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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독서법, 2번 읽기

디자이너의 독서법은 무엇이 다른가

by 이진선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직장인으로 사는 동안 한 순간도 머릿속에서 떠난 적이 없는 질문이다. 수많은 프로젝트, 고객, 동료, 디바이스, 트렌드를 통과하는 과정 속에서 내 목표는 오직 진짜 전문가가 되는 것 하나뿐이었다. 디자이너인 나는 포토샵 숙련자나 인간 프린터기 취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을 인정받는 디자인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별다른 차별성도 특출 난 재능도 없었던 내게 책은 전문성을 강화시키는 발판이었다. 그리고 디자인은 효과적인 독서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생각의 틀이었다. 책과 디자인은 서로 상호작용하며 지금까지 나를 키웠다.


고리타분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는 사람에게 책은 아주 유용한 도구다. 책을 통해 전문가로 성장한다니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싶지만, 나는 이에 대해 <사수 없이 일하며 성장하는 법>을 주제로 글을 연재하며 답을 찾아가고 있다. 책을 기반으로 사유하고 깨닫고 실천하는 과정을 상세히 풀어쓰는 것이다. 앞으로 독서법 그 자체에 대한 글도 쓸 예정이긴 하지만 그전에 먼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책을 잘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책을 잘 읽는 방법'은 내가 사회초년생이었던 시절부터 관심 있게 읽어온 테마다. 처음 독서법에 관한 책을 읽었을 당시에는 단지 다독가를 동경하며 더 많이 읽고 싶고 더 많이 똑똑해지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만 갖고 있었지만 시간이 흘러 주체적으로 책을 읽는 힘이 생기자 독서 유형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취사선택하게 되었다.


[ A ] 예찬론자 : 책은 고귀해! 존재만으로 나를 기쁘게 하지!

[ B ] 지성파 : 지성인이 되어라, 깊이 생각하라! 정치, 사회를 바꾸자!

[ C ] 방법론자 : 속독, 통독, 지독, 남독, 정독. 잘 읽고 잘 기억하는 기적의 독서법!

[ D ] 실용파 : 정보 홍수 & 시간 부족, 상황에 맞는 독서 기술을 적용해 업무력 향상!

[ E ] 행동파 : 행동하지 않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다!


A타입에서 E타입으로 갈수록 최근 독서 트렌드에 가깝다. 사회가 개인을 책임지지 않는 셀프-헬프(Self-Help)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실용파 독서와 행동파 독서가 인기를 끄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섯 가지 유형은 각각 책에서 얻으려는 성취의 차이를 보여준다. 이들이 말하는 재미, 지식, 과시욕, 기술, 효용을 위한 독서는 모두 가치 있는 제안이다. 그렇지만 독서가 어떻게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에 세세한 중간 단계를 제대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해야 한다는 당위와 이렇게 변했다는 결론만을 주장할 뿐.


분명 책을 통해 내 인생은 달라졌지만 왜 책이어야만 하는지, 책을 잘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결국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 독서법을 정의하기 시작했다.




디자이너의 독서법은 무엇이 다른가?


종이 위의 텍스트가 담고 있는 무형의 가치를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만들어 내는 생산적인 독서 방식, 자신의 일과 삶을 주도하는 창의적인 사람들의 독서 방식을 나는 '2번 읽기'라고 이름 지었다. 이는 단순히 책을 2번 읽는다는 말이 아니다. 형식이 아닌 본질, 보이지 않는 이면을 탐구하는 태도를 말한다.


2번 읽기란 무엇일까? 같은 책을 다시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영화라고 생각하면 답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다. 누구에게나 하나쯤 인생 영화가 있을 것이다. 나는 팀 로스가 주연한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 (The Legend Of 1900)>을 좋아한다. 배에서 태어나 배에서 살다 사라진 천재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를 나는 7번 보았다. 같은 영화도 여러 번 보다 보면 매번 새로운 장면이 눈에 들어오고, 봤던 장면도 새롭게 느껴진다.


처음엔 주인공을 중심으로 보고, 두 번째는 음악을 듣는다. 세 번째는 주인공의 친구를 중심으로, 네 번째는 시대 배경을 중심으로, 다섯 번째는 패션과 소품과 인테리어를 본다. 그러다 보면 점차 영화가 깊어진다. 스크린은 평면이지만 영화는 여러 겹의 레이어가 중첩되어 만들어진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눈은 한 번에 한 겹의 레이어만 볼 수 있다. 하나하나의 요소를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좋은 영화는 반복해서 보게 된다. 2번 읽기의 의미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2번 읽기는 곧 다르게 읽기다.



2번 읽기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목적이다. 책을 다르게 읽음(수단)으로서 세상을 다르게 보는 시각(목적)을 단련한다. 이것은 디자인 사고의 기본 중에 기본이며, 대학 1학년 디자인 기초 수업에서 배우는 아이디어 발상의 첫 번째이다. 새로운 발상에 필요한 것은 지식이나 기술이 아닌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고민하는 것이다. ‘다름’은 디자이너에게 일종의 강박이다.


신규 디자인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이 트렌드 리서치다. 아웃풋을 위한 인풋을 하는 것이다. 이때 많은 주니어 디자이너는 아직 디자인 사고가 정착되지 않아 주체적인 관점이 없기 때문에 멋있고 예쁜 형태만 보고 수집한다. 서비스에 대한 이해 없이 적합한 분위기도 고려하지 않고 목적 없이 ‘그냥’ 찾기 때문에 시간 내에 찾지 못하거나 전혀 엉뚱한 것만 모아 오는 것이다. 디자인 초보와 독서 초보의 패턴은 비슷하다. 이유를 모르고 그냥 하면 시간과 에너지를 들인 만큼 결과를 얻기 어렵다.


2번 읽기는 당연함에 의문을 갖고, 판단을 보류하고, 진짜 옳은 것을 찾아 습득하는 태도다. 전문가의 독서는 지식 수집이 아닌 관점과 생각의 단련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모든 분야에 적용이 가능하다. 한 분야의 전반을 조감하고, 전문가의 자질을 정의하고, 탁월한 아웃풋을 생산하기 위해 명확한 목적을 갖고 책을 읽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로 거듭나고 싶은 사람에게 2번 읽기 독서를 바탕으로 풀어나가는 책과 디자인과 일에 관한 내 이야기가 도움이 되면 좋겠다.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더 좋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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