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바보

천사의 미소

by 산돌림

<대결 100ㅡ딸 바보>


누가: 내가

언제: 1995년 4월 그 어느 늦은밤

어디서: 부산 동래병원 앞 육교위

무엇을: 지금의 마나님을

어떻게: 집에 안보냈지

왜?: 알. . 면서


위 육하원칙 덕분에 나와 마나님은 결혼을했고

성탄절이 출산 예정일이었지만 한달 일찍 태어난 아들도 얻었다

남의집 귀한 딸래미를 2인분 만들어 놨다고

장모님께 뒤지게 맞을뻔도 했다


부랴부랴 예식장을 잡고

한달에 최소 서너탕은 뛰시는

일면식도 없는 프로페셔널 주례 선생님도 모셨다

이렇게 인륜지대사 결혼식을

서둘렀던 이유는 뱃속의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서

전철 핑크색 좌석에 거리낌 없이 앉아도 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6월 25일 일요일. .

하객들은 놀리듯. . 아니 놀리면서 말했다

"을매나 지지고 뽁꼬 싸울라고 하필 6.25여? 히히히"


*


어쨌거나 신혼은 달콤. . 할 짬도 없었다

출산 준비와 나의 사업이 급변하던 때라

이리저리 몸도 마음도 바쁘기만했다

그래도

태어날 우리의 기쁨! 사랑의 결실을 생각하면

무거운 책임감과 그 보다 더 큰 환희도 느껴졌다


"딸이었으면 좋겠어"

"나도!"


취미도, 식성도, 성격도 많이 다른 마나님이었지만

첫 아이는 딸이기를 소망한건 같았다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지 수백번도 더 생각했지만

사내아이 이름은 혹시나해서 현빈이라고 딱 하나만 정해놓곤

죄다 여자아이 이름만 생각했었다

이쁜 연예인 이름은 아마 다 있을거였다

그러나 서두에 밝혔듯 아들이 태어났고 첫째이자 막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현빈과 비스무리한 경빈이가 되었다


부산 동래병원에서 제왕절개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이된 아들은 인큐베이터에 실려 수술실을 나왔고

간호사의 손이 아들래미의 다리를 쫙 벌리며


"축하합니다 아드님 이시네요~~"


이렇게 말하는데

사실. . 삼신 할매께 조금 서운했다

짜식이 쪼골쪼골 못생겨 가지구 곧츄만 겁나 컸다

(지금도 . . 곧츄는. . 나보단. .ㅜㅜ)

그러나 가슴이 뜨거워 지더니 눈물이 나려고 했던건

너무 행복해서였다


*


아들이 기어다니면서 부터 종종 여자아이 옷을 입혔다

남자는 핑크!

이렇게 입히고 안고라도 나가면 젊은 아가씨들이 환장? 을 했다

볼도 만지고 안아보겠다고 덤비고 잼잼은 벌써 뗐는데 잼잼도 시키고. .


"어머! 따님이 너무 이뻐요!"


아들의 성적정체성 따위는 당시의 내겐 중요치 않았다

초등학생때부터 슬슬

여자니? 라는 질문을 아들이 싫어하기 시작했다

그래. . . 아빠가 미안해. .


사랑하는것과 딸가진 아빠를 부러워 하는것은 분명 다르다

난 아들을 사랑하고 나름 열심히 키웠다

그러나 부러운건 부러운거다

아들이 3살때 마나님이 둘째를 가졌다

제왕절개로 첫째를 낳아서 여간 조심스러운게 아니었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나오는데

의사가 조용히 물었다


"첫째가 아들이신가요?"


