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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란현 작가 Mar 03. 2022

190일 모두 3월 2일처럼

아침 출근을 서둘렀습니다. 8시 15분쯤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벌써 세 명의 학생들이 교실에 와서 앉아 있었습니다. "여자 선생님이시다."

"선생님 예쁘세요."

예쁘다고 말해준 친구에게 우유를 좀 갖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칠판에 '출석번호 확인, 원하는 자리에 앉기, 책상 소독 티슈로 닦기'라고 적었습니다. 출석번호는 신발장 위 창문과 앞문, 칠판에 붙여두었습니다. 원하는 자리에 앉도록 하니 남학생들은 남학생끼리 여학생들은 여학생끼리 가까이 앉았습니다. 짝도 없고 한 명씩 앉아 있겠지만 교실에 반으로 나눈 듯 여자는 복도 쪽 남자는 운동장 쪽으로 몰려 앉게 되었습니다.

1번부터 26번까지 이름을 불러 출석을 확인했고 선생님 소개가 이어졌지요. 네이버 검색창을 열어 '백란현'을 쳐서 네이버 인물 등록된 결과를 보여줬습니다. 제 SNS까지 보여주었습니다.


"선생님은 교사, 작가입니다."

"여러분들과 1년 동안 글쓰기를 해서 시집을 만들 예정입니다. 이것은 작년에 2학년과 함께 만든 시집입니다."

19년째 3월 2일을 맞이하지만 가장 간단하게 담임 소개를 했습니다. 

'선생님 사용 설명서' 2019, 2020, 2021년 학생들이 만들어준 자료를 가져갔고 그중에 세 장만 읽어주었습니다. 사용 설명서란 말에 놀란 눈치였습니다. 

"책 제목입니다."

"수업할 때면 선생님 이야기로 넘어가기도 하는데 이야기가 재밌고 수업시간이 살짝 줄어들 수도..."

"삼천포로 빠지더라도 잘 들어드리기"

이러한 내용도 읽어주었습니다. 실제로 '나를 소개합니다'활동 소개를 하다가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아이들이 삼천포다 딴 이야기롤 빠졌다고 소곤거리더라고요.

인정! (사실 계획된 삼천포이긴 합니다만)


나를 소개합니다! 작성법

엄지-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검지-요즘 나의 관심

중지-내가 잘하는 것

약지-채워야 할 것

소지-나의 꿈


2년 전 샘플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나의 꿈에 적은 작가는 현재 이루었고 아동문학 작가로 적혀 있는 부분은 대구교대 교육대학원 아동문학교육전공 공부를 방학 때 시작한다고 소개했습니다.

"선생님 꿈이 이루어졌네요."

아이들 반응이 진지합니다.


삼천포 사건?을 말씀드릴게요.

"2년 전 나의 관심은 '언제 개학하나?'였으나 지금 나의 관심은 '오늘 하루 무엇을 기록할까'입니다. 네이버 블로그에 1년 전에 교단일기를 100일 썼습니다. 매일 '1년 전 오늘'글을 읽고 있습니다. 1년 전 오늘 2021년 3월 2일에는 교실 전화기에 커피를 쏟았습니다.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교단일기를 썼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를 기록하면 1년 후에 선생님의 첫날을 기억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노래 하나 듣고 시작할까요? 커피 쏟은 내용이 시가 되고 노래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여러분과 시집 만드는 일과 관련 있습니다."

커피 쏟는 장면을 실제로 몸으로 보여주며 말해주었습니다. 


나의 샘플 자료를 보고 각자 손가락 그림 소개자료를 만들었습니다. 한 명씩 발표를 하게 했고 아이들 사진도 각각 찍어두었습니다. 발표-사진 찍기-게시판에 붙이기 순서.

알록달록 유인물은 시간표 하나만 준비했지만 도화지 덕분에 하루 서로를 알 수 있는 자료 잘 만들었습니다.

이름표는 삼각으로 만들고 앞엔 번호와 이름, 뒤엔 다짐, 미덕을 두 개씩 썼습니다.


종례 인사 아이들은
(양손 허리) 선생님! (무릎 굽히며) 존경하고 (머리 위에 두 손으로 큰 하트를 그리며) 사랑합니다.
선생님은 (머리 위에 하트) 사랑하고 (손가락 하트) 기대합니다.
5학년 아이들이 제 모습을 보고 불편? 해 했습니다.
"여러분들의 반응은 이해합니다만 양보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1년 동안 잘 따라주기 바랍니다. 2012년 6학년 가르칠 때부터 10년 동안 같은 인사를 해왔습니다."
99퍼센트 하트 인사 성공입니다.


가정학습 중인 친구와 영상통화로 얼굴 봤습니다. 오늘 있었던 학급 이야기 화면으로 아이들 결과물 비춰줬습니다. 사랑스럽네요. 어서 보고 싶습니다.

         

3월 2일은 해마다 첫 만남의 기억이 있습니다. 1년 전 오늘 새 학교 발령받아 맞이한 3월 2일도 저의 블로그에 시간별로 메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중요한 날이라고 생각하는 날들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히 기억날 게 없는 하루도 관찰하면 적어둘 순간이 많을 겁니다. 1년을 3월 2일 첫 만남의 특별함처럼 보내고 싶습니다.

오늘 만남처럼 190일을 채우려고 합니다. 한순간도 지나치지 않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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