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의 '읽는 사람'에게서 나는 무엇을 배웠나
못 말리는 책중독자와 그의 친구들
최근 독서 모임을 통해 알게 된 디자이너가 자신이 진행하는 세미나에 나를 초대했다. 자기 일을 찾아 힘껏 달려온 과정을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일과 삶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역시 읽는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어서 내가 아는 또 다른 '읽는 사람'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눈 앞을 스쳐가는 이 얼굴들로부터 지난 세월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아왔던가.
새삼스레 내 곁의 사람들을 돌아보게 된 건 최근에 읽은 책 <책만 보는 바보> 때문이다.
책을 읽고 있으면 배고픔도, 추위도, 근심도, 심지어 기침병조차 사라진다 말하는 주인공 이덕무는 진정 책에 미친 책중독자다. 그의 곁에는 평생에 걸쳐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고받은 7인의 '읽는 사람'이 있었다. 제각각 나이와 성격과 신분이 달랐지만 '더 나은 사회'를 지향하는 가치관을 공유했다. 책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조선시대 책덕후들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머리를 가득 채운 하나의 질문은 '그렇다면 내 곁의 읽는 사람은 누구인가?'였다.
'책 읽는 벗'에게 묻는 4가지 질문
마지막 장을 덮으며 한 번쯤은 책을 읽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모아 2019년판 나만의 <책만 보는 바보>를 써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책의 구성을 빌려 내 곁의 '책 읽는 벗' 7인을 선정해 그들에게 묻고 싶은 몇 가지 질문을 만들었다. 난생처음 구글 설문지를 열어 질문들을 채워가는 동안 나는 제법 신이 난 상태였다. 그 모습은 마치 이덕무가 책에서 몰랐던 부분을 새롭게 깨닫고 '간서치(看書痴, 책만 보는 바보)'처럼 행복한 비명을 질렀던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질문에 벗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떤 대답을 할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실없는 웃음이 삐져나왔다.
설문을 부탁한 7인의 벗은 이덕무의 벗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이, 성격, 직업, 알고 지낸 시간 그리고 인연이 된 계기가 전부 제각각이다. 서로 다른 맥락으로 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벗들이 생각하는 '이진선'은 벗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그들에게 던지는 4개의 질문에는 벗을 더 자세히 알고자 하는 나름의 의미가 담겨있다.
질문 1. 당신의 인생 책은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러고 보니 나는 벗들의 인생 책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인생 책은 그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질문 2. 주로 어떤 분야의 책을 읽나요? 당신이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벗들이 어떤 분야의 책을 읽는지 대략 알고 있었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관심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만든 질문이다. 책을 선택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도 알고 싶었다.
질문 3. 독서가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당신이 독서로부터 받은 영향은 무엇인가요?
책은 현실을 사는데 도움이 될까? 나의 대답은 '예스'다. 벗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그들은 책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아왔을까? 읽는 사람들은 어떻게 읽는 사람이 되는 것일까? 이들은 왜 읽는 사람으로 살기를 선택한 것일까?
질문 4. 당신의 벗 '이진선'에게 추천하고 싶은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무엇인지 묻는 것은 가장 설레는 질문이다. 각자의 맥락에서 나를 보는 관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를 조금 더 많이 생각해주세요.' 하는 철없는 투정이 포함되어 있다는 건 비밀 아닌 비밀.
2019년판 나만의 <책만 보는 바보>를 쓴다면
벗들이 작성한 설문을 한데 모아보니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먹먹함이 올라왔다. 어떤 벗은 의외의 책을 골라 내가 미처 몰랐던 면을 드러내기도 하고, 어떤 벗은 예상치 못한 장문의 편지를 써주기도 했으며, 또 다른 어떤 벗은 핵심을 찔러 뜨끔할만한 추천 책을 골라주기도 했다. 그들이 선택한 책과 그 책을 선택한 이유, 그리고 문투에서 들쭉날쭉한 각자의 캐릭터가 드러났다.
<책만 보는 바보>의 목차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한 문장으로 벗들을 정의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들은 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문자로 시각화하는 것은 은근히 어려운 과제였다. 다차원적인 개개인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 같아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 안에 새겨진 그들의 흔적을 따라가 보면 저마다 특별히 두드러지는 면이 있으니 불가능한 일도 아닌 듯했다.
○○○는 책뿐만이 아니라 사람도 읽는다. 아니, 다시 말하면 사람을 읽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의 '사람 읽기'에는 자기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는 학창 시절 친구들을 제외하면 나와 가장 오래된 벗인데, 병아리 디자이너 시절부터 알고 지냈으니 10년이 훌쩍 넘었다. 처음 보는 순간부터 '뭐지, 이 똑똑한 녀석은.'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그가 사람의 감정을 읽는 것은 일부러 의식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인생 책에서도 사람 사이의 관계와 자기 탐구에 열심인 모습이 드러나는 소중한 친구다.
이진선에게 추천하는 책 <게으름에 대한 찬양>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해 준 책.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똑똑한 사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책을 많이 빨리 읽는 사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요리를 잘하는 사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는 그야말로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최고' 타이틀을 잔뜩 거머쥐고 있는 친구다. 못해도 족히 400페이지는 될 것 같은 책을 2시간 만에 읽어놓고 태연하게 앉아 있는 친구.
"그 짧은 시간에 이걸 다 읽은 거야?"
"응."
"어, 그래."
