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 여행기의 시작점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가면 싸운다
신혼여행을 유럽 국가인 이탈리아로 간다고 했을 때 주변 기혼자들의 첫 번째 반응은 "싸우겠네"였다. 그리고 2주간 이탈리아만 간다고 했을 때의 반응은 간 김에 이웃 스위스나 프랑스는 왜 안 가느냐라는 의문이었다. 마지막으로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으로 간다고 했을 때 ‘싸우겠네’는 ‘싸운다’라는 100%의 확신으로 바뀌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변의 걱정과 달리 아내와 나는 여행동안 한 번도 싸우지도 않았고 (중간에 체력적으로 하루 몸살이 나서 호텔에서 반나절 뒹굴거리긴 했다) 이탈리아만 2주를 자유여행으로 다녀온 것에 대해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
모두가 싸울 거라 예견한 2주간의 여행을 이렇게 만족도가 높게 다녀올 수 있었던 이유는 비싼 비행기표를 내고 갔으니 본전을 뽑고 와야 한다는 마음보다 여유롭게 즐기고 오겠다는 마음으로 일정을 여유롭게 짰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내와 나는 집순이 집돌이 성향이 강해 여행에 대한 체력이 흔히 말하는 저질 체력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체력을 잘 알기에 신혼여행을 계획할 때도 최대한 숙소 이동을 줄여 짐을 풀고 싸는 일을 적게 하고자 했다.
그렇게 계획하고 실제로 여행동안 이동했던 우리의 경로는
11/4 결혼식
11/5 점심 비행기로 인천 공항 출발
11/5 밤 6시 반쯤 로마 도착 (시차 8시간 )
11/6 점심 기차(이딸로)로 나폴리로 출발
11/7 저녁 기차(사철)로 소렌토로 출발
11/9 저녁 기차로 피렌체로 출발
11/13 저녁 기차로 로마로 출발
11/18 현지 시간 8시쯤 비행기로 귀국
11/19 한국 시간 오후 4시쯤 도착
11/20 휴식
11/21 출근
으로 숙박만 따진다면 로마 1일 - 나폴리 1일 - 소렌토 2일 - 피렌체 4일 - 로마 6일이었다.
첫 로마 1박을 넣은 이유도 우리의 여행은 남부부터 시작이었지만 결혼식을 끝낸 후 장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서 처음 가보는 곳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움직이는 것보다 하루 자고 다음날 움직이는 게 우리의 저질 체력을 고려할 때 더 맞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결혼식 당일이 아니라 쉬고 다음날 출발했음에도 아내가 장시간의 비행에서 상당히 체력적으로 힘들어했어서 잘한 선택이었다. 로마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심사를 기다릴 때(입국 심사를 받는 과정도 1시간 넘게 걸렸다.) 실제로 서로에게 짜증을 내며 말다툼을 하는 커플을 보기도 했다.
이렇게 나름 여유롭게 짰음에도 피렌체에서 로마로 넘어온 날, 아내가 몸살이 나서 다음날 반나절을 호텔에서 쉬고 늦은 오후쯤에야 다시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여행을 갔으니 하나라도 더 봐야 해' 라기보다 스스로가 여유를 가지고 즐길 수 있는 여행을 했다.
피렌체 여행기에서 자세하게 이야기하겠지만 현지 스냅 촬영을 위해 만났던 사진작가분도 우리의 여행 스타일에 공감을 해주셨다. 많은 신혼부부들이 유럽국가를 도장 깨기 하듯이 다니는 걸 많이 보는데 그렇게 왔다 가면 짐 쌌다 풀고 이동한 기억만 남는다고.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면서 아내보다 많은 신경을 쓰고 사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걱정했던 문제는 소매치기였다. 이탈리아 여행을 검색해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가 소매치기 경험담, 강매 경험담, 치안 문제 등이라 상당히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 걱정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조심을 하는 건 맞지만 그렇게까지 겁내며 스트레스받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글을 아내가 보면 내가 여행 전 스트레스받아하던 모습을 이야기하며 놀릴 것이다.)
