돌았을것이다. 그리고 남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도 흥미로웠다. 유튜버, 파티플래너,승무원의 직업들이 나왔었다. 그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마치 내가 학생신분이 되어서 내 장래희망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듯한 기분이였달까?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꽤나 생각에 잠겼다. 사람은 사실 아닌척해도 자기 이야기를 하는걸 좋아하는구나. 관심 받기를 좋아하는구나. 그리고 그게 나라는 걸 알게 됐던 시간이였다. 나를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듯한 시간. 나도 나를 잘 모르는 부분들이 있었구나. 내가 낯설게 느껴진 시간들이였다. 다른 주제들 중에서 '무브 투 헤븐' 죽기전에 무엇을 남기고 정리할지 생각해보는 시간이라는 다이닝을 선택해보고 싶다. 살아있는 동안 먼 미래라고만 생각했던 죽음을 당장이라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또 언제 가져볼 수 있을까? 잊고 있던 익숙함과 현재를 알아가게 될거 같아서 선택해보고 싶은 다이닝.


꽤나 이 시간이 생각 날 것 같다.


남자 A :  오랜만에 모르는 사람들과 3시간을 넘게 이야기했다. 누군가에게 내가 어떻게 비칠까? 타인이 바라보는 나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었고, 또한 나도 누군가를 알기 위해 이렇게 집중한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대화에 귀 기울이게 된다. 긴 시간 동안 탐색전을 벌이는 일은 절대 쉽지 않았다. 결국 아무도 나의 직업을 맞추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도 다른 사람의 직업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치과의사가 가진 특유의 분위기와 관상(?)은 왜 인지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꽤 흥미로운 시간이었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쉐프님이 프로그램 진행과 요리를 동시에 해야 하다 보니 프로그램에 혼선이 생겼다. 참가자가 룰을 잘못 이해해서 서로 거짓말로 대화를 이어간 시간도 있었고, 대화의 분포가 균일하지 않아 정보의 빈부격차가 생기는 부분도 아쉬웠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 색다른 대화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과 내가 모르던 나의 색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는 점은 피델리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의 직업 찾기> 외에도 다른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니 새로운 사람과 색다른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은 한 번쯤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


 · 주소 : 서울 월드컵로 19길 31-1 3층

 · 영업시간 : 화 - 금 19:00 - 21:00 / 토,일 11 :00 -22:00 (14:30-17:00 브레이크타임)

 · 이용금액 : 50,000원 (주류는 1인1당 필수 , 1잔당 20,000원)


'요즘 여행'을 소개하는 편집장

요즘 여행에 대한 좋은 콘텐츠를 좋은 크리에이터들과 함께하겠습니다.


· 홈페이지 https://www.trippers.me/

· 뉴스레터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40273

·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trippers_me/


매거진의 이전글 귀여움으로 힐링완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