독서든, 요리든, 외국어든 뭔가 하기 시작하면 종종 내 입이 벌어지게 만드는 사람이다. 이 글을 읽으면 분명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하겠지. "내가 그랬나?"
이진선에게 추천하는 책 <태엽 감는 새>
처음으로 문장력 때문에 책에 빨려 들어간다고 느끼게 해 준 책. 필력이란 이런 건가 느낄 수 있음.
김현미님은 한 브랜드 세미나에서 같은 팀이 된 이후로 계속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브랜드 디자이너다. 만나면 늘 '하고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들을 수 있다. 매번 놀라운 것은 언제나 나보다 한발 또는 두발 앞서가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이다. 그가 읽는 책, 하는 일, 떠올리는 생각을 Ctrl C + Ctrl V 하고 싶게 만드는 그야말로 일잘러 선배님.
이진선에게 추천하는 책 <진정한 나로 살아갈 용기>
요즘 가장 재밌게 읽었던 책인데 브레네 브라운의 '진정한 나로 살아갈 용기'라는 책입니다. 넷플릭스에 강연도 있는데 너무 재밌고 좋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책을 써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고, 남의 생각이나 평가에 민감한 저에게는.. 정말 많은 용기와 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진선님은 무언가 늘 준비하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시작은 용기 있지만 어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고민하느라 더 앞으로 빠르게 밀고 나가지는 못했던 것 같거든요. 같은 상황이 또 오더라도 더 훨훨 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허지영님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실행력' 하나만 놓고 보면 분명 1등이다. 여성으로서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로서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그에게서 언제나 배울 것이 있다. 집안일과 사업을 같이 하면서 책을 5권이나 쓴 저자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격려하고 칭찬할 줄 아는 사람, 오늘 말한 것은 오늘 실행하는 사람, 앞으로가 기대되는 사람. 또 한 명의 책을 읽는 나의 친구다.
이진선에게 추천하는 책 <마음으로 바라보기>
타인을 바라보는 마음에 진심을 더해야 함을 말해주는 책. 글과 그림이 어우러져 마음에 와 닿는 책.
정도미님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말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다. 만날 때마다 들려주는 '해온 일'과 '해야 할 일'에 대한 이야기에 빠져들지 않은 적이 없다. 대체 이 짧은 시간에 저 많은 일을 어떻게 하는 건지 불가사의하다. 예술과 디자인의 접점을 찾는 말 잘하는 1인 디자인 기업이다. 한 사람이 하나의 기업으로 살기 위해서는 '건강'이 최고라며 누워있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내가 기어이 운동을 시작하게 만들어 준 사람이기도 하다.
이진선에게 추천하는 책 1 <밀레니엄 시리즈>
내용도 재미있지만 작가의 상상력과 문장 확장력, 캐릭터의 독창성 등 배울 것이 많음.
이진선에게 추천하는 책 2 <매거진 B>
너무 유명하지만^^ 브랜드를 이야기로 잘 풀어낸 잡지. 디자인, 브랜드, 마케팅 등 콘셉트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음.
♤♤♤님은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나의 어린 선생님이다. "이 일은 제 소명인걸요."는 그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하루하루를 자신의 비전을 향해 성실히 걸어가게 하는 자기 확신과 열정은 어디서 오는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얼마 전 책을 선물 받았는데 추천 책 <왓칭>이었다. (고마워요. 잘 읽을게요!)
이진선에게 추천하는 책 <왓칭>
자신을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연습을 함께하고 싶어서 추천하고 싶습니다.
황다희님은 이 글의 서두에서 말한 바로 그 디자이너다. 알고 지낸 기간은 불과 일주일 남짓이지만 짧은 시간 동안 나에게 남긴 강렬한 인상은 마지막으로 책 읽는 벗 7인에 이름을 올리게 했다. 어려서는 육상을 하고, 대학에서는 제품 디자인을 전공한 그가 브랜드 에이전시와 교육 세미나를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앞으로 그의 남다름을 알아갈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이진선에게 추천하는 책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
이 책은 저에게 브랜딩 바이블이에요. 완벽하지는 않지만 제가 보기에 브랜딩을 가장 정확하고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입니다! 브랜딩이라는 말이 워낙 많이 쓰기도 하고 익숙하니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할 수도 있는데, 진선님에게도 올바른 브랜딩의 개념을 소개하고 싶어요! 누구나 브랜드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왔잖아요^^ 진선님의 인생을 브랜딩 하여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마침 진선님 빡독 하실 때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과 씽큐베이션에서 만난 것까지.. 우리는 벗이 될 운명이었나 봅니다ㅎㅎ) 마지막으로! 올해 저의 목표 중 하나가 이 책을 제 지인과 클래스원들에게 100권을 선물하는 것인데 조만간 진선님 만나러 갈 때 선물할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
이제 나에게 남은 건 벗들이 선택한 책들을 하나씩 따라 읽기하며 이 설문 이벤트의 마무리를 지어 나가는 것이다.
'읽는 사람'은 곧 '하는 사람'
책 읽는 벗 7인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모두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읽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자기 일에 열심인 사람들. 주변에 책을 권하는 사람들. 이런 벗을 좋아하지 않는 방법 같은 건 세상에 없다.
나에게도 이덕무처럼 '책을 읽는 친구'들이 있다.
모두,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 소중한 시간 내서 기꺼이 설문에 응해 준 나의 벗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