후기에 자주 등장하는 강매단들(팔찌, 바닥 그림, 흰 분칠 집시, 로마 병사 등)도 종류별로 다 보기는 했으나 투명인간 취급을 하니 아예 말을 안 걸거나 한번 말을 걸더라도 눈도 안 마주치고 ‘노!’ 하고 지나가면 더 귀찮게 하진 않았다. 특히 선글라스를 쓰고 있을 때는 거의 말을 걸지 않았는데, 아마 눈이 마주치지 않으니 말걸 타이밍을 못 잡는 것 같았다.
치안도 마찬가지로 생각보다 안전했다. 특히 남부 도시들에 대한 치안이 과거의 이야기들 때문에 좀 과장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장 그런 느낌을 많이 받은 도시는 나폴리였다.
보통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 남부 도시들을 하루 코스로 도는데 특히 나폴리는 잠시 투어 버스에서 내렸다가 항구에서 사진만 찍고 가버린다. 그래서 그런지 1박 2일간 나폴리에서 여행하는 내내 한국인뿐만 아니라 동양인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한 나폴리는 소문처럼 무법천지의 도시가 아니었고 상당히 매력적인 도시였다. 나폴리 중앙 역에서 호텔까지 갈 때도 버스로 이동했는데 특별히 위협을 느끼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버스에서 못 내릴 뻔했을 때 앞에 내리던 흑인 한 명이 도와줘서 내리기도 했다. 간혹 노숙자로 보이는 이들이나 흑인들이 모여있어서 긴장하며 지나가기도 했으나 몇몇만 동양인이 신기해서 쳐다보듯 봤을 뿐 애초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 외 소렌토, 포지타노 그리고 아말피는 전형적인 관광지 느낌으로 오히려 로마나 피렌체보다 잡상인도 없고 여행하기 좋았다.
악명 높던 사철도 실제로는 기차 자체가 낡고 스프레이 낙서가 돼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흔히 생각하는 그런 범죄도시의 기차 느낌은 아니었다. 집시도 딱 한번 폼페이로 가던 중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구걸하는 소년과 아이를 안고 차량을 옮겨 다니며 구걸하는 여자를 만났을 뿐이었다.
이처럼 너무 많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사실 확답을 하기엔 우리의 경우 여러 상황들이 일반적인 여행 후기에 나오는 것들과는 좀 다르긴 했다.
우선 11월의 이탈리아는 비수기에 해당해서 관광지마다 사람의 밀도가 그렇게 높지 않다. (물론 로마 내 몇몇 포인트는 그럼에도 많다)
그렇다 보니 소매치기를 하려고 해도 사람이 듬성듬성 있어 가까이 다가오면 누가 봐도 이상해 보였다.
두 번째는 여행을 가서 알았는데 이태리에 대한 IS테러 위협이 매우 높아 이태리 국가적으로 위기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사람이 모이는 관광지, 광장, 역 주변에는 여지없이 실탄을 무장한 군인과 장갑차들이 보였고 순찰하는 경찰도 상당히 많이 보였다.
셋째는 신혼여행이다 보니 우리가 묵은 호텔은 도심 한가운데의 4성급 이상의 호텔들이라 상대적으로 그런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적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사실 아내와 나는 신혼여행이라고 꾸미고 다니기보다 후드티를 입고 최대한 편하게 입고 다녔는데 나중에 둘이서 우리가 너무 후줄근해서 아예 타깃으로 안 잡나 보다 하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몇몇 고급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경우는 데이트 느낌으로 둘 다 한껏 차려입고 가기도 했지만 그때도 딱히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하진 않았다.)
2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사실 아내와 나는 더 이상 이탈리아는 여행을 당분간 가지 말자는 것에 동의를 했다. 그럼에도 만약 다시 간다면 아쉬웠던 두 가지를 해보고 싶다.
첫 번째는 남부 도시 여행으로, 나폴리를 좀 더 길게 돌아보고 소렌토를 기점으로 국내 여행 책자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남부 도시들을 더 길게 구경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호텔에만 있는 게 아니라 에어비앤비 등을 통해 일반 집을 렌트해서 현지 식재료로 요리를 해 먹어 보는 것이다. 현지 식재료를 통한 요리를 해 먹어 보지 못함에 우리는 물을 사러 슈퍼에 갈 때마다 항상 아쉬워했었다.
이제 이 글을 시작으로 우리 두 사람의 14박 15일간의 이탈리아 여행 이야기를 앞으로 한주에 한편 또는 두 편씩 주요 도시나 이벤트를 기준으로 풀어가려고 한다.