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뒷담화
재수 없는 나에게 잔뜩 취했던 나날들을 뒤로하고 20살이 되어 대학에 입학했다. 사실상 고등학교까지는 전학을 가거나 하는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오랫동안 한 지역에서 자라나기 마련이었고, 그래서 많은 지역의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 자체는 대학이 처음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갔던 대학교에는 경험상 경상도사람이 가장 작은 분포를 차지했다. 우리 과 신입생 30명이 넘는 인원 중 나 포함 딱 두 명인 걸 보면 말 다했지.
나 외에 다른 한 명은 남자애였고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누구와도 잘 지냈다. 물론 나랑도 잘 지냈고 결이 비슷해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래왔듯 진실을 말하는 걸 멈추지 않았고 나와 비슷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친구들과 무리를 이루게 됐다. 사실 진실이라고 거창하게 말하기도 애매한 게 오늘 나 머리 부스스하지 이렇게 말했을 때 그러게,라고 답한 수준일 뿐이었다. 이렇게 부정적인 질문으로 물었을 때 아니 너무 예쁜데?!라고 답하는 건 아직도 내게 어려운 숙제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나는 나에 관한 뒷얘기를 듣게 된다.
걔는 말을 너무 심하게 하던데
20살이 될 때까지 뒷담화를 거의 들어본 경험이 없었다. 경험이 없으니 면역이 없었다. 나는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이런 얘기를 뒤에서 한다며 말해준 친구 앞에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앞에서는 다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는데. 특정 인물들을 꼽아주는 친구의 말에 아 걔네가 그런 말을 했구나, 하며 그 애들한테서 가끔 느껴지는 싸한 기분과 알 수 없는 비웃음 같은 표정이 떠올랐다.
내가 눈치가 없었던 걸까? 나에 관한 나쁜 이야기 같은 걸 들어 본 적이 없는 게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더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막 나가게 말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기도 했다. 처음의 충격이 때리고 지나가자 그 뒤엔 의문이 떠올랐다. 왜 나한테만 그런 이야기를 하지?
과에서 형성된 나와 결이 맞는 친구들은 서로 그런 식으로 말했다. 걱정도 공감도 있지만 거짓은 없는 관계. 눈병 걸린 나한테 눈 안 떠지는 게 웃기다고 말할 수 있는 관계였다. 그래서 나는 나만 문제가 되는 원인을 찾아봤다. 똑같은 내용을 담았는데도 내게만 그러는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사투리 때문인가.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다른 지역 사람이 듣기에 다정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실제로 나와 대화하다가 너무 무섭게 말한다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그 사람들은 앞에서 말했던 거고 그 애들은 뒤에서 말했던 차이겠지. 물론 그에 꼬투리를 물어 이것저것 살을 불려 갔지만.
그 얘기를 들은 이후로 나는 사투리를 거의 고치게 된다. 사투리를 고칠 생각 같은 건 당연히 없었고 고쳐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그 뒷얘기가 가져온 파장이 컸나 보다. 나는 내가 잘못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조금 더 다정하게 조금 더 따뜻하게 말하는 걸 노력했다. 사실상 그러다 보니 서울말처럼 말하게 된 거겠지. 지금 와서야 그 애들에게 가서 할 말 있으면 내 앞에서 하라든가, 너희가 그렇게 뒷얘기 하는 게 더 별로라든가 하는 사이다 같은 전개를 떠올려보곤 하지만 당시의 선택은 저랬다.
다시 생각해 봐도 고작 그런 뒷얘기와 고작 그런 애들 때문에 사투리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나라는 사람 자체와 나라는 사람이 가진 것들을 모두 끌어안고 살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같은 말을 해도 어떤 사람은 감동을 받고 어떤 사람은 상처를 받으며 어떤 사람은 욕을 했다. 그렇기에 모두에게 맞는 사람도 모두에게 맞는 나도 없었다. 하지만 이건 그 일이 있고 한참이나 뒤에서야 깨달은 내용이며 당시의 나는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그런 선택을 했다. 글을 읽는 당신도 물론 알고 있겠지만 모두에게 사랑받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도 남 생각 하지 않던 내가 처음으로 무언가 잘못했다고 느끼고 고치는 것 자체는 중요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사회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올 때 어느 정도는 융화되는 것이 꼭 필요하다. 모두가 사랑하는 나는 될 수 없지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행동과 말 같은 건 해낼 수 있다. 그게 내 본모습이 아니더라도 깎여진 내가 더 잘 맞는다면 어느 정도는 숨길 필요가 있던 것이었다. 이 첫 번째 경험으로 나는 본래의 나와 사회적인 나에게 차이를 둬야 한다는 걸 알기 시작했다.
사진: Unsplash의Vitolda Kl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