"네. . "


"ㅎㅎ 그러시다면 정말 좋으시겠다~~^^"


그냥 딸 이라고 이야기해줘도 될것을 이렇게 말을했다

정말 기뻤다

이보다 더 퍼펙트한 일이 없을듯 했다

그래! 건강하게 출산하고 나면

내꺼를 쫌매는?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


삼신 할매가 정말 미웠다

나의 딸은 엄마뱃속에서 5개월을 살다가 하늘나라로 먼저갔다

수술을 하고 침대에 누운 마나님도 몇일동안을 울었다

임신중독증 초기였다

병원에선 더이상 아기를 갖지않는게 좋겠다라는 말도 했다


난 이렇게 딸도 없으면서 딸바보가 되었다

진지하게 입양도 생각해보았다

지나가는 여자아이들에겐 저절로 눈길이갔다

광주산다는 수지아빠가 진정 부럽다

초등학교 동창친구가 딸을 데리고 나왔을때

난 한동안 친구딸의 손을 놓지 못했다


그렇다

딸가진 모든 부모에게 난 졌다라고 생각한다


*


나의 마나님도 장인 장모님께는 이렇게 소중한 딸이었을테지. .

말은 안하셨지만 두분의 입장에선 내가 아마도 날강도 같았을테지. .

23살의 찬란한 시기에 내게 시집을 온 마나님이 깨톡을 보낸다


"자갸? 퇴근 해썽?~~"


그래 퇴근했다

결혼기념일도 얼마 안남았고

날강도가 오늘은 맛난거 사주마!


그런데 늦둥이 . . . 어떻게 안될까?


*


요즘 부모에게 버림받고 홀로사는 불우한 소녀들이 생리대 살 돈이 없어서

비참한 방법을 썼다라는 기사에 가슴이 아프다

지인들과 현실적으로 돕는 방법도 이야기해 보았다


어떤 이유를대고 변명을 한다고 해도

아이를 버린다거나 곤경에 처하게 하는것은

절대 용서받을수 없는 일이다


딸이든 아들이든

아빠의 어깨에 올라탄 모습을 보라

엄마의 품에서 곤히 자는 얼굴을 보라

횡단보도에서 손을 모두 하늘로 들고 줄을 지어 걸어가는 아이들을 보라!


그대의 눈길이 멈추는 곳에 천사가 있다


누가: 내가

언제: 1995년 4월 그 어느 늦은밤

어디서: 부산 동래병원 앞 육교위

무엇을: 지금의 마나님을

어떻게: 집에 안보냈지

왜?: 알. . 면서


위 육하원칙 덕분에 나와 마나님은 결혼을했고

성탄절이 출산 예정일이었지만 한달 일찍 태어난 아들도 얻었다

남의집 귀한 딸래미를 2인분 만들어 놨다고

장모님께 뒤지게 맞을뻔도 했다


부랴부랴 예식장을 잡고

한달에 최소 서너탕은 뛰시는

일면식도 없는 프로페셔널 주례 선생님도 모셨다

이렇게 인륜지대사 결혼식을

서둘렀던 이유는 뱃속의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서

전철 핑크색 좌석에 거리낌 없이 앉아도 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6월 25일 일요일. .

하객들은 놀리듯. . 아니 놀리면서 말했다

"을매나 지지고 뽁꼬 싸울라고 하필 6.25여? 히히히"


*


어쨌거나 신혼은 달콤. . 할 짬도 없었다

출산 준비와 나의 사업이 급변하던 때라

이리저리 몸도 마음도 바쁘기만했다

그래도

태어날 우리의 기쁨! 사랑의 결실을 생각하면

무거운 책임감과 그 보다 더 큰 환희도 느껴졌다


"딸이었으면 좋겠어"

"나도!"


