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쥔공 May 08. 2024

우리 좋았잖아요?

감정의 교류엔 확신을 가질 수 있나

지난 화와 지지난화에 이어 스타벅스 이야기. 재입사하고 1년이 되기 전쯤 상황이 많이 괜찮아졌다. 처음부터 수퍼바이저 1명과 바리스타들과는 친하게 지내는 관계였기에 그나마 나았는데, 내게 호의적이지 않던 슈퍼바이저들이 다른 곳으로 발령 나 다른 파트너들이 들어오게 되고 내 아래에도 새로운 파트너들이 많이 생긴 덕에 훨씬 편해졌다. 그렇게 입사한 지 1년이 지났을 때쯤 점장 역시 다른 매장으로 발령이 났고, 나는 숙련바리스타(역량평가와 점장과 DM의 평가를 거쳐야 함)로 올라간 데다, 아직 그 사람이 있지만 그 외 모든 파트너들과 친하게 지내기도 했고 점장님도 나를 많이 아껴주셨다. 그러는 동안 내 밑으로 들어온 파트너들에게는 절대 내가 겪었던 걸 겪게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기에 최대한의 친절을 두르고 최선의 방법으로 도왔다. 그 덕에 나보다 늦게 들어온 파트너들은 다들 내게 고마워하고 잘 따라주곤 했다.




상황이 이렇게 굴러가니 더 바랄 게 없었다. 애초부터 매니저 직급 이상으로 진급할 생각은 없었기에 역량을 인정받아 숙련 바리스타가 된 것도 기뻤고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많은 파트너들에게도 고마웠다. 일은 편했으며 친하게 지내는 파트너들이니 눈빛만으로도 서로 하고 싶은 말이 통했다. 그렇게 지내다 한 신입이 들어왔다.








이 신입을 간단하게 A라고 부르겠다. A는 당시 나이가 40대 초반의 여성분이었다. 스타벅스에서도 이미 경력이 두 번이나 있었고 다른 프랜차이즈에서도 오래 일한 사람이었다.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신입을 가르쳐 본 적은 없었지만 괜히 배려한답시고 다르게 대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게 무례일 수도 있으니까. A는 생각보다 이해가 느리고 외우는 것을 어려워했지만 나는 힘이 되어주기 위해 처음엔 다 어렵다, 외우다 보면 적응된다, 오늘 한 것만 정확하게 외우고 기억하면 어쨌든 하루에 하나씩은 배운 거다, 이런 식으로 따뜻한 말을 건넸다. A는 항상 다정하게 알려줘서 고맙다며 내게 웃었다.




그러다 아직도 제 성격 못 버린 그 수퍼바이저가 A에게 지랄한 날. 나는 A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A는 일하는 건 그래도 버틸만하다며 서론을 쌓고 그 수퍼바이저 때문에 힘들다고 결론을 내보였다. 같이 일을 하는 입장이기에 직접적으로 그의 욕을 하고 싶진 않아서 나는 "이런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한 건 A가 힘들만했네요. 남는 사람이 이기는 거예요! 지지 마세요!"라고 답했다. A는 정말 고맙다고 대답했다.




얼마간이 지났을 때, A의 실력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이었다. 많은 파트너들이 그의 교육을 힘들어하는 지경까지 왔고 이미 그때쯤엔 모든 게 끝나있어야 할 텐데 본인의 실력을 늘릴 생각도 본인이 모자라다는 생각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A의 교육을 놓고 싶지 않았다. 계속 가르치다 보면 언젠가 0.5인분이라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모든 포지션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A가 반복적으로 보인 불평불만과 교육에 집중하지 않는 태도에도 굴하지 않고 나는 교육을 해왔다. A는 내가 힘든 것 안다 잘해주고 있다 조금만 더 노력해서 나아가보자는 식의 내용을 적어 보낸 카드에 자신도 다른 데서 일해봤으니 누군가를 가르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안다며, 그럼에도 항상 따뜻하게 교육해 주는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되도 않는 소리를 전해 듣는다. A가 뒤에서 내 이야기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정확히 그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다. A가 무언가를 잘못했고 나는 그 잘못에 대해 피드백을 했다.


"A, 이렇게 하면 안 돼요. 전에도 말씀드렸잖아요. 이러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알겠죠? 앞으로 잘해주실 거죠?"


A의 표정은? 마땅찮았다. 하지만 이미 교육을 하거나 피드백을 할 때 그의 표정이 그랬던 지가 꽤 됐다. 그랬기에 목소리를 더 상냥하게 내려 노력해 왔다. 그렇게 나는 포기를 하지 않아 왔건만. A가 다른 파트너 B에게 한 말은


"B! ㅇㅇ이 어제 저한테 뭐 잘못했다고, A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왜 그렇게 하세요? 제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한숨)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ㅇㅇ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불편해요."


라고 말했다는 게 아닌가? 나는 어이가 없었다. 상처받지 않도록 어린이집 교사 마냥 한껏 다정함을 끌어올려 말해왔는데. 이 얘길 들은 B는 A에게 ㅇㅇ이 그렇게 말했을 리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A는 머쓱하게 말을 끝내더란다. 나는 그가 괴로워할 때 힘이 되어주고 무슨 일이 있어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이제 와서 분탕질이라도 해볼 마음이었나.








대혼동이 왔다. 대체 내가 A에게 무엇을 잘못했던 건지, 그동안의 모든 신입 파트너들과 똑같이 대하고 똑같이 교육했다. 좋은 파트너가 되려고 노력했다. 나를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았던 그 사람들과 같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나와 같이 일하기 불편하다고 한다. 나에게 호의적으로 반응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뭘까. 나는 대체 무엇을 보고 누군가와 좋은 감정을 나누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내가 힘들어하는 걸 본 파트너들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A한테 왜 그렇게 신경을 쓰냐고. 애초에 A가 이상한 거라고. 없는 말까지 지어내는데 뭘 더 생각해야 하냐고.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생각이 점차 또렷해졌다.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 잘해준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다르면 반응이 다르게 나온다. 별생각 없이 한 말이 누군가에겐 감동일 수도 누군가에겐 비수일 수도 있다. 나는 내 최선을 다했으면 그만이었다. 어쨌든 내 역할을 다 했으니 남은 건 상대방의 역할이었다. 나는 열심이었기에 그가 받아들이기 싫다면 인정해야 한다. 그 이상의 고뇌도 근심도 필요 없었다.




이후 A는 오래 지나지 않아 퇴사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전에 일했던 데와 비교하며 우리 매장이 별로라고 구시렁댔다. 나는 끝까지 그에게 최선을 다해 다정하게 대했다. 그는 내가 뒷얘기를 안다는 걸 모르는 듯했다. 그에게 내가 우스웠을까? 나는 정말로 그가 우스웠는데. 




그 뒤에도 난 여전히 신입 파트너들에게 가장 쉽게 물어볼 수 있고, 제대로 된 정보를 주며, 따듯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얼마 전에도 내가 알려준 게 제일 잘 기억난다고 비밀이라며 속닥거리던 파트너가 있었으니 참 감사한 일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갈수록 내가 알려준 1을 1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오직 A 뿐이었다. 통계가 쌓이며 수많은 이들 중 A만 그런 반응을 보였으니 그가 이상하다는 게 정론이 되는 셈이다. 그래도 나는 그에게 참 감사하다. 당연하지만 뼈저리게 느껴보진 못한 명제가 참인 것을 정확하게 깨닫게 해 줬으니. 





사진: UnsplashPriscilla Du Preez ��
작가의 이전글 나한테 이유가 있나 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