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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란현 작가 Mar 10. 2022

친절, 사랑, 의미를 부여한 시간, 놓치지 않기

수업 마친 후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하교했습니다. 급식 후 나의 학교 삶에서 '청소하기'루틴을 만들고 있습니다. 급한 업무부터 보면 청소는 퇴근 시간 지나서 하기 마련입니다. 쓸고 닦는 동안 방과 후 학교 시간 때문에 남아있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칠판에 그림을 그리거나 책의 일부분을 베껴 쓰기도 합니다. 등교 자체가 기적인 하루, 내 아이들에게 교실에서만큼은 마음이 편안했으면 합니다. 같이 청소하자 소리 하지 않습니다. 모두 함께 청소한 시간은 이미 있었으니까요.


신발장 먼지를 닦고 나니 속이 시원합니다. 청소하고 자리에 앉으니 두 명은 수업하러 갔고 한 명의 친구가 아직 방과 후 수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생님 책 읽어주세요."


다문화 수업이나 기초학력을 위한 수업 외에는 학교 안에서 일대일로는 책을 읽어준 적 없습니다. 남아 있는 학생이 책 읽어달라 하니 응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겐 시간이 없었습니다. 급히 평가기준안을 마련해야 했고, 학년 취합 통계 업무로 인하여 챙길 자료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작년에 제가 했던 평가 업무를 받은 선생님이 교실에 물어보러 온다고 했죠. 2시엔 학년 회의도 갑자기 잡혔습니다.


"선생님이 읽어주고 싶은데 지금 여러 가지 일이 생겼어. 괜찮다면 녹화해둔 선생님 목소리 들려줘도 돼?"


줌으로 혼자 녹화해둔 그림책 동영상을 유튜브 채널에서 찾아봅니다. 저작권 때문에 비공개해둔 영상입니다.

5분쯤 되는 영상을 틀었더니 화면에 집중하더군요. 안 되겠다 싶어 그림책도 가져다줬습니다. 책도 보고 선생님 목소리도 듣는 거지요.

5분의 시간이 끝난 후 오스카가 사랑 고백할 때 너무 소름 돋았다는 얘기도 주고받았습니다.


학교는 해마다 바빴습니다. 그러나 5분 동안 일대일로 학생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현장감 있게 읽어주면 좋았겠지만 그 시간 급한 업무도 보면서 아이도 챙겼습니다.


오늘 저의 하루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은 출간 소식도 아니고 선생님들과 회의한 시간도 아닙니다. 바로 마지막까지 교실에 남아있던 내 아이에게 그림책을 들려준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반 아이들 한 명마다 엄마와 같은 마음으로 품기로 다짐합니다.

"방과 후 수업이 도움될 때가 있네요."


"선생님 한 번도 화내지 않으셨는데 진짜 모습 아니죠?"

"당연히 진짜 모습 아니지. 그런데 화낼 일이 없네. 너희들 덕분이다."


내 아이들 뿐만 아니라 동학년 아이들, 전교생도 품기로 했습니다. 독서교육 담당자로서 그림책 수업을 안내해 드리려고 연구부장님과 통화했습니다. 담당자 제안을 어느 정도 받아줄지는 모르겠습니다. 공감과 설득의 말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배워서 남주는 그림책 큐레이터, 그리고 학교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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