취미도, 식성도, 성격도 많이 다른 마나님이었지만

첫 아이는 딸이기를 소망한건 같았다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지 수백번도 더 생각했지만

사내아이 이름은 혹시나해서 현빈이라고 딱 하나만 정해놓곤

죄다 여자아이 이름만 생각했었다

이쁜 연예인 이름은 아마 다 있을거였다

그러나 서두에 밝혔듯 아들이 태어났고 첫째이자 막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현빈과 비스무리한 경빈이가 되었다


부산 동래병원에서 제왕절개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이된 아들은 인큐베이터에 실려 수술실을 나왔고

간호사의 손이 아들래미의 다리를 쫙 벌리며


"축하합니다 아드님 이시네요~~"


이렇게 말하는데

사실. . 삼신 할매께 조금 서운했다

짜식이 쪼골쪼골 못생겨 가지구 곧츄만 겁나 컸다

(지금도 . . 곧츄는. . 나보단. .ㅜㅜ)

그러나 가슴이 뜨거워 지더니 눈물이 나려고 했던건

너무 행복해서였다


*


아들이 기어다니면서 부터 종종 여자아이 옷을 입혔다

남자는 핑크!

이렇게 입히고 안고라도 나가면 젊은 아가씨들이 환장? 을 했다

볼도 만지고 안아보겠다고 덤비고 잼잼은 벌써 뗐는데 잼잼도 시키고. .


"어머! 따님이 너무 이뻐요!"


아들의 성적정체성 따위는 당시의 내겐 중요치 않았다

초등학생때부터 슬슬

여자니? 라는 질문을 아들이 싫어하기 시작했다

그래. . . 아빠가 미안해. .


사랑하는것과 딸가진 아빠를 부러워 하는것은 분명 다르다

난 아들을 사랑하고 나름 열심히 키웠다

그러나 부러운건 부러운거다

아들이 3살때 마나님이 둘째를 가졌다

제왕절개로 첫째를 낳아서 여간 조심스러운게 아니었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나오는데

의사가 조용히 물었다


"첫째가 아들이신가요?"


"네. . "


"ㅎㅎ 그러시다면 정말 좋으시겠다~~^^"


그냥 딸 이라고 이야기해줘도 될것을 이렇게 말을했다

정말 기뻤다

이보다 더 퍼펙트한 일이 없을듯 했다

그래! 건강하게 출산하고 나면

내꺼를 쫌매는?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


삼신 할매가 정말 미웠다

나의 딸은 엄마뱃속에서 5개월을 살다가 하늘나라로 먼저갔다

수술을 하고 침대에 누운 마나님도 몇일동안을 울었다

임신중독증 초기였다

병원에선 더이상 아기를 갖지않는게 좋겠다라는 말도 했다


난 이렇게 딸도 없으면서 딸바보가 되었다

진지하게 입양도 생각해보았다

지나가는 여자아이들에겐 저절로 눈길이갔다

광주산다는 수지아빠가 진정 부럽다

초등학교 동창친구가 딸을 데리고 나왔을때

난 한동안 친구딸의 손을 놓지 못했다


그렇다

딸가진 모든 부모에게 난 졌다라고 생각한다


*


나의 마나님도 장인 장모님께는 이렇게 소중한 딸이었을테지. .

말은 안하셨지만 두분의 입장에선 내가 아마도 날강도 같았을테지. .

23살의 찬란한 시기에 내게 시집을 온 마나님이 깨톡을 보낸다


"자갸? 퇴근 해썽?~~"


그래 퇴근했다

결혼기념일도 얼마 안남았고

날강도가 오늘은 맛난거 사주마!


그런데 늦둥이 . . . 어떻게 안될까?


*


요즘 불우한 소녀들이 생리대 살 돈이 없어서

비참한 방법을 썼다라는 기사에 가슴이 아프다

지인들과 현실적으로 돕는 방법도 이야기해 보았다


어떤 이유를대고 변명을 한다고 해도

아이를 버린다거나 곤경에 처하게 하는것은

절대 용서받을수 없는 일이다


딸이든 아들이든

아빠의 어깨에 올라탄 모습을 보라

엄마의 품에서 곤히 자는 얼굴을 보라

횡단보도에서 손을 모두 하늘로 들고 줄을 지어 걸어가는 아이들을 보라!


그대의 눈길이 멈추는 곳에 천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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