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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란현 작가 May 31. 2023

기승전 글쓰기 (급식소의 변화)

급식이 없다면 결식 교사가 된다. 백작, 다른 사람 손으로 지은 밥을 좋아한다. 특히 급식소 밥은 나를 살찌게 한다. 맛있는 점은 둘째 치고 코로나 방역을 위한 칸막이가 원인이었다.

식판 가득 떠온 밥 가려주었다. 입안 가득 쑤셔 넣어도 아무도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옷에 흘리고 먹어도 당황스럽지 않았다. 가장자리 첫 칸에 앉아 밥을 먹는 바람에 한 번씩 영양사 선생님이 위에서 나를 바라보면서 5학년 챙기는 일 등으로 말을 걸어올 때 놀라긴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 식사하는 내 모습 들킨 적 없었다.


연휴가 끝난 후 오늘 급식소에 들어서는 순간 아이들이 '와!' 하는 감탄의 소리를 낸다.

"선생님 저는 이러한 급식소 모습 처음 봐요. 왜냐하면 저는 2학년 때 전학 왔었거든요."

'나도 첨 본다. 나는 3학년 때 전학? 왔거든.'


칸막이가 없으니 갑갑함이 사라져서 좋다. 그러나 급식소 자리 문제로 회의를 세 번이나 했다. 부장 회의에서 6학년 부장과 한 번, 동 학년 카톡에서 내가 그린 자리 배치도로 또 한 번, 오늘 1교시 마치고 연구실에 모여 또다시 회의를 했다.

6학년 부장과 합의한 대로 따라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회의를 시작했었다. 담임 모두 모이니 방법이 보이기 시작한다. 5학년이 먼저 식사하는 1학기 남은 기간에는 우리가 창가부터 앉고 2학기엔 6학년이 창가부터 앉기로 했다. 반별 오는 순서대로 한 줄씩 앉으면 마주 보는 학반이 그때그때 달라지므로 학반 고정 자리를 두기로 했다. 1반과 2반이 같은 식탁에 앉는다. 원래 칸막이 있었을 때에는 5학년과 6학년이 마주 보았었다. 그러나 5학년 입장에선 그리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5학년끼리 6학년끼리 따로 먹는 것으로 결정했다.  


오늘 첫날 다른 반의 누구와 마주 보여 식사할지 상당히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나는 나의 식판 걱정을 했다. 어느 선까지 밥을 퍼야 많이 먹는다 소리를 듣지 않을까. 교사는 자율배식대에서 먹을 만큼 퍼간다. 밥을 급식판에 담는 순간에는 양이 적게 느껴지지만 막상 급식소 자리에 앉은 후 내 식판을 보면 많이 퍼 왔다고 느낄 때가 많다. 오늘은 밥을 주걱으로 눌러 담아보았다. 쫄면과 비빔 만두피를 적절? 하게, 많이 먹는다 소리 듣지 않으려고 집게로 가득 집지 못하고 하나씩 여러 번 담았다. 움직임이 둔하다. 감자탕을 담기 위해 국자를 아래까지 넣어보다가 참았다. 적당히 담자.


나와 2반 학생이 마주 앉았다. 아이들은 예상대로 많이 떠들었다. 침 튈 수 있으니 말하지 말라 했으나 안 지켜질 줄 알고 있었다. 밥을 빨리 먹고 일어난 게 최선이다 싶다. 밥과 반찬을 남겼다. 남긴 게 미안해서 영양사와 조리종사원이 잔반통 정리한 후 사라질 때쯤 자리에서 일어섰다.


2019년까지 칸막이가 없었다. 2020년 코로나 이후 등교수업을 준비하면서 칸막이가 설치되었다. 처음 칸막이에서 식사를 할 때 외톨이가 된 것 같았다. 독서실에서 밥 먹는 느낌이었다. 급식 골고루 먹기 지도를 해왔던 나로서는 지도 자체를 포기해야 했다. 코로나에 대한 염려로 식사도 서둘러 먹고 일어난 것은 당연했다. 칸막이 설치했으면서도 한 칸 띄어 앉았던 만 3년의 기간 동안 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삶이 편하다고 느꼈다. 얼굴도 보여주지도 않았고 마주 보며 밥 먹으면서 대화하는 일 따위는 상상하지 못했다.




급식소의 변화를 보면서 글쓰기와 연결 지어 보았다.


아이들은 내가 먹는 양에 관심 없다. 내 눈빛이 그들의 식판에 닿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마음 편히 밥을 먹어도 된다.

독자는 내가 쓴 글에 관심 없다. 또한, 간섭하는 것 좋아하지 않는다.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써야겠다. 글이 쌓이면 내 글도 독자 눈에 띄겠지.


많이 먹는구나 생각할 때쯤 칸막이 사라졌으니 나에게 도움 되는 생각을 해야겠다. 이왕이면 탄수화물 줄이는 게 낫겠다. 나를 위해 밥 양 줄인다.

구구절절 쓴 글에서 하소연을 빼야겠다. 나의 후련함을 위해 써 내려간 글에서 버릴 것은 버린다. 그러면 나도 챙기고 독자에게도 도울 수 있는 글이 된다. 지금 이 글도 한 문단을 뺐다.


코로나 시국을 경험하면서 칸막이가 사라질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예상하지 못했다. 변화가 많은 시기다. 체험학습 관련도 날짜가 변경되었고 등교 중지도 중지 권고로 바뀐다고 전달받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이러한 학교 일상도 기록할 수 있는 '글쓰기'가 아닐까. 쓰는 힘을 기르는 것이 어른이나 아이나 해야 할 공부다. 변화를 보면서 변하지 않을 '글쓰기의 힘'을 챙겨야겠다 생각을 해본다.


내일은 나도, 글도 다이어트 좀 해야겠다. 몸과 글에 있는 군더더기를 없애면 한 달에 한 번 잠실 나들이가 지금 보다 더 흥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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