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되면 괜찮아져요?
'서른 즈음에'부터 뭔가 어감도 서운하고 서럽고, 그런 나이의 서른이다.
어렸을 때부터 서른이라는 나이를 생각해본다면...
내가 서른일 때는 이미 세상은 우주선을 타고 다니는 미래도시이며,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통화를 하고(어? 이건 진짜 그렇잖아..?) 여튼 SF공상과학 영화 같은 시대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나는... 서른이면 거의 무슨 청학동 훈장님처럼, 이미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10대가 되고, 20대가 되고. 20대가 돼도 철딱서니 없었던 나는, 여전히 서른살을 동경하며 서른살이 된다면 어떤 시련과 역경이 닥쳐도 훗 하고 웃으며 가볍게 해치우고, 이미 일에 있어서는 어느 경지에 오르며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리라 생각했었다. 20대 중반 쯤이었나, 서른둘이었던 선배가 남자친구가 없다며 속상해했을 때 '저 선배는 어떡해...'하며 가여워했던 나의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려주고 싶을 정도다.
그렇게 나는 서른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변함 없이... 스트레스를 받고, 변함 없이 허둥지둥대고, 변함 없이 일을 어려워하고, 변함 없이 부모님과 함께 살며, 변함 없이 연애에 대해 고민하고 변함이 없다.
도대체 서른이 뭐길래.
사람들은 그렇게 서른이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나 마음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
사실 나는 서른을 너무나도 기다렸다. 20대에 어려운 일들이 많아서 그런지, 무슨 마치 적금을 30대에 찾는다는 약속이라도 있듯이 서른되면 다 괜찮아 질거야.. 이렇게 생각을 했다.
(한가지, 사주를 보면 쓰앵님들이 모두 다 서른 되면 네 인생은 풀린다고 한 것도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하나님 저를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서른이 되고, 서른 하나가 됐다. 서른이 되면 메이플 스토리 캐릭터처럼 '뿅' 레벨이 업될 것 같았던 나는 여전했고, 서른 하나가 돼도 그건 여전했다.
무엇보다 요즘 사회가 변해서 그런 것도 같다. 더 이상 서른 살이 예전 서른 살과는 조금은 다른, 그런 나이가 됐다. 비교적 또래보다 일찍 결혼한 편이 아닌 우리 엄마는 내 나이 때, 이미 네살배기 딸의 엄마였지만 지금 내 주변 친구들은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이 더 많은 것을 보면...
모르겠다. 서른 둘이 되고, 마흔 둘이 돼도 영원히 모를 것 같다. 가만 보면 그냥 사람은 유치원 기린반 친구들도, 어른들도 다 모두 똑같은 것 같다. 무한 반복이 되는 것 같다.
사실 스무살의 그 뒷 생각 없이 용기 있었던 패기로운 그 때가 그립기도 하고, 사회 초년생 때 유노윤호 급의 열정도 그립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은 그 때보다 더 못나고 계산적인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괄목할만한 레벨 업!이 되는 나는 아니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내 모습이 썩 맘에 안들지는 않다. 그렇게 나와 꾸준히 친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